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카카오톡 방 모임(오픈채팅방)이 하나 있다. 모임 이름은 홍담모. ‘홍보 담당자의 모임’의 줄임말이다. 1000명이 넘는 홍보인이 하루 일과 중 벌어진 업무 관련 내용을 공유하고 시시콜콜한 생활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다.

홍보 업무의 어려움도 토로한다. 나아가 특정 기자와 매체, 그리고 한국 언론 문화를 도마에 올려놓고 성토를 쏟아낸다.

▲ 카카오톡 오픈채팅방
▲ 카카오톡 오픈채팅방

이를테면 코로나 팬데믹 기간 기업들이 기자실을 폐쇄하고 다른 공간으로 활용해 기자실 복구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을 언론 접촉을 피하기 위한 것이라며 유감을 표명하는 취재수첩 형식의 기사가 홍담모에 올라왔다. 이들은 ‘본인이 일할 장소를 왜 기업에 요구하나’라며 격한 반응을 보였다. 폐쇄된 기자실 복구는 기자 개인의 바람일 뿐인데 과한 요구를 한다는 것이다.

한 기업과 수년 간 광고 협찬을 해왔는데 끊어졌다며 한 매체의 발행인이 유감을 표명하는 글도 화제가 됐다. 홍담모는 사실상 해당 매체가 갑질을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현실 세계에선 철저히 을의 위치에 서 있는 홍보인들이 매체와 기자들의 갑질을 공유하고 질타하면서 그나마 위안을 찾고 있는 것이다.

이들 모임에서 나온 내용을 쉽사리 지나칠 수 없는 이유는 앞서 예를 든 것처럼 한국 언론의 문제가 적나라하게 담겨 있기 때문이다. 한 홍보인이 “‘언론 협찬’이라는 말 대신 어떤 말을 쓸 수 있을까”라고 질문하자 ‘스폰’ ‘깽값’ ‘하사금’ ‘적선’ ‘보험료’ ‘보호비’ 등 답글이 쏟아진 것만 봐도 그렇다. 어떤 매체에 새로운 편집국장이 왔는데 그동안 부정적인 보도를 하지 않았다며 협찬을 달라고 했다는 일화 등 갑질 언론사의 행태가 다반사로 올라온다.

홍보인들은 기자와 호의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자신이 속한 기업의 보도자료 한 줄이라도 매체 기사로 다뤄지길 원한다. 홍보인과 언론인이 각자의 위치에서 일을 하고 정당한 대우를 받길 원하지만 갑의 위치를 상기시키는 매체와 기자들 때문에 피해를 입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협찬이라는 이름으로 매체 편집국 인사가 압박을 가하고 이를 거부하면 비난성 보도가 나오는 패턴은 익숙하다 못해 한국 언론의 영업 방식으로 자리잡았다.

▲ 사진=gettyimagesbank
▲ 사진=gettyimagesbank

이들 모임에서 매체 간부와 기자들의 성향을 시시때때로 물어 확인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언론을 접촉하는 게 필수적인 업무지만 갑을 위치에서 대가만을 바라는 매체와 기자의 접촉은 되도록 피하고 싶어 궁여지책 블랙리스트를 공유하는 것이다. 문제는 미디어관리 차원의 우호적 관계를 형성하기 위한 성격의 홍보예산이 매체 입장에선 유가 협찬이라는 이름으로 지속적인 수익원이 되고, 부가적으로 기사가 거래되는 현실을 바꾸지 않은 이상 블랙리스트는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대표적으로 기사형 광고는 유가 협찬 형태로 남아있는 한국 언론의 고질적인 문제다. 정부가 시행하는 정책광고 기획보도 역시 폭넓은 의미로 기사형 광고에 해당한다. 지난 4월 뉴스타파 보도에 따르면 문화체육관광부는 근로시간 개편안에 대한 우호적인 여론 형성을 위해 특정 방송과 신문에 수억 원의 협찬 비용을 집행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국민 세금을 투입해 방송 프로그램과 신문 지면이 정부 정책의 홍보 도구로 활용되고 있는 셈이다. 정부광고법상 협찬받은 사실을 고지할 경우 사실상 ‘거래’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악용하고 있는 것이다.

한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홍보인 모임에 상당수 기자들이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참여해 엿보고 있다는 점이다. 자신이 속한 매체나 기자가 블랙리스트에 오르는 상황을 지켜보고 일말의 양심을 느끼고 반성을 하지 않을까.

일반 독자들의 평가 지점과는 다르겠지만 홍보인 모임에서 ‘이런 언론사와 기자들도 있네’라는 칭찬이 많아졌으면 한다. 홍보인과 언론인 관계를 재정립하는 것도 한국 언론의 시급한 과제가 돼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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