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가 이달 들어 전태일재단과 공동 기획한 창간 104주년 ‘12대88의 사회를 넘자’ 기획보도를 연재하고 있다. 관련 기사는 ‘전태일 정신’을 거론하며 “전체 임금 근로자 12%인 대기업 정규직과 중소기업 및 비정규직 근로자 등 나머지 88%로 쪼개졌다”고 강조하는 노동시장 이중구조론을 반영했다.

▲ 전태일. 사진=전태일재단
▲ 전태일. 사진=전태일재단

조선일보는 기획보도 첫날인 5일 기사에서 “전태일은 당시 평화시장에서 함께 일하던 다른 노동자들의 처우를 어떻게 개선할지 계속 고민하던 청년이었다. 결국 그는 1970년 11월13일 노동자들의 실상을 알리는 차원에서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치며 분신했다”며 “전태일 재단은 지금까지 한국 사회에서 전태일의 낮은 곳을 향한 실천, 풀빵나눔 등의 연대 정신이 우리 사회를 밝히도록 힘쓰고 있다”고 했다.

이번 기획을 계기로 조선일보가 그간 전태일과 전태일 정신을 다뤄온 과거 보도들에 대해서도 관심이 모이고 있다. 이에 실제 보도들을 살펴봤다.

▲2020년 6월9일 조선일보
▲2020년 6월9일 조선일보

조선일보는 ‘조선일보 100년사’ ‘건국 60주년 기획’ 등을 통해 전태일의 일기를 특종 보도했다고 강조해왔다. 조선일보 사회부 기자 이상현이 일기를 입수해 1970년 11월22일자로 주간조선을 통해 “대서특필”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전태일의 가족과 동료들은 다른 기억을 갖고 있다. 전태일기념사업회는 전태일의 수기를 책으로 펴내며 조선일보가 전태일의 일기를 훼손하고 일부 내용을 영구 분실한 사실을 밝혔다.

“분신 직후, 조선일보사에서 기사 작성에 참고한다며 가져갔는데, 일기의 중요한 부분들이 예리한 면도칼에 의해 잘려 나가 없어져 버린 채 되돌아왔다. 이후 동지의 가족은 1년여에 걸쳐 없어진 일기를 되찾으려 무진 애를 썼으나, 결국 돌려받지 못했다. (…) 조선일보사에서 가져가면서 잘려져 나가 없어진 부분들은 당시에 미처 복사를 해놓지 못해 원본을 구할 수 없어 ‘전태일 평전’에서 인용했다.”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 서문)

▲전태일의 수기를 모아 펴낸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 서문 갈무리. 강조처리 미디어오늘
▲전태일의 수기를 모아 펴낸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 서문 갈무리. 강조처리 미디어오늘

월간조선은 전태일과 평화시장 노동자들의 노동착취를 부정하는 기고를 싣기도 했다. 월간조선은 2019년 “전태일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당시 평화시장 노동자 누구에게도 착취란 용어를 적용할 수 없다”는 류석춘 교수 기고를 게재했다. 류 교수는 2016년엔 이 매체에 실린 글 <‘전태일 평전’의 3가지 함정>에서 전태일의 분신이 “비겁하고 손쉬운 선택”이자 “불가피하지 않았으며, 따라서 아름답지도 않다. 다만 불행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조선일보는 이명박·박근혜 정부 당시 교과서에 재벌 오너 이름을 싣자고 주장하며 번번이 전태일을 불러왔다. 2011년 7월29일 사설 <이병철·정주영 빼고 전태일만 가르쳐 현대사 알겠나>에서 “(교과서들이) 전태일 분신 사건에 많은 지면을 할애하는 반면 이병철 삼성그룹 상업자나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자를 소개한 교과서는 1종에 지나지 않는다”며 “(교과서가) 친북·반대한민국적이라는 비판을 받은 후 새로 만들어졌으나 여전히 경제·사회 분야 왜곡과 편향이 심각하다”고 했다. 2013년과 2015년에도 “전태일을 크게 부각시킨 것을 놓고 볼 때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썼다.

▲2015년 10월14일 조선일보
▲2015년 10월14일 조선일보

조선일보는 노동계의 ‘전태일3법’ 요구를 비판해왔다. 전태일3법은 민주노총 등 노동계가 전태일 50주기를 맞아 법제화 요구했던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과 노조법상 노동자 정의 확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등을 말한다. 조선일보는 문재인 정부가 이들 법을 “밀어붙인다”며 노동계 요구는 “멈추지 않고 있다”고 보도했다. 노동계가 2019년 탄력근로제 등 ‘노동개악 저지’를 걸고 개최한 ‘전태일 열사 정신 계승 전국 노동자 대회’는 “폭력·고성 시위”로 규정했다.

조선일보는 2022년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 하청노동자들의 생존권을 건 파업 당시 하청노동자들 비판을 위해 전태일을 소환했다. 조선일보 사설은 하청노동자들이 전태일과 다르다며 점거 농성을 ‘생존권 투쟁과 거리가 먼 조폭 행위’라고 비난했다. 법원이 민주노총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집회를 금지하는 가처분신청을 인용하자 이 결정이 가볍다며 되레 비판했다. 이 신문은 “법원은 이런 조직의 불법행위를 마치 전태일 시대 노동조합이 없던 공단 여공들의 생존권 투쟁을 대하듯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2022년 7월19일 조선일보 사설
▲2022년 7월19일 조선일보 사설

전태일은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와 달랐을까. <전태일 평전>(조영래)에 따르면 그는 기자들이 ‘통계 없이는 노동실태 보도가 어렵다’며 취재요청을 거절하자, 직접 평화시장 실태조사에 나섰다. 그는 시청과 노동청에 노동법 위반 진정을 냈고, 노동자들을 설득해 집회를 열었다. 집회가 당일 경찰과 업체 사장들에 의해 무산되자 동료들과 근로기준법 책에 불을 붙이는 집회를 다시 계획했다. 기일이 된 11월13일 ‘근로기준법 화형식’이란 이름의 집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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