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사들이 ‘무늬만 프리랜서’로 법적 노동자성을 인정받은 방송작가 가운데 일부와 근로계약을 맺었지만 기본 처우 전반에서 정규직 방송제작 노동자와 차별을 두고 있다. 고 이재학 CJB청주방송 PD의 죽음 이후 방송계 만연한 무늬만 프리랜서 당사자들이 잇달아 법적 다툼과 승소를 이끌어냈지만 정작 방송사들이 노동자성 인정 취지를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새로운 ‘신분’을 만들고 있다는 지적이다.

고용노동부는 2021년 말 KBS·MBC·SBS를 특별근로감독한 결과 보도와 시사·교양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프리랜서’ 작가 152명의 노동자성을 확인했다. 이들 방송사가 자사에서 일하는 방송작가 363명(조사 완료 기준) 가운데 42%(152명)를 노동자, 즉 ‘무늬만 프리랜서’로 고용해왔다는 것이다.

지상파 3사는 노동부의 직접고용 시정지시에 대해 ‘직원’ 외 직군을 신설해 대응했다. 152명 가운데 11.8%(18명)와만 고용이 보장되는 근로계약을 맺었다. MBC의 경우 보도국 뉴스투데이와 뉴스외전 작가 4명을 해고했다가 부당해고 판단을 받은 뒤 이들을 별도 직군에 복직시켰다. 정규직이 아닌 무기계약직 근로계약이다.

▲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방송작가유니온) 행사영상 갈무리. 방송작가유니온 제공
▲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방송작가유니온) 행사영상 갈무리. 방송작가유니온 제공

승급은 막혔지만 해고 사유는 늘어…식대도 없어

현재 KBS와 MBC, SBS에서 무기계약직으로 일하는 이들 방송작가는 함께 일하는 정규직 방송제작 노동자와 기본적인 처우 전반에서 차별을 겪고 있다. MBC는 방송작가들과 근로계약을 체결하기 전 ‘방송지원직’을 만들었다. 기존 일반직·전문직·촉탁직이 속하는 ‘직원’ 밖에 신설한 직군이다. MBC는 방송작가의 임금을 기존과 같은 수준으로 적용하는 한편 연봉제를 적용했다. 급여가 호봉에 따라 오르지 않고, 인상률은 회사가 통보하는 식이다.

MBC 방송지원직 작가들은 상여금을 지급받지 못했다. 식대를 포함한 법인카드도 쓰지 못한다. 업무용 노트북도 마찬가지다. MBC가 일반직 직원들에게는 보장하는 항목이다. 반면 방송지원직 작가들은 야간수당 인정 기준을 기존 직원보다 까다롭게 적용받는다. 실질임금이 오히려 깎인다는 얘기다.

반면 MBC는 이들에게 ‘직원’에 비해 많은 해고 사유를 적용하고 있다. 방송지원직 취업규칙에만 “기타 방송지원직 근로자의 귀책사유로 근로계약을 유지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가 발생했을 때”라는 해고 사유를 명시했다. MBC 일반직 취업규칙상 해고사유인 △무계결근 1주일 이상 지속 △금고 이상의 형 확정 △해고 징계 확정 등 6가지에 덧붙였다. 이에 방송작가들은 MBC가 방송작가들에게 승급의 길은 봉쇄한 한편, 해고 여지는 더 넓게 열어놓았다고 우려한다.

방송작가들은 MBC의 제1노조인 언론노조 MBC본부에도 가입하지 못했다. MBC본부가 조합원 자격을 ‘직원’으로 두고 있기 때문이다.

▲전국언론노동조합 방송작가지부(방송작가유니온)는 지난해 7월14일 서울행정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MBC에 소송전 중단과 해고방송 작가복직을 요구했다. 사진=김예리 기자
▲전국언론노동조합 방송작가지부(방송작가유니온)는 지난해 7월14일 서울행정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MBC에 소송전 중단과 해고방송 작가복직을 요구했다. 사진=김예리 기자

MBC 측 언론 담당자는 “방송지원직 사원은 연봉제”라고 밝혔다. 상여금과 식대를 비롯한 법인카드와 노트북 등 지급 여부와 관련한 질문에 “말씀드릴 수 없겠다”고 말했다.

김유경 노동법률사무소 돌꽃 노무사는 이를 두고 “정규직 방송제작 노동자와 다름없는 일을 했지만, 회사는 이들에게 (근태, 해고 사유 등) 노동자로서 불리하게 적용할 지점은 엄격하게 적용하면서 노동자라서 이득이 되는 점은 박탈한 셈”이라고 했다. “‘방송지원직’ 사례는 흡사 방송사들이 앞으로 노동자성을 다툴 사람들에 대한 경고”라는 것이다.

▲2020년 4월29일 오후 3시 서울 마포구 연남동 한 건물에서 청주방송 고 이재학 PD 대책위 주최로 “방송현장 비정규직 ‘무늬만 프리랜서’ 증언대회”가 열렸다. 사진=청주방송 고 이재학 PD 대책위
▲2020년 4월29일 오후 3시 서울 마포구 연남동 한 건물에서 청주방송 고 이재학 PD 대책위 주최로 “방송현장 비정규직 ‘무늬만 프리랜서’ 증언대회”가 열렸다. 사진=청주방송 고 이재학 PD 대책위

근로계약한 KBS 방송작가 중 20명 ‘퇴사’

KBS는 지난해 노동자성이 확인된 70명의 ‘무늬만 프리랜서’ 작가 가운데 9명과 근로계약을 맺었다. 직무는 행정으로 옮겼다. KBS도 방송지원직 작가들에게 상여금을 지급하지 않으면서, 연봉제를 적용하고 있다.

한편 KBS는 26명에 대해서는 최대 계약기간을 2년으로 맞춰 기간제 계약했다. KBS에 따르면 이들 기간제 작가 가운데 현재 KBS에서 일하는 인원은 6명에 그친다. 최대 2년 계약기간으로 회사가 고용보장 의무가 생긴다는 이유로 연장을 거부한 인원도 포함됐다.

KBS는 방송제작 인원 가운데 방송작가에 상여금 규정을 적용하지 않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 별다른 답변을 하지 않았다. KBS에 따르면 사측은 계약만료로 퇴사한 방송지원직 인원을 새로 충원해 현재 기간제 방송작가는 31명이다.

SBS 역시 노동부 시정지시 결과 ‘별정직’이라는 직군을 신설했다. 노동자성이 인정된 49명 가운데 보도국 작가 6명에 대해 무기계약직 근로계약을 맺었다. 이들에게 연봉제를 적용해 급여 인상과 진급 가능성이 막혀 있다. 이들 가운데 무기계약직 4명이 언론노조 SBS본부에 가입했지만, SBS본부는 연봉제를 이유로 사측와 이들의 임금협상을 진행하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2020년 3월23일 오후 CJB청주방송의 부당해고에 법적 다툼을 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 이재학PD의 49재를 맞아 추모 결의대회가 열렸다. ⓒCJB청주방송 故이재학PD 대책위
▲2020년 3월23일 오후 CJB청주방송의 부당해고에 법적 다툼을 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 이재학PD의 49재를 맞아 추모 결의대회가 열렸다. ⓒCJB청주방송 故이재학PD 대책위

“직원으로 인정 않겠다는 속내”…“균등대우 원칙 반해”

김유경 노무사는 이들 3사의 방송작가 처우를 두고 “노동자가 싸워 법적으로 이겼음에도 회사가 ‘직원으로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싶지 않다’는 속내가 보인다”며 “이들이 법적 사각지대에 놓인 상황에서, 노조에 가입하거나 조직화해 교섭으로 임금과 처우 개선을 확보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 이재학 CJB청주방송 PD를 법적 대리한 이용우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 위원장은 “방송사들이 (방송작가들의) 노동자성을 형식적으로는 인정했지만 회사 소속 노동자로서 실질적이고 본질적인 부분은 부정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 변호사는 “특히 노동자가 수행하는 업무와 관계없이 통일적으로 적용받아야 할 복리후생도 달리 취급하는 것으로 보인다. 균등대우원칙에 반하는 위법한 행태가 확인된다”며 “방송사들이 꼼수에 꼼수를 반복하면서, 방송 비정규직 문제에 해결할 과제가 여전히 많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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