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7년 6월8일 진행한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박정희 정권은 목포에 ‘자객공천’을 했다. 박정희 정권을 비판하며 야당 내에서 주목도를 높이고 있던 김대중 후보(DJ)를 떨어뜨리기 위해 체신부 장관 출신의 여당 후보 김병삼을 공천했다.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목포를 방문하고 목포 지원 개발 등을 내놓고 국무회의까지 목포에서 열었다. 그럼에도 DJ가 당선됐다. ‘자객공천’의 실패다. 

최근 정치뉴스에서 많이 나오는 단어 중 하나가 ‘자객공천’이다. 자객이 누군가를 몰래 죽이는 일을 하는 사람, 즉 암살자를 뜻하는데 총선을 앞두고 특정 정치적 경쟁자를 떨어뜨리기 위해 해당 정치인을 표적 삼아 해당 지역구에 공천하는 행위를 말한다. 주로 현역의원이 있는 곳이나 정치적 중량감이 있는 정치인이 출마를 희망한 지역구에 상대적으로 강한 상대를 공천한다는 의미로 쓰인다. 자격공천은 여의도에서 오래 전부터 쓰던 용어다. 

▲ 자객 관련 이미지. 사진=pixabay
▲ 자객 관련 이미지. 사진=pixabay

오는 4월10일 총선을 앞두고 ‘자객공천’ 사례로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이 언급됐다. 지난해 11월경 관련 기사가 많았는데 원희룡 당시 장관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현 지역구인 인천 계양을에 출마할 거란 이야기가 나오면서 ‘자객공천’ ‘자객출마’가 함께 따라붙었다. 원 전 장관 입장에서는 유력 대선 후보와 경쟁해 이기면 대선주자로서 입지를 다질 수 있고, 지더라도 당을 위해 희생했다는 명분을 얻을 수 있는 선택지로 해석됐다. 

하지만 현재 언론보도로 등장하는 ‘자객공천’은 민주당에서 친명계(친이재명계) 원외인사나 비례대표를 비명계 현역의원 지역구에 하는 공천을 뜻한다. 다른 사례로 자객공천을 쓰는 경우는 드물다. 원 전 장관의 사례는 그가 공식적으로 출마선언을 하지 않았고 아직 이 대표가 인천 계양을 출마 여부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나온 ‘출마설’에 불과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최근 논란이 되는 민주당의 자객공천 논란은 비명계 의원들인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와 원칙과 상식 3인(김종민·이원욱·조응천)이 탈당하면서 뜨거워지고 있다. 

▲ 자객공천 관련 뉴스들. 유튜브 갈무리
▲ 자객공천 관련 뉴스들. 유튜브 갈무리

지난해 말 이용빈 민주당 의원이 민주당 의원들의 단체 대화방에 ‘호남 지역 친명 출마자 12명 추천 명단’을 올리면서 공개 반발한 사실, 친명계로 불리는 정봉주 민주당 교육연수원장이 비명계 현역 박용진 의원 지역구인 서울 강북을에 도전장을 내민 것, ‘원칙과 상식’ 일원으로 탈당을 예고했던 윤영찬 의원(경기 성남중원)이 친명계 현근택 민주당 민주연구원 부원장 성희롱 의혹으로 공천 배제 가능성이 나오자 당에 남기로 한 것 등이 관련 사례다. 현 부원장도 윤 의원 대응 성격의 ‘자객출마’ 사례로 언급되고 있었다. 

‘자객공천’을 둘러싼 여러 논쟁

‘자객공천’은 일단 부정적 뉘앙스를 담고 있다. 선거가 공정한 절차에 근거해 표를 받는 경쟁인데 살인 행위에 비유하는 것이 적절히 않다는 문제의식도 있다. 

당사자들도 자객공천이란 말에 비판적이다. 정봉주 교육연수원장은 ‘자객공천’이 일본 자민당에서 쓰던 표현이라면서 “언론인들이 표현을 조심해야 한다”며 “강북을 출마를 지도부와 상의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당 지도부가 배후에서 자신을 보낸 게 아니라 자신이 강북을 출마를 결정했다는 뜻이다. 

기자들이 흔히 친명계가 당 대표와 관련이 있거나 친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당내에서 비명계보다 더 권력이 강하다는 프레임으로 친명과 비명을 단순화해서 쓰고 있지만 실제 이는 적확하지 않은 비유다. ‘자객’ 출마자로 거론되는 이들은 주로 이번 총선에 도전하는 곳의 현역의원이 아니다. 선거에선 현역 의원이 경력과 자원동원 등 여러 면에서 훨씬 유리하기 때문에 특별한 후보가 아니면 친명계 도전자가 당내 경선에서 ‘자객’ 역할을 하기 어렵다.  

‘자객공천’이 실현되려면 현역 비명계 의원을 배제하고 친명계 후보를 전략공천(단수공천)해야 한다. 하지만 국민경선이 보편화된 선거문화에서 친명계 후보를 여러 지역구에서 전략공천하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지적이다. 

▲ 지난해 10월16일 김어준의 겸손은힘들다 뉴스공장 영상 갈무리. 이날 경기성남중원구 윤영찬 민주당 의원과 현근택 민주당 민주연구원 부원장 관련 '여론조사 꽃'의 조사 결과를 방송에서 다뤘다
▲ 지난해 10월16일 김어준의 겸손은힘들다 뉴스공장 영상 갈무리. 이날 경기성남중원구 윤영찬 민주당 의원과 현근택 민주당 민주연구원 부원장 관련 '여론조사 꽃'의 조사 결과를 방송에서 다뤘다

그래서일까. 야권 지지층 사이에서 영향력 있는 방송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에선 이미 반년 전부터 김어준씨가 만든 여론조사기관인 ‘여론조사 꽃’에 비명계 의원 지역구에 친명계 원외 인사(혹은 친명 비례의원) 이름을 포함해 여론조사를 진행해오고 있다. 물론 그 결과를 매주 방송에서 해설해왔다. 이는 자연스레 민주당 지지층 사이에서 ‘수박(겉은 민주당인데 속은 국민의힘이란 뜻)’이라고 비난받는 비명계 현역을 밀어내고 ‘자객’으로서 친명 후보를 보내 당선시켜야 한다는 여론을 만들었다. 

야권 일각에서는 ‘자객공천’이란 비유를 주로 민주당 뉴스에 사용하고 여권발 뉴스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점도 지적한다. 용산 대통령실, 검사 출신들이 영남과 서울 강남 등 국민의힘 강세 지역 출마를 준비 중인 현상은 보수 성향 언론에서도 비판하고 있다. 친윤(비윤석열계) 원외 인사로 현역 국민의힘 의원을 밀어내는 현상은 민주당 관련 기사에서 표현하는 ‘자객공천’과 똑같다.

하지만 당내 갈등을 강화하는 비유를 야권발 기사에만 쓰는 게 야권 정치인 입장에선 편향적으로 보일 수 있다. 노골적으로 해석하면 이재명 대표에게 잔혹한 이미지를 덧씌우는 비유 아니냐는 지적이다. 

야당 대표가 칼에 맞는 테러가 벌어졌다. 정치권에서는 여야 할 것 없이 테러가 자신을 향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였고, 이 대표를 맹목적으로 비난하던 정치인들도 쾌유를 빌며 극단으로 치닫는 정치를 원인으로 짚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자객’과 같은 과잉된 정치 언어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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