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방송사의 시사프로그램 진행자가 남성에 치우친 관행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그간 미디어가 재현하는 성비 불균형이 여러 차례 지적됐지만 이를 적극적으로 해소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고 있다.

최근의 대선 후보 TV토론은 남성 진행자 편중이 드러난 단적인 사례다. 총 여섯 번의 TV토론 중 다섯 번이 남성 사회자 진행으로 이뤄졌다. △2월3일 정관용 국민대 특임교수(지상파 3사 초청) △2월11일 노동일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한국기자협회 주최, 종합편성·보도전문채널 주관) △2월21일 박경추 MBC 아나운서(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 주관 1차 법정토론) △2월26일 편상욱 SBS 앵커(2차 법정토론) △3월2일 박태서 KBS 해설위원(3차 법정토론) 등이다.

유일하게 여성이 진행한 TV토론은 단 한 차례, 군소 후보 토론회였다. 지난달 22일 차미연 MBC 아나운서가 진행한 이 토론회엔 4당(더불어민주당·국민의힘·국민의당·정의당) 후보를 제외한 9명의 후보들이 한 번에 출연했다. 선거법상 법정토론 초청 대상이 아닌 후보들을 대상으로 진행된 선거방송토론위 주관 토론이다.

▲20대 대통령 선거 후보자 4자 토론 생중계 장면. 사진=KBS, JTBC, MBC 유튜브 채널 갈무리
▲20대 대통령 선거 후보자 4자 토론 생중계 장면. 사진=KBS, JTBC, MBC 유튜브 채널 갈무리

대선 토론 진행자의 남성 쏠림 현상은 지난 대선 때도 마찬가지였다. 2017년 제19대 대선 당시 주요 후보 토론은 김성준 SBS 앵커, 박영환 KBS 보도본부 취재주간, 김진석 KBS 기자, 손석희 JTBC 사장, 박용찬 MBC논설위원실장, 이정희 한국외국어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등이 진행했다. 당시엔 군소 후보 토론회 역시 남성인 백운기 KBS 앵커가 맡았다.

이를 두고 20대 대선 후보 TV토론에 여성 한 명을 더 추진했으나 성사되지 못했다는 후문도 있다. 방송사 초청토론의 경우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가 의결까지 했지만 당사자의 일정 등 문제로 이뤄지지 못했다는 것이다. 선거방송토론위원회 관계자는 “(사회자로) 추천됐던 분 외에는 토론을 안정적으로 진행할 수 있을 만한 분이 떠오르지 않는 상황이었다”고 전했다.

이는 한국 방송사들이 여성 진행자를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육성할 책임을 도외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근본적 문제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이미 수년 째 시사프로그램 진행자의 성비 불균형이 지적돼왔지만 전향적 변화는 찾아보기 어려운 현실이다.

실제 지상파, 종합편성 채널을 막론한 시사프로그램 진행자는 남성이 절대적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8일 현재 7개 방송사(KBS1·2, MBC, SBS, TV조선, JTBC, 채널A, MBN) 시사 프로그램 30개의 사회자 41명 중 75.6%에 해당하는 31명이 남성이고 여성은 10명으로 24.3%에 불과했다. 이번 조사는 뉴스를 제외한 시사·탐사보도프로그램, 뉴스쇼, 정치·사회 인물의 토크를 포함한 프로그램을 기준으로 삼았다.

▲서울YWCA,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2020 대중매체 양성평등 내용분석 보고서’ 갈무리
▲서울YWCA,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2020 대중매체 양성평등 내용분석 보고서’ 갈무리

지상파·종편 등 7개사 진행자 75% 남성…원톱 사회자는 86%

지상파의 경우 13개 프로그램 진행자 19명 중 15명이 남성, 4명이 여성이다. △KBS ‘정치합시다’ ‘사사건건’ ‘시사직격’ ‘더라이브’ ‘심야토론’ ‘특파원보고 세계는 지금’ △MBC ‘탐사기획 스트레이트’ ‘PD수첩’ ‘100분토론’ ‘통일전망대’ ‘뉴스외전’ △SBS ‘그것이 알고싶다’ ‘주영진의 뉴스브리핑’ 등을 기준으로 살펴본 결과다. KBS ‘정치합시다’의 경우 최원정 아나운서와 더불어 진행자급 출연자인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 전원책 변호사 등을 포함했다.

종합편성채널은 17개 프로그램 진행자 22명 중 16명이 남성, 6명이 여성이다. 시사프로그램이 가장 많은 TV조선의 경우 ‘강적들’(유정현·김성경 아나운서)을 제외한 6개 프로그램이 전부 남성 진행 프로그램이다. △TV조선 ‘신통방통’ ‘시사쇼 이것이 정치다’ ‘보도본부 핫라인’ ‘사건파일24’ ‘탐사보도세븐’ ‘대선카운트다운’ ‘강적들’ △채널A ‘김진의 돌직구쇼’ ‘토요 랭킹쇼’ △JTBC ‘사건반장’ ‘스페셜탐사 스포트라이트’ ‘썰전라이브’ ‘정치부회의’ △MBN ‘프레스룸’ ‘판도라’ ‘뉴스파이터’ ‘뉴스와이드’ 등을 분석한 결과다.

중심 진행자가 한 명인 프로그램의 경우엔 남성 비율이 90%에 가까워진다. ‘원 톱’ MC 프로그램 22개 중 남성이 진행하는 경우는 86.3%에 해당하는 19건이다. 여성이 홀로 진행하는 시사프로그램은 KBS ‘심야토론’의 정세진 아나운서, KBS ‘특파원보고 세계는 지금’ 윤수영 아나운서, MBN ‘판도라’ 김현정 PD(CBS) 등 3건이 전부다.

▲TV조선 홈페이지 갈무리
▲TV조선 홈페이지 갈무리

남성과 여성 8대2라는 비율은 방송사 시사프로그램에서 절대 불변의 비율처럼 굳어지고 있다. 지난해 9월 기준으로 작성된 서울YWCA·한국양성평등교육원의 ‘2020 대중매체 양성평등 내용분석 보고서’에서도 지상파 3사·종편 4사의 시사프로그램 진행자 32명 중 남성은 75%(24명), 여성은 25%(8명)로 나타났다.

당시 보고서는 이 같은 성비 불균형을 두고 “시사보도 프로그램 속 성비 재현이 남성 중심으로 이뤄질 때 지식, 정보, 공적인 것이 중년 남성의 역할로만 인식될 우려가 있다는 점이 성비 불균형 문제의 핵심”이라며 “남성이 과대 대표되었을 때 남성의 시각이 시사를 다루는 보편이 되기 쉬우며, 남성중심적 주장과 의견이 대표성을 지닌 보편적 의견으로 다뤄지게 된다”고 지적한 바 있다.

김언경 미디어인권연구소 ‘뭉클’ 소장은 “대선 토론 진행자들을 보면서 여전히 우리나라 방송사들이 ‘중년 남성’이라는 권위를 필요로 하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 진행자들 역할도 후보자들을 중재하고, 명확한 규칙을 지키도록 하는 정도였는데 그럴수록 연령대나 성별 면에서 더욱 다양한 시도가 필요하지 않았나라는 아쉬움이 든다”고 지적했다.

김 소장은 이어 “그동안 방송계에서 KBS 뉴스 메인 앵커가 여성이 되는 등 상징적인 변화가 있었지만, 여전히 새로운 진행자를 발굴하려는 노력이 부족하다”며 “시청자들보다 방송사들이 기존의 틀을 깨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충분한 인력을 조화롭게 활용해 시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신미희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은 “한국 뉴스룸의 성별 편차가 대한민국의 경제력, 국가경쟁력에 비춰 후진적이라는 지적이 제기돼왔고 근본적 문제는 언론계 내부의 인식에 달려 있다”며 “단순히 성별 균형 문제로 볼 게 아니라 우리 사회 다양성을 언론사가 담아내고 저널리즘의 질을 높이려는 차원에서 노력이 필요하다. 성별 균형을 비롯해 장애인·비장애인, 다양한 출신을 가진 인물을 통해 언론의 품격을 높여나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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