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가 자사 프로그램 포스터 인종차별 논란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했다는 시청자 지적이 나왔다. KBS 시청자위원회는 3월 정례회의에서 KBS가 공영방송으로서 차별과 혐오 문제에 보다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회의는 지난 18일 대면·비대면 병행으로 진행됐다.

앞서 KBS는 지난달 특집 다큐멘터리 ‘호모미디어쿠스’ 포스터로 인종차별 비판을 받았다. 인류 진화 과정을 5단계로 표현하면서, 직립보행에 가까워질수록 어두운 피부색이 밝은 피부색으로 변화한 이미지를 사용한 것이다. 피부색이 흴수록 더 진화한 것처럼 인식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 이유다. 비판이 SNS와 언론 보도 등으로 확산되자 KBS는 출입기자들에게 “호모미디어쿠스 포스터 이미지는 수정 작업이 필요해 다시 제작할 예정”이라며 이미지 사용을 하지 말아달라고 공지했다. 이후에는 “호모미디어쿠스 포스터 관련 오해의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있어 수정했다. 수정한 포스터를 기사 작성에 사용 부탁드린다”고 새 포스터 이미지를 배포했다.

최진협 위원(한국여성민우회 공동대표)은 “(KBS가) 한 칼럼니스트의 문제 제기를 통해서 (문제를) 인지했다는 부분, 디자인 본래 의도를 재차 설명하는 부분을 보면서 차별과 인권 감수성에 대한 아쉬움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며 “수정된 홍보물 역시 비장애인 남성만으로 인류를 표현하고 있어 문제적이다. 인류 진화를 표현하는 데 있어 비장애 성인 남성만으로 그리는 것은 익숙하기에 답습해 왔던 전형적인 차별 고정관념의 반복이라고 생각한다”고 비판했다.

최 위원은 이 다큐멘터리가 특정 집단을 재현한 방식에도 문제를 제기했다. 5부작 중 1부(왜 허위정보에 속는가)에는 비장애 남성으로 수백명의 사람을 그린 방식의 이미지가 등장했다. 반면 4부(디지털 시대, 현명한 부모 되기)에서 갈등·이해·조정 역할의 보호자는 모두 여성으로 표현했다는 것이다. 최 위원은 “경찰·소방관·정치인·노동자 등을 비장애 성인 남성으로 대표해서 그려 넣은 인포그래픽이나 홍보물 등을 정부나 방송, 기관 등에서 쉽게 접하게 된다”며 “어떤 직군이나 역할을 특별한 성별이 대표할 때 그 외의 사람들은 부차적이고 예외적 존재로 만들어버려서 차별적 관념을 양산한다”고 지적했다.

▲KBS 특집다큐멘터리 '호모미디어쿠스' 포스터 수정 전(왼쪽)과 후
▲KBS 특집다큐멘터리 '호모미디어쿠스' 포스터 수정 전(왼쪽)과 후

이어 그는 “앞으로 홍보물·가상이미지·영상 제작에 있어 사람을 등장시키는 경우에는 일방적으로 한쪽의 성만을 등장시키고 있지는 않은지, 비장애인을 중심으로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특정 연령대만 등장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특정 외모를 기준으로 하고 있지는 않은지, 소위 정상 가족만 등장시키고 있지 않은지, 행위와 태도 등이 차별적 전형성을 갖고 있지 않은지 등 다양성을 담보하고 있는지 꼼꼼히 고민하고 살펴 제작해야 한다”며 “앞으로 KBS는 홍보물, 가상이미지, 영상 제작 등의 성차별적 고정관념을 반복하고 있지 않은지, 전반적 모니터링과 재발 방지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인다”고 재차 촉구했다.

황진성 시청자미디어부장은 “디자이너는 인류가 진화 과정에서 털이 사라지고, 사실상 디지털 환경에서 생활하는 인간의 인류 진화 과정을 약간 밝은 색으로 표현했다고 하고 저도 제작진도 수용을 했던 것이다. 저희 인지 감수성에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이것을 왜 이런 식으로 프레임을 짓느냐는 항변 또는 인종차별이라고 동의하지 않는다는 댓글도 상당히 많이 있다. 그래서 좀 억울한 부분도 있었다. 그런데 의도와 관계없이 창작물이 제작진 손을 떠나서 유통, 수용되는 과정에서는 다 수용자 몫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된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미국에서는 이런 색깔 문제, 인종 문제가 대단히 민감한 문제로서 되게 예민하게 반응할 것 같은데 저희들로서는 인종 문제에 대해 깊게 생각하거나 문제의식을 많이 갖고 있지 않았던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구체적인 결재 절차를 밝히지 않은 이유로는 “구구절절하게 설명하는 것이 원칙적으로 옳은 도리겠으나, 최근에 수신료 인상 국면에서 KBS에 비우호적인 여러 매체들이 어떤 사소한 실수나 꼬투리라도 잡아서 공격하는 상황에서 저희 진의, 성실한 답변이 악의적으로 오용되지 않을까 하는 것에 우려도 있었던 게 사실”이라 말했다.

그러나 권태선 시청자위원회 위원장(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공동대표)은 “우리나라가 인종문제에 대해서 민감하지 않은 것은 인종문제가 없어서가 아니다. 현재 외국인들도 많이 와있고 인종문제에 대한 감수성을 굉장히 높일 필요가 있는 시점”이라며 “여러 군데 흩어져서 각각 작업하시는 분들이 제대로 감수성을 갖지 못함으로써 일어나는 문제들이 곳곳에 있는 것 같다. 이런 일들이 있을 때 한번 시스템적으로 점검해야 KBS가 발전할 것 같다. 그것을 억울하다고 느끼시면 곤란할 것 같다는 생각”이라 꼬집었다.

나아가 KBS가 사회에 만연한 차별 문제를 적극적으로 조명하고 방향성을 제시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왔다. 김준현 위원(법무법인 우리로 변호사)은 지난달 변희수 전 하사 비보를 다룬 KBS 보도(‘성전환 강제 전역’ 변희수 전 하사가 남긴 질문들)를 두고 “방관자적인 혹은 객관적인 입장만 전달한 것 아닌가 아쉬움이 있었다”고 했다. 그는 “성소수자 문제, 지금 이야기되는 여러 가지 차별 금지 문제에 대해 공영방송은 다양한 의견을 전달하는 것으로 그치지 말고 공익을 위해는 성소수자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적극적 자세가 필요하지 않은가 생각이 든다”고 당부했다.

▲KBS 뉴스 갈무리
▲KBS 뉴스 갈무리

KBS가 과거 미흡했던 노동의제를 조명하고, 기후 위기에 편성을 집중한 점 등은 긍정적으로 평가 받았다. 진선미 위원(공인노무사, 휴먼플러스 대표)은 지난달 4회에 걸쳐 이뤄진 ‘임금체불 보고서’ 보도를 “기존의 짧고 정형화한 리포트 중심 보도에서 벗어난 심층 보도로 사회적으로 중요한 의제를 설정하고 시청자들의 의제 참여를 이끌어낼 공영방송으로서 사회적 책무를 한 것”이라 호평했다. 특히 건설현장 하청노동자 체불임금 보도 직후 고용노동부가 노동청에 강제수사지원팀을 설치해 악의적 임금체불 사업주에 엄정 대처하겠다고 밝힌 사례는 “KBS 뉴스의 심층성 있는 보도로 공영방송이 공론장으로서 본연 기능을 수행한 것 아닌가 생각한다”고 의미를 짚었다.

다만 진 위원은 “KBS 또한 방송사로서 복잡한 원·하청 구조라든지 외주제작사와 관계에서 노동법상 문제에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지난 1월 불거진 ‘TV는 사랑을 싣고’ 시즌1 스태프 임금체불 문제, ‘개는 훌륭하다’ 출연료 미지급 문제 등을 거론한 것이다. 진 위원은 “외주제작사의 재무건전성이라든지 노동인권 존중 여부, 과거 임금체불 전력을 살펴보면서 열악한 근로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외주제작사에 대한 불공정한 KBS 관행이 반복되지 않도록 근본 대책을 강구했으면 한다. 그것이 현재 KBS가 추진하는 수신료 인상을 통해 공영방송 역할을 강화하겠다는 책임있는 태도가 아닐까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임병걸 KBS 부사장은 이에 “언론노조, 외주제작사 등 다양한 외부 이해관계자들과 4자회의 협의체를 가동해 공동으로 해결하는 것이 있다. 어떤 것들은 저희 권한을 넘어가거나 통제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있지만 말씀하신 대로 원청업체로서 최대한 이런 부분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포괄적으로 들여다보고 가이드라인 같은 외주제작사 지도를 꾸준히 해나가고 있다”며 “저희도 이 문제를 다른 어떤 문제보다 중요한 문제로 생각해 독립제작사 외주제작사, 비정규직, 파견직 부분에 신경을 쓰고 있다”고 답했다.

한편 공연 화면 배경에 ‘일본 성(城)’ 이미지를 사용했다고 지적받았던 ‘조선팝 어게인’ 논란에 대한 후속조치가 이날 공개됐다. 김호상 KBS 대형이벤트방송사업단장은 “영상 소스를 제작하고 있는 외부업체 서버의 영상 전수조사를 실시해 9975개 소스 중에서 약 200개 가까운 영상과 소스를 삭제했다. 왜색 논란이라든지 여성 비하, 종교 문제, 사행성, 선정성 논란의 우려가 있는 영상들을 삭제했다”고 밝혔다.

방송 전 검수 강화를 위해서는 “외부 영상 소스 업체에서 설문조사 항목에 체크를 해 문제가 될 만한 소스를 사용하거나 한 적이 없는지 디자인 자체 1차 검수를 하고, 2차는 제작업체·제작진 필터링을 통해서 녹화 전까지 영상을 한 번 더 검수하고 방송 전에 문제가 없도록 하는 사고 방지대책을 제작2본부 차원에서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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