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5·18’을 강조하고 나섰다. 지난 4일 광주를 찾아 “5월의 광주 정신은 어려운 상황에서 민주주의를 지키는 정신”이라며 “헌법 전문에 5·18 정신을 수록하는 것에 적극 찬성한다”고 밝혔다. 5·18 민주묘역 방명록엔 “민주주의를 위한 광주 시민의 위대한 헌신을 존경한다”고 썼다. 최근 인천시의회 의장이 5·18 민주화운동을 폄훼하는 내용을 담은 언론 특별판을 배포하자 “국민들께서 전혀 공감하지 않으시는 극단·혐오의 언행을 하시는 분은 우리 당에 있을 자리가 없을 것”이라고 단호하게 밝혔다.

한동훈 위원장의 행보는 고무적으로 평가할 수 있지만 정작 언론계에선 정부여당의 행보와 비교할 때 온도 차를 느낄 수밖에 없다. 불과 몇달 전 한동훈 위원장이 “극단·혐오의 언행을 하시는 분”이라고 규정할 만한 인사들이 공영방송 이사로 임명됐기 때문이다. 

지난해 8월 방통위는 방송문화진흥회(MBC 대주주, 방문진) 이사에 차기환 변호사를 임명했고, 지난해 10월엔 이동욱 전 월간조선 기자를 KBS 이사로 임명했다.

▲ 국민의힘 카드뉴스 갈무리
▲ 국민의힘 카드뉴스 갈무리

차기환 변호사는 5·18 민주화운동 북한군 침투설을 유포한 인사다. 일간베스트저장소에 있는 박원순 전 서울시장 등을 비방하는 글을 퍼 날라 논란이 됐고 세월호 진상조사위원을 맡으며 특조위 활동을 ‘세금 도둑’ ‘정치집단’ 등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논란 속에서도 지난해 윤석열 대통령 추천으로 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 위원을 맡았고, 공영방송 이사까지 맡게 된 것이다.

이동욱 전 월간조선 기자는 1996년 월간조선에 <검증, 광주사태 관련 10대 오보와 과장>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써 5·18 단체로부터 공개 사과 요구를 받은 전력이 있다. 그는 2013년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조갑제 현대사 강좌’에서 “다수 선량한 시민들이 소수 선동가에 의해 선동당한 것으로 이것이 광주사태의 실제 본질”이라고 했다. 

국민의힘은 전부터 선거를 앞두고 ‘광주’와 ‘5·18’을 강조하지만 정작 언론계에는 극단적 발언을 하는 이들을 전면에 내세우는 이중 행보를 보였다. 차기환 이사만 해도 논란 속에서도 박근혜 정부 때 방문진 이사, KBS 이사를 역임했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5년 여권 추천으로 임명된 조우석 전 KBS 이사 역시 5·18 민주화운동에 대해 “민주화 운동이라는 데 동의할 수 없고 북한군 개입설 또한 개연성이 높다”고 주장했고, 성소수자에 대해선 “좌파는 무식한 좌파, 똑똑한 좌파, 더러운 좌파 세 종류가 있는데 더러운 좌파는 동성애자 무리”라고 말해 논란을 일으켰다. 

이후에도 마찬가지다. 2018년 자유한국당 추천으로 방송통신심의위원이 된 이상로 위원은 지만원씨의 ‘5·18 북한군 침투설’ 게시글을 심의하며 “(지씨의 글이) 매우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라며 제재에 반대했다. 

2019년 황교안 대표 체제의 자유한국당은 미디어특별위원으로 이순임 전 MBC 공정방송노조위원장을 선임했다. 이순임 위원은 ‘5·18 역사학회’ 소속으로 북한군 침투설을 옹호하는 성명에 여러 번 이름을 올린 인사다.

▲ 2020년 2월7일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총선 서울 종로 출마 선언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 2020년 2월7일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총선 서울 종로 출마 선언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황교안 대표도 총선을 앞두고 광주를 여러번 찾았다. 2019년 4월 광주 송정역을 찾았고, 5월엔 5·18  39주기 행사에 직접 참석했다. 그는 “광주의 목소리도 외면하지 않고 민심을 만나기 위해 현장으로 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그의 발언은 가시적인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았고, 오히려 분노를 샀다. 5·18 민주화운동 망언 의원을 소극적으로 징계하고,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 당 미디어특별위원회 등에 5·18 북한군 침투설을 주장하는 인사를 추천하거나 임명했고, 이상로 위원처럼 극단적 발언을 하는 당 추천 인사들에 대한 조치도 없었기 때문이다. 

한동훈 위원장은 황교안 대표보다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존중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5·18 폄훼에 대해선 강한 조치를 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정말로 “국민들께서 전혀 공감하지 않으시는 극단·혐오의 언행을 하시는 분은 우리 당에 있을 자리가 없을 것”이라는 말이 실현되려면 여권이 추천한 언론계 인사들이 그 조건에 맞는지 살필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국민의힘 일각에서 반복되는 5·18 폄훼를 뿌리 뽑기 위한 근본적 대책 또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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