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고용노동부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고용노동부

‘빵집’ ‘음식점’ ‘줄폐업’ ‘범법자’. 지난 2주 동안 언론이 중대재해처벌법을 다룬 키워드들이다. 정부와 경영계 주장 논리가 그대로 반복된 보도가 쏟아진 가운데 경제·종합일간지 사설 또한 90% 이상이 중대재해처벌법에 반대하는 논조를 보여 대상 확대를 주장해온 노동계 목소리가 반영되지 못하는 모습이다.

지난 15일 오영주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중소·영세사업장 대표 간담회에서 중대재해처벌법확대를 놓고 “종사자가 5명 이상인 개인사업주인 동네 음식점이나 빵집 사장님도 대상이 된다”고 말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도 지난 24일 “상시 근로자가 5명 이상인 동네 음식점이나 제과점 사장님도 중대재해처벌법 확대 적용 대상”이라고 말했다. 관련 부처 장관들은 중대재해처벌법 논의가 나올 때마다 같은 발언을 반복한다.

▲ 1월15일~29일 언론보도를 대상으로 '빅카인즈'에서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음식점, 빵집, 폐업, 범법자를 키워드로 연관어를 검색한 결과. 주요 연관어를 추려내기 위한 가중치는 각각 9, 30, 17, 20.
▲ 1월15일~29일 언론보도를 대상으로 '빅카인즈'에서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음식점, 빵집, 폐업, 범법자를 키워드로 연관어를 검색한 결과. 주요 연관어를 추려내기 위한 가중치는 각각 9, 30, 17, 20.
▲ 빅카인즈에서 '범법자'를 키워드로 기사 검색한 결과.
▲ 빅카인즈에서 '범법자'를 키워드로 검색한 결과 나온 기사들.

정부가 운을 떼자 언론도 같은 취지의 보도를 내기 시작했다. 지난 15일부터 29일까지 뉴스 빅데이터 분석시스템 ‘빅카인즈’에서 경제·종합일간지 19개 매체에서 ‘빵집’(120개), ‘음식점’(409개), ‘폐업’(533개), ‘범법자’(62개)를 키워드로 검색한 결과 가중치와 상관없이 ‘중대재해처벌법’이 가장 가까운 연관어로 등장했다.

대부분 보도가 정부 논리와 같다. 중대재해처벌법 대상이 될까 두려움에 떠는 현장 분위기가 강조된다. 중대재해처벌법 확대 소식을 전하는 일반 ‘스트레이트’ 기사에도 ‘동네 빵집 적용’이 부각된다. ‘범법자’를 키워드로 검색해보면, “직원 더 뽑았다가 감방 갈라”, “처벌 무서워 장사하겠나” 등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보도가 나온다.

▲ 25일자 중앙일보 3면 기사.
▲ 25일자 중앙일보 3면 기사.
▲ 26일자 한국경제 5면 기사.
▲ 26일자 한국경제 5면 기사.

온라인만이 아니다. 주요 매체 지면도 같다. 조선일보는 24일자 1면에 <동네 식당·찜질방·카페까지, 중대재해법에 떤다> 기사를, 25일자 3면엔 <“언제 사고 터질지… 범법자 안 되려면 직원 줄일 수밖에”> 기사를 냈다. 중앙일보는 25일자 3면에 <건설업은 소규모 공사장까지 처벌 대상…“범법자 양산 우려”> 기사를, 동아일보는 26일자 1면 <직원 5명 식당도 내일부터 ‘중대재해 처벌’> 기사를 냈다.

경제신문은 더 자극적이다. <‘중대재해법 유예’ 끝내 무산 83만 中企 “이대론 줄폐업”>(1월26일 한국경제 1면) <“일하기 바쁜데, 중대… 뭐요?” 영세 축가공업체 ‘날벼락’>(1월26일 한국경제 5면) <“식당·카페도 중대법 처벌? 나라가 가게 접으라고 조장”>(1월22일 매일경제 5면), <“중대법이 뭐에요… 사장 구속되면 우린 해고 되나요”>(1월29일 서울경제 22면) 등의 기사가 나왔다.

지난 15일부터 29일까지 주요 일간지(경향신문, 국민일보, 서울신문, 동아일보, 세게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한국일보)와 경제지(매일경제, 서울경제, 한국경제) 사설을 분석해보면, 중대재해처벌법이 언급된 사설이 31개다. 이 중 29개(94%)가 중대재해처벌법 대상 확대에 비판 논조를 보였다. 노동계는 중대재해법 시행 초기부터 대상 확대를 줄곧 찬성해왔는데 최소한의 기계적 균형조차 갖추지 못한 것이다.

▲ 26일자 서울신문 사설.
▲ 26일자 서울신문 사설.

서울신문은 26일자 사설 <영세사업자 83만명 예비범법자 만드는 정치>에서 “수십만명의 영세기업인과 소상인들을 범법자로 만들고 여기서 일하는 800만 근로자들의 일자리마저 위태롭게 하는 사태”라며 “지난 2년의 유예기간이 주어졌다지만 경기 불황으로 진 빚을 갚기도 어려운 상황에 언감생심인 게 현실이다. 이런 마당에 자칫 중대한 재해가 발생해 사업주가 엄중한 사법 처리를 받게 되면 그 사업장은 제대로 돌아가기 어려울 것이고, 이는 근로자 실직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2022년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은 일터에서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안전과 보건 확보 의무를 소홀히 한 사업주나 경영 책임자를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게 하는 법이다. 비교적 엄격한 처벌 수준을 가져 기존의 산업안전보건법에서 한발 나아갔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금까지는 50인 이상 사업장만 적용됐는데 지난 27일부터 상시 근로자 5인 이상 사업장에 모두 적용됐다.

모든 업종과 직종에 적용돼 동네빵집과 식당이 법 대상이 되는 건 맞다. 하지만 중대재해처벌법 대상 확대를 놓고 ‘빵집’과 ‘식당’이 키워드로 등장하는 건 과장이라는 지적이다. 중대재해 사망사고의 대부분은 제조·건설업종에 집중돼 있다. 고용노동부 자료를 보면, 2022년 업무 중 사망사고를 당한 사람 644명인데 이 중 식당, 카페 등 숙박·음식점업에서 숨진 사람은 5명으로 1%가 채 되지 않는다. 애초에 중소기업 대다수가 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된 5인 미만 업체다.

▲ 사진=pixabay
▲ 사진=pixabay

카페나 식당 ‘안’에서 사망할 확률은 더 낮다. 대부분은 음식점 ‘밖’ 배달 과정에서 발생하는 교통사고다. 중대재해처벌법에서 배달기사의 경우 근로계약을 체결하는 경우엔 대상에 포함되지만 특수형태근로종사자(특고)인 경우 등은 포함되지 않는다. 대부분 식당이 최근 배달 기사를 직접 고용하지 않는 추세를 고려하면 식당 주인이 처벌 받을 가능성은 더 적어진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실제 기소나 실형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적다는 것도 언급되지 않는다. 지난 26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22년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지난해 말까지 법 위반 혐의로 수사된 사건은 모두 510건이었는데 이 중 34.3%만이 검찰로 송치됐다. 지난해 말 기준 33건만 기소됐으며, 법원 선고가 나온 건 12건인데 이 중 실형은 단 1건이었다.

일하기도 바쁜데 안전보건관리체계를 어떻게 갖추냐는 불안도 언론의 단골 소재다. 하지만 실제 규정을 보면, 대부분의 중대재해처벌법에 명시된 안전보건 확보 의무는 기존 산업안전보건법과 유사하다. 처벌이 강화되고 사업주가 의무의 주체로 명확해질 뿐이다. 50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 안전관리자나 보건관리자 배치 의무도 없다. 식당, 카페가 아닌 제조업, 임업, 하수·폐수 및 분뇨처리업, 폐기물 수집 등의 업종(20명 이상 50명 미만 사업장)에만 안전보건관리담당자 1명 이상 선임하도록 돼 있는데 이것도 기존 산안법 규정이다.

중대재해전문가넷 공동대표인 권영국 변호사는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5인 미만 사업장도 사고가 발생하면 산업안전보건법으로 처벌받고, 업무상 과실 치사가 된다. 언론 보도 논리대로라고 하면 이전에 범죄자가 엄청나게 나왔어야 한다”며 “실제로 카페나 빵집이나 설렁탕 집에서 사람이 죽을 일이 뭐가 있나. 일례로 5인 미만 사업장인데 가마솥이 있다면 화상 위험에 조심해야 하고 철저히 감독을 해야 하는 건 당연하다. 그런데 언론이 일어나지 않은 일을 말하고 있다”고 했다.

현장 불안을 전하는 언론 보도에 대해서도 권 변호사는 “질문하는 것을 보면 현재 의무적으로 돼 있는 걸 알지 못하고 질문을 한다. 악의적이다. 의도된 답변을 유도하기 위해 법에도 없는 얘기를 한다. 전담 조직이라든가 관리자를 둔다던가 하는 의무 내용은 카페나 빵집 등 50인 미만 사업장엔 해당 사항이 없다”고 했다.

민주노총은 지난 29일 성명을 내고 “중대재해처벌법이 마치 동네의 소규모 영세 사업자들을 위협하는 법인 것처럼 공포를 조장했다. 이 같은 공포감 조장에 일부 언론들이 동조하며 이른바 ‘동네 빵집 위기론’이 한동안 지면에 끊이지 않았다”며 “음식업종에서 발생하는 산재사고는 거의 모든 경우 배달과정에서 발생하는 교통사고 사망이다. 결국 ‘동네 빵집’이 망할 것이라며 공포분위기를 조성하고, 시행 첫 날부터 음식점을 방문해 ‘막연한 두려움’을 운운하는 정부의 속내가 매우 뻔하다”고 했다.

▲ 지난 17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토론회에 참여하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 사진=대통령실
▲ 지난 17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토론회에 참여하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 사진=대통령실

‘공포마케팅’ 속 정부 책임론은 흐려진다. 중대재해처벌법 대상 확대는 2022년 법 시행 단계부터 예고된 사안이다. 현장이 이를 체감하지 못했다면 예정된 일을 대비하지 못한 정부 당국에 책임을 묻는 게 당연하다. 한겨레는 지난 25일자 사설에서 “정부와 중기중앙회는 그동안 뭐 하고 있다가 이제 와서 2년이 더 필요하다고 하는가. 최근 10년 동안 산재 사망의 80%가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한 현실을 고려하면 오히려 늦은 게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한국일보는 24일자 8면 <전문가 “中企 부담 있겠지만 줄폐업 공포는 과장”> 기사에서 “‘중소기업은 준비가 전혀 되지 않았다’는 주장이 실상과 부합하는지도 논란거리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지난해 11월 50인 미만 기업 1053개 기업을 조사했더니 94%가 ‘법에 대한 준비가 완료되지 않았다’고 답했다는 점을 내세워 ‘추가 유예’를 주장한다. 반면 지난해 3월 고용부가 ‘중립적 기관’인 한국안전학회에 의뢰해 50인 미만 사업장 1442곳을 조사한 결과 81%가 ‘안전보건 의무를 갖췄거나 준비 중’이라고 했다. ‘적용 유예가 필요하다’는 응답은 20%에 그쳤다. 다만 고용부는 이 조사 결과를 발표하지 않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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