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의 몰입도와 고증 측면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KBS 대하드라마 ‘고려거란전쟁’ 7화에는 아쉽다는 평가가 많았다.

지난 2일 KBS ‘고려거란전쟁’ 7화에선 삼수채 전투를 그렸다. 검차(수레에 창을 끼운 무기)로 진을 세워 거란의 기병을 막아내는 모습을 보여준 직후 고려군을 이끄는 강조가 군영에서 바둑을 둔다. 고려군 지휘관의 군영으로 기습할 수 있는 경로를 알아낸 거란군이 고려군 병력을 다른 곳으로 유인한 다음 별다른 전투 없이 강조를 기습해 납치하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승리할 수 있는 상황에서 지휘관이 붙잡혀 갑자기 군이 무너진 것처럼 그려낸다.

▲ KBS '고려거란전쟁' 갈무리
▲ KBS '고려거란전쟁' 갈무리

이날 방송 이후 시청자들은 실제 역사와 다른 전황을 보여줬고 많은 내용을 생략한 점을 지적했다. 한 누리꾼은 인터넷 커뮤니티에 “정통사극에서 화수 짧은 게 마냥 좋은 게 아니라는 걸 보여준 화”라고 했다. 다른 누리꾼은 “아쉬움을 남긴다”고 했다. 다른 커뮤니티에서 한 누리꾼은 “제작비가 없었나. 전투 잠깐 하고 바로 기습 당해 잡혀가니 시청자는 이게 뭔가 싶었음”이라고 했다. 또다른 커뮤니티에선 “너무 퉁친게 아쉽다”는 글이 올라왔다. ‘고려거란전쟁’은 32부작으로 다른 대하사극에 비해 회차가 짧다. 

삼수채 전투는 고려 군이 패한 전투지만 한국 역사상 보기 드물었던 들판에서 정면으로 승부하는 ‘대회전’이었고, 당시 전황에 큰 영향을 미쳤기에 이 같은 반응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

실제 역사에선 드라마와 달리 한 차례 교전만 벌어진 건 아니다. ‘고려사’에 따르면 여러차례 전투가 이어졌고 고려군이 계속 막아낸 이후 상황이 벌어진다. 

‘고려사’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강조가 검차로 진을 쳤다가 거란병이 들어오면 검차가 합공하여 꺾거나 쓰러뜨리지 못하는 바가 없었으니 거란병이 번번히 퇴각했다.” “거란의 선봉 야율분노가 상온 야율적로를 데리고 삼수의 보루를 공격했다. 진주가 거란병의 내습을 급보했으나 강조는 곧이듣지 않고 말하기를 ‘입 안의 음식과 같다. 적으면 안 되니 많이 들어오게 하라’고 했다. 이어서 다시 급보하기를 ‘거란군이 이미 많이 들어왔다’고 하니 강조가 놀라서 ‘정말인가’라며 일어섰다.” 이후 강조는 거란군에 의해 포박된다.

실제 역사 기록은 드라마에서처럼 별다른 충돌 없이 갑자기 진영으로 들이닥친 것이 아니라 거란군이 돌파를 통해 진을 무너뜨렸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강조는 진이 뚫린 다음에도 적을 포위할 수 있다고 생각해 지시를 내렸지만 생각보다 빠르게 진을 무너뜨리고 들어와 속수무책으로 당한 것으로 보인다. 

▲ KBS '고려거란전쟁' 갈무리
▲ KBS '고려거란전쟁' 갈무리

‘고려거란전쟁’ 드라마의 원작인 ‘고려거란전쟁: 고려의 영웅들’(길승수 저)도 드라마와 달리 치열한 전투 상황을 그려낸다. 원작에서 거란군은 여러차례 전투를 벌인 후 고려군이 ‘피로와 방심’ 상태에 놓여 있다고 판단해, 이 틈을 파고드는 공략을 한다. 

이어 강조가 바둑을 두던 중 진의 오른쪽(우익)이 공격을 받는다는 보고를 받는다. 강조는 첫 보고를 받고선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이런 일은 종일 반복되었고 그다지 특별할 게 없는 상황”이라는 설명이 이어진다. 이후 진이 돌파당했을 때만 해도 강조는 오히려 포위가 가능하다고 생각하며 검차진을 전진시켜 적을 압살하라는 지시를 내리지만 진이 돌파되고, 군막 밖으로 나가려는 순간 포위된다. 

임용한 역사학자는 ‘전쟁과 역사2-거란 여진과의 전쟁’ 책을 통해 당시 상황에 관해 “거란군이 고려군의 취약지점을 발견하고 속도를 이용한 강습돌파로 진을 파고들었거나 그들의 장기대로 양동작전을 써서 고려군이 원하는 지역에서 공격을 하는 동안 다른 부대가 고려군의 약한 고리나 반대편인 고려군의 좌측면을 뚫고 들어왔던 것 같다”고 추정했다. 앞서 거란이 패배한 건 고려군이 승기를 잡았기 때문이 아니라 유목민족 특유의 탐색전일 가능성이 높기에 방심해선 안 되는 상황이라고도 설명했다. 

즉, 역사에선 고려군이 승리하던 가운데 갑자기 지휘관이 납치돼 패배한 것이 아니라 거란군이 진을 지속적으로 공략한 결과 고려군을 방심하게 만들면서 빈 틈을 노려 기습을 감행한 것으로 보인다. 원작 소설에선 이 같은 상황이 비교적 충실히 구현된 반면 드라마에선 대부분이 생략되고 전황에 대한 묘사도 차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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