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출판을 죽이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러다 내가 죽소” 언론노조 서울경기지역출판지부가 소식지 2호 제호에 밝힌 출판노동자들의 외침이다. 70%를 차지하는 5인 미만 사업장, 신간 30%를 차지하는 외주화(외주작업 의뢰). 다단계 하도급 중간착취, 예술인고용보험 미적용. '출판의 위기' 담론을 빌미로 책을 만드는 현장에선 온갖 불안정 노동 문제가 지속돼왔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출판노조에 가입한 노동자들이 매일  ‘재직노동’과 ‘외주노동’, 청년과 여성의 출판 노동 현실을 기고한다. 결국 5인미만 사업장과 외주·프리랜서로 일하는 출판노동자에게 필요한 것은 사용자 단체를 상대로 한 단체교섭이다.  -편집자 주

에코백은 주변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사은품이다. 에코백은 이런 저런 물건을 편하게 넣다 뺏다 할 수 있어서 많은 이들이 사용하고, 매우 획기적인 디자인이 필요치 않으면서도 제작 공정 역시 복잡지 않아 서점은 물론 카페, 빵집 등 다양한 곳에서 사은품으로 활용한다. 그런데 직업적으로 에코백을 가장 자주 사용하는 이들이 있다. 과연 누구일까?

필자가 현직 출판 편집자이다 보니 출판사 사람들 사이에 도는 이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2200번(파주와 합정을 오가는 광역버스)에 묵직한 에코백을 어깨에 멘 사람은 편집자다.”

출판사 사람들은 왜 두툼한 에코백을 메고 가는 사람을 당연히 편집자들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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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에는 출판사를 비롯해 출판 산업에 관련된 다양한 회사들이 모인 파주출판단지가 있다. 그리고 서울의 합정과 홍대 근방에는 크고 작은 출판사들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 파주와 합정은 말하자면 출판 산업의 핵심 지역이고 2200번 버스는 그 사이를 오가는 핵심 교통수단이다. 출판사를 다니는 이들은 대개 합정에서 2200번 버스를 타고 파주출판단지로 출근하고, 파주출판단지에서 2200번 버스를 타고 합정으로 퇴근한다. 그리고 그들의 어깨에는 꽤나 잦은 빈도로 묵직한 에코백이 걸려 있다. 그 에코백에는 A3 종이에 출력된 교정지(책으로 만들어지기 전 편집 중인 원고를 인쇄한 종이) 200~300장이 페이지 순으로 질서정연하게 담겨 있다. 편집자들은 에코백 속 교정지를 집으로 혹은 24시간 영업하는 카페로 가져가 일을 한다. 왜 그들은 퇴근을 했음에도 일을 하는 걸까? 왜 그들은 그런 상황을 받아들이는 걸까? 그들은 왜 그러는 걸까?

출판에 포괄임금 만연…무리한 마감 밀어붙이기

출판 편집자는 대표적인 마감 노동자다. 중간에 내 몸이 아프건 회사에 큰일이 있건 무슨 일이 있어도 마감은 지켜져야 한다. 그래서 출판사에서 편집자의 능력을 평가할 때 제때 마감하는 것을 상당히 중요하게 본다. 그래서 편집자에게 야근은 사실상 필수다. 하지만 그들에게 지급되는 야근 수당은 없다. 수당 대신 주어지는 대체휴무 역시 거의 없다. 왜일까?

바로 ‘포괄임금’이라는 구조적 문제 때문이다. 포괄임금을 잠시 알아보자. 포괄임금은 노동자가 야근이나 철야 등 법정 노동 시간 이상의 노동을 하면 받아야 하는 수당을 임금에 포함하여 지급하는 임금 지불 방식이다. 그러니까 실제 야근 여부와 상관없이 연봉에 기본급과 야근 수당을 처음부터 포함해 연봉 계약을 하는 것이다. 포괄임금은 합법과 불법 사이에 있는 임금 형태로, 법률에 규정되어 있지는 않지만 대법원 판례에서 몇 가지 요건이 있으면 포괄임금이 불법이 아니라고 인정한 바 있다(대법 2010.5.13, 2008다6052 등).

대략 네 가지 조건으로, ①근로 형태와 업무 성격상 근로 시간 산정이 어렵거나 ②임금을 포괄해 지급했을 때 근로기준법상 근로 시간 규제를 위반하지 않으며 ③당사자 간 충분한 합의가 이뤄졌고 ④근로자에게 불이익하지 않은 경우가 그것이다. 대표적으로 기자의 경우 사건이 터지면 시도때도 없이 취재하러 나가야 해서 노동 시간을 정확히 측정하기 어렵기 때문에 포괄임금을 지급해도 불법이 아니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언론을 통해 IT업계에서 자주 활용되는 임금 지급 방식으로 알려져 있지만 출판계 역시 포괄임금이 만연한 곳 중 하나다. 우습게도 출판사 직원 중 노동 시간을 산정하기 어려운 경우는 없다. 대부분 사무실 컴퓨터로 작업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필자가 지금까지 다닌 크고 작은 출판사 서너 곳 정도 중 포괄임금이 아닌 곳은 없었다.

혹자는 ‘야근 안 해도 수당 받으니 좋은 거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세상 어느 나라보다도 자본 친화적이고 사장 우호적인 한국에서는 노동자에게만 유리한 노동 제도는 거의 없다. 포괄임금을 사장 입장에서 보면, 몇 시간 동안 야근을 시키든 수당을 안 줘도 되는 임금 지급 방식이다. 그래서 지난 2월13일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포괄임금이 공짜 야근을 야기한다”라고 이야기한 것이다. 노동자 목숨을 깃털보다도 가볍게 여기는 현 정부의 고용노동부 장관조차도 포괄임금의 해악을 지적한 것이다.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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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 비위를 맞추지 않으면 벌어지는 놀라운 일

다시 앞으로 돌아가 출판 편집자들이 퇴근 이후에도 일을 해야 하는 이유는 그렇게 일하지 않으면 마감을 맞출 수 없는 일정을 밀어붙이는 사장 때문이다. 편집자는 본인의 커리어를 위해서건 자신이 맡은 책에 대한 애정과 책임감 때문이건, 자기 몸을 갈아 넣어 책을 마감한다. 사장은 무리한 일정으로 노동자에게 장시간 노동을 강요해도 다들 군말 없이 업무를 진행하고 사고도 거의 일어나지 않으니, 당연하게도 야근을 전제로 한 업무 일정을 노동자에게 강요한다.

거기에 더해 사장들의 시대에 뒤떨어진 노동관도 한몫하는데, 21세기가 된 지도 벌써 20년이 넘어가는 상황에서도 ‘야근을 해야 성실하고 열심히 일하는 직원’이라는 인식이 출판사 사장들의 머릿속에 가득하다. 출판계는 2000년대 이후 불황이 아니었던 적이 없었고 실제로도 출판 시장의 규모는 날이 갈수록 줄어드니 회사의 매출은 웬만하면 오르지 않는다. 심지어 출판계가 불황인 상황에서 1인 출판의 활성화로 출판사 수와 출간 종수는 좀체 줄지 않으니 출판사 간의 경쟁은 갈수록 심해지고 노동자에게 가해지는 매출 압박 역시 해가 갈수록 강해진다. 그렇다고 사람들에게 억지로 책을 읽게 할 수도 없는 일이니 어떻게든 사장에게 욕을 먹지 않기 위해 직원들은 야근이라도 해서 사장의 비위를 맞출 수밖에 없다.

사장의 비위를 맞추지 않을 경우 꽤나 놀라운 일이 벌어지는데, 내가 다녔던 예전 회사 중 한곳에서 겪은 일이다. 내가 속한 팀이 맡은 전집이 출간될 즈음, 팀 전체와 사장이 함께 점심 식사를 하는 자리였다. 사장은 팀장의 마케팅 계획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고래고래 소리지르며 본인 숟가락을 집어 던지는 것이었다. 숟가락은 사장 바로 앞에 앉아 있던 내 얼굴 바로 옆을 날아가 벽에 맞고 떨어졌다. 사장은 식사 자리에 함께한 직원들에게 길길이 화를 내면서 ‘지금 팀 상황이 이 모양인데 밥이 넘어가냐’는 등의 꽤나 길고 긴 폭언을 쏟아냈더랬다. 이후 우리 팀은 사장의 화를 누그러트리기 위해 야근을 이어갔고, 사장은 우리의 납작 엎드린 태도가 흡족했는지 이후로는 우리 팀과 관련된 별 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물론 사장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했던 쓸데없는 야근에 대한 수당은 당연히 없었다. 포괄임금 때문이었다. 당시 그 사장은 지금 출판계에서 나름 높은 자리에 앉아 업계를 대표한다며 이곳저곳에 얼굴을 내밀고 있다고 한다.

대형 출판사로 이직했지만…천국은 없었다

그럼 포괄임금이 싫으면 어디로 갈 수 있을까?

파주출판단지에 있는 출판사 사람이 이직을 하면 자기 짐을 들고 앞 건물로 가거나 옆건물로 간다는 말이 있다. 실제로 직전 회사 근처에 있는 회사로 이직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기도 하고, 어차피 대부분의 출판사가 포괄임금을 비롯해 노동 조건과 주변 환경이 비슷하니 이직해 봤자 거기서 거기라는 의미도 있다.

▲민주노총 언론노조 출판노동조합협의회 조합원들이 민주노총 고양파주지부와 함께 파주출판단지에서 점심시간 선전전을 진행하고 있다. 언론노조 서울경기지역출판지부 제공
▲민주노총 언론노조 출판노동조합협의회 조합원들이 민주노총 고양파주지부와 함께 파주출판단지에서 점심시간 선전전을 진행하고 있다. 언론노조 서울경기지역출판지부 제공

필자 사장의 폭언과 회사의 부조리를 겪다 보니, 큰 회사를 가면 사장이 남들 눈치를 좀 보지 않을까 싶어 우리나라 종합 출판사 중 매출 순위가 한손에 꼽을 정도로 큰 출판사로 이직했다. 물론 이곳 역시 포괄임금이었고, 정시 퇴근은 꿈도 꿀 수 없을 정도로 업무량은 많지만 언제나 일정은 촉박했다. 그래서 나를 포함한 많은 동료 노동자들이 야근을 하고 있으면 사장은 왜 업무를 효율적으로 하지 않냐며 타박만 할 뿐, 일정 조정이나 업무 재배분 등은 절대 허락하지 않았다.

이런 일이 나만 겪는 특이한 일일까 싶어 다른 출판사 동료들에게 이야기하면 다들 자기 회사도 똑같다며 신세 한탄만 할 뿐이었다. 그러면서 나는, 그리고 우리는 ‘이런 더러운 꼴을 보느니 떠나고 만다’라거나 ‘같은 노비라도 대감집 노비가 낫다’며 더 높은 연봉과 더 나은 노동 조건이 주어진다는 풍문이 있는 큰 회사로의 이직을 희망하고 시도하고 실패하며 지냈다. 누군가는 이직에 성공하고, 누군가는 끊임없이 이직을 준비하는 곳이 출판계인 것이다. 그러다 보니 출판계 평균 근속 연수는 대략 2~3년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5인 미만 출판사, 온갖 횡포 무법천지

이직이 잦고 근속 연수가 짧은 업계에서 회사의 관행을 바꾼다거나 업계의 흐름을 바꾸는 일은 일어나기가 힘들다. 회사나 업계를 좋게 바꾸려는 시도도 회사와 업계에 애정이 있어야 그나마 가능할까 말까인데, 회사에 애정을 갖기엔 너무 짧은 근속 연수와 대부분의 회사가 거기서 거기인 걸 다들 알기에 업계에 대한 애정도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책이 좋아서 혹은 함께 일하는 동료가 좋아서 출판계에 남아 책을 만들고 있을 뿐이다. 결국 출판 노동자는 회사와 업계의 부조리를 오로지 혼자 감내하거나 아예 다른 업계로 떠나는 ‘탈출판’을 노리는 모래알 집단처럼 보인다.

필자가 다닌 회사들은 출판계에서 상당히 크거나 혹은 중간급 정도의 출판사라 그나마 노동법의 규제를 받기 때문에 앞서 말한 정도로 끝났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국 출판사의 70% 정도는 5인 미만 사업장이라, 노동 시간, 부당해고, 연차 휴가, 주 12시간 연장 근무 한도, 직장내괴롭힘 등을 금지한 여러 노동관계법의 예외에 해당한다. 5인 미만 사업장은 사장의 온갖 횡포가 용인되는 무법천지라고 보면 될 것이다.

출판계는 꿈도 희망도 없는 곳일까?

포괄임금으로 인한 공짜 야근, 사장의 폭언, 노동자의 절망감 등은 결국 사장의 절대권력을 견제할 제도적 장치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출판사의 규모는 매우 영세하기 때문에 회사 내에서 사장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단 하나, 사장에 맞설 수단이 있다면 회사에 노조가 있는 경우뿐이다. 실제로 한겨레출판, 창비, 작은책, 사계절, 보리, 고래가그랬어처럼 노조가 있는 회사는 사장의 횡포가 그나마 덜하고 노동 조건이 나쁘지 않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2021년 기준 한국의 노조 조직률은 14.2%인 상황에서 출판계 노조 조직률은 1~2%로 추정되니, 노조가 없는 절대 다수의 회사에서는 노동자가 자기 한 몸 바쳐 책을 만들고 있다. 그나마 산별노조인 ‘서울경기지역 출판지부’ 정도만 회사에 노조가 없는 출판 노동자의 보호막 구실을 하고 있을 뿐이다.

▲정의당 류호정 의원실은 지난해 12월16일 국회의원회관 3세미나실에서 ‘출판 외주·프리랜서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국회토론회’를 열었다. 사용자단체인 대한출판문화협회 윤철호 회장은 이날 불참했다. 사진=김예리 기자
▲정의당 류호정 의원실은 지난해 12월16일 국회의원회관 3세미나실에서 ‘출판 외주·프리랜서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국회토론회’를 열었다. 사용자단체인 대한출판문화협회 윤철호 회장은 이날 불참했다. 사진=김예리 기자

우울하다고 외면하면 제자리걸음뿐

웹툰과 드라마로도 만들어진 윤태호 작가의 <미생>에 이런 말이 나온다.

“회사가 전쟁터라고? 밖은 지옥이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회사 밖 지옥에 관해 신문 기사로, 책으로, 뉴스로, 유튜브 영상으로 다양한 이야기를 쏟아낸다. 그렇지만 ‘지옥’보다는 덜하다고는 해도 ‘전쟁터’에 관해 누군가는 재삼재사 이야기해야 ‘전쟁터’도 ‘지옥’도 조금 더 나아지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10년 조금 안 되는 회사 생활을 하며 느끼고 생각하고 겪은 것들을 이야기해 보았다. 더 이상 2200번 버스에서 교정지가 든 무거운 에코백을 짊어지고 하차하는 일이 없도록, 사장의 폭언에 마음이 다치는 일이 없도록, 회사의 부당한 포괄임금으로 공짜 야근하는 일이 없도록 비루하고 괴롭고 험난한 출판 노동자의 현실을 외면하지 말자. 그리고 지금 바뀌는 것이 없어도 지치거나 절망하지 말자. 역사의 수레바퀴는 너무 크고 무겁기 때문에 당장은 굴러가지 않는 것처럼 보여도 한번 구르기 시작하면 누구도 멈출 수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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