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수신료 분리징수를 위한 방송법 시행령을 놓고 반발이 거세다. 전기요금에 수신료를 통합해 징수한 기존 방식을 바꿀 수 있도록 한 시행령이 수신료 납부 의무를 규정한 상위법과 충돌한다는 지적에 따라 향후 법적 분쟁으로까지 번질 전망이다.

이번 TV수신료 분리징수 논란과 관련한 쟁점은 사후적 결과에 대한 논의에 집중돼 있다. 추진 시 법리적 다툼을 포함해 KBS 재원 부족 문제에 대한 대두, 광고시장을 악화시킬 수 있는 소지 등이다. 모두 우려할 만한 문제지만 우선 따져봐야 할 것은 분리징수 추진 논의 과정이 과연 정상적인지 묻는 것이다.

불과 수개월 전 국민제안사이트에 수신료 문제에 대한 생각을 묻고 조작 가능성 논란까지 불거진 답변 결과를 내놓더니 이를 근거로 방송통신위원회는 방송법 시행령을 개정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통상 40일이라는 입법예고 기간을 열흘로 줄이면서까지 밀어붙이는 형국이다. 

전기료 고지서에 수신료를 통합 부과하는 방식은 공공서비스 소비자인 시청자 입장에서 보면 어떤 의미로든 수신료 가치 문제를 따져물을 수 있다. 수신료 분리징수에 대한 찬성 의견이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런 여론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다만 최소한의 물리적인 시간이 투입되고 공론화라는 형식을 갖추는게 필요하다. 이런 걸 두고 (숙의)민주주의라고 한다. 언론계에서 ‘공론화부터’라는 구호가 가장 첫머리에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 TV수신료. 사진=미디어오늘 자료사진
▲ TV수신료. 사진=미디어오늘 자료사진

수신료 문제로 갈등을 겪었던 영국 BBC 사례가 있다. 1985년 보수당이 집권하고 마가렛 대처 총리는 수신료 폐지를 주장했다. 보수당 비판 BBC 보도를 공개적으로 비난했던 대처 총리였다. BBC 재원구조를 점검하라는 지시는 사실상 BBC 민영화 추진 계획으로 받아들여졌다. 앨런 피콕이라는 경제학자를 위원장으로 임명하고 BBC 경영혁신을 위한 위원회를 발족했다. 그런데 정작 ‘피콕 보고서’는 수신료를 유지하는 게 맞다고 결론을 내렸다. BBC의 공공서비스 가치를 인정하는 결과를 내놓은 것이다. BBC와 불화한 보수당이 오히려 공영방송 역할을 상기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영국 정부가 규제완화와 경쟁체제 도입을 골자로 한 보고서를 발표하자 BBC도 자체 보고서를 냈다. BBC는 50여차례가 넘는 공청회를 영국 전역에 개최했고, 2000명이 넘는 시청자를 대상으로 두차례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공론화를 거치면서 공영방송으로서 BBC 틀은 강화됐다. 

정부 여당이 수신료 분리징수를 추진하려는 공개적인 목적은 국민 편익과 공정성이다. 분리징수가 국민 편익에 부합하는지 그리고 KBS 방송 공정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인지 세세하게 따져보는 게 정상이다. 그런데 오로지 분리징수 자체에만 혈안이 돼 있다. 돈줄로 공영방송을 압박하려한다는 의심이 증폭되고 있는 것도 필수적으로 검토되고 논의해야 될 문제들을 건너뛰고 있기 때문이다.

공론화 과정을 거치면 공영방송 존재 이유와 함께 재원을 따져 수신료 논쟁이 심도있게 펼쳐질 수밖에 없다. 공론화를 결론없는 싸움이라고 치부할 게 아니다. 지난한 시간이 걸리더라도 공영방송 KBS를 탈바꿈해야 한다면 어떤 혁신이 필요한지 대안을 내놓는 과정이 선행돼야 한다.

보통 정부의 입김과 광고주의 영향으로부터 공영방송이 자유로울 수 있는 안정적 재원으로써 수신료 가치가 있다고 주장하는데 그렇다면 그 재원에 기여한 시청자를 수신료 가치 논쟁에 적극 참여시키는 것부터 공론화의 방향을 잡아야 한다.

‘TV수신료 납부거부사건’라는 독립영화가 있다. 이 영화엔 TV수신료에 대한 매우 원초적인 질문이 나온다. “TV있다고 무조건 수신료 내는 거 말이 안 되는 거 아니에요?”라는 대사가 그것이다. 결국 수신료 문제는 공영방송과 시청자의 관계 정립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해당 영화는 지난 2008년 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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