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뉴스레터를 통해 윤석열 정권을 비판해온 이충재 전 주필이 지난 3월 한국일보 고문에서 해촉된 것으로 확인됐다. 1987년 한국일보에 입사하여 지난해 12월 퇴사한 이충재 전 주필은 1년 임기의 고문 계약을 맺고 있었다.

한국일보 내에선 “타 매체에 정부 비판 칼럼을 기고한다는 이유로 사상 첫 고문 해촉 사태까지 벌어졌다”(기자들의 8일자 성명)는 지적이 나오지만 한국일보 측은 “정부 비판 칼럼 때문이 아니라 회사와 협의 없이 타 매체에 칼럼을 기고하여 본인과 협의해 고문 계약을 해지했다”고 반박했다.

이 전 주필은 9일 통화에서 “원래 계약대로면 계약 1년의 고문직은 올해 11월 말까지”라며 “퇴사 이후 개인 뉴스레터를 운영하고 있는데 지난 3월 오마이뉴스 측에서 뉴스레터 글을 자사에 실어도 되느냐고 문의하여 그러라고 했다. 무료 발송하고 있는 뉴스레터를 본인들이 가져다 쓰는 것이니까”라고 했다.

▲ 이충재 전 한국일보 주필이 운영하는 뉴스레터 사이트 ‘이충재의 인사이트’ 화면.
▲ 이충재 전 한국일보 주필이 운영하는 뉴스레터 사이트 ‘이충재의 인사이트’ 화면.
▲ 이충재 전 한국일보 주필의 9일자 칼럼.
▲ 이충재 전 한국일보 주필의 9일자 칼럼.

이 전 주필은 “외부 매체에 글이 실리자 한국일보 측에서 다소 곤란하다는 입장을 비치며 3월 말로 고문 계약을 종료하자고 했다. 회사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계약을 해지하라고 했다”고 전했다.

이 전 주필은 한국일보 퇴사 후 뉴스 사이트 ‘이충재의 인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다. ‘이충재의 인사이트’는 그가 2021년 3월부터 지난해 11월까지 한국일보 주필로서 연재한 뉴스레터 이름이기도 하다. 이 사이트에 실린 글은 무료 뉴스레터를 통해서도 받아볼 수 있다. 오마이뉴스는 지난 3월 중순부터 ‘이충재의 인사이트’를 전재하고 있다.

이 전 주필 칼럼 다수는 윤석열 대통령을 비판하고 견제하는 내용이다. 그는 9일자 칼럼 <윤 정부엔 검사 말고는 사람이 없나>에선 “윤석열 정부 들어서 검찰은 막강한 수사권을 동원해 우리 사회를 통제해왔다.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수사하고, 압수수색하고, 기소를 할 것이라는 공포가 팽배하다”고 지적한 뒤 “윤 대통령 눈에는 당장은 검찰의 전방위적 활약으로 현안이 신속히 해결되는 것처럼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문제가 풀리는 게 아니라 갈등과 분노가 차곡차곡 쌓이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 전 주필은 윤 대통령 배우자 김건희 여사에 대해서도 “대선 당시 약속했던 ‘조용한 내조’와는 다른 행보를 보이는 데 대한 대중의 거부감이 높다. 이 때문에 여당에서도 김 여사의 적극적 행보가 또 다른 리스크가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크다”면서 “이제라도 제2부속실 설치 등 공적인 관리와 통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야권 뿐 아니라 여당에서도 나온다”(5월11일자 칼럼)고 지적했다. 윤 대통령의 소통 방식과 검사 출신들의 인사 독식은 ‘이충재의 인사이트’가 비판의 도마 위에 올리는 주요 소재다.

▲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일 제5차 수출전략회의를 주재하고 있는 모습. 사진=대통령실 제공.
▲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일 제5차 수출전략회의를 주재하고 있는 모습. 사진=대통령실 제공.

한국일보는 타 고문 경우와 달리 이 전 주필에겐 고문을 하더라도 칼럼을 쓰지 못하게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주필은 퇴사 직전인 지난해 11월 말 미디어오늘 인터뷰에서 “칼럼과 뉴스레터를 못 쓰게 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지면 칼럼이 안 되면 뉴스레터라도 쓰겠다고 했으나 이마저도 사측이 막아섰다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한국일보 안팎에선 이충재 칼럼이 사라진 것을 놓고 승명호 한국일보·동화그룹 회장이 YTN 지분 인수를 위해 친정권 행보를 보이고 있다고 해석하는 이들도 있었다.

한국일보 측은 고문 해촉 원인이 ‘정부 비판 칼럼’에 있지 않다고 했다. 한국일보 관계자는 “고문 해지는 정부 비판 칼럼을 써서가 아니다. 회사와 사전 협의 없이 타 매체에 칼럼을 기고하고, 계속 기고하겠다고 하여 본인과 협의해 고문 계약을 해지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회사는 잔여 계약 기간에 대한 고문료도 그간의 공로를 감안해 모두 지급했다”고 밝혔다.

한국일보가 윤석열 대통령 비판에 소극적이라는 지적은 내부에서도 제기된 적 있다. 지난 4월 전국언론노조 한국일보지부는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연루 의혹 관련 기사 출고가 연기되고 과도하게 편집된 뒤 출고됐다고 지적했다. 한국일보 기자들은 지난 8일 김희원 논설위원 인사 발령에 반대하는 성명을 내면서 김 위원이 지난 2월 발제한 김 여사 관련 사설 <‘김 여사 의혹’ 왜곡이란 대통령실, 검찰이 판단케 해야>가 경영진에 의해 지면에 실리지 않았던 사실을 폭로했다. 김 위원 사설이 지면에서 배제된 까닭에 관해 이태규 한국일보 논설위원실장 등의 입장을 듣고자 했으나 답변을 받지 못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