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일 낮 12시 한국에서 처음으로 여성파업을 조직한 ‘2024 3·8 여성파업’ 참가자들은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 모였다. 사진=윤유경 기자.
▲ 8일 낮 12시 한국에서 처음으로 여성파업을 조직한 ‘2024 3·8 여성파업’ 참가자들은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 모였다. 사진=윤유경 기자.

“차별을 넘어 평등의 봄으로!” 3·8 세계 여성의날 정신계승 전국노동자대회에 각기 다른 상황에서 다른 요구를 하는 3500여 명(주최측 추산)이 성평등 사회를 위해 한 자리에 모였다. 여성, 남성, 논바이너리(여성과 남성 중 하나에 속하지 않는다고 규정한 이들)와 같은 성소수자, 노년과 중년, 청년 등 성별과 나이에 관계없이 다양했다. 이들은 모두 “구조적 성차별과 여성혐오를 부수자”고 외쳤다.

8일 낮 12시 한국에서 처음으로 여성파업을 조직한 ‘2024 3·8 여성파업’ 참가자들은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 모였다. 연차, 휴가, 조퇴를 통해 700여 명, 41개 단체가 여성파업 현장을 찾았다. 성차별적 승진승급을 문제로 투쟁해 온 금속노조 KEC지회와 해고 없는 소속기관 전원 전환을 위해 투쟁을 진행 중인 공공운수노조 건보고객센터지부는 쟁의권을 갖고 집회에 참여했다.

▲ 8일 낮 12시 한국에서 처음으로 여성파업을 조직한 ‘2024 3·8 여성파업’ 참가자들은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 모였다. 사진=윤유경 기자.
▲ 8일 낮 12시 한국에서 처음으로 여성파업을 조직한 ‘2024 3·8 여성파업’ 참가자들은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 모였다. 사진=윤유경 기자.

이날 집회에선 엄마의 이력서 작성을 도운 경험이 공유됐다. 신혜정 한국여성민우회 활동가는 발언에 나서 “엄마는 아이를 키우면서도 할 수 있다 여겨지는 마트 캐셔나 화장품 방문 판매 일을 해왔다”며 “엄마는 평생 여러 일을 해왔음에도 막상 이력서를 마주했을 때 무엇을 써야 하는지 난감해했다”고 했다. 신 활동가는 “경력으로 인정될 만큼 길게 일하지 못했거니와, 엄마가 평생 큰 책임을 가졌을 가사노동과 돌봄노동은 노동으로 인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여성이 무급으로 해왔던 노동의 가치가 인정받아 앞으로는 여성 노동자의 이력서에 다채로운 경력이 기재될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는 정부의 퇴행·여성혐오 정책에 대한 비판도 나왔다. 이들은 이러한 현실을 반영해 2024년 여성파업의 구호를 “역행하는 시대, 돌파하는 우리의 투쟁”으로 내걸었다. 이들은 “여성 노동자들의 멈춤으로, 파업으로, 여성 노동자들의 힘으로, 연대의 힘으로 불평등의 사회에 균열을 낼 것”이라며 “여성파업은 구조적 성차별, 여성혐오를 부수는 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역·장애인·성소수자·돌봄노동자의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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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일 낮 12시 한국에서 처음으로 여성파업을 조직한 ‘2024 3·8 여성파업’ 참가자들은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 모였다. 사진=윤유경 기자.

공장폐쇄와 정리해고에 맞서 옥상 고공농성 투쟁을 진행 중인 금속노조 구미지부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는 통화 연결로 연대의 뜻을 보탰다. 소현숙 지회 조직2부장은 “권리를 제한하고 임금의 격차를 둬 차별하는 건 나쁜 일인데 당연한 듯 일어나 참고만 살았다. 나중엔 바꾸려는 생각도 하지 못할 정도로 변해버렸다”며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교묘하고도 직접적인 차별을 막아내고 목소리 내야 한다. 지금의 나를 위해, 앞으로 살아갈 여성들을 위해 포기 말고 나아가자”고 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예산 중단으로 인해 서울시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에서 해고당한 이수미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개인 대의원도 “모든 차별과 배제는 연결돼 있다. 중증장애인들도 수많은 차별과 배제 속에 살아왔다”며 “여성을, 장애인을 차별하는 사회적 구조를 바꾸자. 같이 연대하며 지지하며 앞으로 나아가자”고 말했다.

▲  8일 ‘2024 3·8 여성파업’에서 발언하는 이수미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개인 대의원. 사진=윤유경 기자.
▲  8일 ‘2024 3·8 여성파업’에서 발언하는 이수미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개인 대의원. 사진=윤유경 기자.

이연수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트랜스인권팀 활동가도 “나는 태어났을 때 남성으로 지정받았지만 지금은 여성이란 정체성으로 살아가고 있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의 노동이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처럼 트랜스여성은 끊임없이 여성 범주에서 배제되며 존재를 부정당했다”며 “다양한 정체성을 가지고 다양한 노동을 하고 있는 우리가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 지금의 가부장적 자본주의 체제에 균열을 일으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민간 요양보호센터에서 일하던 요양보호사 김춘심씨는 2019년 돌봄노동자들의 고용 안정과 공공성 강화를 위해 설립된 ‘서울시사회서비스원(서사원)’에 입사했다. 그러나 서울시는 서사원 예산을 100억 원 넘게 삭감했고, 김씨는 2023년 6월 계약만료로 해고됐다. 김씨는 현재 실업급여 기간을 마친 후 현재 민간센터에서 시급제 노동자로 일하고 있다. 

▲ 8일 ‘2024 3·8 여성파업’에 참여한 돌봄노동자 김춘심씨(오른쪽). 사진=윤유경 기자.
▲ 8일 ‘2024 3·8 여성파업’에 참여한 돌봄노동자 김춘심씨(오른쪽). 사진=윤유경 기자.

김씨는 시민단체 ‘다른몸들’에서 돌봄 노동자 글쓰기 모임을 하며 돌봄 노동자가 받은 차별에 대해 공론화하고 있다. 김씨는 “우리가 겪는 차별에 대해 말해야 한다. 나는 계속해서 돌봄노동자의 차별받는 현실에 대해 글로 쓰고 세상에 발표할 것”이라며 “여성들이 힘을 모아 우리의 노동을 정당하게 대우하라고 외친다면 조금씩 사회가 변할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3·8 여성파업 조직위원회는 이날 5개의 요구안으로 △성별임금격차 해소 △돌봄 공공성 강화 △일하는 모두의 노동권 보장-고용안정과 비정규직 철폐 △임신중지에 건강보험 적용, 유산유도제 도입 △최저임금 인상을 내걸었다.

집회 참가자들의 참가 이유 “차별과 불평등 해소”

▲ 8일 집회 현장 부스에서 만난 명숙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상임활동가. 페미니스트 디자이너 소셜클럽 디자이너들이 여성파업 조직위에 동참하며 직접 디자인한 로고를 참가자들의 티셔츠에 인쇄해주는 부스다. 사진=윤유경 기자.
▲8일 집회 현장에선 기후위기 캠페인을 벌이는 '키후위키'가 부스를 열고 3.8 여성파업의 행동도구를 만들고자 참여자들을 대상으로 워크숍을 진행했다. 부스에서 만난 명숙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상임활동가가 티셔츠를 들고 웃고 있다. 사진=윤유경 기자

집회 시작 전부터 참가 단체들은 보신각 주변에 부스를 설치했다. 참가자들의 티셔츠에 여성파업 기념 로고를 인쇄해주는 부스엔 사람들이 붐볐다. 페미니스트 디자이너 소셜클럽 디자이너들이 여성파업 조직위에 동참하며 직접 디자인한 로고다. “너무 멋지지 않나요?” 웃으며 말하는 명숙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상임활동가는 “(디자이너들이) 한국에서 처음 진행되는 여성파업에 맞춰 ‘여성들이 세상을 바꾼다’, 역행하는 시대에 돌파하는 느낌으로 만들어줬다”고 설명했다.

▲ 8일 집회 현장에서 만난 동성결혼 법제화 캠페인을 진행하는 ‘모두의 결혼’ 부스 참가자들. 사진=윤유경 기자.
▲ 8일 집회 현장에서 만난 동성결혼 법제화 캠페인을 진행하는 ‘모두의 결혼’ 부스 참가자들. 사진=윤유경 기자.

‘모두의 결혼’이라는 이름이 붙은 부스도 눈에 띄었다. 성소수자 평등과 동성 부부들의 삶을 위한 동성결혼 법제화 캠페인을 진행하는 부스다. 이호림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활동가는 “동성혼을 법제화한다는 것 자체가 가족제도에 남아있는 성별에 의한 차별을 제거하는 것”이라며 “성평등에 대한 요구에 당연히 동성혼법제화 요구가 들어간다고 생각해 관련 캠페인을 알리기 위해 3·8 여성의날을 맞아 나왔다”고 말했다.

미디어오늘은 참가자들에게 집회 참여 이유를 물었다. 집회 현장에서 만난 임용현 사회주의를향한전진 활동가는 “한국사회가 성별임금격차가 OECD 국가에서 27년째 1위”라며 “불평등한 구조를 바꾸기 위해선 여성 노동자들이 실제 현장을 멈추는 투쟁을 해야한단 취지에 공감해서 나왔다”고 말했다. 정유미 페미니스트 디자이너 소셜클럽 소속 디자이너는 “디자인계에서도 여성과 남성이 느끼는 노동의 차이가 있고, 불평등이 있다”며 “이러한 불평등이 해소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결혼이주여성의 임금차별 철폐연대에 함께하는 이남수 공공운수노조 사회조직지부 전략조직국장은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결혼이주여성만 뽑는 직군이 있는데, 이분들만 한국인과 다르게 호봉제 임금을 적용하지 않고 최저임금보다 조금 높은 수준에서 기본급을 주고 있다”며 “10년이 넘게 일해도 최저임금 언저리의 임금을 받게 되는 거다. 이러한 차별을 없애야 해서 집회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집회 후 행진, 전국노동자대회에서 3500명까지 참석자 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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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일 보신각에서 출발해 혜화까지 각기 다른 색깔과 모양으로 꾸민 피켓과 깃발, 현수막을 들고 모여 행진하는 사람들의 얼굴엔 웃음이 가득했다. 사진=윤유경 기자.

집회가 끝난 후 참가자들은 민주노총 주최의 ‘2024년 3.8 세계 여성의날 정신계승 전국노동자대회’ 참가자들과 함께 보신각에서 출발해 혜화로 행진했다. 오후 3시 혜화 마로니에 공원 앞에 도착해 진행된 전국노동자대회엔 총 3500여 명의 참가자들이 모였다. 

▲ 혜화로 향하는 행진 중엔 “여성이 멈추면 세상이 멈춘다”는 구호와 함께 도로에 눕는 퍼포먼스도 진행됐다. 사진=윤유경 기자.
▲ 혜화로 향하는 행진 중엔 “여성이 멈추면 세상이 멈춘다”는 구호와 함께 도로에 눕는 퍼포먼스도 진행됐다. 사진=윤유경 기자.

사회를 맡은 권수정 민주노총 여성위원회 위원장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면접에서 탈락하고 머리가 짧다고 폭행당하고 페미니스트로 의심받으면 징계받는 나라, 장애인 이주민 난민 소수자들의 권리는 비용으로 환산돼 생존을 위협하는 나라에서 지난 한 해에도 힘들었다”며 “그러나 성별에 따른 차별을 철폐해야 한다고 함께 소리 높여 투쟁해 주신 동지들이 있어 숨 쉬며 살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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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후 3시 혜화 마로니에 공원 앞에 도착해 진행된 전국노동자대회엔 총 3500여 명의 참가자들이 모였다. 사진=윤유경 기자.

여성 농민들에 대한 뿌리깊은 차별을 규탄하는 발언도 나왔다. 양옥희 전국여성농민회(전여농) 총연합회장은 “여성 농민의 투쟁은 이름을 얻기 위한 것이었다. 여성 농민들은 그저 누군가의 어머니였고 아내였으며 농사일에 전력을 다해도 농민이 아니었다”며 “세대주 남성이 아닌 여성에게도 농민의 이름을 달라고 싸우고 있으며 여성의 노동력이 마을 단위에서 무급으로 활용되는 사회의 인식과 싸우고 있다”고 말했다. 

집회엔 성평등을 실천한 조직과 개인에 대한 시상식이 있었다. 서울 지하철 성추행 사건 피해자와 함께 투쟁해 가해자를 처벌한 전국민주여성노동조합 서울메트로지부, 건설 현장 여성 노동자들이 당하는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성평등 고용 사업 활동을 하고 있는 건설산업연맹 전국건설노동조합 타워크레인 분과위원회 등이 수상했다.

▲ 8일 보신각에서 출발해 혜화까지 각기 다른 색깔과 모양으로 꾸민 피켓과 깃발, 현수막을 들고 모여 행진하는 사람들의 얼굴엔 웃음이 가득했다. 사진=윤유경 기자.
▲ 8일 보신각에서 출발해 혜화까지 각기 다른 색깔과 모양으로 꾸민 피켓과 깃발, 현수막을 들고 모여 행진하는 사람들의 얼굴엔 웃음이 가득했다. 사진=윤유경 기자.

입사 후 당한 성추행 및 최저임금법 위반을 폭로한 금속노조 대구지부 성서공단지회 무티아라 차흐얀다와 디아나 알리파흐 엘리는 대표 수상소감을 맡았다. 이들은 “울면서 보냈던 우리가 이제 Strong woman(강한 여성)이 되었다”며 “한국에서 여성 노동자로 살아가기 위해 더 힘을 내야겠다고 생각한다. 여성이란 이유로, 이주노동자라는 이유로 성폭력을 당하거나 차별받지 않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오늘 하루도 당당하게 살아가자”고 말했다.

▲ 8일 금속노조 대구지부 성서공단지회 무티아라 차흐얀다와 디아나 알리파흐 엘리는 대표 수상소감을 맡았다. 사진=윤유경 기자.
▲ 8일 금속노조 대구지부 성서공단지회 무티아라 차흐얀다와 디아나 알리파흐 엘리는 대표 수상소감을 맡았다. 사진=윤유경 기자.

여성노동자들의 총선 요구안 발표도 이어졌다. 이들은 △성인지적 노동환경 개선 △성별임금격차 해소 △안전과 재생산에 미치는 노동환경의 성별 영향 점검 △12세 미만 아동양육자에 대한 노동시간 단축 우선적용 △성평등단협의무 법제화를 요구했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우리의 노력으로 조금씩 줄여왔던 성별, 임금 격차는 윤석열 정권에서 또다시 확대됐다”며 “정부의 정책이 차별을 재생산하고 확대하는 현실에서 우리는 단호히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했다. 이어 “성차별은 비정규직 차별을, 인종차별을, 학력차별을, 장애인 차별을 정당화하는 수단이 된다”며 “가정에서, 일터에서 사회 곳곳에서 화석처럼 뿌리내린 성차별의 고리를 끊어내는 투쟁은 여성들만의 몫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과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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