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KBS는 정치권 개입 논란 속에 경영진 강제 해임과 ‘정권 내정설’ 사장 취임을 겪었다. 그 사이 KBS 뉴스도 빠르게 바뀌었다. 국정 홍보가 많고 대통령 행보에 대한 비판적 해석은 보기 어려운 KBS 뉴스를 두고, 공영방송 뉴스가 추구해야 할 다양성도 약화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대통령 비판 받는 지점 ‘작게’, 홍보는 ‘크게’

지난 1일 윤석열 대통령의 2024년도 신년사에서 주목받은 키워드로 “패거리 카르텔”이 꼽힌다. ‘이념’ 논쟁에 거리를 두고 민생에 집중하겠다던 대통령이 특정 세력을 적대화하는 발언을 다시 꺼냈다는 해석을 불렀던 대목이다.

윤 대통령의 이 발언에 대해 MBC는 ‘뉴스데스크’ 리포트에서 “개혁 필요성을 설명한 대목에선 한동안 언급을 자제했던 이권 카르텔을 다시 꺼냈다”며 “지난 연말 출범한 국민의힘 한동훈 비대위가 '386 운동권 특권 세력 청산'을 강조하는 것과 맥락을 같이 하는 것으로도 해석된다”고 설명했다. SBS ‘8뉴스’ 리포트 역시 “대통령실은 특정 정당이나 세력을 지칭한 건 아니라고 선을 그었지만, 한동훈 비대위가 운동권 특권정치의 청산을 주장한 만큼 민주당을 겨냥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고 했다.

같은 날 <윤 대통령 “행동하는 정부 될 것”…‘국민·민생’ 강조> 제목의 KBS 뉴스9 리포트는 “(윤 대통령이) 공정 사회를 만들겠다며 이권과 이념에 기반을 둔 패거리 카르텔을 반드시 타파하겠다고 했다”고 설명하는 데 그쳤다.

박 사장 취임 후 KBS 뉴스9는 윤 대통령 행보를 홍보성으로 다루거나 치적을 부풀려왔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지난해 윤 대통령의 영국 국빈 방문 당시 정보성 리포트 외에도 윤 대통령 부부의 행사 참석 장면을 6분 가까이 중계하듯 보도한 바 있다. 같은 달 전국적인 행정전산망 마비 사태가 불거졌을 때에는, 뉴스 첫 꼭지부터 해당 사태를 집중 보도한 주요 방송사들과 달리 KBS만이 윤 대통령의 APEC 정상회담 참석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2023년 1월1일 윤석열 대통령 신년사 관련 KBS, SBS, MBC 리포트를 소개하는 앵커멘트 갈무리
▲2023년 1월1일 윤석열 대통령 신년사 관련 KBS, SBS, MBC 리포트를 소개하는 앵커멘트 갈무리

KBS 뉴스 ‘호평’ 견인했던 노동인권 기획 실종

윤 대통령이 지난해 ‘카르텔’로 묶어서 비판한 대상 중 하나인 노동자들에 대한 보도가 약화된 것도 특징이다. 과거 KBS 뉴스에 대한 호평을 불렀던 노동인권 분야 기획 보도가 사실상 실종되고 있다.

노동인권 관련 주요 기사 가치가 축소된 사례도 있다. 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가 2018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다 사망한 하청노동자 고 김용균씨 사망에 대해 원청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확정한 지난달 7일 보도가 대표적이다. 당시 주요 지상파 방송사들의 경우 MBC 뉴스데스크는 1~2번째, SBS는 4번째 순서로 이 소식을 다뤘다. 종합편성채널 중에서 JTBC 뉴스룸, TV조선도 메인 뉴스 앞 순서에서 관련 보도를 했다.

그러나 KBS 뉴스9는 이날 뉴스 후반부인 23번째 리포트 단건으로 관련 소식을 다루는 데 그쳤다. 이날 메인뉴스에서 1~3번째 순서에서 비중 있게 다뤄진 소식은 전임 문재인 정부 시절 북한의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에 대한 감사원 감사 결과였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지난달 12일 모니터 보고서에서 “노동자의 안타까운 죽음에 대한 책임자 처벌을 묻지 않은 법원 판결을 단순 전달하는데 그치는 보도, 중립성 논란과 정치 감사로 비판받는 감사원의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발표를 어떤 평가와 지적도 없이 대대적으로 부각하는 보도 모두 균형 있는 태도로 보기 어려울 뿐”이라고 지적했다.

▲2023년 12월7일 KBS '뉴스9' 갈무리
▲2023년 12월7일 KBS '뉴스9' 갈무리

‘언론장악’ 비판 없고,  ‘한일중’은 있다

메인뉴스 외의 보도 기조 전반에서도 살펴볼 부분들이 있다. KBS 뉴스에서는 윤석열 정부를 향한 주된 비판 중 하나인 ‘언론장악’ ‘방송장악’ 문제를 찾아볼 수 없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뉴스빅데이터 플랫폼인 ‘빅카인즈’에서 지난해 11월13일부터 올해 1월1일까지 두 키워드를 검색한 결과, KBS 전체 보도 가운데 ‘방송장악’ 관련 1건, ‘언론장악’ 관련 1건의 보도가 각각 검색됐다.

‘방송장악’ 관련 보도는 지난달 1일 <윤 대통령, 이동관 위원장 면직안 재가…‘검사 탄핵안’ 가결> 보도, ‘언론장악’ 관련 보도는 같은 날 KBS광주에서 보도된 <광주 노동시민단체 “노조법·방송3법 거부권 규탄”> 보도였다. 같은 기간 MBC는 ‘방송장악’ 관련 보도 10건, ‘언론장악’ 관련 보도 9건을 한 것과 대비된다.

앞서 박 사장이 취임한 지난해 11월 KBS 보도본부에 내려진 일종의 지침도 보도에 반영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당시 KBS 보도본부 통합뉴스룸 주간이 ‘한중일’ 대신 ‘한일중’, ‘북미’ 대신 ‘미북’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라고 공지한 일이 알려졌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이 국제 외교 무대에서 통상적으로 사용해온 ‘한중일’ 대신 ‘한일중’, ‘북러’ 대신 ‘러북’ 등의 표현을 사용한 바 있다.

▲KBS 뉴스 홈페이지 갈무리
▲KBS 뉴스 홈페이지 갈무리

이후 이달 1일까지 빅카인즈를 기준으로 ‘한일중’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지상파 방송사는 KBS가 유일하다. ‘한일중’이라는 단어가 사용된 기사는 KBS 22건, MBC 0건, SBS 1건으로 나타났다. SBS의 경우 ‘편상욱의 뉴스브리핑’에 출연한 김태효 국가안보실 제1차장이 한 발언에 ‘한일중’이 언급됐다.

‘미북’ 표현을 사용한 보도 역시 KBS가 유일했다.  <미 “대북 억제 집중”…한미일 안보군사 증진 논의> 제목의 KBS 기사는 미 국무부 부장관으로 지명된 커트 캠벨 후보자에 대해 “2018년 2차 미북 정상회담 결렬 이후 북한은 모든 대화를 거부하고 있다며 외교의 어려움을 토로했다”고 썼다.

한편 KBS는 뉴스 프로그램의 얼굴, 앵커의 다양성 면에서도 오히려 후퇴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19년 여성으로서는 처음 지상파 평일 메인뉴스 앵커로 발탁된 이소정 기자는 박 사장 취임 직후 하차했다. 이에 당시 여성인권 단체들이 “성평등을 퇴행시키고, 공영방송의 가치를 파괴하는 박민 KBS 사장은 즉각 사퇴하라”는 성명을 낸 바 있다. MBC, SBS 메인뉴스의 경우 평일에는 남녀 앵커 2인, 주말에는 여성 앵커 1인 체제로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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