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릿속이 하얗게 돼서,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52세 형틀 목수 A씨는 지난 4월 건설 현장에 취업한 이튿날 해고를 당했다. 민주노총 건설노조 조합원이었던 A씨는 지난 3월 노조를 탈퇴했다. 구직난을 견디다 못해 택한 마지막 수단이었다. 정부와 경찰의 ‘건폭’ 수사가 시작된 뒤 건설사들은 노조원 채용을 거부하고 있다.

그는 노조가 아닌 지인을 따라 ‘오야지’(작업 팀장) 소개로 4월18일 근로계약서를 썼다. 19일 아침 건설 현장에 출근해 ‘내일부터 나오지 말라’는 통보를 받았다. ‘노조에 가입했었다’는 이유다. A씨는 “오야지가 제가 (노조를) 탈퇴했다고 (건설업체) 소장에게 항변했지만 소용 없었다”고 했다.

▲민주노총 건설노조와 ‘양회동 열사 노동시민사회종교문화단체 공동행동’은 지난 2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폭력경찰 규탄 및 불법행위 고발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김예리 기자
▲민주노총 건설노조와 ‘양회동 열사 노동시민사회종교문화단체 공동행동’은 지난 2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폭력경찰 규탄 및 불법행위 고발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김예리 기자

“현장에 평화” 왔다는 조선일보…노동자들 “말도 안돼”

정부가 건설노조를 ‘건폭’으로 규정하고 기획 수사한 지 6개월, 건설노동자 고 양회동씨가 탄압 수사의 부당함을 호소하며 분신했다. 경찰은 건설노조의 고용 요구나 월례비(성과급), 전임비 지급 등을 문제 삼아 수사와 구속을 이어가고 있다.

일부 언론은 정부가 “원칙을 세우니 현장에 평화가 왔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조선일보의 3~5일 1면‧사설이 일례다. 정작 현장 노동자들에 따르면 건설사의 노조 탄압이 노골화하면서 현장 노동 환경과 처우도 크게 열악해졌다.

▲3일 조선일보 1면
▲3일 조선일보 1면

“일용직이라…부당해고 구제신청도 못했다”

A씨는 노무사를 찾았다. 일반 기업이라면 일반적으로 부당해고와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이 이뤄지는 사건이다. 그러나 그가 찾은 노무사마다 “부당해고를 인정 받기 힘들 거다”라고 답했다. 건설업종은 일용직에 속한다는 이유다. A씨는 “승산이 적다는 말에 헛돈 쓸 수가 없어 그냥 돌아왔다”며 “다른 일을 시작할 때까진 일을 못하고 그냥 집에 있다. 제일 큰 걱정은 중학생인 아들과 딸”이라고 했다.

‘건폭’ 수사가 시작된 뒤 건설사들은 공공연하게 채용 차별을 시작했다. 어광득 민주노총 건설노조 경인건설지부 사무국장은 4일 “최근 일하던 와중에도 조합원인 게 알려지면 다음주부터 나오지 말라는 경우가 허다하다. 회사 방침이라는 것”이라며 “어제 아침에도 ‘미안한데 노조 탈퇴해야겠다’는 조합원 연락이 왔다”고 했다. 타워크레인 노동자들이 가입한 부울경 타워크레인지부 박현찬 지부장도 “(정부의 ‘건폭’ 규정 이후) 건설업체들은 교섭 자리에서 ‘노조가 52시간제를 준수하겠다고 했으니, 또 민주노총 건설노조는 파업할 수 있으니 채용을 거부한다’고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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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1일 경찰이 서울 중구 파이낸스빌딩 앞에서 고 양회동 건설노조 강원건설지부 3지대장 시민분향소 무단 철거에 나서면서 이를 막으려는 건설노조 조합원들과 몸싸움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건설노조 조합원 4명이 다쳤고 4명이 연행됐다. 건설노조 제공

사라진 휴게실, 임금 삭감 “과거로 회귀”

노동 환경도 더 열악해지고 있다. 건설노조 조합원이지만 ‘비조합원’으로 경기지역 아파트 신축 현장에 취업한 형틀 목수 팀장 B씨는 최근 휴식할 때 “현장 바닥에서 그냥 쉰다”고 말한다. “노조가 활동할 때에는 건설사가 컨테이너에 에어컨을 달아 휴게 공간을 줬다. 최소한 인간답게 살아보자며 노조가 요구했던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제는 건물 밑을 찾아다니며 쉰다”며 “일을 하려면 속옷 하나만 빼놓고 다 갈아입어야 하는데 주변에 주택이 없으니 망정이지 민원 세례를 받을 뻔했다”고 말했다.

건설노동자 임금도 깎였다. B씨는 “제가 일한 지 20년 경력인데, (건폭 수사가 시작되기 전인) 작년 4월엔 30만 5000원을 받았는데 (비조합원으로 일하는) 지금은 25만 원을 받는다”고 했다. 불법 하도급도 다시 난립한다. B씨는 “내가 다니는 곳만 해도 4~5단계가 된다. 소장 밑에 부장이라고 부르는 사람, 그 밑에 오야지, 그 밑에 12명이 일한다. 그것만 해도 3단계”라며 “(불법 다단계) 하도급하던 시절이 다시 돌아왔다”고 했다.

▲민주노총 건설노조 조합원들이 1월19일 오전 압수수색이 진행되고 있는 서울 영등포구 민주노총 건설노조 서울경기북부지부 사무실 앞에서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민주노총 건설노조 조합원들이 1월19일 오전 압수수색이 진행되고 있는 서울 영등포구 민주노총 건설노조 서울경기북부지부 사무실 앞에서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어광득 경인건설지부 사무국장은 “건설노조 조합원이 고용되면 단협상 건설업체가 임금을 조합원에게 직접 지급하는데, 보통 (노조가 없는) 현장에서는 위임이나 대리수령을 시켜 중간착취하는 ‘똥떼기’가 일어난다”며 “노조 없는 현장에서 개선 목소리를 내려면 쫓겨나길 각오해야 한다”고 했다.

B씨는 ‘건설현장에 평화가 찾아왔다’라는 보도에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했다. “현장은 그 정반대예요. 건설사는 저임금 고용하면서 뱃속을 채우고 있겠죠. 우리 건설 노동자들은 소장이 가라면 가는 팔자잖아요. 제 옆 현장에 있는 동료도 노조 활동했다는 이유로 오늘부로 그만두라는 통보를 받았어요.” 그는 “글자 하나 잘못 써도 사람을 죽이지 않나. 조선일보가 건설노조에 대해 그렇게 쓰는 걸 보면 너무 가슴이 아프다”며 “이런 말을 하려다 보니 눈물이 나려 한다”고 말했다.

▲안개가 있으면 타워크레인을 운행해선 안 된다. 안개 낀 건설현장 내 타워크레인이 서 있는 모습. 민주노총 건설노조 제공
▲안개가 있으면 타워크레인을 운행해선 안 된다. 안개 낀 건설현장 내 타워크레인이 서 있는 모습. 민주노총 건설노조 제공

타워 노동자 “법 따르면 채용거부, 시키는 대로 하면 고발”

타워크레인 노동자들은 법에 따르면 채용 거부를 당하는 처지다. 정민호 건설노조 타워크레인분과위원장은 “정부의 원칙적 대응의 결과 월례비가 사라졌다”라는 일부 언론 보도에 고개를 저었다. 정민호 분과위원장은 “원청과 단종들은 민주노총 건설노조가 52시간 근무를 지키겠다고 밝혔다는 이유로 채용을 기피하는 상황이다. 불법 야간근로를 해야 채용한다는 얘기인데, 월례비를 주는 야간노동이 사라졌겠는가”라고 물었다.

정 분과위원장은 “반면 타워크레인 기사들과 근로계약하는 타워 임대사는 52시간 이상 장비를 가동하면 타워크레인 기사들을 배임 혐의로 고소하는 실정”이라고 했다. 한 마디로 “현장 원청 건설사나 단종(전문건설업체)이 시키는 대로 일하면 고소당하고, 하지 않겠다고 밝히면 건설사들이 채용을 거부하는 상황”이라는 설명이다.

타워크레인 노동자 C씨도 배임 혐의로 지난달 30일 부산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를 찾아 조사를 받았다. 그는 “경찰이 ‘OT(연장근로)를 왜 했느냐, 월례비를 왜 받았냐’고 묻더라”라며 “우린 일하는 내내 현장 지시에 따르지 않을 수 없다. 특히 비노조원은 바로 ‘집에 가야’ 한다. 조출(조기 출근)도 우리가 하고 싶다고 할 수 없다고 대답했지만, 경찰 귀에 들어가는 것 같지 않았다”고 답답해했다. 그는 “차라리 (OT와 월례비가) 없어지면 우린 52시간 정상근무만 하면 된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공기(공사 기간)가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했다.

▲5일 건설노조가 서울 중구 파이낸스센터 앞에 설치한 고 양회동 민주노총 건설노조 강원건설지부 3지대장의 간이분향소. 건설노조 제공
▲5일 건설노조가 서울 중구 파이낸스센터 앞에 설치한 고 양회동 민주노총 건설노조 강원건설지부 3지대장의 간이분향소. 건설노조 제공

양회동씨가 숨진 뒤 경찰의 탄압 수사에 대한 비판이 임계점에 이른 시점에 “건설현장에 평화가 왔다”고 주장하는 보도가 특히 반노동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경찰은 양씨를 생전 3차례 소환해 각각 4시간~8시간30분 조사했다. 핸드폰을 압수수색했다. 경찰은 그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복수의 회사가 ‘현장 고용 문제에 대해 원만하게 합의해왔다’며 처벌 불원서를 쓴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강한수 건설노조 부위원장은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언론은 양씨가 분신한 뒤에도 이 같은 보도로 여전히 건설사의 일방 입장만 두둔하고 있다”며 “현장이 평화로워졌다는 건 철저하게 건설자본을 대변한 이야기다. 경찰은 노사 임단협에 따른 고용 요구 자체를 협박으로 규정하고, 건설사는 노동자들에게 한 마디로 ‘무장해제하라, 무릎 꿇으라’고 말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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