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계 쪽은 좌파가 많다.” 지난 대선 기간 안상수 국민의힘 인천 공동총괄선대위원장의 발언은 이명박·박근혜 정부 블랙리스트 원죄가 있는 정당이 다시 길들이기에 나섰다는 문화예술계 비판을 샀다. 대선 후보로서 사과하라는 요구에 응하지 않았던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석 달 뒤 대통령이 됐다. 한때 ‘블랙리스트 재발 방지’를 약속했던 문화체육관광부는 고등학생의 정치풍자 카툰(윤석열차) 수상에 경고를 보냈다. 국가인권위는 문체부가 표현의 자유를 침해했다는 진정을 각하했다.

이 와중에 윤 대통령은 장관급 문화체육특별보좌관 자리를 새로 만들어 ‘MB정부 최장수 문체부 장관’ 유인촌씨를 임명했다. 윤 대통령이 문체부를 ‘이념 부처’로 거론한 지 사흘만이었다. 유 특보는 문체부 장관이던 시절 “이전 정권 정치색을 가진 문화예술계 단체장”들 사퇴를 종용했던 인물로 꼽혀왔다. 윤 정부 들어 블랙리스트 논란이 부활될 거란 우려를 현실로 만든 장면이었다.

‘블랙리스트의 시대’를 넘어 문재인 정부에서도 “블랙리스트는 끝나지 않았다”고 외쳐온 문화예술인들은 다시 검열일지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문화예술계 연대모임 ‘블랙리스트이후(준비위원회)’ 디렉터인 시각예술비평가 정윤희씨는 현 정부에서 블랙리스트가 “더 은밀하고 집요한 정책범죄”로 이어질 거라 내다봤다. 13일 서울 영등포구 비정규노동자의집 꿀잠에서 정윤희 디렉터를 만났다.

▲정윤희 블랙리스트이후준비위원회 디렉터가 2023년 7월13일 서울 영등포구 비정규직노동자의집꿀잠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노지민 기자
▲정윤희 블랙리스트이후준비위원회 디렉터가 2023년 7월13일 서울 영등포구 비정규직노동자의집꿀잠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노지민 기자

- ‘블랙리스트 이후 준비위원회’는 언제부터 준비했나

“윤석열 정부가 출범할 무렵인 지난해 5월부터 논의했다. 문화연대, 한국작가회의, 영화계블랙리스트 문제 해결을 모색하는 모임, 민주사회실천을위한변호사모임 문화예술스포츠위원회 등 단체와 개인이 모였다. 윤석열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땐 ‘당신이 박영수 특검에 있었고 블랙리스트 수사한 검사인데 입장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끊임없이 했는데 답은 없었다. 윤석열 정부 1년이 지나고 나니 (검열 논란이) 봇물 터지듯 나오고 있다.”

- 15개 사건을 ‘윤석열 정부 1년 검열일지’에 담았는데 기준이 뭔가. ‘블랙리스트’라고 하면 보통 과거 정부에서 작성됐다가 드러난 문건 형태를 떠올리게 된다.

“언론에 보도된 사건 바탕으로 지방·중앙정부 통해 이뤄진 사건을 중점적으로 봤다.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 백서를 보면 ‘집권세력이 국가기관, 공공기관을 통해 정권에 비판적이거나 정치적 견해가 다른 문화예술인을 사찰·감시·검열·배제·통제·차별하는 일’을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로 정의하고 있다. ‘윤석열차’ 때부터 지자체를 중심으로 이뤄진 일들이 예술·표현의 자유와 개인의 양심·사상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환경을 만들고 있다.”

▲블랙리스트이후준비위원회가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검열 논란 15개 사건을 일지 형태로 기록한 내용.
▲블랙리스트이후준비위원회가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검열 논란 15개 사건을 일지 형태로 기록한 내용.

- ‘윤석열차’ 논란을 분기점으로 보는 이유는.

“박보균 장관이 국회 국정감사(2022년 10월)에서 “순수한 예술적 감수성으로 명성을 쌓은 중고생 만화공모전을 정치 오염 공모전으로 변색시킨 만화진흥원이 문제”라고 했다. 시민사회나 비판적 목소리, 의견이 다른 걸 ‘오염된 것’으로 이야기해 본질을 전도하는 프레이밍이다. 박 장관이 이후 가짜뉴스 신고·상담센터 만들면서는 “갈등과 반목을 조장하고 신뢰를 파괴하는 악성 정보 전염병”이라고 했다. 자기 기준에서 갈등을 조장하는 것이 문제이고, 아니면 가짜·허위조작이 되는 것이다. ‘윤석열차 사건’은 풍자 예술에 대한 표현의 자유와 인권 침해인데 그것이 보수 정치 세력의 식견이 아닐까 싶다. 그게 어떻게 보면 유인촌과도 연결이 된다고 생각한다.”

- 유인촌 특보가 임명된 걸 보고 어떤 생각이 들었나.

“놀랍진 않았다. 이미 계속 나누고 있지 않나. 예를 들어 국회 문화체육관광위 김승수 의원(국민의힘)은 허구헌날 블랙리스트 갖고 정쟁을 한다. ‘좌파 예술인’이 마치 비도덕적, 비윤리적으로 공공기금을 받아 이상한 짓을 하는 것처럼 이야기 한다. 유인촌 전 장관이 임명장 받기 이틀 전쯤 윤 대통령이 말한 ‘이념 부처’ 4곳 중 문체부가 들어갔다. 이제 본격적으로 하는구나 생각이 들었다.”

- 유 특보는 “내가 (문체부 장관으로) 있을 때 문화예술계를 겨냥한 리스트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유인촌이 문체부 장관일 때 ‘좌파 이념 예술가들이 문제가 있다’는 발언을 수시로 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블랙리스트 피해자로 2만 명 명단이 나왔고 확정된 건 1만 명 정도였다. 기준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었다. 유 전 장관이 나 같은 사람보다 국가적 사정은 더 잘 알 거다. 그런데 자율성과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예술계 전문가가 대통령 자문을 한다면 협소하고 편견에 찬 자문을 하지 않을까.”

▲부천만화축제 전국학생만화공모전 금상 수상작 ‘윤석열차’.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누리집 갈무리
▲부천만화축제 전국학생만화공모전 금상 수상작 ‘윤석열차’.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누리집 갈무리

-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 블랙리스트가 작동한 방식에 차이가 있었나.

“‘정책범죄’인 것은 같고, 박근혜 정부는 문화행정체계를 더 총체적으로 이용했다. ‘촛불 집회 나가면 지원하지 않는다’고 경고를 했던 걸 경고 없이 심의제도를 바꿨다. ‘개방 심의제’ ‘자율 심의제’ 같은 식으로 바꿔서 문체부나 산하 기관들이 블랙리스트 실행을 행정 체계 안에서 할 수 있도록 했다.”

- 지금 여권은 ‘좌파’ ‘이념’ 등을 말로 하고 있다.

“블랙리스트 사건을 경험했기에 이게 검열이라는 걸 알게 됐다. 부당하다고 생각하면서도 특정 작가의 개인적 문제라 생각했던 게 국가 범죄란 걸 알기 전가지 헌법이 보장하는 나의 권리를 알지 못했다. (공개적인 언급이) 더 심각하다고 생각하는데 아마 초반만 그럴 것이다. 문화예술 생태계에서 지원과 통제, 배제를 적절히 하면 정책과 제도를 통해 예술인 권리가 위축될 환경이 쉽게 조성될 것이고 이미 진행되고 있다. 더 은밀하고 집요하게, 한 번 눌러놓으면 알아서 내부 검열, 자기 검열을 할 토양을 만들고 있다. 요즘 농담으로 ‘블랙리스트 2.0 시대’란 이야기를 한다. 블랙리스트가 정쟁의 도구로 쓰이는 동안 예술은 희생된다. 예술이 왜 정치적 의도를 담으면 안 되나. 국립현대미술관도 자본주의, 제국주의 정부 문제를 다루는 전시를 한다.”

- 블랙리스트 이슈가 정쟁 기사로만 전해져서 문제란 말인가.

“몇몇 기자들을 만나면 다 하는 이야기가 ‘쌔끈하지 않다’는 얘기다. 국회의원들도 ‘단식 투쟁하세요’ 한다. 세계를 구성하는 생리를 생각하게 된다. 언론도 자생적 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한데 한국 사회에서 후원 구조가 어렵기도 하고.”

▲유인촌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지난 2008년 10월24일 저녁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 중 정회 직후 자신을 촬영하던 사진기자들에게 찍지마 XX, 등의 막말을 하는 장면을 YTN이 보도하고 있다. 사진=YTN 뉴스 영상 갈무리
▲유인촌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지난 2008년 10월24일 저녁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 중 정회 직후 자신을 촬영하던 사진기자들에게 찍지마 XX, 등의 막말을 하는 장면을 YTN이 보도하고 있다. 사진=YTN 뉴스 영상 갈무리

- 뼈아픈 부분인데, 예술계가 겪은 지원과 배제는 언론계에도 적용될 수 있다.

“신문법, 가짜뉴스 센터 등 문제와 표현의 자유를 문제를 공동 대응하지 않으면 어렵지 않나 생각한다. 또 한 축으로 비정규 노동자들이 노조할 권리를 이야기하는 노조법 23조 개정이나 고용, 안정 등 권리를 투쟁하는 문화재를 예술인들이 함께 열고 있다. 표현의 자유는 ‘예술 표현의 자유’만이 아니라 주권자로서 가질 ‘자유’의 권리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35번 외친 자유에서 권리의 자유, 비판의 자유는 인정하지 않는다. 연대하고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 그런데 집회시위의 자유를 이야기하는 곳에 함께 하다보니 저도 (경찰 등 공권력에 의한) 폭력의 대상이 되더라.

국가의 폭력은 ‘오정희 사태’에서도 드러났다. 서울국제도서전 홍보대사 오정희씨는 과거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동료 예술가들을 지원에서 배제시키라는 지시를 받아 실행한 사람이다.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가 징계를 권고했지만 민간인이라 못 했다. 출판업계는 이 일을 모를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간담회도 하고 기자회견도 했는데, 공교롭게도 김건희 여사가 도서전에 온 시간이 저희 기자회견 마칠 때와 겹쳤다. 행사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둘러보려고 이미 기자회견에서 쓴 피켓을 다 접고 들어가는데 대통령 경호처 직원이 송경동 시인 등을 폭력적으로 제압했다. 우리가 김건희 여사를 ‘테러’하는 줄 알았다고 하더라. 법적 대응을 준비 중이다. 위협이 될 것 같으면 공권력이 폭력을 휘둘러도 되나.”

▲서울국제도서전 개막식에선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연루된 소설가 오정희씨 홍보대사 선정에 항의하던 예술인들이 강제로 끌려나왔다. 사진=문학신문 뉴스페이퍼 제공
▲서울국제도서전 개막식에선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연루된 소설가 오정희씨 홍보대사 선정에 항의하던 예술인들이 강제로 끌려나왔다. 사진=문학신문 뉴스페이퍼 제공

- 김건희 여사는 문화예술계 출신으로서 활발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김건희 여사나 대통령이 장애인 예술활동 관심이 있다고 하는데, 장애 예술인을 정치적 도구로 쓰고 있다고 생각한다. 장애인의 교육권, 학습권, 이동권을 축소시키면서 예술 활동을 하라는 게 웃긴 일이다. 생존에 대한 권리를 최소한 보장해야 하는데 이벤트성 행사만 하고 있다. 김건희 여사가 전문 예술인이라면 표현의 자유 침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고 싶다.”

- 블랙리스트가 끝나지 않았다고 말해온 이유가 뭔가.

“지난 정부에서 과거의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않고 책임을 묻지 않은 여파가 현재까지 이어진다고 생각한다. 문화정책, 행정, 정치에 귀속된 예술계 토양이 지속되면 블랙리스트가 어떤 방식으로든 다시, 더 적극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 예술인들 중 아직도 자신이 블랙리스트 피해자인지 몰랐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문체부 산하 주요 6개 기관만 조사를 했고, 지자체나 문화재단 등에도 블랙리스트가 있었다는 제보에 대해선 조사가 안 됐다.”

- 지난 정부는 어땠나.

“문제가 있어도 사회적으로 가시화되면 어떤 식으로든 사과를 하고 해결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블랙리스트 가해자가 징계를 피해 퇴직하거나 다른 기관으로 가려 할 때, 예를 들어 송수근 같은 가해자가 진정한 사과 없이 돌아오기 어렵다는 사회적 인식을 만든 것이 있었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세부 계획을 세우고 집행한 것으로 드러난 송수근 전 문체부 차관은 2019년 계원예대 총장으로 임명됐다.)

▲ 비정규직 집회 현장에서 발언하고 있는 정윤희 블랙리스트이후준비위원회 디렉터. 사진=본인 제공
▲ 비정규직 집회 현장에서 발언하고 있는 정윤희 블랙리스트이후준비위원회 디렉터. 사진=본인 제공

-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때 못했다는 건가.

“(문제는) 눈치만 보고 안 한 것이다. 블랙리스트가 자기 성과였던 것. 도종환 장관 시절 한국문학관 건립을 추진할 때 오정희 같은 가해자가 위원으로 선정됐다. 예술인권리보장법 만드는 데 4년이 걸렸다. 문재인 대통령이 자신이 한 게 아니더라도 국가범죄를 사과하고 피해자 회복과 재발방지를 약속했다면 정부는 ‘톱 다운’ 구조이기에 더 낫지 않았을까. 블랙리스트 사건에서 책임을 진 게 누구인가. 형사기소된 고위 공무원 4명은 윤 대통령 당선 직후 불기소 처분됐다. 그 전에 고위공무원이 불기소 처분되면 징계하기로 문체부와 협의를 했는데, 문재인 정부 인사를 포함한 문체부 전직 장차관들이 징계에 반대하는 탄원서를 냈다. 피라미드 하단에 있을 수록 책임을 지는 비정상적 구조를 해결해야 한다.”

- 박근혜 정부 청와대의 김기춘 비서실장, 조윤선 정무수석은 재판을 받고 있다.

“어제(12일) 김기춘, 조윤선에 대한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죄 파기환송심 두 번째 공판에 다녀왔다. 지난 정권의 권력자들 변호하기 위해 대형 로펌 변호인단, 검찰총장 했던 사람들이 왔다. ‘세월이 변해서 이 문제도 해결돼야 한다’는 이야기를 마음 놓고 하더라. 지난 재판에서 블랙리스트 관련해 죄가 인정된 부분이 있고 강요죄는 성립되지 않았다.  조윤선이나 김기춘은 자신들 임기 외에 블랙리스트가 작동한 문제엔 책임이 없다고 주장할 것이다. 파기환송심 재판 과정에서 보완을 집중적으로 하는 건 검찰이 할 일이다.”

- 블랙리스트가 재발하지 않을 환경이나 제도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가장 우선순위를 두는 건 현장 예술인, 시민의 권한이 톱다운으로 만들어지는 비민주적 문제이다. 문화예술 생태계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아무리 실제로 법을 만들든 제도를 만들든 안 된다. 예술을 향유하는 시민들이 권한을 확보하는 데 참여하는 문제가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블랙리스트 운동을 계속해야 하나 고민하다 생각지도 못하게 폭력의 대상이 되고, 결국 또 운동을 해야 할 이유를 찾는다. 박사 논문도 하나도 못 쓰고 있다. 주변에서 개인의 삶을 챙기는 게 먼저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힘은 없지만 운동은 필요한 것 같으니 하고 있다. 좀 더 많은 예술인들이, 표현의 자유와 권리의 자유에 대해 목소리 내야 하는 여러 영역의 주체들이 다 같이 연대해서 공동의 과제를 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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