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공식 예산안 심사는 거대한 쇼에 불과하다. 진짜 심의는 무대 뒤에서 진행한다. 국회는 예결위 소위라는 공식 무대에서 예결위 예산안 심의를 한다면, 무대 뒤에서 진행되는 비공식 협상 테이블은 ‘소소위’라고 한다. 국회는 지난 11월24일 공식 예결위 소위를 종료하고 비공식 소소위 협상을 시작했다. 대부분 언론도 이 소식을 전했다.

중앙일보는 ‘소소위’를 마지막 결판이라고 표현하면서 “민주당이 단독으로 상임위원회 의결을 밀어붙이면서 보류사업과 증액심사는 손도 대지 못했다”고 표현했다.

▲ 예결위 소소위 심사 소식을 전하는 중앙일보 기사 갈무리
▲ 예결위 소소위 심사 소식을 전하는 중앙일보 기사 갈무리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권력을 감시하는 언론의 바람직한 원칙을 말해보자. 잘못된 일은 구체적으로 비판하고 잘한 부분은 정확하게 칭찬해야 한다. 민주당이 단독으로 상임위원회 의결을 밀어붙인 것은 물론 비판해야 한다. 국회의 예산심의는 합의가 원칙과 관행이다. 표결이 아니다.

예산은 정치다. 정치적 입장에 따라 감액을 원하는 사업과 증액사업은 여야가 각각 다를 수밖에 없다. 여야는 자신의 감액사업과 증액사업을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고 고수할 것은 고수하고 타협할 것은 타협하면서 서로 주고받는 것이 정치 협상의 본질이다. 다수당이 더 많이 가져가고 소수당은 덜 가져가는 것은 옳다. 그러나 주고받는 협상 없이 다수당이 모든 것을 정하는 올 오어 낫띵(전부 아니면 전무)전략을 취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이는 국회의 합의 정신을 위배했다는 점에서 잘못되었다.

그러나 중앙일보 비판 지점은 잘못되었다. 중앙일보는 민주당이 상임위원회 의결을 단독으로 처리하느라 보류사업 심사는 손도 대지 못했다고 표현했다. 그러나 올해 예결위가 유일하게 칭찬받을 부분이 있다면 아주 오랜만에 보류사업 심사를 진행했다는 점이다. 보류사업 심사까지 진행한 부분은 올해 국회가 칭찬 받아야할 부분이다. 민주당이 상임위를 단독 처리해서 보류사업 심사를 진행하지 못했다는 말은 칭찬할 부분과 비판해야 할 부분을 섞어 놓은 잘못된 기사다.

이 말을 정확히 이해하자면 국회 예결위 심의 과정을 알아야 한다.

국회 예결위 심의는 예결위 전체회의와 예결소위로 나누어서 진행된다. 예결위 전체회의는 실제 예산안이 논의되는 자리가 아니다. 예산안 세부 내용이 논의 되는 회의가 아니라 대국민 또는 대언론 상대로 정치적으로 하고 싶은 말을 하는 회의다.

실제 정부의 예산안이 논의되는 자리는 예결소위다. 예결소위는 실제 정부안 각 세부사업별 감액, 증액 의견을 논의한다. 그런데 예결소위 논의 순서는 감액논의가 끝나고 증액논의를 시작한다. 예결소위에 있는 안건지 순서대로 감액논의를 한다. 안건 심의 결론은 정부원안통과, 감액 또는 보류다. 여야가 합의해서 정부원안을 동의한다면 정부원안이 확정된다. 여야가 합의해서 정부원안 감액을 찬성하면 감액이 확정된다.

▲ 11월21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예산심사소위에서 서삼석 위원장이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 연합뉴스
▲ 11월21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예산심사소위에서 서삼석 위원장이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 연합뉴스

다만 여야의 입장이 다르면 보류가 되어 재논의한다. 예결소위 회의록 전체를 모두 논의해서 원안 통과, 감액, 보류 이상 세 개 중 하나로 정하는 일을 마치면 이를 1회 독이 끝났다고 표현한다. 오래전 국회는 1회 독이 끝나면 보통 ‘멱살잡이’를 하곤 했다. 명분을 찾아서 파행을 하게되면, 비공식 협상 테이블이 만들어진다. 비공식협상테이블에서 보류된 사항을 협상하여 전체 감액을 확정한다. 감액이 확정되면 감액 규모 범위내에서 증액을 배분한다. 이를 ‘소소위’라고 했다.

국회선진화법 이후의 국회는 ‘멱살잡이’가 없다. 1회 독이 끝나면 여야가 서로 덕담을 주고받으면서 나머지 보류된 안건은 여야 간사협의에 넘긴다고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여야 간사협의가 바로 ‘소소위’다. 그런데 올해는 이례적으로 1회 독이 끝나자 그간 보류가 되었던 안건을 재논의하는 2회 독을 진행했다. 2회 독을 얼추 끝내고 3회 독으로 들어가지는 않고 소소위에 나머지 보류 사안을 위임했다.

물론, 3회독, 4회독, 5회독을 거치면서 여야의 모든 협상을 공식적으로 하는 것이 가장 좋다. 그러나 시간적 한계가 명확하다. 올해 소위시작 날짜는 11월 13일부터다. 24일까지 거의 매일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마라톤 협상을 9회 진행 해왔다. 그 결과 2회 독까지 하고 나머지 보류사안과 증액 사업을 소소위에 넘겼다. 예결소위에서 3회 독, 4회 독을 하기에는 물리적 시간이 부족하다. 언론은 비판지점을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해야 한다. 민주당의 상임위 단독처리가 이후 어떤 법적인 의미를 지니는지 평가해 보자.

상임위에서의 증액은 예결위에서 원점에서 논의된다. 즉, 민주당이 상임위에서 단독으로 증액했다 하더라도 이는 예결위 논의과정에서 처음부터 재논의된다. 다만 상임위 감액은 예결위에서 수정될 수 없다. 국회법 등에 따르면 상임위 감액은 예결위에서 증액할 수 없다. 상임위에 재의를 요청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예결위 재의 요청으로 의결을 마친 상임위가 다시 소집하고 재의를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쉬운일이 아니다.

▲ 더불어민주당 과학기술R&D예산 대응 TF와 과방위원들이 21일 국회에서 과학기술 민생·미래 R&D 예산안을 서삼석 예결위원장에게 전달하고 있다. ⓒ 연합뉴스
▲ 더불어민주당 과학기술R&D예산 대응 TF와 과방위원들이 21일 국회에서 과학기술 민생·미래 R&D 예산안을 서삼석 예결위원장에게 전달하고 있다. ⓒ 연합뉴스

다만, 국회의 수정안 형식을 통한다면 상임위 감액도 다시 바꿀 수 있다. 이미 공식 예결위 논의는 끝나고 공은 비공식 협상테이블로 넘어가 있다. 여야의 비공식 협상에 따라 국회 본회의 수정안이 얼마든지 만들어 질 수 있다. 즉, 민주당의 상임위 단독 통과는 여야 소소위 테이블에서 증액도, 감액도 얼마든지 변형되어 본회의에 올라올 수 있다는 의미다.

민주당의 상임위 단독 통과에 대해 많은 비판이 있다. 어떤 언론은 행정부의 예산편성권을 침해한 행동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한민국 헌법에 따라 국회는 정부 동의 없이 예산을 증액조차 할 수 없다. 이를 국회의 ‘예산심의권의 제약’이라고 한다. 즉, 상임위 단독의결은 예결위에서 증액이 무력화 되고 소소위에서 본회의 수정안 형식으로 감액도 무력화 될 수 있다. 그래서 민주당 상임위 단독 통과의 대한 비판은 행정부의 예산편성권을 침해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실리조차 없는 행동을 했다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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