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이예람 중사의 죽음 이후 사건을 은폐하려던 공군의 거짓 언론플레이가 유죄를 선고받았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달 29일 이 중사가 상관의 성추행과 이를 덮으려는 공군의 조직적인 2차 가해 때문에 사망한 게 아니라 ‘남편과 불화’ 때문에 세상을 떠난 것처럼 기자들에게 얘기한 공보장교(정현철 공군중령, 공군본부 공보정훈실 미디어콘텐츠과 미디어기획 담당)에 대해 징역 2년을 선고했다. 허위사실로 이 중사와 그의 남편 명예를 훼손했다는 혐의인데 명예훼손죄, 공무상비밀누설죄,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죄 등 특검이 기소한 혐의가 모두 유죄로 인정됐다. 

판결문을 보면 정 중령은 이 중사가 사망 직후인 지난 2021년 6월 이 중사와 같은 대대원(김OO)에게 연락해 이 중사와 그의 남편 사이에 대해 집요하게 물었고, 1년 이상 지난 이 중사 부부 다툼에 대해 들었다. 정 중령은 당시 사건 은폐와 부실수사로 공군 여론이 좋지 않자 피해자들(이 중사 부부) 사생활을 왜곡해 언론에 보도되게 해 그 무렵 언론에 제기되던 공군참모총장 해임을 막으려고 했다. 지난 2월 공판소식을 전한 오마이뉴스 보도와 판결문을 종합하면 정 중령은 기자들과 다음과 같은 대화를 나눴다. 

2021년 6월3일 대화
정 중령 : 오프(오프더레코드, 비보도). OO이(이 중사 동료)가 나한테 신신당부하면서 되게 조심스럽게 이야기한 건데. 남편의 여자 문제로 얘가 되게 힘들어했었대.
채널A 소속 A기자 : 미쳤나 봐! (중략) 아니 내가 그랬잖아. 걔(이 중사 남편)는 뭐가 없을 수가 없어요. (중략) 둘 중 하나 잘라야 한다고 위에서 지시가 왔더만. 근데 (국방부) 장관을 자를 순 없잖아. 그럼 (공군참모)총장이 날아가는 거지.

2021년 6월5일 대화
정 중령 : 사망한 이 중사 PC에… 그런 내용(부부 불화)으로 친한 친구와 주고받은 SNS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이 중사랑 가장 친한 부사관 통해 확인.
연합뉴스 소속 B기자 : 그럼 뭐지. 만약 그게 사실이면 엿 먹으라고 혼인신고하고 그런 건가. 
정 중령 : 그렇다고 봐야죠. 게다가 암말 않고 울다가 영상 남긴 것은… 남편에게 남긴 메시지인 거고.

2021년 6월5일 대화 
정 중령 : 만약 그 사망한 여군 남편있잖아요. 갸에게 다른 여자가 있고…그것 땜에 자살한 거라면?
한겨레 소속 C기자 : 설사 실제 상황이 남편이 단단히 바람난 놈이라도 공군이 그걸 흘리거나 그런 쪽으로 몰고 가지 않는 편이 정무적으로 나을 것이라 판단
정 중령 : ㅋㅋㅋㅋㅋ 난 정무적으로 판단하지 않음

참고로 이 중사는 혼인신고날 사망했다. 대화에 나오는 ‘울다가 남긴 영상’은 이 중사가 사망 당시 남긴 영상을 말한다. 

▲ 경기도 성남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이예람 중사 빈소. 사진=장슬기 기자
▲ 경기도 성남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이예람 중사 빈소. 사진=장슬기 기자

 

공군의 사건 은폐·조작이 드러난 가운데 정 중령이 기자들에게 ‘이 중사가 남편과 불화로 자살하게 됐다’는 취지의 주장을 한 것이다. 정 중령의 ‘언론플레이’에 대해 기자마다 달랐던 반응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재판부는 “정 중령은 김OO(이 중사와 같은 대대원)으로부터 ‘1년 이상 전에 피해자들(이 중사 부부)이 일시적으로 싸웠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들었을 뿐, 이 중사 남편은 이 중사 사망 무렵 외도한 사실이 없었으며 이 중사는 장동훈 중사(성추행 가해자)의 강제추행 및 그와 관련한 공군 내 2차 피해 등으로 인한 좌절감과 무기력감 등”으로 사망했다고 보고 정 중령이 기자들에게 허위사실을 말해 사자인 이 중사와 그의 남편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판단했다. 

‘오프’ 전제해도 기자들에게 말해 전파가능성 

공보업무를 하던 정 중령은 ‘오프(비보도)’를 전제로 했고, 기자들이 직무상 엄격한 비밀의무를 부담하며, 공보장교가 기자들과 사적으로 친밀한 관계가 있어 비밀보장이 기대된다는 등의 이유로 무죄를 주장했다. 자신이 이야기한 내용의 공연성(전파가능성)이 없었다는 주장이다.

재판부는 “정 중령의 메시지를 전송받은 기자들로선 정 중령이 별다른 근거도 없이 확인되지 않은 소문을 자신들에게 전달하기보다는 나름대로 사실관계 파악을 위한 조사를 거친 후 믿을만한 정보를 전달한다고 생각했을 것으로 보여 정 중령이 전달하는 내용을 신뢰했을 것”이라며 “기자들이 정 중령으로부터 피해자들(이 중사 부부)의 명예를 훼손하는 발언을 듣고도 이를 불특정 다수에게 전파하지 않을 정도로 피해자들과 특별한 인적 관계나 긴밀한 이해관계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라고 봤다. 

재판부는 “정 중령이 한 기자에게 ‘오프’(또 다른 기자들에게는 ‘오프’라는 표현도 쓰지 않았다)라는 표현을 썼지만 그 내용을 기사화하지 말라는 의미일 뿐 주위에 절대 발설하지 말라는 의미는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전파가능성이 없다고 단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라고 했다. 

▲ 공군 홈페이지 첫화면 갈무리
▲ 공군 홈페이지 첫화면 갈무리

 

정 중령은 한국기자협회 윤리강령 등을 근거로 들며 기자의 비밀유지의무를 주장했다. 역시 자신의 발언이 전파가능성이 없다는 주장이다. 재판부는 “취재윤리는 취재 또는 보도하는 과정에서 지켜야 할 사항을 정해놓을 것일 뿐 이 사건과 같이 사적인 관계에서 자신이 들은 내용을 전파하는 것을 금지하는 규정이 아니다”라며 “윤리강령만으로 전파가능성이 부정된다고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정 중령이 3명의 기자들과 사적으로 친밀한 관계가 있어 비밀보장이 된다고 주장한 것에 대해 재판부는 “기자들은 정 중령이 공보 업무를 수행하면서 알게 된 사람들로서 전파가능성을 부정할 정도로 정 중령과 사적으로 긴밀한 관계에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법원, 공보장교 허위사실 전파 고의성 인정

공보장교 정 중령이 허위를 기자들에게 전파하면서 고의로 했는지도 유죄 판단의 쟁점이었다. 

2021년 5월31일 MBC가 이 중사 사망사건을 보도하면서 성추행과 2차가해, 공군의 조직적인 은폐 의혹이 드러났고 국무총리가 직접 국방부 장관에게 엄중한 수사를 지시했다. 국방부 장관은 수사권을 공군에서 국방부 검찰단으로 다음날인 6월1일 이관했다. 그 다음날 국방부 검찰단은 가해자 장 중사를 구속했고 6월3일 공군참모총장이 경질될 수 있다는 이야기가 퍼졌다. 재판부는 이 상황에서 공보장교 정 중령이 ‘반전시킬만한 사정’을 찾으려 했다고 판단했다. 

정 중령은 군 관계자들과 대화에서 ‘지금 어떻게 해서든 나는 좀 분위기를 바꿔보려 그래. 너무 지금 유족하고 그쪽한테 일방적으로 끌려가는 것 같아’, ‘어떻게 해서든 여론을 한번 돌려볼 수 있도록 하겠다’, ‘채널A, SBS, 조선, 동아. 솔직히 얘기하면 현 정부에 반감을 가지는 매체들이야, 그런 데는 지금 우리 쪽에서 증거라도 하나만 주면 의혹 제기를 하겠다는 거야. 예를 들어 성추행과 2차 가해만으로 이 중사가 자살을 한 것이 맞냐, 그런 식으로 여론을 좀 움직이겠다는 거지’ 등의 발언을 했다. 실제 채널A 소속 A기자에겐 ‘만약 이게 보도가 나가면 조금 바뀔 수도 있지 않을까’라고도 했다. 

▲ 지난해 9월 MBN 이예람 중사 사건 관련 보도 화면 갈무리
▲ 지난해 9월 MBN 이예람 중사 사건 관련 보도 화면 갈무리

 

이 중사 부부가 금전 문제로 갈등을 겪었다는 얘기도 기자들에게 했다. 이 역시 ‘분위기를 반전시킬’ 카드로 활용하려던 정황이 드러났다. 정 중령은 채널A 소속 D기자와 연합뉴스 소속 B기자에게 ‘이 중사 집안이 어려워 이 중사 남편이 지원해줬고 손해를 많이 봤는데, 때문에 이 중사가 남편에게 빚을 갚기 위해 혼인신고 후 사망했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이 중사 사망으로 나오는 보상금과 연금 혜택을 남편에게 주려고 했다는 주장이다. 

정 중령은 자신의 조카에게도 ‘다음주 쯤부터 반전이 일어날껴. 지금 그 미친 유족들이 제2의 가해자라는 사람들은 다 피해자’라고 했고, 채널A 소속 A기자에게도 당시 2차 가해로 구속된 군 관계자들에 대해 ‘그 사람들이 개억울하다는 거임. 그 2명은 살려줘야 할 듯’이라고 했다. 기자뿐 아니라 주변에 끊임없이 이 중사와 유족 등을 비난하며 공군의 2차 가해를 두둔하는 발언을 한 것이다. 

다음은 2021년 6월19일 SBS 소속 기자 E기자와 대화다. 

정 중령 : 원래대로라면 변사사건 수사에서 남편도 조사를 받아야 한다
SBS 소속 E기자 : 그렇네. 변사사건 수사, 즉 왜 죽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수사가 중단됐다고 쓸 수는 있어
정 중령 : 그 정도만 되어도 저도 부채질 하겠음다

정 중령은 그 다음날인 6월20일 SBS E기자에게 ‘형님, 그 오천만원 좀 흘려도 됩니까. 형님이 선봉만 서주면 은근 따라갈 겁니다’라고도 했다. 여기서 ‘오천만원’은 이 중사 남편이 이 중사에게 ‘결혼할 때 5000만원 지원해주니 너네집도 그렇게 준비해’라고 했다는 이야기다. 정 중령은 채널A 소속 A기자에게 ‘SBS는 결정적으로 남편 의심 중’이라고 했다. 

6월21일 SBS E기자가 정 중령에게 ‘OO(연합뉴스 B기자 이름) 교육 했냐? 변사에 관심 보이대’라고 하자 정 중령은 ‘잘 꼬셔 봐요. 연합이 붙으면 분위기 바꿀 수 있을 듯’이라고 답했다. 

재판부는 해당 발언들에 대해 “정 중령은 이 중사와 남편 사이에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는 것을 잘 알고서도 계속해서 주변 기자들에게 남편에 대한 부정적인 내용을 적극적으로 전달했던 것을 보면 정 중령이 애초에 이 중사와 남편의 사생활에 대한 문제가 기자들 사이에서 전파되길 용인하고 있었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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