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의 정연주 사장 해임, 문재인 정부의 고대영 사장 해임은 이사회 구성을 바꿔 KBS 사장을 해임하는 과정이 위법했다는 판례를 남겼다. 두 전직 사장 해임을 무효로 본 사법부 판단은 김의철 현 KBS 사장에 대한 현 이사회의 해임 추진 역시 결국엔 법적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없을 거란 점을 시사한다.

이명박 정부 첫해였던 2008년 정연주 당시 KBS 사장 해임은 정권이 공영방송 지배구조를 활용해 사장을 해임하는 흑역사의 기원이 됐다. 2008년 5월 정 사장이 KBS 내부 직원에 의해 배임혐의로 고발된 직후, 뉴라이트전국연합 등 단체들이 감사원에 KBS 특별감사를 청구했다. 같은 달 김금수 이사장 사퇴로 유재천 보궐이사가 새 이사장을 맡게 된 뒤, 7월 정 사장 해임에 비판적이었던 신태섭 이사가 해임됐다. 검찰이 정 사장 수사를 이어가고 감사원이 정 사장 해임을 요구한 가운데, 이사회 과반(6명)을 이룬 여권 이사들 주도로 8월 정 사장 해임제청안이 의결됐다.

당시 사장 해임을 둘러싼 주요 쟁점 중 하나는 방송법상 KBS 사장 임명권자인 대통령이 해임권도 가질 수 있느냐였다. 과거 한국방송공사법 등에 규정돼있던 대통령의 ‘임면권’이 1999년 제정된 통합방송법에는 ‘임명권’으로 명시됐기에 해임권이 없다고 봐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다.

▲정연주 전 KBS 사장. 사진=미디어오늘
▲정연주 전 KBS 사장. 사진=미디어오늘

그러나 정연주 전 사장 해임무효소송을 심리한 1심 재판부(서울행정법원)는 ‘방송법의 입법 경과와 연혁, 다른 법률과의 관계, 입법 형식 등을 종합해 보면 KBS 사장 임명권자인 대통령에게 해임권한도 있다고 봄이 타당하다’며 대통령의 해임권한을 인정했다. 1심 재판부의 주요 판단은 2심 서울고등법원, 3심 대법원 재판부에 의해서도 유지됐다.

해임사유의 경우 일부 정 사장 책임이 인정됐지만 해임에 이를 정도는 아니라는 결론이었다. 특히 검찰이 정 사장을 기소한 배임 혐의는 인정되지 않았다. 배임 혐의는 정 전 사장이 경영부실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국세청 상대로 법인세를 환급 받기 위한 소송을 종결했다는 내용이었는데, 재판부는 정 전 사장이 이를 독단적으로 결정하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재정적 어려움이나 추징 위험을 면하게 됐다고 판단했다. 국장 특별승격 및 팀장 인사나 징계의 형평성 문제가 있다는 주장이나, 별관 및 연구동 부지 개발 사업을 부당하게 진행했다는 사유도 인정되지 않았다. KBS 경영책임에 관한 사유는 사장으로서의 책임이 있다고 판단됐지만 이 역시 해임에 이를 정도는 아니라는 결론이 나왔다.

정 전 사장 해임제청이 추진되는 과정에서 당사자에게 소명 기회가 주어지지 않은 것도 위법하다고 지적됐다. 재판부는 이사회 규정과 관련해선 해임제청안건을 긴급안건으로 보기 어려운 하자가 있지만 ‘결의 무효화’ 사유로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다만 당사자에게 해임처분 내용을 사전에 통지하거나 의견제출 및 소명기회를 부여했다는 증거가 없다는 점은 행정절차법에 반하는 위법이라고 봤다.

▲고대영 전 KBS 사장. 사진=미디어오늘
▲고대영 전 KBS 사장. 사진=미디어오늘

10년 뒤 고대영 전 사장 해임 역시 정연주 전 사장 때와 구조적 면에서 유사한 측면이 있었다. 이사진 법인카드 사용내역을 살펴본 감사원이 2017년 12월 업무추진비 사적유용이 적발된 KBS 이사진에 대해 해임 및 연임제한 등의 인사조처를 하라고 방통위에 통보하면서 이사회 구도 변경이 본격화했다. 야권 김경민 이사가 사퇴해 여권 조용환 이사가 임명된 가운데, 법인카드 문제로 해임된 야권 강규형 이사 자리에 김상근 여권 이사가 임명됐다. 여야 6대5 구도가 만들어진 뒤 사장 해임 절차가 추진됐다.

당시 KBS 이사회는 고대영 전 사장에게 형식적으로나마 소명 기회를 부여했다. 2018년 1월8일 여권 이사들이 해임제청안을 제출하고 이틀 뒤 이사회에서 관련 안건이 상정됐고, 고 전 사장의 요청에 따라 의견제출 기한을 연장한 뒤 14일 만에 해임제청안이 의결됐다.

고대영 전 사장의 해임제청 사유에 대한 판단 역시 일부 책임이 있지만 해임에 이를 정도는 아니라는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이 확정한 서울고법의 2심 판결문을 보면 △지상파 재허가 심사결과 최초로 합격 점수 미달과 조건부 재허가 △KBS 신뢰도와 영향력 추락 △파업 사태를 초래하고 이를 해결하지 못한 직무수행능력 상실 △졸속 조직개편으로 조직 내 반발과 갈등 초래 △방송법 등을 위반한 인사처분 남발 등 해임제청 사유와 관련한 사실관계 등이 인정됐다.

파업사태 초래와 관련해선 2017년 8월 사내 기자협회와 PD협회의 제작거부, 9월 아나운서협회와 언론노조 KBS본부 및 KBS노동조합이 총파업을 선언하고 고대영 전 사장 퇴진을 요구하면서 방송이 파행적으로 운영된 데 사장의 책임이 있다고 봤다. 고 전 사장 재임기간 KBS 신뢰도와 공정성이 심각하게 훼손됐다는 불만과 불신이 누적됐다는 것이다. 청와대 홍보수석(이정현)의 KBS 보도개입 논란을 비판한 기자를 제주방송총국으로 파견 및 전보 명령하고, 영화 ‘인천상륙작전’ 혹평을 비판하는 취재를 지시받았다가 불복한 기자들이 징계를 받은 일 등에 대한 인사처분 남발 문제도 인정됐다.

그럼에도 재판부는 이런 사유들이 방송법으로 임기를 보장하는 KBS 사장에 대한 해임 사유가 될 수 없다고 봤다. 특히 해임 무효가 확정된 강규형 전 이사 사례를 들어 “이사회 구성을 당시 여권 성향을 가진 이사들이 다수를 이루도록 변경하였고 그와 같이 구성이 변경된 이사회에서 곧바로 해임제청안을 가결”한 문제를 지적했다. 해임제청 과정이 적법하고 정당하게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김의철 KBS 사장. 사진=KBS
▲김의철 KBS 사장. 사진=KBS

KBS 사장 임기 보장의 중요성은 고대영 전 사장 사례에서도 공통적으로 확인된 사안이다. 재판부는 “사장의 임기 제도는 공영방송의 독립성·공정성·자율성을 보장하기 위한 필요에서 마련한 것이어서 그 해임사유에 따른 해임처분의 기준은 다른 공공기관 등과 비교하여 볼 때 더 높게 해석하여야할 필요가 있는 점”을 강조하면서 “해임처분은 한국방송공사 사장의 해임에 관한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위법이 있다고 볼 여지”가 있다고 인정했다.

이런 판단은 9월 중 김의철 현 KBS 사장 해임이 이뤄지고 관련 법정 다툼이 이뤄질 경우에도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 여권 이사들이 김 사장 해임제청안을 제안하기까지 윤석년 전 이사, 남영진 전 이사장 등 야권 성향 이사들이 방송통신위원회와 대통령에 의해 임기 전 절차적·내용적 논란 속에 해임됐고 그 후임으로 서기석 현 이사장과 황근 이사가 보궐 임명됐다. 여권 이사 몫이 6명으로 과반을 이루고 이사장이 보궐 이사로 교체된 수순도 전과 거의 동일하다.

현 여권 이사들이 주장하고 있는 김의철 사장 해임제청 사유는 △2년 연속 대규모 적자를 기록한 무능 방만 경영 △불공정 방송으로 인한 대국민 신뢰 상실 △수신료 분리징수 관련 직무유기 및 무대책 일관 △직원 다수의 퇴진 요구로 인한 리더십 상실 등이다. 고대영 전 사장 시절 경영 관련 사장 책임이 인정되더라도 ‘공적 기능에 현저한 장해를 초래해 해임되어야 할 정도’에 이르지 않았다고 판단됐고, 공정성 및 신뢰도 하락과 관련해 일부 문제가 있었음에도 미디어 환경 변화로 불가피한 측면이 고려됐던 점에 비춰볼 때 이번 해임제청 사유도 법적 정당성을 인정받기 어려울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결국 현 여권 이사들도 ‘결론’이 정해져 있는 일을 반복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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