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과 캐나다 방송사는 노동조합과 교섭해 ‘프리랜서’ 방송작가에게 구체적 업무별 단가표에 따라 급여를 지급하고 결방 수당을 지급하고 있었다. 한국 방송작가들이 회사 지시에 종속돼 일하는 한편 결방이나 조기 종방에 보상 받지 못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일하는시민연구소, 유니온센터, 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는 29일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방송작가 고용구조 실태, 어떻게 볼 것인가’ 토론회를 열고 영국과 캐나다, 프랑스 공영방송의 ‘프리랜서’ 방송작가 노동조건을 연구한 결과를 소개했다. 지난 6~24일 국내 방송작가 324명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도 발표했다.

조사 결과 영국 공영방송 BBC와 국영TV 등 방송사들은 프리랜서 작가를 노조원으로 포함한 전국기자노동조합(NUJ)과 협약을 맺어 프리랜서 고용과 근무 조건을 명시하고 있었다.

▲일하는시민연구소·유니온센터·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는 29일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방송작가 고용구조 실태, 어떻게 볼 것인가’ 토론회를 열었다. 사진=김예리 기자
▲일하는시민연구소·유니온센터·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는 29일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방송작가 고용구조 실태, 어떻게 볼 것인가’ 토론회를 열었다. 사진=김예리 기자

이들 방송사는 NUJ 요구로 2020년 맺은 ‘프리랜서 10대 권리헌장’을 적용했다. 권리헌장은 고용상 지위와 무관하게 △불이익 없는 공정한 서면계약 △병가 중 급여와 출산 및 육아휴직, 실업수당, 사회보장에 대한 접근권을 포함해 노동자와 같은 권리 △프리랜서로서 근무 방식과 세금 납부 방식 선택권 △따돌림과 괴롭힘, 차별 없는 존엄의 권리와 고충처리 절차에 대한 접근권 등 10가지 원칙을 명시했다.

▲영국 방송사들이 NUJ(전국기자노동조합) 요구로 2020년 맺은 ‘프리랜서 10대 권리헌장’
▲영국 방송사들이 NUJ(전국기자노동조합) 요구로 2020년 맺은 ‘프리랜서 10대 권리헌장’

방송사들은 NUJ가 정한 업무별 프리랜서 단가를 적용한다. 뉴스방송제작 단가표는 △1000단어 이상 작품 △800단어 △사진 유무 △스크립트 △버전을 바꾼 대본 △텍스트 상자 등 업무별로 세세하게 업무별 단가를 정했다. 특히 방송작가들은 정기적으로 근무한다면 모든 노동자가 유급휴가를 보장 받는다. 주 1일 근무하는 경우 연간 5.6일, 주 5일은 연 28일의 휴가(비용)를 받는다.

2020년 8월엔 BBC와 넷플릭스, 노동조합과 사회단체 등이 참여하는 ‘변화를 위한 연합단체’를 결성했다. 특정 방송사를 넘어 방송미디어산업 전체 프리랜서 노동조건 개선을 논의하는 노사 교섭 자리다.

캐나다 공영방송 CBC도 노동조합인 미디어길드 캐나다지부(CMG)와 단체협약을 맺고 프리랜서 노동자 급여와 권리를 명문화했다. 단협은 콘텐츠별 급여 최저요율을 아이템 길이나 단어, 비디어, 오디오, 텍스트에 따라 정해두고 있다.

CBC는 계약종료 수당도 두고 있는데, 방송사 사정으로 회차를 줄이거나 결방, 조기 종영할 때 프리랜서 작가 등 스태프들에게 계약종료 수당을 지급하도록 했다. 한국 방송사들이 스포츠 행사나 프로그램 개편 등을 이유로 ‘계약종료’을 일방 통보하면서 수당이나 임금을 지급하지 않는 것과 대조된다.

▲김종진 유니온센터 이사장. 사진=김예리 기자
▲김종진 유니온센터 이사장. 사진=김예리 기자

반면 프랑스의 경우 방송작가 역할을 하는 ‘라디오 스크립터’의 고용 불안정성이 크다고 연구자들은 분석했다. 홍단비 유니온센터 정책위원은 “방송작가 고용형태는 대부분 비정규직으로 새 프로그램이 만들어지며 고용되고 종영되면 계약 만료된다. 급여는 촬영 기간 동안 평균 주 1100유로(155만 원)으로 월급 단위로 지급된다”고 했다.

다만 프랑스의 경우 비정규직과 정규직, 기자와 스크립터를 구분하지 않고 ‘기자카드’를 발급받을 수 있고, 이 기자카드를 근거로 사회보장 제도에 가입해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사회보장을 받는 기자는 영구 기자(정규직)와 고료 작가(프리랜서)로 나뉜다.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의 사회보장성이 높아 프리랜서 작가 노동의 불안정성이 완화된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윤영 경기연구원 연구위원은 “프랑스는 전반적 사회보장 상황이 한국보다 나아 방송작가가 불안정 노동자라 하더라도 그 불안정함의 정도가 한국과 다를 것이다. 미국과 영국의 제도적 맥락이 다르다”며 “이런 상황에 각국에서 노조 역할로 방송작가의 안정성이 높아졌다면, 한국은 작가 고용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노조가 어떤 전략을 취해야 할지 시사점을 뽑아야 할 것”이라고 했다.

영국과 캐나다 방송작가 근무조건엔 공통점이 있다. 방송사들이 프리랜서 노동자를 조합원으로 포함하는 노동조합과 교섭한 결과라는 점이다. 참가자들은 한국도 방송사가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직접 교섭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태조사 결과 방송작가들도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과제로 ‘단체교섭’을 가장 중요하게 꼽았다(비중을 100점 만점 환산 시 89점). 

▲유지향 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 사무처장. 사진=김예리 기자
▲유지향 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 사무처장. 사진=김예리 기자

KBS·MBC, 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 포함한 교섭 거부·지연

한국의 방송작가들도 방송사와 직접 교섭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방송사들이 거부하고 있다. 언론노조는 올해 처음 KBS와 MBC에 방송작가지부를 교섭 주체로 포함하는 단체교섭을 요구했다. KBS는 언론노조의 방송작가지부 조합원을 포함한 교섭 요구 공문 수용을 거부하다 서울지방노동위원회 시정지시를 받았다. 이후 KBS 사장 문제로 교섭 자체가 미뤄지고 있다. MBC는 방송작가지부의 노사 공통교섭 참여를 거부하면서 성사되지 않았다. MBC는 언론노조 MBC본부와 모든 지역사 교섭을 포괄하는 공통교섭을 마친 뒤 각 지역별로 보충교섭을 하는 방식으로 단체교섭한다.

유지향 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장은 한국 방송작가의 노동을 말할 때 해외와 달리 ‘프리랜서임에도 가지는 종속성’을 빼놓기 어렵다고 말했다. 유 국장은 “조합원 대다수가 프리랜서고 현장에선 노동자성이란 말에 피로도를 느낀다”면서도 “프리랜서의 노동 환경을 돌아보려면 노동자성이란 거울로 비춰야 한다”고 말했다.

유 국장은 “방송작가 30%가량이 조사에서 ‘프리랜서로서 장점’으로 시간 자율성을 꼽았다. 그런데 정말 시간을 마음대로 쓸 수 있는가 의문”이라고 했다. “작가들이 마음대로 시간을 조정할 수 있다면 ‘가사, 육아, 돌봄, 학업, 자기계발(이 가능하다)’는 답변을 꼽아야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이는 결국 임금이 높지 않기에 투잡, 쓰리잡으로 생활비를 충당해야 하는 현실을 표현한 건 아닐까. 육아를 해야 하니 오후나 밤에 일한다는 사실이 자율성이라 할 수 있을까? 장시간 노동을 잘못 얘기하는 건 아닐까.”

백재웅 언론노조 조직쟁의실장은 “사실 방송사와 단체교섭이 이뤄지면 (작가가 요구로 꼽은) 임금, 교육 문제 등이 상당수 해결될 수 있다”며 “알다시피 언론노조가 작가지부로부터 비정규노동자로부터 엄청난 비판을 받고 있다. 함께 하려 노력 중”이라고 했다.

한편 방송작가 조사 결과 응답자 5명 중 1명(20.1%)은 계약서를 아예 작성하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 월 평균 소득은 269만 원이었다. 국회방송, 문체부 산하 방송3사, TBN 등 정부 유관 방송사는 소득이 210만 원으로 더 낮았다. 지역 간 격차도 심했다. 비수도권 지역사 방송작가 평균 임금은 235만 원으로 수도권(278만 원)보다 43만 원 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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