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사 취재차량 기사들 사이 이른바 ‘갑질’과 해고 소식이 끊이지 않고 있다. 기사들 대부분이 도급업체에 속해 수시로 계약해지가 이뤄지는 데다 노동 환경이 언론 조명을 받지 못하는 탓이다. 근본적으로는 방송사 스케쥴에 맞춰 상시로 움직이면서도 간접고용으로 일하는 ‘위장도급’에서 문제가 비롯한다는 지적이다. 일부 차량운전 노동자들은 방송사를 상대로 법적 다툼을 시작했다.

최근 취재차량 기사들 사이에선 채널A 기사들의 해고 소식이 오르내렸다. 채널A가 지난 3월 말 운전 노동자 5명을 내보냈다는 소식이다. 채널A는 취재차량 운전 업무를 외주화하고 있는데, 외주 용역업체와 계약을 갱신하면서 기사들에게 이른바 수습기간 조로 3개월 계약을 했다. 이것이 만료될 때 일부 기사를 해고(계약해지)했다. MBC는 2년마다 신규 차량운전 도급업체와 계약하며 5~10명씩 ‘차량기사 구조조정’을 해오고 있다.

문화일보에선 올초 도급업체 소장의 ‘돈 걷기’ 관행에 한바탕 소동이 일었다. 문화일보의 취재차량 운전 업무를 맡는 T도급업체 측 소장이 신입 기사들에게 ‘소개비’ 또는 ‘회식비’조로 10~20만원을 걷거나 식비와 커피값을 이유로 다달이 2만5000원~4만 원을 내게 하는 관행에 기사들의 문제 제기가 나온 것. 문화일보 차량기사들은 오전 6시30분에 출근해 저녁 5시30분에 퇴근하며, 급여는 월 230만원 수준으로 전해졌다.

▲한 취재지원 차량 윈드쉴드에 '보도차량' 안내문구가 붙어있다. 사진=김용욱 기자
▲한 취재지원 차량 윈드쉴드에 '보도차량' 안내문구가 붙어있다. 사진=김용욱 기자

문화일보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한 취재차량 노동자는 “기사들로서는 회사에 들어오자 마자 첫 월급을 받기도 전에 회식비나 커피값, 식대 명목으로 20여만원을 내라고 하니 부담”이라고 설명했다. 문화일보 총무부와 T업체 측은 회식비는 신입 기사를 맞아 수송부 기사 전원이 회식을 하기 위함이었으며 올 1월 기사들의 문제 제기로 중단됐다고 밝혔다.

지난해 한 통신사 수도권 지역본부에서 일했다고 밝힌 일간지 취재차량 노동자 B씨는 기자의 괴롭힘과 보복성 해고를 토로했다. B씨는 “지난해 기자가 욕설을 하고 괴롭혀 참다 못해 지역본부에 해결을 요구한 적이 있다”며 “그러나 도리어 그 해 말일로 계약 해지를 당했다”고 했다.

익숙한 갑질‧해고 소식…줄곧 위장도급 지적

취재차량 운전 노동자들 사이 해고와 갑질 관련한 소식은 특별하지 않다. 대다수 방송사와 일간지가 차량 운전 업무를 1~2년제 도급‧파견으로 외주화하면서 연말이면 해고가 일상이다. 방송사 일정에 종속돼 손발처럼 움직이고도 도급‧파견업체가 끼어드는 간접고용 탓에 ‘위장도급’ 소지도 높다. 

언론사 취재차량 운전 노동자들의 위장도급 논란은 오래됐다. KBS 차량운전 도급노동자로 2000년 대량해고 사태 당시 노조 출범을 주도한 주봉희 전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방송차량은 줄곧 위장도급이었다고 본다”며 “KBS 같은 원청 방송사가 차량이 어떻게 배치되는지를 주되게 관여하며, 취재 날짜와 시간도 정하는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고 했다.

방송사들, ‘도급’ 형태 활용해 상시 구조조정 중?

‘도급 형태’ 계약은 원청인 방송사의 쉬운 구조조정 수단으로 쓰이기도 한다. 언론노조 KBS 방송차량지부에 따르면 KBS는 서울의 경우 방송차량서비스 퇴사자를 충원하지 않고 ‘수시렌터카’ 업체를 통해 일일 기사와 차량을 공급받고, 다른 지역총국에선 도급업체를 추가 계약하고 있다.

오달록 언론노조 KBS본부 방송차량지부장은 “KBS가 방송차량서비스 퇴사자들이 나오면 충원하지 않고 도급 또는 렌터카로 대체하면서 기사들이 불안감을 느낀다”며 “KBS가 지속적으로 필요한 차량운전 업무 자체에 대한 고용 책임을 회피하려는 전략이라고 본다”고 했다. 그는 “도급 기사들을 보면 20년 전 저희를 보는 것 같다. 고용이 불안정해 회사 말을 순순히 들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KBS는 1998년 도급으로 채용하던 노동자들을 파견직으로 전환했고, 2년 뒤 파견법에 따라 ‘대량해고 사태’가 일었다. KBS는 차량기사들의 투쟁 끝에 2004년 고용불안이 적은 ‘손자회사를 통한 도급’에 합의했었다. 2013년 316명이던 KBS 방송차량서비스 직원은 10년 새 100명가량 줄었다.

▲방송차량. 미디어오늘 자료사진
▲2018년 KBS 사옥 앞에 주차된 KBS 방송차량. 미디어오늘 자료사진

KBS 상대로 근로자 지위 소송 나선 노동자들

일부 차량기사들은 이 같은 고용 형태를 놓고 문제 제기에 나섰다. KBS 차량기사 2명은 지난 3월 KBS를 상대로 ‘KBS의 근로자로 직고용하라’고 요구하며 소송을 제기했다. KBS는 자회사인 KBS비즈니스 산하에 손자회사 ‘KBS방송차량서비스’를 세워 취재차량과 운전직 노동자들을 고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실상 KBS 측 지시에 따라 일해왔으며, 운전 외 업무까지 KBS 기자들의 지시로 해왔다고 말한다.

원고 A씨를 대리하는 류재율 변호사(법무법인 중심)에 따르면 A씨는 2011년부터 KBS 대전총국 산하 천안센터 등에서 일해왔다. 촬영기자의 지시에 따라 현장 운전업무를 했고 야간에도 출근했다. 기자나 오디오맨의 역할을 일부 대신하기도 했다. 기자 지시에 따라 무선마이크 인터뷰나 녹취, 조명을 설치했다. 신입 오디오맨 면접 관리를 하고, 편집기나 컴퓨터도 수리했다.

KBS가 천안센터 보도국을 없애면서 A씨는 현재 140km를 운전해 천안에서 대전으로 출퇴근하고 있다. 월급은 10여년 째 200만 원대 초반인데, 최근 실제 수령액은 100만원대 중후반이다. 유류비로 30만원을 지급받지만, 실제 출퇴근에 드는 유류비는 월 70~80만원 수준이기 때문이다. 

류재율 변호사는 “취재차량 운전을 비롯해 방송제작까지 방송사의 다수 업무는 도급 형식으로 이뤄지기 어렵다. 방송프로그램 스케줄에 따라 작업 시간과 양이 바뀌고, 원청 방송사 근로자들의 계속적 업무지시를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며 “그럼에도 사측은 고용책임을 피하기 위해 관행적으로 도급 형태를 이용해오고 있다”고 꼬집었다. KBS는 취재차량 운전 노동자들의 근로자 지위 소송과 관련해 “향후 소송이 진행될 수 있는 사안인 만큼 답변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채널A 측은 간접고용 차량 노동자 5명이 나가게 데에 “외주업체와의 계약을 변경하면서, 기존에 있었던 이들 중 5명(이 나가고) 새로 6명이 투입된 것”이라며 “차량을 감축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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