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 싸우며 이렇게 욕 많이 먹긴 처음이다. 우리는 그 때 (2000년대 초 이동권 투쟁 때) 선로까지도 내려갔는데 반응이 왜 다를까. 지금 지하철 행동을 하는 곳이 출근길이기 때문인 것 같다. 아침 컨베이어 벨트에 우리가 기어들어가니 재수가 없던 모양이다. (…) 비장애인 중심 사회는 장애인을 시설에, 집구석에 둔다. 4월20일 ‘장애인의 날’에 30년 만에 외출한 장애인에게 남산 꽃 구경을 시켜주며 언론은 물어본다. ‘기분 좋습니까?’”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대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14일 장애인권리예산 투쟁에 나선 지 1년을 맞아 서울 종로구 노무현시민센터에서 시민과 언론의 역할을 되짚는 좌담회를 열었다. 정의당 심상정 강은미 장혜영, 더불어민주당 강훈식 강민정 최혜ㄹ영 등 13명의 의원이 좌담회를 공동주최했다.

박경석 대표는 이 자리에서 비용을 이유로 장애인 권리 예산 확대를 시행하지 않는 정부의 태도가 ‘장애인 1명이면 5명(비장애인)을 살린다’고 주장한 과거 나치 독일 정책의 연장선 위에 있다고 강조했다. 안영춘 한겨레 기자는 전장연의 지하철 행동이 당사자를 ‘미디어’로 기성 언론의 혐오에 대항하는 저항 행동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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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대표가 발제하고 있다. 전장연은 14일 장애인권리예산 투쟁에 나선 지 1년을 맞아 서울 종로구 노무현시민센터에서 시민과 언론의 역할을 되짚는 좌담회를 열었다. 사진=김예리 기자

장애인 권리예산 ‘과도’하다는 정부, 비용 이유로 한 나치 ‘T4’

박경석 대표는 이 자리에서 나치 독일이 유대인 학살에 앞서 ‘비용’을 이유로 장애인 30만명에 자행한 생체실험과 안락사 정책 ‘T4 작전’을 다룬 단편영화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를 소개했다. 그는 “장애인 권리 예산의 문제는 정확히 비용의 문제”라며 ““오세훈 시장과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당신의 세금 1조7000억원이 13만 명의 중증 발달 장애인의 활동지원서비스예산’이라며 ‘과도하다’고 말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T4 작전은 “22년을 외쳐도 이동권조차 보장하지 않는 현실의 문제”라고 했다.

그는 장애인 거주시설 내 장애인들이 한 방에 평균 4.7명 지내며, 평균 18년 거주한다는 통계를 제시하며 ‘시설은 장애인을 가두는 것이 아니라 보호하기 위함’이라는 주장은 ‘장애인 살균(안락사)는 처벌이 아닌 해방’이라고 주장하는 나치 독일의 슬로건과 같다고도 했다. 그는 “우리가 요구하는 장애인 권리 예산은 이동하고, 교육받고, 노동하며 지역에서 함께 살자는 것”이라며 “우리를 배제한 출근길은 비장애인만을 위한 길일뿐”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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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섭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왼쪽)와 이길보라 영화감독.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14일 장애인권리예산 투쟁에 나선 지 1년을 맞아 서울 종로구 노무현시민센터에서 시민과 언론의 역할을 되짚는 좌담회를 열었다.

전장연의 이동권 투쟁은 대중교통을 탈 권리 요구를 넘어선다. 김승섭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2020년 장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건강검진을 받지 못한 장애인들이 꼽은 가장 큰 이유는 ‘검진기관까지 이동이 불편해서(18.4%)’였다. 2020년 국토교통부 조사에 따르면 마을버스의 저상버스 도입률은 0%다”라며 “그런 상황에서 공부하고 일하고 투표하고 사랑할 자유는 필연적으로 박탈당한다”고 했다. 이길보라 영화감독은 “이동할 수 있어야 교육받을 수 있고, 노동하러 갈 수 있고,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다. 모든 권리의 전제”라고 했다.

고병권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은 “2001년 이동권 투쟁은 정부를 향한 투쟁이었다. 이번에 출근길 지하철에 함께 탄다는 의미는 좀 다르다. 시민들에게 함께 살거라고 말을 건네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박경석 대표는 ‘왜 2001년에 진작 출근길에 타지 않았을까’라고 말하더라. 문제의 핵심이 동료 시민으로 바뀌었다고 느꼈다”고 했다.

생명·기본권과 운행지연 저울질한 언론, 구조적 이유 있다

안영춘 한겨레 기자는 지하철행동을 다루며 혐오 시선을 쏟아낸 언론의 한계를 가리켜 “레거시 미디어와 장애인운동이 존재론적으로 불화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레거시 미디어는 애초 강자 카르텔의 일원이었다. 사회적 약자는 저널리즘의 약자가 될 수밖에 없는 구조가 여기에 있다”는 것이다.

▲한겨레 안영춘 기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14일 장애인권리예산 투쟁에 나선 지 1년을 맞아 서울 종로구 노무현시민센터에서 시민과 언론의 역할을 되짚는 좌담회를 열었다. 사진=김예리 기자
▲한겨레 안영춘 기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14일 장애인권리예산 투쟁에 나선 지 1년을 맞아 서울 종로구 노무현시민센터에서 시민과 언론의 역할을 되짚는 좌담회를 열었다. 사진=김예리 기자

안 기자에 따르면 “지난 30년 간 언론이 지하철 행동만큼 다수의 기사를 낸 캠페인은 없었다.” 보도는 특히 지난해 3, 4월과 올해 1월을 기점으로 폭증했다. 모두 정치인의 혐오 발언을 앞뒤로 한 시기다. 지난 1월엔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하철 행동에 무관용 원칙을 천명하며 탑승 자체를 막았다. 지난해 3~4월엔 이준석 전 국민의힘 당대표가 ‘비문명’ 논쟁을 일으키면서 박경석 대표와 TV토론을 벌였다.

안 기자는 “(지하철 행동을 다룬 보도 중) 극단적 클리셰는 시민 불편이다. 지하철에서 사람이 죽는 사고가 나도 같다. 언론이 2~3장으로 사건을 정리한 뒤 자동처럼 쓰는 문장이 있다. ‘이 때문에 지하철 운행이 몇 분 지연돼 시민이 불편을 겪었다’는 문장”이라며 “소우주가 소멸했고, 그것도 사회적 타살의 과정이다. 여기에 시민들의 몇 분 지연을 같은 천칭에 올려 보도하는 게 레거시 미디어의 행태”라고 했다.

안 기자는 이 같은 보도 행태를 상업주의 저널리즘의 결과로 봤다. ‘의외성’과 ‘등장인물의 인지도’만을 가치 기준 삼은 기사들이다. 안 기자는 장애인 당사자 관점으로 지하철 행동의 배경을 다룬 언론사도 다른 보도에선 오락가락하는 논조를 보이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이조차 상업주의 보도의 결과일 수 있다. “(맥락적 보도는) 가끔 나오는 특식 같은 것이다. 화제만 좇는 보도 건수가 역치를 넘어서면 맥락적 보도가 블루오션이 된다. 맥락적 보도가 차별성 확보 자체를 위한 것이다.”

그는 전장연이 스스로 미디어를 자처하고 나서는 것에 기대를 건다고 말했다. 그는 “언론에 기대지 말고 우리 스스로가 직접 전달하자. 기존 올드미디어 위상이 낮아지는 틈새에서 지하철행동은 그 자체로 대중들에 매체이자 매체적 행위”라고 했다. 레거시 미디어 문법을 벗어난 시도도 주목 대상이다. 안 기자는 “비마이너의 성과에 주목한다. 많은 레거시 미디어 기자들이 비마이너를 참조하고 있다”며 “레거시 미디어가 시도하지 못한 것을 하고 있다. ‘승강장일기’ 시리즈는 레거시미디어가 시도하는 문법에서 벗어났다”고 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14일 장애인권리예산 투쟁에 나선 지 1년을 맞아 서울 종로구 노무현시민센터에서 시민과 언론의 역할을 되짚는 좌담회를 열었다. 사진=김예리 기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14일 장애인권리예산 투쟁에 나선 지 1년을 맞아 서울 종로구 노무현시민센터에서 시민과 언론의 역할을 되짚는 좌담회를 열었다. 사진=김예리 기자

토론에 나선 나경희 시사인 기자는 자신이 쓴 장애인 인권 관련 기사를 가리켜 ‘실패의 역사’라고 말하며 운을 뗐다. 그는 주류 언론의 보도 흐름에 “‘기승전결’이 아닌 ‘기-기-기-기’”라고 묘사했다. “늘 발생만 한다. 담론이 어디로 가고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정리한 기사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는 “김예지 의원을 인터뷰하면서, 그동안 취재라고 해왔던 것이 그냥 말을 전달하는 기사를 쓴 게 아닐까, 이걸 취재라고 할 수 있을까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나 기자는 “장애인 이동권 투쟁과 관련해 이준석 대표, 오세훈 시장과 같은 정치인의 말이 많이 전달됐다”며 “왜냐면 취재가 쉽다. 귀에 박힌다. 페이스북에 올리고, 보도자료 뽑아주고 대신 전화받는 이들도 있다. 다 씹어서 먹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귀에 박히지 않고 정제되지 않은 말이라도 한참 들어야 무슨 말인지 알수 있는 말들을 기자들이 대신 들어서 알기 쉽게 전달해야 하지 않나”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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