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의 권력은 독자로부터 나와야 한다. 그러나 한국 언론의 권력은 독자에게서 나오지 않는다. 언론이 만든 상품인 기사에 돈을 지불하는 이들이 평범한 다수 독자가 아니라 주로 자본권력이거나 정치·행정권력이기 때문이다. 한국 언론 위기의 본질이 이러한 구조적 모순에 있다면, 언론 혁신의 첫 걸음은 무너진 언론과 독자의 신뢰 관계를 회복하는 일이다. 그런 면에서 독자와의 밀착을 최우선 목표로 삼고 주민들을 매개한 취재와 경영이 이뤄지는 건강한 지역신문은 혁신의 한 모델이다. 풀뿌리 민주주의의 필수 요소인 건강한 지역신문 발전에 걸림돌로 작용하는 세금 낭비 관행을 다룬다. - 편집자주 

지난 2000년 10월 경남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경남민언련)과 마창진 참여연대 등 경상남도 내 55개 시민단체가 ‘계도지 폐지를 위한 경남 시민연대’를 결성했다. 행정정보공개운동과 함께 각 자치단체에 계도지 폐지를 요구하는 공문을 보내거나 단체장 면담 등을 시작했다. 1996년 남해군(군수 김두관), 1998년 울산광역시 5개 구·군에서 계도지를 폐지한 이후 2000년 12월 도 단위에선 최초로 경남이 계도지를 폐지했다. 계도지는 통·반장(이장)이 볼 신문 구독료를 지자체가 대납하는 관언유착 관행으로 박정희 정권 시절 국민을 계도하기 위해 시작됐다.

전국언론노동조합 주최로 지난 1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서울지역 계도지 체제 개선을 위한 집담회’에 참석한 전대식 언론노조 수석부위원장은 “여러 시민사회단체가 결합했고, 공직사회에서도 언론사의 보복 보도를 묵과할 수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며 “경남도민일보를 비롯해 언론 스스로 자정하며 계도지 폐지 운동을 보도해 의미있는 성과를 보였다”고 전했다. 계도지 예산을 책정하는 지자체의 결단과 함께 언론의 성찰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실제 계도지 폐지 운동은 언론의 응답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다음은 2000년 12월7일 경남도민일보 사설 <계도지 폐지를 환영하며> 중 일부다. 

“70년대 군사독재정권이 국민 여론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하여 홍보용으로 출발한 계도지가 그 기능을 일찍이 상실했음에도 그토록 오랫동안 살아남았던 주된 이유는 관은 돈의 힘으로, 언론은 붓의 힘으로 서로의 약점을 건드리지 않으며 공생한 데 있었다. 양자가 공범이었다면 공짜 구독자는 물론 수혜자였던 셈이며, 이런 연결고리의 흑막 하에서 언론이 제자리를 지킬 수 없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던 것이다.”

▲ 2000년 12월6일자 경남도민일보
▲ 2000년 12월6일자 경남도민일보

비슷한 시기 전북에서도 계도지 폐지 운동이 벌어졌다. 1999년 창립한 전북민언련을 포함해 전북참여시민연대, 전교조, 공무원 직장협의회 등 24개 단체가 연대해 ‘계도지 예산철폐를 위한 전북지역협의회’를 만들었다. 역시 지자체장과 시군의회 면담을 진행했다. 2000년 말부터 시작한 계도지 폐지운동은 2001년 남원시가 계도지를 폐지하면서 성과를 보였고 2003년 전북에서도 계도지가 사라졌다. 언론의 자정 노력도 있었다. 2000년 10월25일 창간한 새전북신문은 같은 해 11월27일 <계도지 예산 안받아>라는 기사로 계도지를 거부하겠다고 선언했다. 충청 지역에서는 지난 2006년 2월 충청투데이가 사고를 통해 계도지를 전격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경실련 예산감시위원회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00년 당시 전국 232개 지자체 중 64곳을 제외한 168곳이 150억6134만 원의 계도지 예산을 편성해 집행했고, 이는 1999년보다 3억 원 이상 늘어난 액수다. 서울의 경우 2002년 계도지 예산이 약 58억 원으로 자치구 평균 2억3400만 원을 집행했다. 

▲ 강원도 횡성 지역신문인 횡성희망신문 2019년 1월20일자 계도지 거부 선언
▲ 강원도 횡성 지역신문인 횡성희망신문 2019년 1월20일자 계도지 거부 선언

2000년대 폐지 운동 이후 주목 떨어진 계도지 이슈

이용성 민언련 정책자문위원장에 따르면, 2003년 지역신문법 제정 논의가 시작됐는데 지역신문 개혁 주요 과제가 기금 지원 조건으로 논의됐다. 당시 한나라당 목요상 의원의 지역신문법에는 기금 지원 기준에 ‘계도용 신문을 통한 보조금 지원 여부’를 포함했다. 지금도 지역신문발전기금 우선지원대상사를 선정할 때 평가 기준으로 계도지 예산을 받는지 여부가 포함된다. 

계도지 예산을 받는 신문사가 우선지원대상사에 선정되더라도 예산 규모가 큰 소외계층 구독료, 지역신문활용교육 구독료 사업 지원 대상에선 제외하고 있지만 계도지에 대한 관심이나 경각심은 많이 떨어져 있다. 이 위원장은 “계도지가 대부분 지역에서 사라지고 서울에서도 우선지원대상사로 선정된 지역주간신문이 4곳 밖에 없기 때문에 지역신문발전기금 우선지원 선정 과정에서 계도지 기준에 대한 비중이 줄어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올해는 서울 지역주간지 중 우선지원대상사에 선정된 곳이 없었다. 

상당수 지역에서 폐지됐기에 관심은 줄었지만 그렇지 않은 서울 상황은 다르다. 지난 2018년 서울시 내 25개 자치구 계도지 예산을 합하면 108억 원이 넘고, 2019년 109억 원 등 꾸준히 늘어 올해 총 116억5000여만 원 수준이다. 자치구 단위의 지역신문뿐 아니라 전국 단위 일간지와 경제지, 시사주간지 등도 계도지 예산을 받아가고 있다. 서울신문이 매년 절반 이상을 받아가고 있다.

▲ 서울 은평지역신문인 은평시민신문의 2019년 3월28일자 계도지 거부 선언
▲ 서울 은평지역신문인 은평시민신문의 2019년 3월28일자 계도지 거부 선언

이는 정부가 계도지 관행을 사실상 용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05년 국회 국정감사에서 계도지 예산 지원의 적절성 여부에 대해 질의를 받은 당시 행정자치부 장관은 “기본적으로 지자체가 알아서 판단할 사항”이라고 답했다. 중간에 잠시 입장이 바뀌기도 했다. 2011년 행정안전부는 “지역신문의 건전한 발전을 위한 목적이라도 통·이장에 대해 지역신문 구독을 위한 보조금을 지원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후 다시 지자체 자율에 맡겼다. 2013년에는 “행정상 하부 조직인 통리반장의 활동에 필요한 정보를 원활히 얻을 수 있도록 하는 방편의 일환으로 신문을 제공할 수 있다”는 유권해석을 내렸고, 지난해 국회 국정감사에서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이 재차 관련 입장을 물었지만 행안부는 “지자체가 권장하는 사업을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되고, 해당 사업의 지출 근거가 조례에 직접 규정된 경우에 한해 지원이 가능하다”고 답했다. 

용 의원은 이날 집담회 축사에서 계도지 관행에 두 가지 문제를 지적했다. 용 의원은 행안부가 지방재정법령에 대한 유권해석 기관인 점을 거론하며 “윤석열 정부의 긴축재정 기조에 따라 지방교부금 배분 권한을 통해 인건비·복지 지출 등 지자체 재정 지출을 옥죄는 모습이 뚜렷하지만 이 사안에 대해 유권해석을 회피하는 것은 계도지 관행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의사이고 그만큼 이 사안이 정치적이라는 뜻”이라고 주장했다. 

언론 생태계에도 악영향을 끼친다는 점도 짚었다. 용 의원은 “지자체와 지역언론, 지자체와 지역 정치인의 관계를 오염시켜 풀뿌리 가치가 훼손되고 언론 건강성이 위협받는다”고 했다. 윤창현 언론노조 위원장도 “1970년대 시작된 계도지 관행이 존재하는 건 언론계가 얼마나 구시대적인가 보여준다”며 “언론이 누군가 계도할 수 있는 시기는 완전히 끝났고, 그것 자체가 계도지 존립 근거를 흔들고 있다”고 강조했다. 

윤 위원장은 “중요하지만 다루기 어려운 문제를 ‘뜨거운 감자’라고 한다면, 계도지는 민감한 문제라는 걸 감안해도 거꾸로 회피해왔기 때문에 ‘차가운 감자’가 됐다”고 덧붙였다. 지자체 예산을 감시해야 할 서울 소재 언론사들은 지역신문이든 전국단위 신문사든 수혜 대상이 되어 침묵했고, 이에 관언유착 행태는 심화했다.

▲ 2019년 서울지역 25개구 계도지 예산 현황. 예산안과 달리 일부 예산을 미집행한 경우, 강남구 구로구 등은 10개월치 자료로 1년 예산을 추정하는 등의 이유로 일부 수치에서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디자인=이우림 기자
▲ 2019년 서울지역 25개구 계도지 예산 현황. 예산안과 달리 일부 예산을 미집행한 경우, 강남구 구로구 등은 10개월치 자료로 1년 예산을 추정하는 등의 이유로 일부 수치에서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디자인=이우림 기자

서울 지역 자치구들이 계도지 예산을 당근과 채찍으로 쓰며 비판 여론을 억제하려는 모습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금천구의 경우 ‘2021년 신문 구독 계획’을 보면, 계도지로 구독하는 각 신문을 ‘우리구 정책 홍보에 우호적’, ‘특수기사(현장취재 등) 실적 증가’라고 평가하고 우호적 기사가 몇 건 나왔는지 비교하여 계도지 구독 부수를 줄이거나 늘리기로 한 내용이 나온다. 명예훼손·왜곡 기사에 대해서는 구독을 삭감하거나 중지하겠다는 내용도 있었다. 

유착은 깨졌을 때 관계의 실체가 드러난다. 지난해 새로 선출된 강북구청장이 서울신문 계도지 구독을 줄이자 서울신문 사장과 부장, 취재기자 등이 구청장을 찾아가 ‘재선해야 하지 않겠냐’는 취지로 발언하며 부수 회복을 요구했다. 강북구청장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서울신문은 구청장 비판 기사를 쓰기 시작했다. 여타 구청장이나 구정 소식을 상세하게 전하는 것과 달리 서울신문은 현재까지 강북구청장 인터뷰나 구정 소식 등을 싣지 않고 있다. 

이 위원장은 “지역신문발전기금 사업비가 80억 원 수준이고 구독료 지원 예산은 25억 원 밖에 되지 않는다”며 “서울 자치구 계도지 예산 총액인 100억 원은 작은 돈이 아닌데 의미 있게 쓸 수 있는 예산이 낭비되고 있다”고 말했다. 100억 원이 넘는 예산을 지역신문을 포함한 신문 지원 예산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 신문. 사진=pixabay
▲ 신문. 사진=pixabay

실패한 서울 계도지 개혁 운동

이 위원장은 2012년 서울에서 벌어졌던 계도지 개혁 운동을 소개하며 당시 실패 요인을 분석했다. 2012년 서울 지역 구의원들(기초의회 발전을 위한 한걸음 모임)은 계도지 폐지 후 광역단체 차원의 지역신문지원조례를 만든 경남 사례를 모델로 계도지 개혁을 추진했다. 자치구에서 조례를 제정하는 것이 아니라 통합해 서울시 지역신문조례를 추진하려고 했다. 

지발기금 우선지원대상사 선정 기준과 유사하게 신문사를 선정해 첫해 10억 원 10개사, 다음해 20개사, 세 번째 해 30개사 등 선정사를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방식이었다. 자치구 당 1개사를 우선 지원하되 2개사 이내로 대상사를 제한해 신문사 난립을 막으려 했다. 이 위원장은 “당시 상황을 복기해보면 서울에선 계도지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부족했다”며 “구의원들이 주장해 서울시의회에 지역신문조례안이 발의됐지만 서울시에는 계도지 예산이 없기 때문에 서울시의회에서 관심이나 이해가 부족해 실패했다”고 진단했다. 

결국 계도지 개혁을 추진했던 구의원들은 지역신문의 집중 비판에 노출됐고, 계도지 폐지와 대안 마련에 실패한 채 서대문구의회에서 ‘지역언론의 공정성 및 활성화 촉구 결의안’을 남긴 채 마무리했다. 해당 결의안에선 주민에 대한 지역신문 구독실태 모니터링과 선호도 조사·평가를 실시해 구독료 예산을 차등 지원할 것을 요구했다. 

계도지 개혁을 위해서는 타 지역과 서울의 차이를 고려해야 한다. 전 수석부위원장은 “경남은 지역일간지와 지역주간지들을 대상으로 하지만 서울에서는 지역신문뿐 아니라 전국 단위 신문도 있기 때문에 상황이 다르다”고 했고 이 위원장은 “현재 계도지가 있는 강원 지역의 경우 양대 일간지로 시장이 정리돼 있는 상황이라 양성화시키기 어렵지 않지만 서울은 그렇지 않고 전국지, 지역일간지, 지역주간지 등 복잡하다”라며 “다른 지역보다 더 면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구독 선택권을 시민에게 ‘미디어 바우처’ 전환 제안 

계도지는 “독자 설정의 오류를 만들어내는 점”(이준형 언론노조 정책전문위원)에서 비판을 받고 있다. 구독료를 내는 곳인 지자체가 감시와 견제 대상인데다 실제 독자(통반장)도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달 31일 은평구의회에서 오영열 구의원은 “현재는 (계도지는) 통·반장이 구독하는 것이 아니라 구청이 일방적으로 배포하는 방식”이라며 “‘구독용 신문’이 아니라 ‘배포용 신문’이라 명칭을 바꾸는 게 적절하다”고 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지자체가 일방적으로 배포하는 신문이 아니라 ‘필요한 독자들’이 신문을 선택해 구독할 수 있도록 만들어줘야 한다. 이에 언론노조는 지난 2020년 화제가 된 ‘미디어 바우처’ 아이디어를 도입하자고 제안했다. 

이준형 위원은 “공적 재원으로 미디어를 지원하되, 지원받을 미디어를 선정하는 역할은 시민에게 맡기자는 것”이라며 “시민은 일정 정도 금액의 ‘바우처’를 지급받아 자신이 선호하는 언론사나 언론인·기사에 배분하고 바우처를 발급한 지자체는 금액 만큼 언론에 지급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 “(지자체 등) 공적 주체는 재원은 제공하되 언론사에 간섭할 수 없고, 시민은 기사를 읽고 바우처를 배분하며 좋은 기사를 찾아 미디어 리터러시 향상 기회를 얻는다”고 했다. 

일단 미디어 바우처 제도를 실험적으로 적용할 것을 제안했다. 이 위원은 먼저 자치구에 ‘구민 미디어 접근권’ 실험을 할 수 있는 언론지원 조례를 설치하고, 계도지 예산에 상당하는 공적 재원 규모 등을 고려해 실험 참여 집단을 설정하자고 했다. 초중고 학생이나 2030세대, 혹은 장노년층 집단을 선정할 수 있다. 시민들은 바우처를 받아서 전국단위 신문 1종, 지역신문 1종을 선택해 구독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다.  

이 위원은 “거대 언론사에 몰릴 우려가 있으니 시민들에게 1~5순위까지 선호하는 신문을 조사하고 한 가지 신문이 전체 10% 이상 받지 못하게 하자”며 “지역언론은 진지한 독자층을 확보할 수 있고 시민들은 지역 정보 접근기회가 생겨 지역 현안 정보 제공과 감시·견제 등 지역민주주의 차원에서도 긍정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했다. 

▲ 지난 1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서울지역 계도지 체제 개선을 위한 집담회'. 사진=언론노조
▲ 지난 1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서울지역 계도지 체제 개선을 위한 집담회'. 사진=언론노조

2012년 시작한 계도지 개혁 운동이 실패한 뒤 계도지가 시민사회 영역에서 공론화한 건 이번 집담회가 처음이다. 참석자들은 최근 종이신문 구독부수 하락으로 지국이 사라지거나 통폐합되는 문제 때문에 계도지 시장에 뛰어드는 현실 등 신문사 실무자 입장을 들어볼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또 경남과 달리 부산에서 계도지는 폐지했지만 기자실 개혁운동이 성과로 이어지지 못한 부분 등을 언급하며 행정권력과 언론의 관계도 함께 논의할 과제로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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