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30일 조선일보의 1~2면에 걸친 입장이 화제를 모았다. 이틀 전 28일자 보도와 관련 ‘바로잡습니다’라는 공지를 통해 취재 경위, 오보 배경 사연, 그리고 독자에 대한 사과를 1000자 이내로 전했다.

언론중재위원회를 통한 정정 및 반론 청구 결론도,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통한 결과도 아니었다. 형식적으로 마지못해 오보를 인정한 것을 넘어서 자발적인 반성과 성찰의 입장이 담긴 것이다.

▲ 조선일보. 사진=미디어오늘 자료사진
▲ 조선일보. 사진=미디어오늘 자료사진

조선은 1면에서 취재 및 오보 경위와 관련해 “재판 업무 가중을 이유로 배석판사가 부장판사를 상대로 진정한 사건이 인권위에 들어가 있다고 한다”는 말을 법조인으로부터 들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인권위 관계자가 기자에게 “조사 중”이라는 말한 것을 들어 기사화를 했다고 밝혔다.

조선은 “기자는 인권위 취재원 한 명의 진술을 지나치게 신뢰했다”며 “본지 취재 윤리규범은 ‘확인된 사실을 기사로 쓴다. 사실 여부는 공식적인 경로나 복수의 취재원을 통해 확인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기자는 인권위의 언론 담당 공식 채널인 홍보협력과에 확인 요청을 하지 않았다. 대법원에도 사실 확인과 반론을 구하지 않았다. ‘확증 편향’의 함정에 빠져 이중삼중의 확인을 하지 않았던 것”이라고 털어놨다.

보통 언론의 정정 보도 입장은 기존 보도 내용이 무엇인지조차 파악하기 힘들 정도로 기계적으로 축약해 서술한 경우가 많은데 조선일보는 기존 보도 내용에 어떻게 오보를 했는지 상세한 설명에 더해 자신의 취재 윤리 규범을 끌어와서 취재원 경로 등 사실확인이 부족했다고 인정하고 1면뿐 아니라 2면에 이어진 입장문을 통해 반성문을 쓴 것이다. 당시 언론계에선 ‘갑자기 왜’라며 이례적이라는 평을 남겼다.

그리고 지난 5월16일 조선일보 온라인판에 <건설노조원 분신 순간, 함께 있던 간부는 막지도 불 끄지도 않았다>라는 기사가 실렸다. 해당 보도에 대해 노동계는 물론 언론계도 크게 반발했다. 노조 혐오성 보도라는 비판을 넘어 보도의 완결성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 양회동 지대장 분신 관련 부적절한 기사를 온라인(5월16일)에 이어 지면(5월17일)에도 게재한 조선일보
▲ 양회동 지대장 분신 관련 부적절한 기사를 온라인(5월16일)에 이어 지면(5월17일)에도 게재한 조선일보

언론개혁시민연대는 해당 보도의 핵심 내용에 대해 “‘양회동 열사가 분신하는 곳에 노조 상급자 A씨가 있었음에도 말리기는커녕 휴대폰만 만지작거리며 멀리 떨어진 채로 방관했다’는 내용”이었다며 “충격적인 의혹을 제기하기에 근거는 턱없이 부족했다. (중략) 조선일보의 기사는 ‘악의적인 의도성을 가지고 쓰였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취재 차 현장을 찾았던 YTN 기자들의 진술도 일관된 것으로 확인됐다”고 비판했다.

보통 사건 사고 보도의 사실 확인 유무는 최종 확인자 위치에 있는 수사당국이 될 수밖에 없다. 경찰에 따르면 조선일보의 분신 방조 의혹 혐의에 대한 사실 확인은 없었다고 한다. 조선은 “자살보도 권고기준에 입각, 해당 사건(양회동 열사 분신)에 대한 보도를 최소화해왔다. 그러나 ‘극단적 선택 그 자체’가 아니라 ‘당시 사건 현장에 있던 사람들의 대처’에 미심쩍은 부분이 있었고, 이 부분에 대해서는 보도의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했다”라는 문장을 넣었는데 복수의 취재원 등 사실확인이 없었음을 실토하면서도 의혹 제기 영역으로써 보도가 불가피했다고 억지 논리를 펴고 있는 것이다.

해당 보도의 근거는 출처를 알 수 없는 CCTV 장면에 대한 해석뿐이다. 매체가 의견을 낼 수 있지만 의견이 사실 확인으로 굳어지려면 적어도 복수의 목격자 진술 내지 경찰의 확인이 필요하다. 그런데 조선일보 보도 근거는 CCTV상 분신을 방조한 것으로 보이는 듯한 장면을 기자가 ‘그렇게’ 봤다는 자의적이고 주관적인 해석만 있을 뿐이다.

더구다나 조선은 16일 온라인 보도에 이어 17일자 지면을 통해서도 <분신 노조원 불붙일 때 민노총 간부 안 막았다>라는 보도를 내보냈다. 조선일보 데스크가 지면 보도에 대한 법적 책임 문제에 대해서도 기꺼이 감수하겠다는 뜻으로 통한다. 3월30일자 오보에 대한 사과 입장문이 이례적으로 평가받았는데 분신 방조 의혹 제기 보도가 나오자 역시나 조선일보답다는 냉소가 흘러나온 까닭이다.

두 보도 내용을 뜯어보면 분신 방조 의혹 제기 보도는 오히려 취재원이 더욱 불확실할뿐더러 취재 근거에 대한 확인도 그 과정이 불투명하다. 조선일보가 밝힌대로 자사 취재윤리규범에도 한참 벗어나 있는데도 불구하고 지면에까지 기사를 실은 것은 그 책임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

▲민주노총과 참여연대, 김용균재단,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등 179개 노동‧시민사회단체들은 5월22일 낮 1시에 서울 중구 조선일보 본사 앞에서 조선일보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김예리 기자
▲민주노총과 참여연대, 김용균재단,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등 179개 노동‧시민사회단체들은 5월22일 낮 1시에 서울 중구 조선일보 본사 앞에서 조선일보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김예리 기자

선우정 조선일보 신임 편집국장은 3월25일 실린 조선일보 사보를 통해 이렇게 밝혔다. “언론이 위기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위기의 본질은 콘텐츠의 위기입니다. 쉽게 이해하면 됩니다. 사고 현장에 유튜브가 언론보다 먼저 가면 유튜브가 언론입니다. 기자는 집에 있고 유튜버는 현장에 있으면 유튜버가 기자입니다. 기자가 떠도는 잡설로 기사를 만들고 유튜버가 취재한 사실로 기사를 만들면 유튜브 기사가 기사입니다. 언론의 위기라고 한다면 이게 위기입니다. 세상은 솔직합니다. 노력한 만큼 대접받는 것입니다.”

선우정 국장이 진단한 언론의 위기 문제를 자사의 분신 방조 의혹 제기 보도에도 적용하면 누워서 침뱉기가 될 수밖에 없다. 선우정 국장은 이런 말도 전했다. “저질화의 유혹에 무너지면 안 됩니다. 지금까지 그랬듯 오늘, 지금, 내가 만드는 콘텐츠에 어떤 부가가치를 추가해 차별화, 고급화할 것인지 늘 고민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그래야 생존할 수 있습니다.”

현장을 그렇게 중시했던 취재 기자 정신에 입각해 선우정 국장은 이번 보도에 대해 책임을 져야할 것이다. 그게 조선일보가 위기를 돌파하고 살길을 모색하는 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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