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특별법이 참사 발생 438일만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독립적인 조사위원회가 참사의 진상규명을 위한 조사에 나설수 있게 됐다.

그러나 이번 특별법안 통과도 여당인 국민의힘 의원들의 퇴장 속에 이뤄진 것이어서 또다시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도 남겼다. 국민의힘에서는 유일하게 권은희 의원만 퇴장하지 않은채 표결에 참석해 찬성표를 던졌다.

김진표 국회의장은 9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10.29 이태원참사 피해자 권리보장과 진상규명 및 재발방지를 위한 특별법안에 대한 수정안’ 투표결과 재적 298인 가운데, 재석 177인 중 찬성 177인(반대 0, 기권 0)으로써 이 법안 수정안이 가결되었음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김진표 국회의장이 9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이태원 참사 특별법이 가결됐음을 선포한다고 발표하고 있다. 사진=국회 영상회의록 갈무리
▲김진표 국회의장이 9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이태원 참사 특별법이 가결됐음을 선포한다고 발표하고 있다. 사진=국회 영상회의록 갈무리

이 수정안은 원안에서 국회의장 등의 요청에 따라 주요 대목이 빠지거나 수정되는 등 원안보다 후퇴했다. 그럼에도 조사위원회 구성을 놓고 의견차이를 좁히지 못한 채 단독처리됐다.

윤 대통령이 또 다시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대통령실은 당장 유감스럽다면서도 거부권 언급은 하지 않았다. 대통령실 대변인실은 이날 본회의 통과 후 내놓은 공지에서 “이태원 참사 특별법이 여야 합의없이 또 다시 일방적으로 강행처리 된 것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법안이 정부로 이송되면 당과 관련 부처의 의견을 종합하여 입장을 말씀드리겠다”고 밝혔다.

이날 통과된 이태원 특별법의 핵심은 특별조사위원회 구성이다. 법안 제8조 1항은 상임위원 3명을 포함한 11명의 위원으로 구성하고, 제2항은 국회가 추천하는 11명을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했다. 11명은 국회의장이 관련 단체(유가족단체) 등과 협의해 추천하는 3명, 여당 4명, 야당 4명으로 구성하고, 이 가운데 상임위원은 국회의장, 여당, 야당이 각각 1명씩 추천하도록 했다. 원안과 달리 법안은 총선 당일인 오는 4월10일부터 시행하는 것으로 수정했다.

▲국회 본회의에서 9일 통과된 이태원 참사 특별법에 국회의원들이 각각 찬성 또는 기권으로 표결한 결과가 나온 본회의장 전광판. 권은희 국민의힘 의원은 찬성했고, 이상민 의원은 기권했다. 강조표시. 사진=국회 영상회의록 갈무리
▲국회 본회의에서 9일 통과된 이태원 참사 특별법에 국회의원들이 각각 찬성 또는 기권으로 표결한 결과가 나온 본회의장 전광판. 권은희 국민의힘 의원은 찬성했고, 이상민 의원은 기권했다. 강조표시. 사진=국회 영상회의록 갈무리

법안 제안설명과 찬반토론이 시작되자 국민의힘 의원들은 본회의장을 빠져나갔다. 국민의힘 의원 가운데 권은희 의원만이 퇴장하지 않은채 남아 찬성 표결했고, 전날(8일) 국민의힘에 입당한 이상민 의원은 퇴장(기권)했다. 국회 행안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교흥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제안설명에서 “아직까지도 여야가 합의를 이뤄 내지 못하고 퇴장까지 하는 상황”이라며 “국회의원이기 이전에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지금의 상황에 깊은 자괴감이 든다”고 지적했다.

특별법 원안을 대표발의한 남인순 민주당 의원은 법안 설명을 하는 내내 울먹이며 찬성표결을 호소했다. 남 의원은 법안의 수정 사항을 두고 “피해자 범위와 관련해 종합적으로 정리했고 추천위원회 조항도 없앴으며, 정말 많은 부분을 가족들 요구와는 다르게 수정했다”며 “국회의장이 내놓은 중재안도 전향적으로 수용했다”고 밝혔다. 유가족과 시민대책회의는 여야 합의처리를 기대해 유가족 의사를 양보했다고도 했다.

남 의원은 “유가족 눈물을 닦아주는 일에는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다”며 “여당 의원들이 퇴장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무책임한 모습에 너무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을 두고 남 의원은 “희생자와 유가족을 두 번 죽 이는 일 만큼은 절대로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퇴장했으나 이만희 의원은 반대토론을 위해 단상에 올랐다. 이 의원은 이 법안을 두고 “국회의 민주적 가치를 크게 훼손하고 편파적인 입법, 참사의 정쟁화라는 부정적인 전례로 기록될 것”이라고 했으며 “위헌적 요소 또한 다분하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특조위의 편파적 구성 △사법기관이 판단할 책임소재 규명이나 사건 은폐 권리침해까지 조사하는 특조위의 과도한 권한 △피해자 정의에 포함된 ‘근로활동하던 사람’ 등 불명확한 용어 등으로 인한 법률안의 위헌성 등을 제시했다. 이 의원이 “당리당략에 따른 참사의 정쟁화가 아니라 유가족에 대한 피해 지원 등에 집중되어야 한다”고 얘기하던 도중 본회의장에선 야당 측의 항의가 빗발치기도 했다.

▲국회 본회의에서 9일 통과된 이태원 참사 특별법 표결 결과 그래프가 본회의장 전광판에 나타나 있다. 사진=국회 영상회의록 갈무리
▲국회 본회의에서 9일 통과된 이태원 참사 특별법 표결 결과 그래프가 본회의장 전광판에 나타나 있다. 사진=국회 영상회의록 갈무리

퇴장한 국민의힘 의원들은 곧바로 본회의장 앞인 국회 로텐더홀 계단에서 규탄대회를 열었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태원 특별법은 유족과 피해자에게 실효적인 지원 방안을 마련하고 재발을 방지하는 것이 최우선 목표여야 하고, 사회적 갈등을 최소화해야 한다”며 “재난을 정쟁화하고 사회적 갈등을 증폭시키기 위한 정략적인 의도가 깔린 이태원 특별법을 단독으로 통과시킨 것은 대한민국의 안전이 아니라 정쟁과 갈등을 선택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밝혔다.

야당은 환영했다. 강은미 정의당 원내대변인은 국회 소통관 기자회견장에서 “법이 무사히 공포되고, 특조위를 구성해 참사의 진상이 명명백백히 규명되는 그날까지 유가족 분들과 함께 하겠다”고 밝혔다. 원외 정당인 새로운선택의 곽대중 대변인은 “만시지탄이지만 법안 통과를 엄숙한 마음으로 환영한다”며 “오체투지 행진까지 하면서 고생한 유가족에게 깊은 위로 말씀을 드리며, 진상을 규명하고 여러 의혹을 해소하는 단초가 되길 기원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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