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 문화계 블랙리스트가 실존했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17일 문성근·김미화 등 방송인 36명이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리면서 블랙리스트가 존재했다고 판결했다.

블랙리스트 관리와 위법 행위가 있었다는 법원 판단이 나오기까지 소송이 법원에 접수된 2018년 4월 이후 5년7개월이 걸렸다.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합의20부는 지난 17일 배우 36명이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과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이 원고들에게 500만 원씩 지급하라고 판결했다고 서울중앙지법 관계자가 19일 미디어오늘에 전했다. 재판부는 국가의 손해배상 책임도 인정했지만 소멸시효가 지나 배상을 물릴 수 없다고 판단했다.

▲서울 서초구 서울법원청사. 사진=미디어오늘.
▲서울 서초구 서울법원청사. 사진=미디어오늘.

서울중앙지법 관계자에 따르면, 재판부는 “이 전 대통령과 원 전 원장 등이 정부가 표방하는 것과 다른 정치적 견해나 이념적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등의 이유로 원고들을 포함한 문화예술인들의 신상정보가 기재된 명단을 조직적으로 작성, 배포, 관리한 행위는 헌법과 법률에 위배된 행위로서 불법행위에 해당한다. 이 같은 행위로 인해 원고들 등이 정신적 고통을 받았음은 경험칙상 명백하다”고 밝혔다.

문성근 씨 등 배우들은 2017년 11월 블랙리스트 때문에 정신적·물질적 손해를 봤다며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문재인 정부 때인 그해 9월 국정원은 이명박 정부가 ‘좌파 연예인 대응 TF’를 만들어 반정부 성향 예술인을 관리해왔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한편 당시 관련 부처 장관을 역임했던 유인촌 문화체육부 장관은 인사청문회에서 “블랙리스트는 존재하지 않았다”고 밝힌 바 있다.

경향신문은 18일자 사설 <6년 만의 문화계 블랙리스트 배상 판결, 만시지탄이다>에서 “이번 판결로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과거 블랙리스트 연루 의혹도 더욱 분명해졌다”며 “원고들은 2017년 소송 제기 당시 증거불충분 등을 이유로 유 장관을 피고에 올리지는 않았지만, 유 장관의 이명박 정부 재임 시절인 2008~2011년 문화예술인들이 광범위하게 부당한 피해를 입은 사실이 다시 한번 확인됐다”고 지적했다.

▲11월18일 경향신문 사설.
▲11월18일 경향신문 사설.

경향신문은 “윤석열 정부에서 블랙리스트 망령이 다시 꿈틀거리고 있다는 점도 우려스럽다”며 “웃자고 그린 고등학생의 ‘윤석열차’ 만화에 문체부가 정색하고 비판을 하고, 해당 작품에 금상을 수여한 기관은 국고보조금이 삭감됐다. 지난 6월 김건희 여사가 참석한 서울국제도서전 개막식에서는 예술인들이 강제로 끌려나오는 일이 일어났다”고 했다. 그러면서 “문화예술인 탄압은 헌법이 보장하는 양심의 자유, 언론·출판의 자유, 예술의 자유 등을 유린하는 중대범죄다. 유 장관은 지금이라도 블랙리스트 연루 의혹에 관해 사과하고, 사상과 정치적 이념을 잣대로 문화예술인을 평가하지 않겠다고 선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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