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출근길 출입기자들과의 질의응답(일명 도어스테핑)을 멈춘 지 1년이 지났다. 신년 기자회견 없이 2년차를 맞은 윤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 중에서 가장 많다는 해외순방 횟수 만큼 적지 않은 외신 인터뷰를 진행해왔지만 국내 언론과의 소통은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오는 12월로 취임 19개월차, 5년 임기의 약 3분의1을 지나고 있다. 국내 언론과 공개된 자리에서 특정 주제 없이 진행한 기자회견은 여전히 지난해 8월 ‘취임 100일 기자회견’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국내 언론 인터뷰 역시 올해 1월 조선일보와 진행한 인터뷰가 유일하다. 반면 대통령실이 소개한 윤 대통령의 해외 언론 인터뷰는 올 한 해에만 19건 25개 매체에 달한다. 해외 순방이 잦은 윤 대통령이 현지 언론을 중심으로 진행한 인터뷰들이다.

▲지난해 11월18일 윤석열 대통령의 마지막 출근길 문답 현장. 사진=대통령실
▲지난해 11월18일 윤석열 대통령의 마지막 출근길 문답 현장. 사진=대통령실

대표적으로 윤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해 한일 정상회담을 가졌던 3월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한국에 답방했던 5월 사이 대통령실은 11개 매체에 게재된 윤 대통령 인터뷰를 공지했다. 윤 대통령은 3월 일본 요미우리 신문, 4월엔 로이터 통신 및 워싱턴포스트와 대면 인터뷰를 진행했다. 주요 통신사나 신문사와 진행한 서면 인터뷰도 해외 언론에 국한됐다. 3월 진행된 5개 해외 통신사(AP, AFP, 로이터, 교도통신, 블룸버그), 일본 3개 신문사(아사히, 마이니치, 닛케이) 서면 인터뷰 등이다.

반면 국내 언론이 윤 대통령에게 질문할 수 있는 기회는 한일 정상이 각각 일본, 국내에서 진행한 ‘한일 공동 기자회견’이 전부였다. 정상회담을 주된 주제로 제한된 시간 이뤄진 기자회견에서 양국 정상이 받은 질문은 각 2건, 그 중에서 1건이 국내 매체 소속 기자의 질문이었다.

▲2023년 3월 일본 요미우리 신문에 게재된 윤석열 대통령 인터뷰 기사 갈무리
▲2023년 3월 일본 요미우리 신문에 게재된 윤석열 대통령 인터뷰 기사 갈무리
▲2023년 1월 아랍어 일간지 '알 이티하드'에 게재된 윤 대통령 서면 인터뷰. 사진=대통령실 제공
▲2023년 1월 아랍어 일간지 '알 이티하드'에 게재된 윤 대통령 서면 인터뷰. 사진=대통령실 제공

대통령실이 ‘중동 빅3 국가와의 정상외교’를 완성했다고 홍보했던 지난달 사우디아라비아-카타르 국빈 방문, 다수 언론이 ‘외교 슈퍼위크’로 칭한 윤 대통령의 최근 순방도 마찬가지였다. 윤 대통령은 지난 15~17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20~23일 영국 국빈방문, 23~24일 프랑스 파리에서의 국제박람회기구(BIE) 등 일정을 소화했다.

중동 순방과 관련해 윤 대통령은 사우디아라비아 일간지 알 리야드, 카타르 국영 통신사 QNA(Qatar News Agency) 등과 서면 인터뷰를 이어갔다. 윤 대통령이 생각하는 APEC 정상회의 참석의 의미는 AP통신 인터뷰에서 공개됐다. 윤 대통령이 영국 국빈 방문을 계기로 밝힌 한영 관계 구상 등의 생각은 데일리 텔래그래프 서면 인터뷰에서 확인해야 했다.

정작 해외 순방 취재를 위해 윤 대통령 일정에 동행하는 순방 기자단을 비롯한 대통령실 출입기자들은 윤 대통령과의 기자회견, 인터뷰를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 언론이 한국 대통령의 생각을 전하려면 윤 대통령 인터뷰를 게재한 해외 언론의 기사를 인용해야 하는 현실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2023년 8월 한미일 정상 공동 기자회견. 사진=대통령실
▲2023년 8월 한미일 정상 공동 기자회견. 사진=대통령실

국내에서의 윤 대통령 메시지는 주로 국무회의, 기념식 및 행사 참석 등 자리에서의 일방적 발언으로 전달되고 있다. 그마저도 연이은 해외 순방이 대국민 메시지에 영향을 미치는 모양새다. 지난 5월 윤석열 정부 출범 2년차 첫 국무회의를 포함해 지난 7개월간 윤 대통령이 직접 주재한 국무회의는 14건, 이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6번이 해외 순방 이야기로 시작됐다.

연말에 접어들면서 윤 대통령의 취임 3년차 신년 기자회견 여부에도 관심이 모이는 가운데, 대통령실은 언론에 대한 강한 불신과 편견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있다. 지난 6일 국회 운영위원회의 대통령실 국정감사에 출석한 김대기 비서실장이 출근길 문답 재개 가능성을 묻는 야당 의원 질의에 “아시다시피 ‘바이든이 어떻고’(윤 대통령 비속어 발언), 막 삿대질을 하고, 있을 수 없는 이야기이다. 대통령실에서 어떻게 기자들이 난동에 가까운 행동을 하느냐”고 말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동아일보, 조선일보, 한겨레 사설
▲동아일보, 조선일보, 한겨레 사설

이 같은 불통 행보가 굳어지면서 언론들도 한 목소리로 ‘소통 방식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한겨레는 지난 20일 사설에서 “대통령은 국정 홍보에만 열중하고 있다. 국민과의 대화 형식을 빌린 국정 설명회, 국무회의 ‘말씀’ 생중계가 자주 동원된다. 순방을 앞두고는 늘 외국 언론만 따로 불러 인터뷰한다”며 “정상적인 정부이고 대통령이라면 언론과 자주, 긴밀한 소통에 나서는 것이 당연하다”고 비판했다.

동아일보는 지난 15일 사설에서 “궁금하고 민감한 국정 현안에 대한 대통령 생각을 제대로 들어야 할 국민의 권리가 제약받고 있다”며 “기자회견이든 간담회든 도어스테핑이든 형식을 가리지 않고 질문받고 답변하는 언론 소통이 시급히 재개되고, 자주 있어야 하는 이유”라고 촉구했다. 조선일보도 앞선 지난 1일 사설을 통해 “많은 국민이 윤 대통령의 국정 운영 방향에는 동의하지만 그 방식과 태도에 대해선 문제점을 느껴온 것이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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