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자신의 피의 사실은 수사 대상이 아니라는 태도를 여전히 고수하고 있다. 자신의 지휘를 받은 전현직 공무원들이 이미 구속기소된 가운데, ‘실질적 몸통’이 제 혼자 법망을 빠져나가려 한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이규철 특검 대변인은 1일 오후 정례브리핑에서 “어제(1월31일)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자신에 대한 피의 사실이 특검법 상 수사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이의 신청을 했다”면서 “특검은 특검법 제19조에 따라 김기춘에 대한 피의 사실이 제2조의 수사 대상에 명백히 해당한다는 취지의 의견서를 오늘 오전 서울고등법원에 송부했다”고 밝혔다.

▲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지난 1월24일 오전 서울 강남구 특검 사무실에 소환되고 있다.ⓒ민중의소리
▲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지난 1월24일 오전 서울 강남구 특검 사무실에 소환되고 있다.ⓒ민중의소리

이 대변인은 이어 “구체적인 사유는 말하기 어렵다”면서 “영장실질심사 때도 특검법 수사 대상이 아니라는 변론을 한 것으로 알고 있고 이와 비슷한 취지로 이의 신청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특검팀의 자신감은 특검법(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 제2조 15항에 근거를 둔 것으로 보인다. 특검법 제2조 15항은 최순실씨가 주범으로 연루된 각종 국정농단 비위 행위 '14가지 항목'의 수사 과정에서 인지된 사건을 수사 대상으로 규정한다. 

14가지 항목엔 △청와대 문건 유출 △최순실 등의 정부 정책 결정 및 공무원 인사 불법 개입 △미르·K스포츠재단 비위행위 △최순실 등에 대한 불법 사업 수주 및 지원 특혜 등이 포함된다.

수사대상 여부를 다투는 김 전 실장의 주장은 청와대가 블랙리스트를 조직적으로 작성·관리한 사실을 부인할 수 없는 데 따른 결과로 보인다. 특검은 유진룡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비롯한 다수 문체부 공무원들의 진술과 청와대 비서실·정무수석실·교육문화수석실의 블랙리스트 주도 혐의를 입증하는 각종 문건을 확보했다. 이는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 신동철 전 정무수석비서관, 정관주 전 문체부 1차관 등의 구속기소로 확인된 범죄 사실이기도 하다.

김 전 실장은 특검에 소환되기 전까진 혐의 자체를 부인했으나 구속영장이 청구된 이후로는 ‘법망 빠져나가기’ 태도를 취하고 있다.

김 전 실장은 지난달 20일 구속영장실질심사 당시엔 “좌파 예술인이나 단체에 대해 정부 지원을 줄이는 일은 문체부 장관이 당연히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블랙리스트 작성 및 이행 지시는 인정하나 범죄인 줄은 인지하지 못했다는 주장이다.

▲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블랙리스트 작성 관련 조사를 위해 25일 오후 서울 대치동 특검 사무실에 들어서고 있다.ⓒ민중의소리
▲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블랙리스트 작성 관련 조사를 위해 25일 오후 서울 대치동 특검 사무실에 들어서고 있다.ⓒ민중의소리

김 전 실장은 특검법 제19조에 따라 자신의 구속 처분에 대한 이의신청을 지난달 31일 특검에 제출했다. 특검은 신청에 근거가 없다고 판단, 신청서를 접수한 지 24시간 이내인 1일 오전 11시 경 의견서를 첨부해 서울고등법원에 제출했다.

서울고등법원은 이의신청을 접수한지 48시간 이내에 결정해 특검에 통보해야 한다.

서울고등법원은 김 전 실장의 이의신청을 기각할 가능성이 크다. 김 전 실장의 주장은 서울중앙지법 영장실질심사 단계에서 기각된 바 있다.

김 전 실장 및 조윤선 전 문체부 장관에 대한 기소와 관련해 이 대변인은 “두 명의 수사 기간이 정해져 있어 수사 기간 내에 기소할 것”이라 밝혔다. 두 사람은 지난달 21일 구속영장이 발부돼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 이들의 구속 기간은 최장 20일임에 따라, 오는 9일 구속 기간이 만료된다.

이밖에 김소영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비서관도 블랙리스트 혐의와 관련해 피의자로 입건된 상황이다.

▲ 모철민 주 프랑스대사가 지난 1월25일 오후 서울 대치동 특별검사 사무실에 소환되고 있다.ⓒ민중의소리
▲ 모철민 주 프랑스대사가 지난 1월25일 오후 서울 대치동 특별검사 사무실에 소환되고 있다.ⓒ민중의소리

문화계 블랙리스트 주범에 대해 엄벌 의지를 공언한 특검은 청와대 관계부서 비서관 및 문체부 장관직 수준에서 기소 처분 선을 그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구속 혹은 기소 처분된 피의자는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조윤선 전 문체부 장관(당시 정무수석)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 △신동철 전 정무수석비서관 △정관주 전 문체부 1차관(당시 국민소통비서관) 등이다.

김소영 전 청와대 비서관 및 모철민 전 교육문화수석에 대한 신병 처리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한편 특검은 △대통령 대면조사 △청와대 압수수색 △우병우 전 민정수석 강제 수사에 대해 집행 의지를 재차 확인했다.

이 대변인은 “대통령 대면조사는 특검 입장에서는 반드시 해야하는 것”이라 지적했다.

이 대변인은 이어 “청와대 압수수색이 가능하다면 현재까지 문제된 모든 혐의에 대해서 할 것”이라면서 향후 대책에 대해선 “지금으로서는 말씀드릴 내용이 없다”고 말했다.

우 전 민정수석이 이주 내 소환되냐는 물음에 이 대변인은 “수사 진행 상황에 따라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며 “어쨌든 소환할 것”이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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