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 라디오 방송사 경인방송의 주요 주주들이 방송법 규제를 피하기 위해 비밀계약서를 작성했다고 의혹을 제기한 전직 경인방송 임원이 실명을 밝히고 직접 문제제기에 나섰다.

강원모 전 경인방송 대표 직무대행은 지난해 해당 매체 공동대표 대행을 역임하던 중 주주 간 비밀 계약서를 발견했다. 지난해 11월 이사회에 해당 계약서 파기를 주장했던 그는 같은달 말 경인방송 측과의 근로계약 재계약이 불발됐고, 이는 사실상의 해임이라고 주장한다. 

지난 26일 오후 인천 남동구 인천문화예술회관 인근에서 만난 강 전 직무대행은 경인방송 정상화를 위해 주주간 비밀 계약서 제보에 나섰다고 했다. 그는 “(주요 주주들은) 최다액출자자와 특수관계인의 지분 합이 40%가 넘지 못하게 하는 방송법 위반을 피하려 위장 계약을 체결했다”며 “비밀 계약을 파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8대 인천시의회 부의장 출신인 강 전 대표 직무대행은 지난 2022년 7월부터 경인방송에서 근무했다. 2022년 12월 경인방송 경영본부장, 지난해 3월 인천본부장을 맡았다. 지난해 9월 강효상 대표이사의 사임 후 공동대표 직무대행을 맡았다. 아래는 강 전 직무대행과의 일문일답.

▲ 지난 26일 오후 인천 남동구 인천문화예술회관 인근에서 만난 강원모 전 경인방송 대표 직무대행. 사진=윤유경 기자.
▲ 지난 26일 오후 인천 남동구 인천문화예술회관 인근에서 만난 강원모 전 경인방송 대표 직무대행. 사진=윤유경 기자.

-지난해 12월 미디어오늘에 경인방송 조동성, 민천기, 권혁철 세 주주의 ‘주주간 계약서’와 ‘주주간 추가합의서’를 제보했다. 어떻게 제보하게 됐나.

“인천시의원을 지내며 지방자치 발전을 위해 지역언론 육성이 절실하다고 생각했다. 이후 경인방송에 들어가게 됐고 지난해 3월 인천본부장을 맡으면서부터 주주간 갈등을 알게 됐다. 주요주주들은 회의 석상에서 계약서를 언급하며 논쟁하기도 했다. 처음엔 왜 갈등이 있는지 영문을 몰랐는데, 그때부터 비밀 계약서가 있구나 정도는 알게됐다. 

이후 지난해 10월 2021년 3월 체결된 비밀 계약서를 보게 됐다. 읽는 순간 손이 떨렸고, 갈등의 원인을 알게 됐다. 세 명의 주요 주주가 경인방송을 자신들의 소유물로 만들려고 했다는 생각에 분노가 치밀었다. 계약서가 존재하는 이상 경인방송이라는 방송사는 주요주주 3명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정부의 허가를 받아 운영되는 지상파방송사인 경인방송의 자율성, 독립성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 제보를 결심했다.”

-주주간 비밀 계약서 발견 직후인 지난해 11월1일 경인방송 이사회에 계약서 파기를 요구했는데, 이유가 뭔가?

“주주간 계약이 파기되지 않고선 경인방송이 갈등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11월 이사회에서 주주간 계약서를 파기해야 한다는 안건을 올렸다. ‘최근 경인방송에서 일어난 일련의 분란을 통해 경인방송의 운영을 규정하는 주요 주주 간 협약이 드러났다. 그러나 이 협약은 주요 주주 간 이해관계의 조절을 넘어서서 경인방송을 지배하는 최상의 원리로 작동하고 있다. 이 협약은 조속히 폐기돼야 할 사항이며 이사회에서 이 문제의 해결을 논의해주길 바란다’는 내용이다. 

곧장 반발이 있었고, 이사회 안건으로도 올리지 못했다. 내가 대표 직무대행임에도 이사회 참석을 거절당했다. 이후 직위해제, 자택 대기 발령이라는 모욕적인 조치가 있었다. 나는 경인방송에 1년 단위로 근무 중이었는데, 11월30일 재계약을 못하게 되며 사실상 해임됐다. 공식적으론 계약서에 대한 문제제기로 나를 해임했다고 하진 않았지만, 이거 말고는 다른 이유를 찾을 수 없다.”

- 주주간 비밀 계약서의 구체적 문제점은 무엇인가?

“세 명의 주주가 회사를 어떻게 장악할 건지에 대한 실행 계획서라고 본다. 회사의 지난해 3월 주주총회 자료를 살펴보면 10% 이상 주주는 조동성(서울미래포럼 21.14%, 서울앵커호텔 16.91%)과 민천기(32.99%) 두 명이다. 하지만 비밀계약서엔 권혁철의 지분이 이 두 사람의 지분 속에 약 16%나 숨겨져 있었음이 드러났다. 

▲ 미디어오늘이 입수한 주주간 추가합의서. 실제 별표1에 게시된 지분을 별표2와 같이 분산한 내용이다.
▲ 미디어오늘이 입수한 주주간 추가합의서. 실제 별표1에 게시된 지분을 별표2와 같이 분산한 내용이다.
▲ 미디어오늘이 입수한 주주간 추가합의서. 대상회사는 경인방송을 의미한다.
▲ 미디어오늘이 입수한 주주간 추가합의서. 대상회사는 경인방송을 의미한다.

본인들이 추천한 사람들로만 이사회를 꾸리도록 만들어놓은 조항도 문제다. 이사회는 다섯 명으로 구성하고 조동성이 3명, 권혁철과 민천기가 각각 1명씩 추천한다고 돼있다. 대표이사는 조동성이 1명, 권혁철과 민천기가 추천하는 1명을 공동대표이사로 선임하도록 돼 있다. 철저히 나눠먹기 식이다. 

서로 동의 없이는 주식을 팔지 못하는 조항도 있다. 팔려면 최대 3배의 금액으로 상대 주식을 인수해야 한다. 이 때문에 지난해 10월 민천기에게 계약서에서 빠지고 싶다고 자문을 구하는 연락도 왔다. 민천기는 현재 본인 돈 25억 원 가량을 받아서 경인방송에서 나가고 싶어하는데 나갈 수 없다. 권혁철과 조동성의 동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헤어지지 못하는 계약으로 인해 세 명의 주주는 지금까지도 싸우고 있다.”

- 주주간 비밀 계약서가 방송법 규제를 피하기 위한 위장 계약이라고 주장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방송사 인수를 위해선 방송통신위원회 승인을 받아야 한다. 특히 소유와 경영 분리가 중요하다. 그래서 최다액출자자의 지분을 특수관계인까지 포함해 40%까지만 소유할 수 있도록 법률로 정한 것이다. 

▲  지난 26일 오후 인천 남동구 인천문화예술회관 인근에서 만난 강원모 전 경인방송 대표 직무대행. 사진=윤유경 기자.
▲  지난 26일 오후 인천 남동구 인천문화예술회관 인근에서 만난 강원모 전 경인방송 대표 직무대행. 사진=윤유경 기자.

경인방송의 최다액출자자는 서울미래포럼과 서울앵커호텔인데 두 곳 모두 조동성이 관계된 곳이다. 그래서 조동성이 방송사 인수 심사에 최다액출자자로 심사를 받게된다. 그런데 계약서를 통해 당시 대표였던 권혁철도 이면으로 16%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 게 드러났다. 그러면 최다액출자자인 조동성(서울미래포럼, 서울앵커호텔)의 입장에서 권혁철은 경인방송의 사용인이니 특수관계인에 해당돼 결국 40% 소유제한을 위반하게 된다고 해석했다. 소유와 경영 분리 원칙에도 당연히 위반된다.

조동성 측에서 권혁철은 특수관계인이 아니라고 반론했던데 만일 권혁철의 지분 16%가 아무 문제가 없다면 왜 골치 아프게 조동성과 민천기의 주식 속에 위장 분산시키는 계약을 체결했는지 설명해야 한다. 40% 지분 제한이 있는 방송법 위반을 피하려 했다는 것 외에는 설명할 방법이 없다.”

- 경인방송엔 700명가량의 소액주주가 있지 않나?

“가장 분노했던 부분이 세 명이 경인방송을 자신들 소유물로 만들려고 했다는 것이다. 상장도 하지 않은 회사의 주주가 700명인 건 굉장히 많은 거다. 경인방송은 옛 iTV의 존속법인이다. 소액주주 700명 중엔 과거 iTV가 망하면서 채권을 갖고 있던 사람들이 일정 정도 손해를 감수하고 채권을 주식으로 전환한 경우가 많다. 조동성, 권혁철, 민천기 세 사람이 어떻게 소액주주를 무시하고 본인들의 이해관계만을 누리고자 하는 계약을 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 소액주주 대부분은 이런 상황을 모르고 있다.” 

- 현재의 경인방송 내부는 어떤 상황인가?

“외견상으론 재능대 총장을 지냈던 이기우 대표가 새롭게 선임되고, 권영만이 회장으로 취임하며 분쟁이 일단락된 것처럼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작년 한 해에만 대표가 네 번이나 교체됐다. 전례 없는 일이다. 작년 한 해 동안 주주총회만 세 번 열렸고 이사회는 아마 일곱 번가량 개최됐을 거다. 문제는 거의 모든 회의가 방송사 발전과 사업을 위한 자리가 아니라 임원 선임과 해임, 교체를 논하는 자리였다는 점이다. 

조동성은 최다액 출자자로 본인이 가진 권한만큼 책임도 크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조동성은 윤경ESG포럼을 운영(포럼 명예대표)하면서 윤리 경영을 내세우고 있는데, 정작 경인방송은 어떻게 운영하고 있나. 방송사를 인수하기 위해 편법으로 방통위를 기망하고 있다. 조동성이 소유경영 분리 원칙을 위반했다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해야 한다. 아무것도 해결된 게 없으니 내홍은 계속되고 있다.”

- 경인방송이 정상화되기 위한 근본적 해결책이 뭐라고 보나?

“주주간 계약서를 보면 어떤 방송사를 만들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단 하나도 없고 전부 자기들의 권리를 누리는 내용이다. 이 계약서에서 벗어나야 제대로 방송사가 굴러갈 수 있다. 가장 큰 책임은 방통위로부터 최다액출자자 승인을 받은 조동성에게 있다고 본다. 최다액출자자로서 리더십을 보여야하는데, 리더십을 보인 게 아니라 분란만 일으켰기 때문이다. 방송사 최대주주가 지켜야 할 의무 또한 지키지 않고 있다. 

경영진 교체도 필요하다. 방송사를 제대로 운영할 수 있는 방송 전문인을 영입해 경인방송을 정상화시켜야 한다. 세 명의 주요주주가 동의할 수 있는 인물로 대표를 선임해야 한다. 세 명의 주주들은 주주간 계약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이기우 대표와 권영만 회장도 주주간 갈등을 방관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지역사회에서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민영방송이지만 공공 플랫폼인 경인방송이 이렇게 망가지도록 내버려둘 수 없다. 이를 위해선 경인방송 직원들의 움직임도 필요하다.”

▲ 방송통신위원회.
▲ 방송통신위원회.

- 지난주 경인방송 재허가를 위한 방통위 청문회가 진행됐다. 방통위에 바라는 점이 있나?

“방송법 위반 소지가 있는 경인방송의 인수 과정과 주주간 계약에 관해 방통위에서 엄중히 판단해야 한다. 다만 경인방송의 주요 주주들이 저지른 일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 세 명 주주에 대한 주식 매각 명령, 경영진 교체 등 조치를 취하고 그 결과를 가져오라고 해야한다. 재허가를 취소하는 건 주주들이 벌인 일에 회사와 직원들이 책임지는 게 된다. 주주들에 대한 엄정한 조치가 있어야 한다.”

한편 경인방송 측은 지난해 12월29일 미디어오늘에 “경인방송 대표이사 권혁철은 법에 규정한 본인(서울앵커호텔, 서울미래포럼)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법령에서 본인은 최다액출자자(법인)를 지칭하는 것으로, 특수관계인은 최다액출자자 법인인 서울앵커호텔과 서울미래포럼 임원 등 관계자를 의미한다”며 “최다액출자자 지분 50% 이상 소유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주장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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