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윤석열 대통령을 풍자한 동영상에 접속차단(시정요구)을 결정해 논란이 된 가운데 과거 박근혜 전 대통령 풍자 이미지 등에는 처분을 하지 않은 사실이 확인됐다. ‘사회혼란 야기’ 조항 적용이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잇따르고 있다.

방통심의위 통신심의소위원회는 23일 긴급심의를 통해 윤석열 대통령을 풍자한 영상 22건이 사회혼란을 야기한다는 이유로 접속차단(시정요구)을 결정했다. 심의위원들은 심각한 문제로 규정하며 북한의 공작 가능성까지 언급했다. 해당 안건은 경찰이 심의 요청했다. 

지난 11월 올라온 해당 영상은 윤석열 대통령의 후보 시절 연설 영상을 짜깁기해 “저 윤석열, 국민을 괴롭히는 법을 집행해온 사람” 등 내용을 담았다. 처음 올라온 영상에는 ‘가상으로 꾸며본 양심고백 연설’이라고 명시했지만 이후 영상이 확산되면서 해당 자막이 빠졌다. 

대통령 풍자 심의 과거엔 ‘해당없음’

이번 심의는 여러 측면에서 이례적이고 과도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가상’이라는 표기를 한 영상까지 심의를 추진하면서 풍자 콘텐츠에 대한 과잉 심의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와 관련 대통령실은 “가상 표시를 삭제한 편집 영상이 온라인에서 확대 재생산되고 있으므로 허위정보 확산을 막아야 한다는 당위성에 비추어 반드시 근절돼야 한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과거 방통심의위의 대통령 관련 풍자 정보에 관한 심의 사례를 확인한 결과 ‘가상’이라는 점을 명시하지 않더라도 맥락상 풍자로 이해할 수 있는 정보에는 제재를 하지 않았다.

▲ 2017년 경찰이 삭제요청한 일간베스트 게시글.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해당없음' 결정했다.
▲ 2017년 경찰이 삭제요청한 일간베스트 게시글.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해당없음' 결정했다.

2017년 경찰은 MBC 뉴스 속보화면에 봉하마을 배경과 함께 ‘박근혜 전 대통령 사망’ 표현을 쓴 게시물 등이 허위정보라며 심의 요청했으나 방통심의위는 심의규정 위반 사유가 없다고 판단해 ‘해당없음’ 결정했다. 당시 박근혜 정부의 정부여당 추천 위원이 다수였음에도 제재하지 않은 것이다.

문재인 정부 때는 풍자가 아닌 대통령에 관한 허위정보 심의 신청이 다수 있었는데 사안에 따라 판단이 엇갈렸다. 2018년 경찰이 문재인 대통령 치매설, 문재인 대통령 간첩설 유튜브 영상 등에 심의 신청했으나 방통심의위는 ‘해당없음’을 의결했다. 이들 게시물이 허위지만 사회에 큰 혼란을 야기할 정도는 아니라는 이유였다. 

▲ 문재인 정부 때인 2018년 경찰이 심의 요청한 '문재인 대통령 치매설'을 다룬 유튜브 영상. 방통심의위는 '해당없음' 결정했다.
▲ 문재인 정부 때인 2018년 경찰이 심의 요청한 '문재인 대통령 치매설'을 다룬 유튜브 영상. 방통심의위는 '해당없음' 결정했다.

그러나 2020년 코로나19 국면에선 보다 강경한 심의가 이뤄져 논란이 됐다. 문재인 대통령의 경례 모습을 좌우반전시킨 사진, 김정숙 여사가 ‘일제 마스크’를 썼다는 주장 등 허위 게시물이 코로나19 방역을 저해하고 사회혼란을 야기한다며 접속차단을 결정했다. 당시 언론노조 방통심의위 지부, 언론개혁시민연대, 오픈넷 등은 심의가 과도하다며 비판 입장을 냈다. 

‘사회혼란 야기’ 조항 적용 논란

‘사회혼란 야기’ 조항은 해당 정보를 통해 현재 사회에 혼란이 현저히 야기될 때 적용한다. 즉 ‘현재’, ‘실제 혼란’이, ‘현저히 야기될 것’ 등이 전제돼야 한다.

그러나 심의 과정에서 이 영상으로 인해 현재 사회에 혼란이 야기되는지 분명히 드러나지 않았다. 영상은 지난해 11월 올라온 것이고, 영상이 큰 파급력을 보여 실제 대통령에 대한 잘못된 정보가 확산됐는지 불분명하다.

▲ 윤석열 대통령 풍자 영상 갈무리.
▲ 윤석열 대통령 풍자 영상 갈무리.

사단법인 오픈넷은 23일 입장을 내고 ‘사회혼란 야기’ 조항에 관해 “추상적이고 불명확한 기준으로 판단자의 자의적 해석에 따라 표현물이 부당하게 검열될 수 있기 때문에 위헌의 소지가 높은 독소조항”이라고 비판했다. 언론개혁시민연대는 “조문 자체가 모호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으며, 정부에 비판적인 게시물을 삭제하는 데 활용되면서 수많은 비판을 받아왔다”고 했다. 민주언론시민연합 역시 “정치적 풍자에 ‘사회적 혼란’이란 억지 사유를 갖다 붙였다”고 했다.

김준희 언론노조 방통심의위지부장은 23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100일 전에 올라온 영상이다. 100일 동안 웃음을 준 정보인데 하루 만에 사회적 혼란을 야기하는 정보가 됐다. 과연 이 영상을 보고 혼란을 느끼는 사람이 누구인지 궁금하다”고 했다. 

방통심의위 출범 이후 해당 조항을 적용한 심의를 사안별로 보면 문재인 정부 때는 코로나19(256건) 관련 음모론 등 정보를 주로 삭제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는 북한 대남도발(69건), 천안함 피격사건(17건), 사드배치(12건), 메르스(11건), 세월호 사건(1건) 등에 관한 음모론 등 정보를 삭제했다. 주로 정부에 불리한 음모론에 적용해 삭제한 것이다.

명예훼손 조항 회피 ‘꼼수’ 논란

경찰은 방통심의위에 윤석열 대통령 풍자 영상을 심의 신청할 때 ‘명예훼손’으로 분류했지만 방통심의위는 명예훼손이 아니라 ‘사회혼란 야기’ 정보로 재분류해 심의에 나선 점도 논란의 소지가 있다.

방통심의위 규정상 공인에 관한 명예훼손 정보는 제 3자 요청에 의한 심의가 불가능하다. 즉,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명예훼손 심의를 하려면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하거나 또는 대리인을 선임해 심의를 신청하는 방법 밖에 없다. 대통령이 직접 심의를 신청하면 그 자체로 논란이 될 수밖에 없다. 

언론개혁시민연대는 “‘비겁한 꼼수’”라며 “대통령과 같은 공적 인물에 대해서는 제3자의 심의 신청이나 직권심의를 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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