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빡이는 커서를 밀어내지 못하고 컴퓨터 모니터만 쳐다보는 지금과 달리, 과거 어느 시절엔 글을 곧잘 썼다. 현장에 다녀오면 글이 써졌다. 사람을 만나고 시공간을 만지면, 문장이 팝콘처럼 곳곳에서 튀어 올랐다. 글쓰기가 얼마나 쉬운지, 하얗고 뜨거운 그것을 주워 담으면 됐다. 신났다.

피처, 르포, 내러티브로 채워진 그 시절이 천국이었다면, 칼럼 쓰던 시절은 지옥이었다. 오장육부를 쥐어짜면 문장 하나가 나왔다. 하나의 문장으로 완성되는 칼럼은 없으므로 백수십 번 비틀어 짰다. 설익은 추론이 억지로 게워낸 글에 매달려 너덜댔다. 창피했다. 

그 창피를 견뎌야 좋은 기자가 될 것이라 여겼다. 한국의 많은 언론인이 칼럼으로 명성을 얻지 않았는가 말이다. 높은 평판을 꿈꾸지 않아도 칼럼 쓰기는 피할 수 없었다. 한국 언론, 특히 신문은 연차별로 칼럼 집필을 할당한다. 기자 시절엔 ‘현장 칼럼’을 쓰고, 부장이 되면 ‘데스크 칼럼’을 쓴다. 그것은 블랙홀과 같다. 다른 중력을 집어삼킨다. 현장 칼럼 쓰는 날이면 다른 현장 취재를 미뤘다. 데스크 칼럼 쓰는 날엔 기사 데스킹 시간을 줄였다.

▲ 사진=gettyimagesbank
▲ 사진=gettyimagesbank

이토록 대단한 칼럼을 영미 기자들은 거의 쓰지 않는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 그들이 성취하려 안달하는 대상은 고정 칼럼이 아니라 심층보도를 담은 단행본이라는 점도 알게 됐다. 그러고 보니, 밥 우드워드가 워터게이트 사건 보도를 엮어 책까지 낸 일은 알아도, 그가 무슨 칼럼을 썼는지 나는 알지 못했다. 

수수께끼를 풀겠다고 논문을 뒤지던 일이 뜻밖으로 흘러 언론학 박사 학위를 얻었다. 공부 이후, 나는 분리주의자가 됐다. 사실과 의견을 구분하는 것, 적어도 그 분리를 근본 지향으로 삼는 것이 현대 저널리즘의 핵심이라는 의견을 갖게 됐다.

‘사실과 의견의 분리’의 여러 차원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사실 보도 조직’과 ‘의견 주장 조직’의 격리다. 두 조직의 접촉과 연관을 완전히 끊어버리는 게 핵심이다. 기사 쓰는 기자는 칼럼을, 칼럼 쓰는 논설위원은 기사를 아예 못 쓰게 하는 것이다.

한국에는 그 형식만 남았다. 편집국과 논설위원실을 따로 두지만, 기자는 종종 칼럼을 쓰고, 논설위원도 가끔 기사를 쓴다. 논설위원이 뉴스룸에 돌아와 취재하는 일도 흔하다. 반면 영미 언론의 뉴스룸과 논설위원실 사이에는 ‘유리 바닥’이 있다. 일단 논설위원이 되면 기자나 에디터로 돌아가는 일이 극히 드물다. 은퇴할 때까지 의견만 쓴다.

2021년 12월, 워싱턴포스트 논설실 책임자 프레드 하얏트(Fred Hiatt)가 사망했다. 15년의 기자 생활을 거쳐 1996년 논설위원이 된 그는 25년 동안 칼럼·논설만 썼다. 뒤이어 임명된 데이비드 쉬플리(David Shipley)는 뉴욕타임스 논설 에디터를 거쳐 10년 동안 블룸버그통신 논설실 책임자로 일한 인물이었다. 비유하면, 한겨레 논설위원으로 일하다 연합뉴스 논설실장으로 옮긴 이를 동아일보가 새 논설실장으로 스카웃한 셈이다. 그런 일이 한국에선 불가능하다. 의견의 전문성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기자건 칼럼이나 논설을 쓸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 데이비드 쉬플리(David Shipley). 사진=워싱턴포스트 홈페이지
▲ 데이비드 쉬플리(David Shipley). 사진=워싱턴포스트 홈페이지

‘사실과 의견의 분리’는 의견을 낮춰 보는 원칙이 아니다. 의견을 제대로 밝히려면, 사실 보도와 의견 제시를 구분하여 각각을 대단한 수준으로 높여야 한다는 원칙이다. 이를 마구 섞으면, 사실 보도도 망하고 의견 제시도 망한다. 오만가지 일에 대한 온갖 칼럼을 기자와 부장의 이름으로 내보내는 한국 언론은 정확히 그 지경으로 향하고 있다.

기자가 사실 취재에 집중하고, 데스크는 사실 검증에 집중해야 사실 보도의 수준을 높일 수 있다. 그 일도 바쁜데, 칼럼 집필의 부담까지 보탤 이유가 없다. 초년 시절부터 칼럼을 썼던 습성 때문에 기자는 의견을 담아 기사를 쓰고, 데스크는 의견을 앞세워 기사를 고친다. 반규범적이고 비효율적인 일이다.

사실과 의견을 둘러싼 문제에 집중해 칼럼을 써보려 한다. 새 대표를 맞은 언론 전문매체가 언론에 대한 글을 써달라고 언론학자에게 주문했는데, 거절할 이유를 찾다가 포기했다. 글을 비틀어 짜내는 지옥이 다시 왔다. 공부한 사실과 의견을 정돈할 기회라고 억지 위로해 본다. 아니면, 이제라도 칼럼 못 쓰겠다고 말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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