▲ 2021년 3월 서울시장 선거를 앞두고 신지혜 기본소득당 서울시장 후보가 용혜인 기본소득당 후보와 함께 18일 선거 토론제도 개선을 촉구하고 있다. ⓒ 연합뉴스
▲ 2021년 3월 서울시장 선거를 앞두고 신지혜 기본소득당 서울시장 후보가 용혜인 기본소득당 후보와 함께 18일 선거 토론제도 개선을 촉구하고 있다. ⓒ 연합뉴스

‘미디어 선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오늘날 선거와 미디어는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습니다. 미디어가 무엇을, 언제, 어떻게 다루냐에 따라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치기도 합니다. 미디어오늘은 ‘선거 미디어 리터러시’ 연재를 통해 선거 기사의 이면을 보는 방법을 시민들에게 안내합니다. <편집자주>

‘부고란만 빼고 신문 어느 지면이든 많이 나오는 것이 좋다.’ 정치권에서 쓰이는 격언입니다. 정치인에게 ‘비판’보다 무서운 것은 ‘잊혀지는 것’이라고 합니다. 미디어를 중심으로 소통이 이뤄지는 시대, 미디어에 잊혀진 정치인은 큰 주목을 끌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거대 정당에만 주목하는 언론

선거 기간 모든 후보가 주목을 받는 건 아닙니다. 언론 보도를 보면 거대 정당 중심으로 보도가 이뤄진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뉴스빅데이터 분석 서비스 빅카인즈에서 지난 2월1일부터 3월19일까지 종합일간지·경제지·방송사가 정당별 기사를 몇 건이나 썼는지 확인한 결과 ‘더불어민주당’ 키워드가 들어간 기사는 2만1983건, ‘국민의힘’ 키워드가 들어간 기사는 2만690건에 달했습니다. 두 정당의 보도 양에는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반면 다른 정당들의 보도 건수는 격차가 컸습니다. 진보당을 언급한 기사는 1840건, 녹색정의당 언급 기사는 1668건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들 정당은 거대 정당에 비해 언급이 10배 이상 적은 것이죠.

거대 정당이 후보도 많고 논란이 많기에 보도 격차는 불가피한 면이 있지만 정당별로 후보 수가 차이가 없는 2021년 서울시장 선거에서도 격차가 컸습니다. 2021년 2월24일부터 3월23일까지 한달 간 9대 종합일간지 지면에 서울시장 후보 언급 양을 보면 오세훈, 박영선 후보가 각각 400건 이상의 기사가 집계된 반면 이수봉·송명숙 후보 각각 2건, 신지혜·오태양·김진아·신지예 후보 각각 1건만 지면에 등장했습니다. 

▲ 뉴스 빅데이터 분석 서비스 빅카인즈에서 2월1일~3월18일 정당명을 검색한 결과. 그래픽=미디어오늘
▲ 뉴스 빅데이터 분석 서비스 빅카인즈에서 2월1일~3월18일 정당명을 검색한 결과. 그래픽=미디어오늘

미디어가 특정 정당이나 후보를 외면하면 선거 당락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요? 김성태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 등이 2008년 발표한 <국회의원 미디어 노출과 당선 결정변인의 영향력에 관한 연구>에선 “그럴 수 있다”는 결론을 냅니다.

여러 변수가 있었다는 점을 전제하더라도 14~16대 국회의원 599명 중 다음 선거에서 재선된 의원들이 낙선한 의원들보다 더 많이 미디어에 노출됐습니다. 논문은 “군소정당 국회의원 후보자나 신인정치인의 경우 미디어 노출 정도에 상당히 제약받고 있다”며 “국회의원들 간의 심각한 미디어 노출의 불균형이 다음 선거에서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방송연설과 토론도 ‘그림의 떡’

소속된 정당의 규모가 작으면 정당을 알릴 수 있는 기회도 그만큼 축소됩니다. 선거 기간 TV에서 비례대표 정당연설을 들어보신 적 있을 겁니다. 광고가 아닌 방송 연설이라서 정당별로 고르게 기회가 돌아가는 것 같지만 실은 거금을 낸 정당만 연설을 내보낼 ‘권한’이 생깁니다.

최근 KBS가 각 정당에 보낸 방송연설 제안서를 확인해보니 ‘황금시간대’라 불리는 SA시간대 기준 방송연설을 10분 내보내는데 드는 비용은 2억4285만 원(VAT제외)에 달합니다. 가난한 정당은 당을 알릴 기회 자체가 없는 것이죠. 실제 한 정당 관계자는 “SA시간대에 연설을 내보낼 비용이 없어서 가격이 저렴한 라디오에 하거나 방송연설을 포기한다”고 했습니다.

▲ KBS 22대 총선 방송연설 제안서 갈무리
▲ KBS가 각 정당에 보낸 22대 총선 방송연설 제안서 갈무리

방송광고도 비용을 지불할 수 있는 정당과 그렇지 않은 정당 간의 격차가 컸습니다. 2022년 대선 방송광고 실시 현황을 보면 TV광고의 경우 국민의힘은 총 25회, 민주당은 33회 실시했습니다. 반면 진보당은 1회에 그쳤고요. 정의당은 TV광고를 하지 않고 비용이 저렴한 라디오광고만 했습니다. 

군소 정당 소속 후보들은 토론할 기회조차도 제대로 주어지지 않습니다.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총선 방송토론에 초청을 받기 위해선 지지율 5% 이상, 최근 4년 내 선거에서 10% 이상 득표 등을 조건으로 합니다. 대선의 경우 국회에 5인 이상의 소속의원을 가진 정당이 추천한 후보자 등 조건을 달성해야 초청을 받을 수 있습니다. 신생 정당이나 원외 정당, 정치 신인에겐 토론회조차 진입장벽이 높은 것이죠.

물론 최근 들어 ‘미초청 후보자’들을 대상으로 별도로 토론회를 열지만 이 역시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초청대상 후보는 시청자들이 많은 저녁 시간대에 방송을 하는 반면 미초청 후보는 낮 시간대에 토론을 하는 경우가 있고요. 무엇보다 미초청 후보자들을 ‘2군’처럼 분류해 별도로 토론하다 보니 주요 후보들에게 질문할 기회조차 박탈당하게 됩니다. 선관위 주최가 아닌 여러 언론단체에서 주최한 토론회 역시 ‘빅3’ ‘빅2’ 등 주요 후보만 초청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듣보’가 되는 후보들

2020년 언론시민단체들이 만든 총선미디어감시연대는 총선보도준칙을 공표했습니다. 이 준칙에는 ‘신진 후보나 소수 정당 소속 후보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유권자에게 전달한다’ ‘신진 후보, 군소 정당 및 소속후보의 정책과 공약 중에서 일반 유권자의 선택과 판단에 의미 있고 중요하게 기여할 수 있는 내용들에 대해서는 충분히 보도한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언론에 당부를 한 셈인데, 잘 지켜지지 않고 있습니다. 

2021년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 당시 신지혜 기본소득당 후보는 미디어오늘에 “포스터를 붙이고 나서야 많은 시민들이 10명 넘는 후보가 등록했다는 사실을 아시게 될 텐데, 선거운동 기간 직후에 사전투표가 시작된다. 사실상 알릴 수 있는 기간이 거의 없다”고 우려했습니다. 송명숙 진보당 후보는 “소수 정당에 대한 차별 그 자체를 떠나, 시민들에게 어떤 선택지가 있는지 알리는 역할을 못하는 점이 문제”라고 했습니다. 미디어의 시대지만 미디어와 거리를 둬야 선거를 제대로 볼 수 있는 역설적인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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