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아 뉴스페이퍼’(We are a newspaper). 한국일보 ‘휙알파’팀이 숏폼 영상을 만들 때 서로에게 외치는 주문이다. 자극적인 틱톡 영상들 속에서 중심을 잡도록 도와준다. 회사 이름을 드러내지 않는 보통의 언론사 버티컬브랜드와 달리 휙알파팀은 한국일보 기사를 기반으로 영상을 만든다. 영상 안에 기사 제목과 출처를 명시하고 시청 후 기사를 보도록 유도한다. ‘틱톡에서 우리가 제일 믿을 만하다’는 자신감이다.

▲ 지난 17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 사옥에서 만난 '휙알파'팀. 왼쪽부터 양진하 기자, 권준오 PD, 이수연 PD, 한소범 기자. 사진=금준경 기자.
▲ 지난 17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 사옥에서 만난 '휙알파'팀. 왼쪽부터 양진하 기자, 권준오 PD, 이수연 PD, 한소범 기자. 사진=금준경 기자.

그렇다고 재미를 포기한 건 아니다. ‘SNL 코리아’와 ‘개그콘서트’가 마음 속 경쟁자다. 영상 시사를 할 때면 사무실이 떠나갈 듯 터지는 웃음에 다른 부서로부터 호기심의 시선을 받기도 한다. 모든 기자들이 기존 업무에서 벗어나 이러한 뉴미디어팀을 꼭 경험해봐야 한다고 강조하는 휙알파팀을 지난 17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 사옥에서 만났다. 이들은 어째서 숏폼에 ‘진심’일까.

“제가 지목할 약자는… 갤럭시” 1인2역 연기

▲ 지난 2일 올라온 '휙알파' 영상. 21일 기준 틱톡에서 조회수 80만이 넘었다. 영상엔 양진하 기자.
▲ 지난 2일 올라온 '휙알파' 영상. 21일 기준 틱톡에서 조회수 80만이 넘었다. 영상엔 양진하 기자.

엠넷 ‘스트릿 우먼 파이터’(스우파) 형식을 차용한 1분 남짓의 ‘스트릿 스마트폰 파이터’ 영상은 21일 기준 틱톡에서 조회수가 80만 회가 넘었다. 양진하 한국일보 기자가 갤럭시와 아이폰 1인 2역을 연기하며 서로에게 없는 강점을 피력한다. 사이 사이 마이크가 넘어갈 땐 권준오 PD가 ‘호우’ 추임새도 넣는다. 말미엔 ‘더 뛰어난 스마트폰에 투표해달라’며 독자 호응을 유도한다.

한국일보 양진하·한소범 기자가 출연, 이수연·권준오 PD가 제작·편집을 맡는다. 김한솔, 라현진 인턴까지 포함하면 6명의 대규모 인력이다. 보통의 신문사 숏폼 채널은 현재 2~3명으로 구성된다.

대규모 인력은 그날 벌어진 이슈를 바로 영상으로 제작해 올리는 ‘데일리’ 운영을 가능케 한다. 10시 오전 회의 후 영상을 찍고 4시 오후 회의에서 제목, 해시태그, 섬네일 등을 같이 정한다. 팀 시사, 부서 시사를 거친 다음 6시 영상이 올라간다. 연기하고 촬영하는 인력 외엔 계속 내일의 아이템을 고민하는 구조다. 일주일 한 번 그간의 성과를 짚는 ‘리뷰 회의’까지 가진다. “집단지성 시스템이다. 밈, 유행어 활용 등 그때그때 대화에서 나오는 아이디어 영향을 많이 받는다.”(한소범 기자) “6명이 한 통에 계속 굴러간다. 멈추지 않는다(웃음).” (이수연 PD)

▲ 지난 17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 사옥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는 양진하 기자. 사진=금준경 기자
▲ 지난 17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 사옥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는 양진하 기자. 사진=금준경 기자

따라서 출입처는 ‘전 세계’가 된다. 그날의 핫한 이슈를 국가를 가리지 않고 들여다 본다. 사내 다른 팀들의 ‘아침보고’를 보는 게 습관이 된 이유다. 양진하 기자는 “처음엔 조간을 보고 아이템을 찿았다. 그렇게 하다 보니 조금 늦는 기분이 들더라. 이젠 기자들이 발제 올리고 논설위원들이 사설 쓰는 것들을 보고 같이 아이템을 찾게 됐다. 같이 취재를 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자극적 영상이 넘쳐나는 틱톡. 아이템 선정이 쉽지만은 않다. 지면에서 중요하더라도 틱톡에선 아닐 수 있다. 또 마냥 기사 가치가 없는 가십성 소재를 끌어올 수도 없다. 한소범 기자는 ‘균형감각’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사람들이 얼마나 관심 있어 할 것인가가 우선이긴 하다. 레거시 미디어에서 크게 다루지 않는 K팝, 일회용품 처리 등 민생 이슈를 더 챙기게 된다. 그러면서도 우리끼린 항상 강조한다. 어쨌든 우린 저널리즘이라고. 그 중간에서 줄다리기하는 균형감각이 제일 중요한 것 같다.” (한소범 기자)

“기본은 권력에 대한 ‘풍자’다. 약자나 피해자를 비난할 수 있는 내용은 절대 담지 않는다. 특정 개인을 비난하지도 않는다. 기사 쓸 때 어떤 단어를 쓸지 고민하는 것처럼 영상을 할 때도 똑같이 적용이 된다.” (양진하 기자)

▲ 한국일보 숏폼에 달린 댓글들. 한국일보 기반의 뉴스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
▲ 한국일보 숏폼에 달린 댓글들. 한국일보 기반의 뉴스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

보통 언론사는 뉴미디어 채널을 만들 때 언론사라는 사실을 부각하지 않는다. 기존의 구독자 외 새로운 지지층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휙알파는 다르다. 영상 내 한국일보 기사 헤드라인과 출처과 명시된다. 자세한 내용은 기사를 통해 볼 수 있다고 댓글에 링크도 달았다. 틱톡에선 ‘휙알파’ 별도 채널로 숏폼이 올라오지만 한국일보 공식 인스타그램, 유튜브 계정에도 숏폼이 올라온다. ‘일회용품 규제 철회’ 영상은 인스타그램에서 100만 조회수가 넘었다. 

“한국일보를 브랜딩하자는 목적이 좀 있는 것 같다. 영상 댓글에도 한국일보에서 이런 걸 한다고 사람들이 반응한다.” (한소범 기자) “이런 식으로 당일 이슈에 대해 영상을 만드는 곳이 많지 않나. ‘사이버렉카’도 있고. 그런 곳들과 확실히 차이 나게 우리는 한국일보이고 기사를 기반으로 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이건 신뢰하고 믿어도 된다고 말이다.” (이수연 PD)

“숏폼 수익? 기자들이 저널리즘으로 돈 버는 건 아니지 않나”

▲ 유튜브 기반으로 시작했던 h알파. h알파 유튜브 갈무리.
▲ 유튜브 기반으로 시작했던 h알파. h알파 유튜브 갈무리.

처음부터 숏폼에 ‘진심’이었던 건 아니다. 휙알파팀은 지난해 9월부터 지난 6월까지 대략 10분 길이의 유튜브 영상을 올렸다. 숏폼도 따로 촬영하지 않고 유튜브 영상을 편집해 만들었다. 지금의 휙알파 형식은 지난 7월 정립됐다.

“재미있는 뉴스, 알기 쉽게 설명해주는 뉴스에 대한 수요를 지난해 확인해서 유튜브를 만들었다. 소기의 성과는 있었지만 원했던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고 회의를 거듭 거치면서 재미 요소를 강화해보자. 숏폼을 만들어보자 의견이 모였다.” (양진하 기자)

“처음엔 의미와 재미를 한 그릇에 담고자 했던 욕심이 있었던 것 같다. 원래 h알파가 가지고 있던 걸 이분화해서 심도 있게 다룰 수 있는 것과 재미를 강화하는 것을 길이로 나눠 하자고 의견이 나왔다.” (한소범 기자)

시기도 적절했다. 메타와 유튜브에 이어 다음, 네이버 등 다양한 플랫폼이 너도나도 숏폼에 뛰어들었다. 플랫폼별 이용자 반응의 차이도 있다. 양진하 기자는 “의외로 틱톡 반응이 되게 좋더라. 지금은 틱톡과 인스타그램(릴스)을 고려하면서 제작하고 있다”며 “틱톡이 더 어린 느낌이고 인스타는 토론이 잘 일어난다. 틱톡은 혼자 저장해서 보는 기능이 좋은 반면 인스타는 계정 있는 사람들이 많아 공유가 활발하다는 차이도 있다”고 말했다.

▲ 지난 17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 사옥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는 한소범 기자. 사진=금준경 기자
▲ 지난 17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 사옥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는 한소범 기자. 사진=금준경 기자

숏폼은 광고를 붙이기가 어려워 수익을 내기가 어렵다. 많은 언론사들이 숏폼에 ‘진심’이지 않은 이유다. 협찬 등 브랜디드 콘텐츠 가능성이 있지만 아직 자체 생존할 수 있을 정도로 성과를 보인 사례가 없다. 이들은 아직 수익에 대한 걱정이 없다고 말했다. 오히려 압박을 받는 것이 ‘부당’하다는 것이다.

“의문이 생기는 게 (신문도) 기자들이 기사를 써서 돈 벌어오는 게 아니지 않나. 우리도 저널리즘을 추구한다. 물론 수익까지 연결되면 좋다. 하지만 지금 당장 이 한 건이 돈이 되냐고 묻는 건 좀 부당한 것 같다.” (양진하 기자)

“어쨌든 네이버가 뉴스를 줄이고 영상을 강화하려는 기조를 보이고 있다. 모든 언론사가 새로운 미디어 전략을 고민하는 상황에서 오히려 이쪽이 더 가능성 있는 것 아닌가. 수익에 대한 부담을 느끼고 있지 않다. 우리가 많은 일반 기사보다 재밌다는 자부심이 있다.”(한소범 기자)

“여러 사람과 ‘원팀’ 협업할 수 있는 기회 모두가 경험해야”

▲ 지난 17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 사옥에서 만난 '휙알파'팀. 사진=금준경 기자.
▲ 지난 17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 사옥에서 만난 '휙알파'팀. 사진=금준경 기자.

‘휙알파’팀에게 금요일은 ‘반스데이’다. 우연히 모두가 브랜드 ‘반스’ 신발을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된 후 협찬으로 ‘반스’가 들어오는 꿈을 꾸게 됐다. ‘반스 엠버서더’를 외치며 자연스럽게 장난칠 수 있는 분위기를 팀은 최대 강점으로 꼽았다. ‘집단지성’으로 굴러가는 구조라 좋은 팀 분위기가 필수라는 것이다.

“팀 분위기가 엄청 좋다. 이렇게 서로 재미있게 만들어야 보는 사람들도 재밌겠구나 느꼈다.” (한소범 기자) “회의할 때 1~2시간동안 밖에서 깔깔깔 소리가 계속 들린다고 한다.” (이수연 PD)

보통 기자는 단독으로 일을 처리해 홀로 골몰하기 쉽다. 한소범 기자는 뉴미디어팀에서 ‘협업’의 중요성과 ‘효능감’을 새삼 느꼈다고 말했다. “기자 일이 되게 소모적이다. 장기적인 목표를 만들기 힘들고 데일리한 효능감도 없다고 느꼈다. 그래서 기자들이 이탈률이 높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매일매일이 즐거우면 계속 일하는 것 아니겠나. 저는 여기서 이러한 효능감을 느낀 게 처음인 것 같다.” (한소범 기자)

“이전에도 ‘협업’이란 형태는 존재했다. 하지만 그건 기자 중심으로 영상이 딸려가는 구조였다. 점점 그게 바뀌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취재를 같이 하더라도 영상이 오리지널이 되는 거다. 보통의 많은 기자들도 이걸 경험해봐야 이런 게 원팀으로 일하는 거구나. 체득할 수 있다고 느낀다.” (양진하 기자)

▲ 지난 17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 사옥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는 이수연 PD. 사진=금준경 기자
▲ 지난 17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 사옥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는 이수연 PD. 사진=금준경 기자

보통 언론사의 뉴미디어 채널은 ‘지속가능성’을 걱정한다. 회사의 무관심 속 자신이 일궈온 뉴미디어 채널이 언제든 없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일정 시간마다 출입처를 옮겨야 하는 기자의 특성도 뉴미디어 채널의 지속가능성을 훼손하는 요소 중 하나다.

“저나 소범이가 없어도 이 팀이 굴러가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그런 얘기도 많이 들린다. 사회부에 있는 어린 연차 기자들도 관심이 있다고. 오히려 어린 연차라서 용기를 못 낼 수 있는데 그런 친구들이 많으면 좋다. 와서 하고 순환이 되는 게 바람직하다.” (양진하 기자) “기본적으로 우리는 롤플레이어다. 제가 등장하는 게 아니라 뉴스를 전달하는 화자가 등장하는 거다. 기자들은 옮겨도 PD님들은 부서에 계속 있지 않나. 다른 기자들이 와도 PD를 중심으로 더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소범 기자)

모든 기자들에게 ‘적극’ 추천한다는 결론이다. 한소범 기자는 “보통 이런 길을 간 기자가 없지 않나. 여러 리스크가 있는 영상을 선택하기 쉬웠던 건 아니다”면서도 “이제 1년 반 정도 됐는데 잘한 선택이었던 것 같다. 기자들은 보통 기사만 쓰면 끝이라고 생각한다. 영상 제작 후 유통까지 생각하는 마인드를 배운 것, 그게 가장 큰 것 같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기사를 보게 할 수 있을까 그 고민이 기자들에게도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 지난 17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 사옥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는 권준오 PD. 사진=금준경 기자
▲ 지난 17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 사옥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는 권준오 PD. 사진=금준경 기자

휙알파팀의 목표는 무엇일까. 권 PD는 20년 넘게 경향신문 만평을 담당했던 ‘장도리’를 예시로 들었다. 권 PD는 “장도리 만평이 나오면 사람들이 서로 공유하고 이런 식으로 표현했구나 공감한다. 개인적으로 h알파도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 h알파가 이런 식으로 비판했구나, 이런 식으로 정리했구나 사람들이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며 “한국일보를 대표할 수 있는 브랜드가 되는 게 지금의 기본 목표”라고 말했다.

“(일하는) 재미가 확실히 있는 것 같다. 모두가 힘을 합쳐 사람들에게 우리가 재밌게 만든 걸 보여준다. 그리고 반응을 실시간으로 본다. 그 성장 속도가 빠르고 우리가 예측했던 대로 반응이 온다면. 뉴스 창작자들에게 이것보다 더 큰 희열이 있을까. 우리끼리는 영상을 찍고 세상을 뒤집었다고 말한다(웃음).” (한소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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