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년 전 MBC에 입사한 A 아나운서는 지금이야 따뜻한 웃음과 선한 이미지로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지만, 한땐 ‘MBC 아나운서 블랙리스트’ 친노조 성향으로 분류되며 오랜 시간 고초를 겪었다.

그는 이명박 정부 때인 2012년 김재철 MBC 사장 퇴진과 공정방송을 요구하는 파업에 참여했고, 박근혜 정부 시절엔 동료를 부당하게 징계한 경영진을 비판했다가 아나운서국 밖으로 쫓겨났다. 

아나운서국장이라면 각종 외압으로부터 아나운서들을 보호할 책임이 있건만, 신동호 전 MBC 아나운서국장은 자신의 국원을 내쫓는 인사발령 요청서에 자기 이름으로 결재했다. 

▲ 신동호 전 MBC 아나운서국장. 사진=MBC
▲ 신동호 전 MBC 아나운서국장. 사진=MBC

신 전 국장의 아나운서국장 재임 시기 약 4년 10개월 동안, 2012년 파업 전 50여명에 달하던 아나운서 중 11명이 타 부서로 방출됐다. 

신 전 국장은 21대 총선을 한 달 앞둔 2020년 3월 MBC를 퇴사하고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 비례대표 면접을 봤으나 공천을 받지 못했다. 언론이 잊고 있던 그는 지난 18일 방송통신위원회 부름으로 EBS 보궐이사에 임명됐다.

신 전 국장 스스로 부당 징계 피해자라고 주장할지 모르겠다. 실제 그는 2018년 MBC에서 두 차례 ‘정직 6개월’ 중징계를 받았다. 첫 번째 정직 6개월은 ①아나운서 블랙리스트 작성·실행 관여 ②아나운서 부당전보 및 프로그램 배제 등 부당노동행위 관여가 사유였다. 두 번째 정직 6개월 사유는 법인카드 부정 사용이었다.

신 전 국장은 두 번째 징계와 관련한 법인카드 부정 사용액은 회사에 반환한 데 반해 첫 번째 정직 6개월은 재판에서 다퉜다. 2018년 11월 법원에 무효확인소송을 제기하여 2021년 1월 일부 승소했다.

1심 법원은 첫 번째 정직 6개월에 대해 “MBC가 징계양정에 관한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것으로 무효”라고 봤다. MBC가 정직 6개월 동안 미지급한 임금 5540여만 원을 신 전 국장에게 지급하라고도 주문했다. ①사유는 인정되지 않았지만, ②사유에 관해서는 A 아나운서에 대한 전보조치와 일부 아나운서에 대한 프로그램 배제 사실이 인정됐다. 정직 6개월은 MBC가 징계 재량권을 일탈·남용해 무효일지언정 신 전 국장이 부당노동행위에 가담한 사실은 인정된 것이다. 

법원은 “A 아나운서에 대한 인사발령에 관해 경영진 판단이 있었다 해도 원고(신동호)가 인사발령 요청서라는 내부 공식 문서에 자신의 이름으로 결재를 한 이상 이는 A 아나운서에 대한 부당전보 형태의 부당노동행위에 가담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밝혔다.

법원은 “자신(신동호)의 권한 밖의 아나운서국 외부로의 아나운서 방출에 관해서까지는 책임을 묻기 어렵다고 해도, 국장 자신의 권한이고 또 그 책임과 권한을 보장하는 규정까지 마련돼 있는 상황에서, 방송 독립성 확보라는 정당성이 법원 판결로 반복 인정된 2012년 파업 참가를 포함한 노조 활동을 이유로 아나운서국 내 프로그램 배정 시 불이익을 주라는 지시에 대해 아나운서국을 책임지는 국장이 거부하지 않고 순응한 것에 대해서까지 면책을 인정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 2017년 10월16일 파업 중인 MBC 아나운서들과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가 2012년 파업 참여 아나운서들에 대한 각종 인사 배제 및 차별 조치 혐의로 당시 신동호 MBC 아나운서 국장을 검찰에 고소했다. 김연국 전 언론노조 MBC 본부장이 기자회견에서 신동호 국장 규탄 발언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이치열 기자
▲ 2017년 10월16일 파업 중인 MBC 아나운서들과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가 2012년 파업 참여 아나운서들에 대한 각종 인사 배제 및 차별 조치 혐의로 당시 신동호 MBC 아나운서 국장을 검찰에 고소했다. 김연국 전 언론노조 MBC 본부장이 기자회견에서 신동호 국장 규탄 발언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이치열 기자

법원은 “규정상 나의 권한이지만 상부 지시에 따라 권한을 행사한 것이니 나는 책임이 없다는 논리를 인정하면, 범죄 행위를 포함해 어떤 불법적 행위가 최고 경영자 결단에 따라 이뤄진 경우 최고 경영자 외에는 항상 아무도 징계를 받지 않게 되는데 이는 부당한 결과”라고도 했다. 

[관련 기사 : “신동호 전 MBC 아나운서 정직6개월, 징계권 남용”]

MBC는 1심에 불복해 항소했으나 2021년 9월 2심에서 양측은 법원의 화해권고 결정에 따르는 것으로 재판을 마무리했다. 정직 6개월은 무효이고, MBC가 신 전 국장에게 3000만 원을 지급하되 신 전 국장의 나머지 청구는 포기하는 것으로 끝이 났다. 신 전 국장은 A 아나운서에게 사과나 유감 표시는 하지 않았다. A 아나운서는 신 전 국장이 EBS 이사에 임명됐다는 소식에 크게 놀랐다.

신 전 국장은 19일 통화에서 A 아나운서 부당전보 건 등에 관해 “지금까지 보도된 내용은 워낙 진실과 멀어진 이야기들이 많아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MBC 국장이라는 자리는 내국 사람을 타국으로 보낼 수 있는 권한이 없다. (MBC에서) 조직 생활을 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이야기”라고 밝혔다. A 아나운서에 혹 유감이나 입장 표명을 했느냐는 질문에 “그런 일(부당전보)이 없는데 입장 표명할 일은 없다”고 했다.

방통위는 지난달에는 최기화 전 MBC 보도국장을 EBS 감사에 임명했다. 그는 2015년 언론노조 MBC본부의 자사 보도 비평 보고서를 찢어 부당노동행위를 한 혐의로 지난 12일 벌금형 300만 원이 확정됐다. 부당노동행위자들이 교육방송에 모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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