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언론·미디어 연구 속 언론은 변화가 더딘 혁신의 대상이다. 업계 종사자들은 학계 진단이 현실과 동떨어졌다고 말한다. 더 나은 사회를 위한 노력은 그 차이를 확인하고 간극을 좁히는 데서 시작되어야 한다. 미디어오늘은 현업인들에게 시사점을 던져줄 수 있는 연구 사례를 소개하며 언론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해본다.

3줄 요약:
-뉴스통신사에는 젠더 데스크가 필수적으로 신설돼야 한다.
-궁극적으로 모든 부서가 젠더 감수성 갖춰 취재·보도해야 한다. 
-‘젠더 데스크’를 넘어서 ‘다양성 데스크’로 전환해야 한다. 

연합뉴스에 젠더 데스크가 있으면 어떨까? 올해 2월 김효원 스포츠서울 기자의 석사학위논문 <젠더 데스크 & 젠더 기자 운영 후 언론사 성평등 보도에 나타난 변화 연구>(한국외대 정치행정언론대학원 문화엔터테인먼트학과)에 연합뉴스, 뉴스1코리아(뉴스1), 뉴시스 등 뉴스통신사에 젠더 데스크가 필수적으로 신설돼야 한다는 젠더 담당 기자들의 의견이 담겼다. 대다수의 언론사가 계약을 맺은 통신사 기사를 재가공해 보도하는 구조에서 통신사 보도가 독자, 타 언론사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기자들은 통신사 기사를 보도의 기준으로 보고 있다. A기자는 “사건이 터졌을 때 처음에 어떻게 프레이밍 하는가가 중요한데 거기서 (통신사가) 가해자에게 서사를 준다거나 선정적 보도를 하면 안 된다”며 “현장에선 그런 걸 판단할 시간과 여유가 없다. 데스크가 잡아주는 역할이 필요하다. 정보 노출도 연합이 어느 정도까지 했는가를 보고 쓰는 게 많다”고 말했다. B기자도 “데스크와 일선 기자가 자기 기사에 자신이 없으면 연합에 의지한다. 연합이 그렇게 썼으니까 그렇게 한다”고 말했다.

▲AI 빙이미지크리에이터로 생성한 '젠더 평등' 이미지.
▲AI 빙이미지크리에이터로 생성한 '젠더 평등' 이미지.

민간 언론사 형태이면서도 ‘국가 기간 뉴스통신사’로서 정부 재정을 지원 받는 연합뉴스가 공적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C기자는 “국가 기금이 들어가는 것에 대한 책임이 큰데 여전히 연합뉴스는 속보에만 목을 맨다. 속보에는 정제되지 않은 거친 표현이 나가게 된다”며 “정부의 기금을 받기에 감사를 받는데 젠더나 인권에 대한 평가가 어느 정도인지 알고 싶다. 젠더나 인권에 대해선 관심이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연합뉴스와 제휴 맺고 있는 대다수 언론사들이 연합에 요구하는 걸 보면 표를 더 다양하게 해달라 이런 거다. 젠더, 윤리에 대해선 요구가 적다”고도 지적했다. 

B기자는 “연합 내부 사정은 잘 모르지만 젠더 뿐 아니라 모든 사안에 대해 기계적 중립으로 쓴다. 각을 세워 쓸 수는 없어도 연합이야말로 사회적 소수에 대한 데스크가 필요하다”며 “젠더든 인권이든 이주노동자든 사회적 소수 관련 보도 가이드는 연합 차원에서 모든 구성원이 토의해서 만드는 작업이 필요하다. 연합 내부에서 가이드를 만들더라도 외부 얘기를 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진=unsplash
▲사진=unsplash

“편집국 내부 젠더 감수성 높아져” 젠더 데스크 이후의 변화

젠더 데스크 신설은 언론사 내부의 자연스러운 변화로 이어졌다는 반응이다. A기자는 “젠더 감수성이 없다고 알려진 편집국장 후보는 공청회에서 젠더 관련 질문을 많이 받았는데 임명이 부결됐다”며 “이제 젠더 감수성이 없으면 편집국장을 못 한다는 인식이 생겼다”고 말했다.

D기자는 “사내에서 기사에 대해 젠더 데스크가 문제를 제기하면 이의 제기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대체로는 젠더 데스크가 얘기하는 부분에 대해 ‘그럴 수 있겠네요’ 하고 받아들인다”며 “이런 논의 과정이 있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E기자는 “유모차를 유아차로, 맘카페를 육아카페로 바꾸는 등 차별 표현이 줄었다”며 “1대 젠더 데스크와 2대 젠더 데스크 사이 공백기가 있었는데 그때 성폭력 피해 여성 상태를 상세하게 묘사하는 기사가 노출된 일이 있었다. 그런 일이 있고 나서 나이 많은 선배들이 젠더 보도 가이드라인을 만들어달라는 요청을 해왔다”고 전했다.

‘젠더 조직, 언제든 없어질 수 있다’…모든 기자가 젠더감수성 갖춰야

젠더 담당 기자들은 ‘언제라도 젠더 관련 조직이 사라질 수 있다’는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소수의 관심사로 여겨지는 영역에 전담 기자를 배치하는 것을 부담이나 운영 낭비로 여기는 분위기 때문이다.

실제 사장 직속으로 젠더연구소를 만들었던 서울신문은 오너와 경영진이 바뀌면서 젠더연구소와 젠더 연구소장을 없앴다. 조직 개편과 담당 기자 퇴사 등으로 젠더 담당 기자도 사라졌다. 한국일보 젠더 기자의 1인 랩 ‘허스펙티브랩’은 해당 기자의 타부서 발령으로 중단됐다. 다만 기존 랩장을 맡았던 기자가 지난해 1월 말부터 허스펙티브 뉴스레터를 재발송하고 있다.

▲ 한국일보 허스펙티브 뉴스레터. 사진=한국일보 홈페이지 갈무리.
▲ 한국일보 허스펙티브 뉴스레터. 사진=한국일보 홈페이지 갈무리.
▲ 서울신문 2022년 4월 27일 발행됐던 20면 젠더면 갈무리.
▲ 서울신문 2022년 4월 27일 발행됐던 20면 젠더면 갈무리.

젠더 데스크가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만능해결사’는 아니라는 의견도 있다. 젠더 데스크 한 명이 한 언론사가 생산하는 모든 기사를 검수하거나, 꾸준히 발생하는 쟁점 관련 협의에 모든 책임을 질 수 없다. 성평등 보도가 전담 데스크에만 국한되면 다른 부서·기자들은 오히려 젠더 이슈에서 멀어진다는 우려도 있다. 

F기자는 “궁극적으론 젠더 감수성을 갖춘 사회부, 젠더 감수성을 갖춘 정치부가 돼야 한다”며 “대법원 판결 중 의미 있는 지평을 넓힌 기사는 법조팀에서 쓰면 된다. 국감에서 성차별을 잡아낸 국회의원이 있다면 정치팀에서 하면 된다. 젠더 데스크가 생김으로써 오히려 각 기자, 각 부서 마다 갖춰야 하는 젠더 감수성이나 윤리의식을 전가하는 거 아닌가 싶다”고 했다. 

E기자는 “기자협회나 언론노조 등에서 적극적 시정 요구를 해야 한다. 현재 신문윤리위와 언론중재위 등이 역할을 하지만 성평등에 관해 전문적으로 보는 곳은 없다”고 말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성평등위원회는 지난해 △언론보도와 성평등 △젠더 기반 폭력에 대한 보도 △이미지 활용 가이드라인 △스포츠 보도 가이드라인 등 네 파트로 나눈 100페이지 가량의 언론 종사자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발간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성평등위원회는 지난해 △언론보도와 성평등 △젠더 기반 폭력에 대한 보도 △이미지 활용 가이드라인 △스포츠 보도 가이드라인 등 네 파트로 나눈 100페이지 가량의 언론 종사자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발간했다.

‘젠더 데스크’를 넘어 ‘다양성 데스크’로

기자들은 용어 자체에 한계가 있는 ‘젠더 데스크’ 대신 ‘다양성 데스크’로 나아가야 한다고 제안했다. 실제 젠더 전담 기자들은 젠더 이슈뿐 아니라 성소수자, 장애, 이주민 등 다양성을 알리는 아이템을 꾸준히 발제하고 보도한다고 밝혔다.

E기자는 “KBS는 젠더 데스크가 아니라 다양성 데스크로 이름 붙였다. 다양성이 좋은 말 같다”며 “표현, 취재원 비율, 필진 비율을 다양화하고 내부 의사결정 구조도 더 다양해져야 한다”고 했다. 그는 “(남성중심적인) 의사 결정구조가 바뀌면 젠더 데스크를 다양성 데스크로 바꾸는 건 쉽다. 그러고 나서 인권 이슈를 들여다보면 된다”고 말했다. 

C기자도 “다른 회사에서 연락이 와 (젠더 데스크를 운영)하고 싶은데 ‘젠더’라는 단어에 부담감을 느낀다고 하기도 한다. 그래서 그럼 젠더 데스크라는 이름에 집착하지 마라, 인권 데스크, 다양성 데스크, 차별 시정 데스크 등으로 바꿀 수 있다고 얘기해준다”고 했다.

연구자는 “기사를 생산하는 단계에서 젠더 감수성이 높은 기사를 쓸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시급하다”며 “다양한 관점을 존중하는 태도의 정착을 위해 국내 언론 지형 변화는 꼭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젠더 데스크’가 없어도 될 만큼 모든 기자가 다양성 의제를 고민하는 조직이 이상적이지만, 지금의 국내 언론 환경은 젠더 전담 기자가 확대되어야 할 단계라는 진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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