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선배들이 외치던 공정인가요?”
“파업하면서 제일 많이 들은 말 중에 한마디만 하겠습니다. 부끄러운 줄 아십시오.”
“우리는 호봉직과 비호봉직이 아닌 YTN 구성원으로 돌아가길 기대한다.”

지난해 12월 말 YTN 사내게시판엔 ‘비호봉직’의 울분을 담은 글이 십수 개 게시됐다. 일방적 인사이동에 “대체 우리가 뭘 잘못했느냐”는 반발이었다. 당시 발표된 인사 핵심은 ‘직분 구분’이었다. 호봉직, 일반직, 연봉직 등이 섞여 있던 팀을 조정해 이 팀엔 호봉직만 남고, 저 팀엔 일반직이나 연봉직만 남도록 구분했다.

인사 전에는 같은 부서에서 같은 일을 하지만 처우는 상이한 직원들이 있었다. 짧게는 수년, 길게는 십수 년이다. ‘동일가치노동-동일임금’ 원칙에 어긋난 상황이 지속됐지만 당사자들이 집단행동에 나선 적은 없다. 각자 팀장에게 처우 개선을 요구한 게 최선이었다. 그러다 세밑가지에 팀이 분리되자 “갑자기 우리를 분리하면 함께 일했던 사실이 없어지느냐”고 분노했다.

배경엔 디자인센터가 있다. 지난해 11월19일 무기계약직의 차별 처우에 반발한 ‘연봉직’ 그래픽 디자이너 4명이 차별 임금 차액을 청구하는 민사소송을 냈다. 이 가운데 1명은 이미 지난해 7월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2년 기간제로 일했던 때의 차별 임금을 청구해 이겼다. YTN에선 이들이 법적 대응에 나서자 비로소 무기계약직 차별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관련 기사 : YTN 계약직 “동일노동, 차등임금은 차별” 지노위 승소)

▲지난해 11월 무기계약직 그래픽 디자이너들이 YTN을 상대로 차별 임금 차액을 청구하는 민사소송을 냈다. 이들은 호봉직(정규직)과 연봉직(무기계약직)이 동종 업무를 수행했다고 주장한다. 위 사진은 직분 구분 없이 업무를 배분받은 작업 표. 디자인=이우림 기자.
▲지난해 11월 무기계약직 그래픽 디자이너들이 YTN을 상대로 차별 임금 차액을 청구하는 민사소송을 냈다. 이들은 호봉직(정규직)과 연봉직(무기계약직)이 동종 업무를 수행했다고 주장한다. 위 사진은 직분 구분 없이 업무를 배분받은 작업 표. 디자인=이우림 기자.

 

YTN에서 일반적인 ‘정규직’에 해당하는 직분은 호봉직이다. 대부분 기자, 경영 직군 등이다. 일반직과 연봉직은 이들과 같은 사규를 적용받지 않는 무기계약직이다. 임금, 복리후생, 승진·승호제도 등 대부분의 인사 관리에서 처우가 다르다. 일반직과 연봉직 중에선 일반직 처우가 더 높다. 전체 연봉만 보면 일반직은 같은 경력의 호봉직의 70%, 연봉직은 50~70% 가량을 받는다.

“비호봉직에 귀 기울인 적 있느냐”

왜 지난해 11월 소송이 제기됐을까. 소송에 참가한 디자이너 A씨는 “수년 간 음으로 양으로 차별과 처우 개선을 요구했으나 회사는 우리 말에 귀 기울이거나 진정성 있는 모습을 보인 적 없다. 결국 인력만 분리시키는 등 위법 요소만 줄이려는 모습을 봤다”고 이유를 말했다.

디자인센터는 호봉직과 연봉직이 동일한 일을 하는 부서 중 하나다. 디자이너들은 3년여 전부터 관리자들에게 처우 개선을 요구했다. “한 회사에서 같은 일을 하는데 왜 적용받는 사규는 다르냐”는 근본 물음도 포함됐다. 2017~2018년엔 부적격 인사로 지목된 최남수 전 사장 퇴진 싸움이 우선이라며 뒤로 밀렸다. 2018년 교섭대표 노조 가입이 가능해지면서 2019년부터 임금 테이블을 마련하는 등 여러 개선이 진행됐다.

그러다 2019년 10월 센터장이 신입을 ‘호봉직’으로 뽑는다고 밝히면서 이견이 충돌했다. 연봉직들은 정규직과 같은 업무를 하는데도 어떤 직원은 평생 무기계약직이면서 처우도 다른 상황이 타당해보이지 않았다. 직분은 사내에서 골품제라고도 불렸다. 이들은 회사가 ‘유사 정규직’, ‘직접고용 비정규직’이라 불리는 무기계약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노력도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YTN은 2014년부터 그래픽디자이너를 연봉직으로만 채용했다. 이 때문에 센터엔 이미 연봉직과 기간제 14명이 채용돼 있었다. 전체 디자이너 40여명 중 30% 정도다. 회사엔 비호봉직이 일정 심사를 거쳐 호봉직이 될 수 있는 ‘직분 전환제’도 2016년께 생겼으나 전환된 이는 1명도 없다.

전체 회의에서 센터장은 ‘원래 호봉직 자리였고, 내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호봉직을 뽑겠다’고 밝혔다. “내부 (직분) 정리도 제대로 안 해주고 우리에게 미안하지 않느냐”는 말이 나오자 “왜 미안하냐”고 답했다. “연봉직 처우 개선은 어떻게 되고 있느냐”는 물음엔 “인사제도 개혁TF가 진행 중이지만 아무것도 말해줄 수 없다”는 답이 전부였다. 대표를 맡은 디자이너가 팀장에게 혁신지원팀장을 만나고 싶다고 요청했으나 ‘개별 팀과의 면담은 적절치 않다’고 거부됐다. 2019년 말 호봉직 신입사원 3명이 뽑혔다.

지난해 12월 말 대전MBC 무기계약직의 승소는 단비 같은 소식이었다. 대전MBC 무기계약직 12명도 2013년 소송을 제기하며 동일가치 노동-동일임금 원칙을 주장했다. 대법원은 무기계약직에게도 동종·유사 업무의 정규직이 적용받는 취업규칙을 적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무기계약직과 정규직이 ‘입직 경로와 업무 책임이 달라 본질적으로 유사 집단이 아니다’라는 2심을 파기환송했다. 디자이너 A씨는 “YTN에도 어떤 변화가 있을 거라 기대하면서 TF팀 결과를 기다렸다”고 말했다.

▲전국언론노조 MBC본부가 2017년 11월 27일 설치한 ‘사장 후보자에게, 질문 있습니다!’라는 제목의 게시판에 붙은 방송사 비정규직 차별 철폐 요구 포스트들. 위 사진의 '중규직'과 아래 사진의 '업무직'은 무기계약직을 뜻한다.사진=김도연 기자
▲전국언론노조 MBC본부가 2017년 11월 27일 설치한 ‘사장 후보자에게, 질문 있습니다!’라는 제목의 게시판에 붙은 방송사 비정규직 차별 철폐 요구 포스트들. 위 사진의 '중규직'과 아래 사진의 '업무직'은 무기계약직을 뜻한다.사진=김도연 기자

 

‘시험 없이 입사한 이들이 회사에 반기’ 말 들어

‘2명 올리고, 2명 내리면 되잖아.’ 3개월 후 기대감은 배신감으로 바뀌었다. 연봉직 디자이너 B씨가 사무실에 있던 센터장이 회사 관계자와 통화하는 소리를 들었다. 이미 그때는 회사에 ‘직분 별로 팀을 분리시킨다’는 입말이 돌아다녔다. B씨가 속한 제작그래픽팀의 호봉직이 2명이었다. 센터장은 이후 B씨에게 “정해진 거 없는데 어디서 듣고 얘기하느냐”고 부인했다.

그러나 이는 5월 현실이 됐다. 호봉직 2명, 연봉직 6명이 있던 제작그래픽팀에서 호봉직 2명이 ‘보도그래픽팀’으로 갔다. 공석은 보도그래픽팀의 연봉직 2명이 와서 채웠다. 관리자들은 문제제기를 하는 디자이너들에게 ‘대전MBC 판례 때문에 동일노동 동일임금 이슈가 없게끔 한다’거나 ‘회사에서 급하게 서두르는 이유는 판례 때문’이라고 직접 말했다.

이 과정에서 연봉직 디자이너들은 모멸감을 주는 관리자의 말을 계속 들었다. “(디자인센터 연봉직이) 소송을 하면 회사가 질 게 뻔하지만 후배(프리랜서)들은 다 잘릴 것이다.” “시험 없이 입사한 사람들이 회사에 반기를 들어서 전환채용은 없앨 거다.” “인사 관련은 기획조정실에서 철저히 비밀로 하라는 지시다.” “다른 회사에 붙으면 (사직 말리면서) 호봉직으로 바꿔주겠다.” 당시 제작그래픽팀장의 말이다. 센터장은 “회사가 마음에 안 들면 나가라”는 말도 자주 했다.

지난해 7월 디자이너 C씨가 연봉직으로선 처음으로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차별 시정을 신청한 이유다. 디자이너 4명이 민사소송장을 내기로 결심한 계기도 회사의 인사정책이다. YTN은 지난해 11월 초 신입 호봉직 채용공고를 내며 무기계약직도 같은 시험을 통과하면 호봉직이 될 수 있는 ‘사내 공모’ 제도를 마련했다.

“기존 전환 제도는 외면하고 대안은 고민하지 않았으면서, 10년 넘게 일한 사람들에게 갑자기 필기, 영어, 실무, 면접을 보고 신입과 같이 채용되란 말이냐.” 비호봉직들의 반발이 터져나오자 이 제도는 결국 유보됐다. 일련의 과정을 지켜본 디자이너 A씨는 “당시 열린 설명회에서 기조실은 ‘현 체제에선 직분 전환제는 활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아, 이분들은 근본적인 차별 개선이 아니라 소송 리스크만 피하려 한다’는 확신이 들어 그날 소장을 내게 됐다”고 말했다.

▲그래픽센터 디자이너들이 제작한 그래픽물. 위 사진 2개를 호봉직 디자이너가, 아래 사진 2개는 연봉직 디자이너가 제작했다. 연봉직 디자이너들은 '동일 가치 노동'을 했다고 주장한다. 사진=YTN 프로그램 갈무리.
▲그래픽센터 디자이너들이 제작한 그래픽물. 위 사진 2개를 호봉직 디자이너가, 아래 사진 2개는 연봉직 디자이너가 제작했다. 연봉직 디자이너들은 '동일 가치 노동'을 했다고 말한다. 사진=YTN 프로그램 갈무리.

 

“리스크 대응엔 신속, 구조 개선 요구엔 소극”

소송은 근속년수 기준으로 10년·9년·8년·7년차 디자이너 4명이 함께 냈다. 모두 짧게는 1년, 길게는 3년 동안 파견직이나 프리랜서 계약을 거쳐 무기계약직으로 채용됐다. 4명 모두 “디자인센터는 호봉직, 연봉직, 프리랜서 구분 없이 동일한 업무를 했다”고 밝혔다.

크게 상여금, 통상임금에 해당하는 4개 수당, 정기 승호(기본급 인상) 등 3가지 차별을 주장했다. 호봉직은 한 해 기본급의 800%를 상여금으로 받는데 연봉직은 받지 않는다. 호봉직은 매달 총 50~70만원 가량인 직급·통근·급식·교육연구수당 등을 받지만 연봉직은 받지 않는다. 호봉직 경우 매년 2호봉의 정기 승호가 이뤄지는데 연봉직은 같은 승호 제도를 적용받지 않는다.

소송에 참여한 2명은 지난 1월 디자인센터에서 분리됐다. 1명은 사이언스TV국으로, 다른 1명은 라이프국으로 배치됐다. 이에 맞춰 회사 업무 분장표도 바뀌었다. 가령 라이프국 그래픽물은 디자인센터 제작그래픽팀이 맡아왔다. 1월 개정된 업무분장표엔 라이프국 편성기획팀과 사이언스TV국 편성기획팀에 각각 ‘그래픽 제작’ 업무가 새로 추가됐다. 이들을 지켜본 한 비호봉직원은 “이들을 분리하기 위한 꼼수 아니냐”고 비판했다.

디자인센터도 팀별로 직분이 분리됐다. 보도그래픽팀엔 호봉직 14명과 프리랜서 8명이 있다. 제작그래픽팀은 10명 전원 연봉직이다. 브랜드팀엔 연봉직 2명, 프리랜서 2명이 있다. 이처럼 지난 1월 정규직과 무기계약직이 섞여 있다가 바뀐 부서는 기술국의 제작기술부와 중계부, 마케팅국의 기획팀, 보도국 영상편집부와 영상기획팀 등이 더 있다.

▲뉴스프로그램 하나를 방영하는 데에도 기자, 앵커, PD를 제외한 다양한 직종의 노동이 투입된다. 사진은 MBC 드라마 '그 남자의 기억법' 중 뉴스 프로그램 진행 장면 갈무리.
▲뉴스프로그램 하나를 방영하는 데에도 기자, 앵커, PD를 제외한 다양한 직종의 노동이 투입된다. 사진은 MBC 드라마 '그 남자의 기억법' 중 뉴스 프로그램 진행 장면 갈무리.

 

YTN “어느 회사보다 처우 개선 노력, 지속할 것”

YTN은 이번 인사와 관련 “불합리한 차별이 생길 가능성 자체를 없애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인사 합리화 차원에서 단행했다”며 “호봉직과 일반직, 호봉직과 연봉직이 한 부서에 있어도 업무만 명확히 구분하면 문제가 없겠지만 관리자 등 사람에 따라 조직 운용을 잘못하면 차별로 이어질 위험이 있고, 일부 부서는 다른 직분이 혼재하는 상황에서 갈등이 생기기도 했다. 이를 개선하는 건 회사의 당연한 책무”라고 설명했다.

YTN은 “사내 이해당사자들이 합의할 수 있는 합리적인 차이를 찾아가는 노력은 어느 회사에 비해 성실히 노력했다고 자부한다”며 “이런 노력은 최소한 10년에 걸쳐 장기적·단계적으로 진행했다. 임금 수준 상승, 자동 승급에 해당하는 임금체계 도입, 승진제도 시행, 연말 인센티브 도입, 여기에 지난해는 특별 승호라는 새로운 인센티브 제도도 회사가 노조에 제안해 협약으로 제도화했다”고 밝혔다.

YTN은 이어 “그럼에도 부족하다고 여길 수 있기에 더욱 노력한다는 방침을 견지해 왔고 노조와 협의체를 구성해 상반기 내 처우개선책을 마련하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소송과 관련해선 “법적 판단을 구하는 과정이므로 당사자 주장에 대해서는 법정에서 성실히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소송에 참여한 디자이너 D씨는 “비호봉직의 상대적 박탈감, 소모품 취급받는 느낌 등이 실제로 현장에 깔려 있다. 어떤 관리자는 ‘너희는 후배가 아니다’라고 말한 적도 있다”며 “연봉직 처우 개선은 솔직히 포기하고 살았고 그래서 크게 목소리 낸 적도 없지만 후배들에 대한 부채감으로 소송에 참여했다. 이를 계기로 부당함을 알리고 동료들에게 자기 권리를 말할 기회가 주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25일 YTN이 위 기사와 관련해 반론을 보내왔습니다.

YTN은 “현재 시점은 노사가 협의체를 구성해 상반기 내에 해법을 만들어보자고 합의한 상황이란 점에서 회사의 노력, 노조와 호봉직 구성원들의 노력을 전면적으로 부인하는 주장은 노노갈등만 부추길 수 있다고 본다”며 “일부에서 호봉직으로의 직분 전환을 요구하는 상황을 알고 있으나 직분 전환이 차별금지 원칙을 정면으로 위배할 수 있기에 현실성이 없다는 점을 누차 설명해 왔다”고 밝혔습니다.

YTN은 또 “(호봉직) 전면 전환은 현실성이 없다는 데 노사 어느 쪽에도 이견이 없다"며 "회사는 기존의 직분 전환 절차가 해법이 될 수 없다는 점을 상세히 설명하고 이해를 구했고, 그를 대체할 수 있는 제도를 찾기 위해 오랜 정책 검토를 했다. 결국 기존 직분 전환을 실시할 때에 비해 비용이 더 들어갈 수 있는 ‘승진 연계형 특별승호제’를 도입해 시행 중”이라고 설명했습니다.

YTN은 이어 “이와 별도로 지난해 말에는 프리랜서까지 포괄하여 기존 업무와 유사한 직무에 호봉직으로 채용될 수 있는 ‘사내 공모’도 도입하려고 했다”며 “회사는 당사자들이 사내 공모 결과를 수용하지 못해 새로운 갈등이 생길 것을 우려해 공채제도를 활용하고 필기시험이라는 정량평가를 도입하려 했던 것이지 기사에 쓴 것처럼 ‘10년 넘게 일한 사람들에게 신입과 같이 채용되란 말’이 결코 아니었다”고 밝혔습니다.

[기사 수정 : 26일 오전 10시 20분 YTN 반론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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