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가 불법집회를 엄단하겠다며 6년 만에 ‘캡사이신 진압’을 허용하면서 국제인권단체가 “심각한 우려”를 밝혔다. 대통령실은 국민제안 홈페이지에 ‘집회・시위에 관한 법률’ 찬반 토론을 올려 온라인 여론을 모을 전망이다.

전세계 160개국 회원이 참여하는 국제앰네스티의 한국지부는 5일 성명을 내어 “최근 윤석열 정부가 천명한 집회·시위에 있어서의 강제해산 조치 및 캡사이신 분사기를 포함한 위해성 경찰 장비 사용 예고 등 엄정 대처 방침은 심각한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있다”며 “집회·시위에 있어 정부의 가장 우선적 책임은 ‘불법 집회에 엄정 대응’이 아니라 ‘평화적 집회의 촉진과 보호’”라고 밝혔다.

앰네스티는 한국이 집회・시위를 폭넓게 제한하고 있어 국제법상 적법한 여러 집회가 ‘불법’으로 간주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예컨대 “현 정부가 자주 적용하는 신고미비, 교통방해, 소음, 금지 시간 등의 요소는 시민적 정치적 권리 규약 제21조에서 말하는 집회 제한의 정당한 사유가 아니다”라는 것이다.

앰네스티는 이어 “한국 사회는 지난 2015년 집회 중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사망한 고(故) 백남기 농민의 사건을 통해 평화적 집회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하는 이유를 확인한 바 있다”며 “시민들이 집회 시위의 자유를 완전히 향유할 수 있도록, 당국이 법과 제도적으로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2023년 6월5일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가 "대한민국 정부의 집회・시위 대응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는 제목으로 성명을 냈다.
▲2023년 6월5일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가 "대한민국 정부의 집회・시위 대응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는 제목으로 성명을 냈다.

국내 노동자 단체들은 이미 집회・시위 현장에서 폭력적인 진압이 이뤄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은 지난달 31일 ‘양회동 열사 추모문화제’를 앞두고 분향소가 불법적으로 철거되고 참가자가 상해를 입었다며 “불과 몇 주 전까지만 해도 벌어지지 않았을 일이 대통령과 정부 여당의 말 한마디에 의해 기류가 급변한 것”이라고 했다. 같은 날 경찰이 포스코 비정규직 노동자를 위해 고공농성 투쟁에 나선 한국노동조합총연맹 금속노련의 사무처장을 물리력을 동원해 연행한 일도 있었다. 한국노총은 “경찰의 폭력 진압을 조장하고 오히려 부추긴 최종 책임자인 윤희근 경찰청장은 지금 당장 사퇴하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대통령실은 온라인 댓글 등을 근거로 집회・시위법 개정을 추진할 것으로 전망된다. 강승규 대통령비서실 시민사회수석은 5일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에서 “집회・시위법 개정을 주제로 추천 또는 비추천 투표, 게시판 댓글 방식, 기존의 방식대로 3차 국민토론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대통령실은 앞서 시민사회수석실이 운영하는 국민제안 홈페이지의 국민참여토론 게시판에서 도서정가제 완화 방안, TV수신료 징수 방안 관련 설문을 진행했다. 여당이 일방적으로 법개정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협치 등으로 문제를 풀거나 공론・숙의를 진행하는 대신 비난 여론이 모이기 쉬운 주제를 게시판 토론에 부치고 있는 것이다.

정부의 집회・시위 강경 대응은 지난달 23일 윤석열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과거 정부가 불법 집회, 불법 시위에 대해서도 법 집행 발동을 사실상 포기한 결과 확성기 소음, 도로점거 등 국민들께서 불편을 감내하기 어려운 수준에 이르고 있다”고 말한 때를 전후로 본격화했다. 다음날 여당인 국민의힘과 정부가 당정협의회를 열어 불법 전력이 있는 단체의 집회・시위를 허가하지 않고, 출퇴근 시간대 도심에서 집회・시위를 신고단계에서 제한하는 방안 등을 밝혔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30일 상황점검회의에서 “불법집회를 해산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경우에는 캡사이신 분사기 사용도 준비해야 한다”고 했다. ‘물대포’로 불리는 살수차 재도입도 추진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시위 진압에 캡사이신이 사용된 건 박근혜 정부 탄핵 국면이었던 2017년 3월이 마지막이다. 헌법재판소는 2018년 5월 최루액을 물에 섞어 살수차로 살수하는 ‘혼합살수’가 헌법에 위배된다고 판단했다. 살수차는 2015년 11월 민중총궐기에 참여한 농민 고 백남기씨가 사망한 이후 사용되지 않았다. 2020년 4월 헌법재판소가 사람에게 일직선 형태로 물을 쏘는 직사살수는 위헌이라 판단했고, 2021년 경찰용 살수차 19대가 전량 폐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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