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오늘

[‘차별 철폐’ 무기계약직들의 분노] ① YTN 계약직 “동일노동, 차등임금은 차별” 지노위 승소
[‘차별 철폐’ 무기계약직들의 분노] ① YTN 계약직 “동일노동, 차등임금은 차별” 지노위 승소
지난해 11월 서울지노위 ‘차별 시정’ 신청한 기간제 그래픽 디자이너 손 들어줘 “차별 임금 600만원 지급”

언론계 무기계약직들이 차별 문제를 공론화하고 있다. 지난해 1월 ‘동일가치 노동-동일임금’을 주장한 대전MBC 무기계약직들이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했고 최근엔 YTN 무기계약직이 차별 임금 소송에 나섰다. 언론계가 기자·PD 등 직종만 ‘핵심 노동’으로 보고 다른 직종은 비정규직을 남용한 고용 구조를 돌아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YTN을 중심으로 3편에 걸쳐 언론계 무기계약직 차별 문제를 조명한다. - 편집자 주

지난해 11월 YTN 계약직 직원이 내부 차별 구조를 법적으로 문제 제기해 이긴 사례가 있다. 그래픽 디자이너 박연수씨(가명·33)가 그해 7월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제기한 차별 처우 시정 신청이다. 지노위는 동일 업무를 하는데도 ‘계약상 지위’가 다르다는 이유로 정규직보다 적은 임금을 받는 건 차별이라는 박씨 주장을 받아들였다.

핵심 쟁점은 임금 차별이지만 박씨 생각은 임금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그는 시스템이 진짜 문제라고 봤다. 사내에서 ‘계급’, ‘골품제’ 등이라 불리는 ‘직분제도’다. YTN엔 3개 직분을 근거로 인사나 처우 규정이 각각 다르게 적용됐는데 일부 부서 직원들은 직분 구분 없이 서로 유사한 업무를 수행했다.

3개 직분은 처우 순대로 호봉직(분), 일반직, 연봉직이다. YTN은 ‘핵심’ 업무와 ‘비핵심’ 업무 판단을 기준으로 직분을 구분한다고 사규에 밝혔다. 가령 호봉직 대부분은 취재·촬영 기자다. 소위 ‘언론고시’라 불리는 공개채용 전형을 통과한 이들이다. 일반직엔 카메라감독, MD(방송운행책임자), 영상편집자 등이 있다. 그밖에 그래픽디자이너부터 음악감독, 제작AD, 시설관리직, 운전직 등 다양한 직종이 연봉직에 속했다.

연봉직은 쉽게 말해 무기계약직이다. 통상 이들은 같은 경력의 호봉직 연봉의 50~70% 수준을 받았다. 박씨도 현재 연봉직이다. 그런데 호봉직과 ‘동일 가치 노동’을 했다. 그래픽디자이너들이 모인 디자인센터엔 호봉직 17명과 연봉직 14명, 프리랜서 10여명이 섞여 있다. 겉모습만 보면 누가 어떤 직분인지 알 수 없다. 이들은 YTN 프로그램에 필요한 각종 그래픽을 함께 제작했다.

▲박연수(가명) 그래픽 디자이너가 제작한 그래픽 작업물. 사진=YTN 프로그램 갈무리.
▲박연수(가명) 그래픽 디자이너가 제작한 그래픽 작업물. 사진=YTN 프로그램 갈무리.

동일 노동, 다른 처우 “차별”

‘같은 일을 하는데 왜 처우는 다를까?’ 그는 처우뿐 아니라 대우도 다르다고 느꼈다. 마치 “회사가 방치한 인력들” 같았다. 임금·복지든, 진급 등의 인사제도든 이들을 위한 회사 규칙은 없는 편에 가까웠다. 2019년 전까진 ‘임금 테이블’도 없었다. 임금인상률은 지난 10년간 평균 2.4% 정도로 상승 폭이 낮았다. 승진 규정은 2017년 생겼지만 일정 연차가 돼도 고과가 우수해야 심사대상이 될 기회가 주어져 ‘20년차 사원’도 있었다. 2019년에 처우 개선이 시작된 이유도 이들이 2018년에야 교섭대표 노조에 가입할 수 있어서다.

박씨는 2015년 6월 파견노동자로 YTN에서 처음 일했다. 파견이 가능한 2년이 지나자 이후 1년 동안 프리랜서 계약을 했다. 이후 2년은 기간제 노동자로 일했다. 기간이 끝난 지난해 7월3일 연봉직으로 전환됐다. 6년 동안 계약서는 바뀌었지만 그는 변함없이 매일 출근해 YTN에 필요한 그래픽물을 만들었다. 이런 연봉직 디자이너가 13명이 더 있었다. 그가 지난해 7월 서울지노위에 차별 진정을 내게 된 이유다.

카카오톡에 쌓인 ‘혼재 작업’ 증거들

호봉직과 동종 업무를 맡은 사실은 그가 업무 지시를 받은 카카오톡 기록만 봐도 확인된다. 팀장은 직분 구분 없이 일거리를 나눴다. 이를테면 주요 뉴스 프로그램을 기준으로 오전 6~8시 담당은 호봉직 A씨, 오전 11시~오후 1시는 호봉직 B씨, 오후 2~4시는 프리랜서 C씨, 오후 6~8시는 연봉직 D씨인 식이다. ‘각자 원하는 제작물 먼저 찜해가세요’라며 업무를 배분하기도 했다. 주말 근무 당번도 서로가 동등하게 돌아가면서 맡았다.

▲카카오톡 업무 기록.
▲카카오톡 업무 기록.

팀이 달라도 디자이너 일은 구조적으로 비슷했다. 보도그래픽팀은 매일 새로 보도되는 리포트에 필요한 제작물을 만들었고, 제작그래픽팀은 VR·AR 등 가상현실 기술이 접목된 제작물을 만드는 등 제작 기간이 상대적으로 긴 수요에 주로 대응했다. 하나의 뉴스프로그램에도 두 팀의 제작물이 동시 활용됐다. 기자들이 사회부, 정치부, 특파원 등으로 나뉘듯 디자이너도 세부 업무가 다를 뿐이었다.

호봉직과 연봉직의 임금명세서는 판이했다. 연봉직은 기본급에 ‘진행수당’ 15만원이 붙었다. 호봉직은 이에 더해 직급수당, 교육연구수당(7만원), 통근수당(20만원), 급식수당(10만원)이 매달 붙었다. 호봉직은 상여금을 받았지만 연봉직과 일반직은 받지 못했다. 상여금은 한 해 기본급의 800%였다.

박씨가 2년 기간제 근무 동안 추산한 차별 임금은 약 3000만원이었다. 두 직분의 임금 테이블 자료를 구하지 못해 알음알음 알아본 추정값이다. 그는 지난해 7월 지노위에 신청서를 내며 ‘임금 차별을 받았고 회사는 차별 금액을 배상해야 하며, 디자인센터의 다른 모든 연봉직에 대한 차별 중단 시정 명령을 내려달라’고 주장했다.

“입직 경로, 업무 책임 다르다”

YTN은 판례에 따라 박씨가 처우를 비교할 대상은 연봉직이라고 반박했다. 판례가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자 중 처우가 가장 높은 근로자를 비교 대상자로 정하면 가장 낮은 처우의 근로자는 기간제 근로자보다 불이익을 받는 역차별이 발생할 수 있어 가장 낮은 처우의 근로자를 비교 대상자로 선정하는 게 적절하다”고 정한다는 점에서다.

박씨는 기간제일 때 연봉직과 거의 같은 처우를 받았다. 비교 대상이 연봉직이면 차별은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YTN은 비교 대상자가 연봉직이기 때문에 박씨가 주장하는 차별 처우도 대부분 성립하지 않는다고 지노위에 밝혔다.

나아가 호봉직과 연봉직은 입직 경로와 자격 요건 등이 다르다고도 지노위에 강조했다. “호봉직은 공개채용 절차를 통해 입사한 자들로 서류전형, 필기시험, 실무전형, 현장실무평가, 임원면접 등의 검증 절차를 거친다”며 “연봉직에 비해 엄격한 전형을 거쳐 채용되고 요구되는 능력과 기준이 다르며 업무 역할에서도 본질적 차이가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직분 간 급여로 지급되는 수당, 상여금이 다르다. 디자인=안혜나 기자.
▲직분 간 급여로 지급되는 수당, 상여금이 다르다. 디자인=안혜나 기자.

지노위 “입직 경로로 동종 업무 부정 못 해”

지노위는 박씨 손을 들어줬다. 지노위는 “유사한 업무를 했는지는 근로자가 실제 수행한 일을 기준으로 판단하고, 업무가 완전히 일치하지 않거나 업무 범위나 책임 권한 등이 다소 다르더라도 업무 내용에 본질적 차이가 없으면 동종·유사 업무에 종사한다고 봐야 한다”며 “과거 입직 경로, 향후 경력 관리 차이를 가지고 업무 간 유사성을 부인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지노위는 박씨가 차별 받은 임금을 600여만원으로 계산했다. 박씨가 정한 기준보다 3호봉 더 낮은 경력의 호봉직 임금을 비교 대상으로 뒀다. 지노위는 “연봉직과 기간제 간엔 경력에 따른 급여 차이만 있고 고용 형태를 근거로 차등을 두진 않는다”며 호봉직이 비교 대상이 맞는다고 밝혔다.

다만 고의적·반복적 차별은 인정하지 않았다. YTN은 지난해 5월 인사를 통해 디자인센터 내 연봉직과 호봉직을 각기 다른 팀으로 분리했다. 박씨는 “불합리한 차별이 있다면 문제를 고치는 게 맞지 인사이동은 꼼수다. 차별에 명백한 고의가 인정된다”며 다른 연봉직에 대한 차별 중단 명령을 신청했다. 지노위는 YTN 노사가 차별 해소를 위한 논의를 하고 있다며 기각했다.

YTN “차별 가능성 없애려고 노력… 소송 성실 대응”

YTN은 지난해 12월 중노위에 재심을 청구했다. YTN은 이와 관련 “회사는 불합리한 차별이 생길 가능성 자체를 없애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해왔으며 지난해 이뤄진 일련의 인사는 그러한 차원이었다”며 “이 인사가 소송의 자극제가 되었다는 점이 안타깝다. 법적 판단을 구하는 과정이므로 당사자의 주장에 대해서는 법정에서 성실히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YTN 관계자는 처우 개선과 관련해 “2011년부터 3년에 걸쳐 일반직 임금테이블 정비와 급여 상향을 노사 합의로 시행했고 수차례 호봉직에 비해 임금인상률을 상향하는 임금협약을 체결하기도 했다”며 “일반직과 연봉직의 승진제도도 수년 전 도입했고 지난해에는 승진폭 확대와 임금상승 등을 위해 특별승호제도도 노사협약으로 도입해 시행 중”이라고 밝혔다. 또 “보직이 없어도 승진을 하면 호봉직에 없는 직급수당을 지급하며 연말 고평가자 인센티브도 비호봉직만 대상으로 지급된다”고 설명했다.

YTN엔 130여명의 연봉직이 있다. 한 연봉직원 A씨는 대부분이 박씨 사건을 관심 있게 지켜본다고 전했다. 그는 “연봉직들을 보면 주눅이 들어 있다. 다 같이 회사를 유지하고 있음에도 직분이 계급처럼 느껴져 스스로 눈치 보는 분위기가 깔려 있다”며 “회사가 지난 수년간 연봉직들 문제 제기를 외면한 결과 법적 대응까지 나온 게 아닐까. ‘소송 리스크’라고만 하지 말고 근본적 개선 방향을 함께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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