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음악, 더 정확하게는 2010년대 이후 비중이나 매출의 측면에서 한국 음악의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는 ‘아이돌 음악’을 대표하는 기획사로 어떤 회사들을 들 수 있을까. 사람마다 생각은 다르겠지만 크게 네 곳을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업력은 짧아도 BTS(방탄소년단)에서 시작해 투모로우 바이 투게더, 그리고 자회사 소속으로 근래 데뷔해 빠른 속도로 인기를 얻고 있는 르세라핌과 뉴진스가 있는 ‘하이브’(구 빅히트엔터테인먼트), 설립자 본인도 꾸준히 가수로 활동하는 한편 트와이스, 스트레이키즈, 있지(ITZY), 그리고 소니뮤직과 협력한 NiziU까지 고르게 인기를 얻고 있는 JYP엔터테인먼트(이하 JYP), 여러 사건사고로 부침이 있었지만 빅뱅부터 블랙핑크, 악뮤(AKMU)에 이르기까지 가장 넓은 폭의 가수를 보유한 YG엔터테인먼트(이하 YG)가 있다. 그리고 현진영과 H.O.T부터 시작해 에스파까지, 한국 아이돌 산업에 하나의 초석을 세운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를 빼놓을 수 없다.

그런 SM이 2023년 매우 큰 화제에 오르고 있다. 그것도 연예 기사가 아니라 사회나 경제 기사에서 말이다. 누가 SM의 실질적인 지배 자본이 될 것인지, 그리고 향후 SM의 활동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를 결정한 ‘경영권’을 놓고 벌어지는 치열한 난장판이 지난 2월 초 이후로 쉽게 끝날 기미를 보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 서울 성동구 SM엔터테인먼트 본사를 찾은 팬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 연합뉴스
▲ 서울 성동구 SM엔터테인먼트 본사를 찾은 팬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 연합뉴스

엔터테인먼트 업계, SM 경영권 분쟁에 사로잡히다

이러한 분쟁이 아무런 도화선도 없이 갑자기 불이 붙은 것은 아니다. 이미 지난 2021년 SM의 창립자이자 18% 가량의 지분을 지닌 최대주주이며, SM이 창립한 이후로 30년 넘게 여전히 초창기 멤버 유영진과 더불어 회사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이수만이 자신이 보유한 SM의 지분을 매각할 의사를 밝혔기 때문이다. 당시 SM의 지배권에 눈독을 들였던 곳은 크게 네이버, 카카오, 그리고 CJ ENM이었다.

세 회사 모두 서서히 각자의 본업은 물론 음악 산업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자본이지만, SM이나 다른 대형 기획사처럼 열렬한 팬덤을 지닌 아이돌이 많지 않다는 공통점이 있다. 특히 카카오는 로엔엔터테인먼트(현 카카오엔터테인먼트 뮤직부문), CJ ENM은 처음에는 GM기획, 코어콘텐츠미디어 등과의 협업을 통해서, 최근에는 워너원이나 아이즈원 같이 여러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기간 한정으로 활동하는 아이돌 그룹을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SM을 비롯해 앞서 언급한 네 곳의 기획사 같은 지위에는 쉽게 오르게 어려웠다. 그런 상황에서 이수만이 자신이 보유한 SM의 지분을 매각할 것이라는 소식에 세 자본 모두 관심을 보일 수 밖엔 없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SM 매각에 대한 이야기는 수면 아래로 사라졌다. 이수만이 보유 지분의 매각조건으로 인수 이후에도 자기 자신을 임원으로 채용하며, 연봉으로 100억으로 지급하라는 조건을 제시한 것이 이유일 것이라는 소문이 일기도 했다. 한동안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물론 주식도 뜨겁게 달군 SM 매각 안건은 계속 인수에 대한 호사가들의 소문만 만들 뿐, 큰 진전 없이 그대로 마무리되는 듯 했다.

하지만 올해 1월 상황이 바뀌었다. 이수만의 처조카이기도 한 이성수 SM 대표이사가 작년부터 계속 SM의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하던 행동주의 펀드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의 주장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한 것이다. SM은 그 첫 단계로 이사회를 전면 개편하기로 결정했다. 이와함께 2월7일에는 신주를 발행하는 형식으로 카카오가 SM의 지분 약 9%를 획득하며, SM의 2대 주주가 될 예정이었다. 카카오가 실질적으로 SM의 영향력을 행사하게 될 것이라는 예측도 적지 않았다.

허나 2월10일이 되자 상황은 다시 역전되었다. 이수만이 자신이 보유한 SM의 지분 약 18% 중 3.65%를 제외한 나머지 지분을 전부 하이브에 매각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순식간에 SM의 최대 주주는 하이브로 변경되었다. 이와 함께 이수만은 ‘신주발행/전환사채 발행금지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제출하였다. 이는 이수만 측이 카카오가 SM의 새로운 중요주주가 되는 것은 자신의 의사가 아니며, 명백히 반대함을 보이는 하나의 사건이었다.

▲ 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 전 총괄 프로듀서가 2월14일 서울 그랜드 하얏트 호텔에서 열린 ‘한국·몽골 경제인 만찬’에 참석해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 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 전 총괄 프로듀서가 2월14일 서울 그랜드 하얏트 호텔에서 열린 ‘한국·몽골 경제인 만찬’에 참석해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후로는 설립자이자 전 최대주주인 이수만과 새로운 최대주주가 된 하이브, 그리고 이성수 대표이사와 본래 SM의 2대 주주가 될 예정이었던 카카오 간의 치열한 싸움이 계속되고 있다. 양자는 보도자료는 물론 유튜브와 같은 대중 홍보 수단을 통해 SM엔터테인먼트의 경영권에 적합한 것은 자신임을 강변하고 있다. SM과 인연을 맺고 있거나 소속된 가수, 배우, 작곡자 등도 서서히 양자 중 특정한 곳을 지지하는 입장을 들고 있다. 동시에 서로는 상대방에 대한 폭로전을 시작하며, 그간 알려지지 않았던 SM의 문제가 연일 세상에 등장하고 있다. 결국 3월1일에는 금융감독원이 하이브의 SM 주식 인수 방해 혐의로 SM에 대한 조사에 착수하며 정부까지 해당 문제에 개입하는 양상이 되었다.

유난히 ‘금융’이 강한 한국 음악 산업, 그리고 한국 문화 산업

이렇게 SM의 경영권를 놓고 벌어지는 이전투구가 장기화될 양상을 보이자 수많은 언론들이 해당 문제를 주시하고 있다. 특히 앞서 언급했던대로 SM은 현재 한국 음악 산업이 아이돌 중심으로 형성될 수 있도록 초석을 놓은 존재이자, 본격적인 어젠다와 시스템 구축을 통해 아이돌을 기획하고 육성한 기획사라는 차원에서 상징성이 무척이나 큰 회사이다. 경쟁자들이 수도 없이 등장한 상황에서 여전히 새로운 스타를 만드는 연예기획사가 최종적으로 어떤 자본의 손으로 들어갈지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질 수 밖에는 없다.

그러나 이렇게 음악 및 엔터테인먼트 기획사의 지분과 경영권을 놓고 벌이는 다툼은 해외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모습이기도 하다. 해외의 기획사나 에이전시 다수는 SM처럼 주식이 공개적으로 상장된 경우도 드물며, 경영권 분쟁이 일어나는 경우가 상당히 드문 일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가장 이와 유사한 모습은 2019년 월트디즈니가 루퍼트 머독의 ‘21세기 폭스’(구 뉴스코퍼레이션)에서 영화, TV 부문 사업을, 소위 ‘20세기 폭스’를 인수한 사건 정도였다. 하지만 이 역시 지난 2017년부터 디즈나가 루퍼트 머독과 협상을 벌인 결과였으며, 중간에 여러 경쟁자들이 인수전에 참여하긴 했지만 현재 SM의 모습처럼 경영권을 놓고 치열한 서바이벌 게임을 벌인 것도 아니었다.

동시에 이런 경영의 문제를 놓고 벌어지는 여러 추태도 이번 SM이 처음은 아니다. SM 이전에 가장 경영 문제로 논란이 되었던 곳은 다름 아닌 JYP였다. JYP의 우회상장을 위해 기존 코스닥에 상장한 기업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본래 하나의 회사였던 JYP가 2010년부터 3년간 ‘상장회사 JYP’와 ‘비상장회사 JYP’로 나뉘는 전대미문의 사건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JYP의 창립자인 박진영의 ‘최대주주’ 지위를 우회상장 과정에서도 어떻게든 유지하려고 노력했지만, 도저히 그럴 만큼의 지분을 추가로 구입할 비용이 없었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결국 2013년을 끝으로 두 개의 JYP는 온갖 우여곡절을 거쳐 하나의 회사로 되돌아갔지만, 한동안 무리한 우회상장이라는 평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특히 당시는 원더걸스의 무리한 미국 진출로 인한 장기간의 공백기, 현재는 솔로 아티스트로 맹위를 떨치는 박재범의 2PM 멤버 퇴출 사건, 이전 소속 가수 박지윤의 ‘성인식’ 등으로 JYP에서 활동할 시기에 대한 고충을 말한 것 등이 모두 겹치면서 박진영과 JYP에 대한 이미지가 상당히 좋지 않던 시절이다. 우회상장 시도 과정에서 경영권의 안정적인 확보 문제로 발생한 이 해프닝은 이들의 문제를 말하기에 더없이 좋은 소재로 쓰였다. 이외에도 큐브엔터테인먼트, 판타지오 등에서도 경영권 분쟁이 발생하는 등 연예기획사에서 경영권를 놓고 벌어지는 사건은 의외로 잊을만하면 발생하는 이슈였다. 단지 SM처럼 그렇게 크게 주목받지 못했을 뿐이다.

▲ 2016년 1월,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JYP엔터테인먼트 사옥 전경. ⓒ 연합뉴스
▲ 2016년 1월,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JYP엔터테인먼트 사옥 전경. ⓒ 연합뉴스

그저 한국 음악 산업이 경영권이나 주식, 지분의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은 것일까. 하지만 그렇게만 말하기에는 쉽지 않다. 정확하게는, 한국의 문화 산업 전반이 이미 1990년대부터 타국과 대비하여 금융자본이 개입하는 강도가 상당히 높았기 때문이다. 이 중 영화 산업이 대표적이다. 1990년대 한국영화에 자본이 대거 투여되는 과정에서 한 축에는 SK나 대우, 삼성을 비롯한 재벌 자본이 있었다면 다른 한 축에는 ‘창투사’로 대표되는 금융 자본이 있었다. IMF 이후로 한동안 한국 영화에 대한 투자가 얼어붙을 때에도 1999년 출범한 영화진흥위원회는 적극적으로 금융 자본과 영화제작사 사이를 중개하는 ‘모태펀드’를 주선해 현재까지 이어져 올 정도로 한국 영화 산업은 2023년 현재에도 꾸준히 금융 자본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

한국 상업 영화 대다수가 첫 시작 부분에서 ‘○○창업투자’나 ‘××인베스트먼트’ 같이 이름도 잘 모르는 수많은 투자금융회사의 이름이 등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물론 OTT의 등장으로 영화와 연속 드라마(시리즈물)의 경계가 흐려지기 시작하며, 넷플릭스나 디즈니플러스 같이 해외 OTT 플랫폼을 소유한 외국 자본으로부터 투자를 받는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그러나 한국 드라마가 2010년대 이후 강하게 해외 수출 노선을 걸으면서 보편화된 드라마 제작을 위해 일시적으로 투자금과 제작비를 모을 목적으로 만드는 유한회사 ‘문화전문회사’(문전사) 모델이 영화로 서서히 번지고, 해외 OTT의 선택을 받지 못했거나 설사 받았더라도 확보한 투자금이 충분치 않은 작품은 여전히 금융 자본의 문을 두드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외에도 게임계 역시 2010년대 초중반 NC소프트-넥슨-넷마블 3사가 지분과 경영권을 놓고 이리저리 얽히고설키는 행보를 보여왔다.

문화 산업의 금융 집중, 문화의 종 다양성을 생각지 못한다면

한국 문화 산업이 이렇게 금융자본의 의존도가 커진 것은 분명 맥락이 있다. 빠르게는 20세기 초반부터 일찌감치 다양한 흥행업에 나서며 토착 자본으로 형성한 해외의 문화/엔터테인먼트 기업과 달리, 한국은 1990년대가 되어서야 겨우 문화 ‘상품’에 대한 소비가 정착되기 시작했다. 2000년대 이후 새롭게 문화 산업의 전면에 등장한 CJ, 롯데, 오리온 등의 대형 재벌 자본도 순수하게 그룹에서만 보유한 자금만을 투자하기에는 쉽지 않았다. 엔터테인먼트는 제조업에 비하면 무척이나 불안정성이 높은 산업이고, 이미 이전에 영화나 음악, 게임 산업에 진출했다 철수했던 대우나 삼성, LG와 같은 길을 겉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으리라.

이를 타파하기 위해 한국 문화 산업을 주도하는 자본은 철저히 금융과 밀착한 행보를 이어나갔다. 어떻게든 주식 상장을 목표로 하며, 주식을 상장한 뒤에도 기존 재벌들처럼 창립자의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동시에 안정적인 제작비나 운영비를 확보하기 위해 금융적인 면모로 강한 모습을 드러냈다. 또는 직접적으로 경영권이나 주식의 문제와 얽혀있지 않아도 한국 문화 산업의 회사는 유난히 금융적인 차원으로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왔다. 대형 게임회사 넥슨이 지주사 NXC는 한국에 두어도, 중간 지주사로 실질적으로 게임 업무를 총괄하는 ‘주식회사 넥슨’은 일본에 둔다거나, 또 다른 대형 게임회사 넷마블이 게임과 큰 연관성이 없는 가전 전문 제조사 ‘코웨이’를 인수하는 등의 행보 역시 마찬가지이다. 레진코믹스를 시작으로 이제는 보편화된 웹툰의 보수 지급 제도인 MG 역시도 신생 스타트업이었던 유료 웹툰 플랫폼이 안정적으로 창업투자사나 펀드의 투자를 받기 위하여, 작가 등에 지출하는 금액을 예측가능한 동시에 안정적으로 조절하기 위해서라는 분석이 적지 않다.

그러나 이렇게 생존을 위해서, 자신들의 세를 불리기 위한 명목으로 감행된 금융 집중 행보는 얼마나 한국 문화 생태계 전반에 도움을 주고 있는가. 분명 2000년대 초반, 또는 2010년대 초반과 비교해도 한국 문화 산업의 다양한 영역들은 상상할 수도 없는 속도로 커졌고 지금도 증가세는 꺼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 키운 크기 만큼 한국 문화 산업 내부의 골격이 다양하게 자라며, 작가가 지향하는 다양한 창작의 모색이 이전보다 존중받는지를 물으면 그렇게 대답하기에는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오히려 아이돌 이외의 음악을 더욱 하기 쉽지 않아진 음악, 더욱 대형 영화 이외의 작품을 펼치기 어려워진 영화처럼 크기는 커졌어도 내부의 생태계는 고사의 위기를 맞이하는 곳도 적지 않다. 오랜 시간 MG를 놓고 무수한 갈등이 일었던 웹툰처럼, 여전히 자본과 창작자 사이의 앙금이 가라 앉지 않은 분야도 수두룩하다.

이 과정에서 가장 큰 문제는 회사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하여 선택한 금융의 행보가 결과적으로 시원치 않은 행보를 거두었을 때, 그 책임은 이 선택을 내린 사주나 경영진보다는 말단의 직원이나 창작자에게 미치는 강도가 세다는 것이다. 근래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감행하는 CJ ENM이 대표적이다. 1990년대부터 스티븐 스필버그가 주도한 할리우드 제작투자사 ‘드림웍스’에 투자할 정도로 북미 진출에 관심이 높았던 CJ ENM은 결국 2021년 영화 ‘라라랜드’를 비롯해 다수의 할리우드 영화나 드라마에 투자를 해온 ‘엔데버 컨텐츠’(현 피프스시즌)를 약 1조원을 들여 인수한 적이 있다. 당시 ‘기생충’의 아카데미 시상식과 칸 국제영화제의 동시 수상과 결부지어, CJ의 국제적 위상이 상승한다고 김치국을 마시는 무수한 기사들이 등장했다.

▲ CJ ENM 사옥. ⓒ 연합뉴스
▲ CJ ENM 사옥. ⓒ 연합뉴스

그러나 ‘엔데버 컨텐츠’는 직접적으로 영상 작품을 제작할 수 있는 시스템을 지닌 제작사도, 디즈니나 소니처럼 투자부터 제작, 배급까지 모두 관여할 수 있는 수평 계열 구조의 회사도 아니었다. 앞서 언급했듯 한국 영화에 무수히 등장하는 각종 창투사나 펀드처럼, 주로 영상물에 제작금을 투자해 거기서 수익을 내는 ‘영상 투자사’의 성격이 강했다. 즉, 자체적인 콘텐츠의 생산이나 기획 능력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곳이었다. 물론 CJ도 이 인수가 끝이 아니라 인수를 계기로 여러 프로젝트를 계획했겠지만, CJ의 계획은 생각처럼 흐르지 않았다. 오히려 2022년에는 CJ ENM의 미디어 매출이 역대 최고 수준을 찍었음에도 불구하고 피프스시즌으로 인해 발생한 부채나 비용으로 인하여 최종적으로는 적자를 기록해, 결국 올해부터는 구조조정의 칼날을 사내 여기저기에 가하고 있다. 언젠가는 피프스시즌이 안정적인 콘텐츠 회사로 정착할지도 모르지만, 앞으로의 미래는 CJ그룹의 소유 가문조차도 쉽게 알 수 없다. 확실한 것은 CJ ENM이 단기적으로는 구조조정으로 인해 이전보다 움츠러든 행보를 보이며, 수익이 될 것이 분명한 작품에 더욱 투자를 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이외에도 SLL중앙(구 JTBC스튜디오)의 2021년 할리우드 콘텐츠 제작투자사 wiip 인수도 wiip 자체가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물론, 그 여파로 인해 SLL중앙 또한 2022년 최종 적자의 가능성이 커지게 만드는 등 성공적이지 못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경영진과 사주는 회사의 영향력을 키우기 위해 투자에 집중하는 행보를 보였겠지만 역설적으로 그 투자로 인한 피해로 회사의 행보가 경직되고, 나아가 가뜩이나 위축된 문화의 종 다양성에 더욱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런 점에서 SM에서 벌어지는 경영권 분쟁은 결코 단순히 특정 회사의 문제로 그치지 않는다. 2000년대 이후로 문화 산업을 운영하는 자본은 너나할 것 없이 최대한 효율적으로 빠르게 세를 불리기 위해, 그러면서도 경영진의 영향력은 어떻게든 놓치지 않기 위해 SM과 크게 다르지 않은 길을 걸어왔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장의 규모를 키웠지만, 늘어난 덩치를 채울 뼈와 근육은 너무나도 빈약하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쇠약해지는 영역도 군데군데 발견된다. 마치 거대하지만 내부는 텅텅 비어있는 ‘바람인형’을 생각나게 한다.

▲ 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 전 총괄 프로듀서가 2월14일 서울 그랜드 하얏트 호텔에서 열린 ‘한국·몽골 경제인 만찬’에 참석해 기조연설을 마치고 차로 향하고 있다. ⓒ 연합뉴스
▲ 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 전 총괄 프로듀서가 2월14일 서울 그랜드 하얏트 호텔에서 열린 ‘한국·몽골 경제인 만찬’에 참석해 기조연설을 마치고 차로 향하고 있다. ⓒ 연합뉴스

시스템과 구조, 재생산의 경로를 생각하지 않고 결과와 외형에만 신경 쓴 행보는 이렇게 ‘한류’와 ‘K-콘텐츠’라는 이름의 ‘K-바람인형’을 만든 것이 아닐까. 동시에 이는 자본만의 문제도, 특정 정부나 세력만의 문제만도 아니다. 대중 문화를 ‘콘텐츠 산업’ 중심으로 설계하며 양적 성장에 집중하는 모습은 족히 1990년대부터 기획되고, 2000년대 이후로 본격적으로 관철되었던 흐름이다. 공영, 민영을 가리지 않고 이에 쉽게 편승하며 동조한 언론과 미디어도 자유롭지 않다.

물론 누군가는 어쨌든 크기는 키우지 않았냐며 어떻게든 이 행보에 긍정적인 점을 찾으려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렇게 키운 크기가 장기적으로도 유지할 수 있을까. 제대로 골격을 형성하지 못한 상황에서 느리지만 차근차근히 뼈와 근육을 키울 의지도 여전히 미미하다. 그런 불균형의 연속에서 SM에서 큰 사단이 일어난 것은, 한국 문화 산업 전반에 또 다른 변곡점이 형성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징조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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