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TN이 같은 일을 하는 그래픽 디자이너들을 정규직과 무기계약직으로 분류하며 처우를 차별해온 것이 불법이라는 판결이 나왔다. ‘채용 절차가 달랐다는 이유만으로 차별 대우하는 것은 불법’이라는 취지로, 방송계를 비롯한 노동 사건에 중요한 판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 YTN은 항소했다.

서울서부지법 11민사부(재판장 박태일)는 지난 8일 연봉직 그래픽 디자이너 4명이 YTN을 상대로 차별받은 임금 차액을 배상하라며 제기한 소송에서 “(피고 YTN) 행위는 헌법 11조가 선언한 평등원칙에 따라 용인될 수 없는 차별적 처우”라며 원고 전부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YTN은 불법행위에 따른 손해배상으로서 원고들에게 호봉직 그래픽 디자이너에게 지급한 임금·수당 차액을 배상하고 지연손해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밝혔다.

YTN ‘질적 차이·높은 식견’ 주장…재판부 “섞여서 같은 업무, 능력차 증거 없어”

▲지난 23일 YTN 방송뉴스 중 연봉직 노동자가 제작한 그래픽(위)과 호봉직 노동자가 제작한 그래픽(아래) 비교. 연봉직 디자이너들은 호봉직과 연봉직 디자이너들이 '동일 가치 노동'을 한다고 말한다. 사진=YTN 프로그램 갈무리.
▲지난 23일 YTN 방송뉴스 중 연봉직 노동자가 제작한 그래픽(위)과 호봉직 노동자가 제작한 그래픽(아래) 비교. 연봉직 디자이너들은 호봉직과 연봉직 디자이너들이 '동일 가치 노동'을 한다고 말한다. 사진=YTN 프로그램 갈무리.

YTN의 10~13년차 그래픽 디자이너 4명은 지난 2020년 11월 “업무에 아무런 차이가 없는데도 YTN이 고용 형태만을 근거로 차별한 것은 위법”이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YTN 프로그램에 쓰이는 각종 그래픽을 제작해온 노동자들로, 파견직이나 프리랜서를 거쳐 ‘연봉직’, 즉 무기계약직으로 채용됐다. 이들은 연차가 같은 호봉직(정규직) 디자이너와 달리 △연 기본급 800% 상여금 △제수당 △동일 정기승호를 적용받지 못하면서 호봉직의 50~70% 수준 급여를 받고 일했다고 말한다.

YTN 측은 재판에서 호봉직 그래픽 디자이너들은 ‘엄격한 채용시험’을 거쳤고 ‘높은 식견’을 요하는 보도그래픽팀 업무를 맡고 있다며 업무상 질적 차이를 주장했다. YTN은 “보도그래픽팀에서 제작한 그래픽은 짧은 시간 내 사용돼 정치·사회에 대한 높은 식견, 기사 이해력, 이미지 구별 능력 등이 필요하므로, 엄격한 채용절차를 거친 호봉직만이 수행할 수 있다”고 했다.

▲YTN 그래픽 디자이너들이 제작한 그래픽물. 위 사진 2개를 호봉직 디자이너가, 아래 사진 2개는 연봉직 디자이너가 제작했다. 연봉직 디자이너들은 '동일 가치 노동'을 했다고 말한다. 사진=YTN 프로그램 갈무리.
▲YTN 그래픽 디자이너들이 제작한 그래픽물. 위 사진 2개를 호봉직 디자이너가, 아래 사진 2개는 연봉직 디자이너가 제작했다. 연봉직 디자이너들은 '동일 가치 노동'을 했다고 말한다. 사진=YTN 프로그램 갈무리.

그러나 재판부는 호봉직과 연봉직 그래픽 디자이너들이 섞여 일한 데다 업무에 차이가 없다며 YTN 주장을 기각했다. 소송을 제기한 이들은 2020년 5월 YTN의 인사 조치 때까지 YTN 디자인센터 보도그래픽팀과 제작그래픽팀에 호봉직 그래픽 디자이너들과 섞여 동일한 업무를 했다. 재판부는 “보도그래픽팀 업무는 사원들이 자율 처리하는 방식으로 이뤄졌고, 양쪽 디자이너들은 의뢰 업무를 난이도나 소요 시간에 관계없이 처리했다”며 “제작그래픽팀 업무 역시 양쪽 그래픽 디자이너가 업무표에 함께 편성돼 수행했고, 업무도 난이도나 업무 질에 따라 구분되지 않았다”고 했다. 이어 “인사조치 이후에도 그 구성이 엄격히 구분되지 않았다”고 했다.

재판부는 “호봉직 그래픽 디자이너만 보도그래픽을 적절히 수행할 수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YTN은 두 팀의 업무가 다르다는 구체적 증거도 제출하지 않았다”고 했다. YTN이 지난 2021년 원고 중 1명인 A씨가 제기한 노동위원회 재심 차별시정 사건에서 “A가 호봉직과 동종·유사업무를 수행”한 사실을 인정했다고도 짚었다.

“YTN, 채용요건에 따른 차별…용인 못할 위법행위”

▲서울 상암동 YTN사옥.
▲서울 상암동 YTN사옥.

특히 재판부는 YTN이 ‘채용시험의 차이’를 이유로 차별 대우한 점이 비합리적이라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채용 절차 및 요건으로 유의미한 정도의 업무능력 차이가 발생한다고 볼 증거가 없다”며 “완화된 절차로 채용됐다는 이유만으로, 동일한 업무를 하면서 호봉직보다 낮은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볼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YTN 측은 호봉직 그래픽 디자이너의 ‘장래 권한과 책임이 더 막중하다’고도 주장했는데, 재판부는 이것이 또다른 차별일 수 있다고도 짚었다. “(업무가 동일한데도) 각 근로자의 입직 요건과 절차가 다르다는 사정이 장래 보직까지 영향을 미친다면, 이로 인해 또 다른 차별이 발생할 수 있다”며 YTN의 차등 대우가 “입직 요건 및 절차에 따른 차별 외에 다른 의도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게 재판부 판단이었다.

재판부는 YTN이 기간제법상 차별금지 조항과 헌법 제11조 1항 평등원칙을 위반했다며 “우리 전체 법질서에 비춰 용인될 수 없는 위법행위에 해당해 민법 750조의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했다. 

이번 사건은 3년 전 YTN 내 무기계약직 차별 문제로 주목을 끌었다. YTN은 2015년부터 그래픽 디자이너를 연봉직으로만 채용했다. 이들 그래픽 디자이너는 2017~2018년부터 YTN에 처우 차별 해소를 요구해왔다. YTN은 2019년 호봉직 그래픽 디자이너를 신입 채용하는 한편 이들에겐 영어점수 제출 등 채용시험을 거칠 것을 요구했다. 

YTN은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YTN 측 언론담당자는 “구체적 입장은 향후 법정에서 밝힐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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