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승전 ‘개인정보 규제완화’다. 언론이 ‘챗GPT’로 인한 인공지능 서비스의 영향과 전망을 적극 분석하는 가운데 일부 기사는 4차산업혁명 구호가 부상했던 국면 때처럼 또다시 개인정보 규제완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그러나 이미 산업계와 보수·경제 언론의 적극 요구 이후 개인정보 규제가 대폭 완화된 바 있다.  

챗GPT 돌풍에 개인정보 규제완화 필요성 강조

매일경제는 지난 3일 <챗GPT 이용자 1억 돌파에 유료화, 우리도 못 할 이유 없다> 사설을 내고 “챗GPT 분야에서 우위를 점하려면 해결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 우선 개인정보에 대한 과도한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며 개인정보 규제완화를 우선 순위로 꼽았다. 챗GPT와 같은 인공지능은 온라인 공간 속 정보를 학습하는데, 개인정보 규제를 완화해 학습할 수 있는 대량의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AI에는 막대한 투자와 규제철폐가 따라야 한다. 개인정보와 저작권 규제에 대한 손질이 필요하다.”(디지털타임스) “AI가 경쟁력을 가지려면 방대한 데이터를 활용하는 데 걸림돌이 없어야 한다. 개인정보를 지나치게 규제하고 있는 건 아닌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중앙선데이) 등 다른 언론도 대동소이한 주장을 했다. 전자신문은 <“한국형 ‘챗GPT’ 도입 선결과제는 데이터 법 개정”> 기사를 통해 개인정보보호법(데이터법) 개정의 필요성을 부각했다.

▲ ⓒ i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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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챗GPT’가 ‘돌풍’을 일으키는 상황에서 법 개정과 정부의 적극 지원 등 산업 활성화를 위한 논의는 필요하다. 그러나 ‘개인정보’의 경우 ‘현재 규제가 과도하기에 완화가 필요하다’는 논리는 면밀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우선, 개인정보 규제 완화는 프라이버시 권리 보호와 충돌하기에 개인정보를 ‘산업적 도구’의 관점으로만 바라보는 보도는 단편적이다. 이들 보도를 보면 한국은 개인정보 규제가 과도해 사업자들이 피해를 입는 것처럼 보이지만 2020년 1월 산업계의 숙원이었던 ‘데이터3법’이 시민사회의 반발에도 통과된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법 개정에 따라 ‘연구’ 목적의 개인이 드러나지 않도록 비식별 처리한 가명정보의 활용은 당사자 동의를 받지 않고도 가능하다. 

데이터3법 통해 이미 규제완화
당시 경제·보수 입법 촉구

박근혜 정부 때 시작된 ‘4차산업혁명’ 구호를 지렛대 삼은 산업계의 개인정보 규제완화 요구는 2020년 국회의 ‘데이터3법’ 규제 완화 입법으로 이어졌다. 개인정보가 특정되지 않게 가공한 가명정보를 정보주체(당사자)의 동의없이 활용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당시 입법 과정에 경제·보수 언론을 중심으로 조속히 규제를 완화하지 않으면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진다며 입법 운동에 가까울 정도로 법안 통과를 요구해왔다. 

경제·보수언론을 중심으로 개정이 되지 않으면 문제가 심각하다는 취지에서 ‘개망신법’(개인정보보호법, 정보통신망법, 신용정보법의 앞글자를 딴 표현)이라는 표현을 쓸 정도였다. 이들 언론은 시민단체들이 명명한 ‘개인정보보호 포기법’이라는 명칭은 쓰지 않았다. 

▲ 2020년 데이터3법 통과 당시 경제신문 보도
▲ 2020년 데이터3법 통과 당시 경제신문 보도

2018년 9월3일 매일경제는 <빅데이터 비즈니스 활성화 요체는 ‘개·망·신법’ 개정이다> 사설을 냈다. 같은 해 11월20일 매일경제는 “데이터 활용을 막는다는 이유로 ‘개망신법’이라는 별칭이 붙었을 정도로 정보통신기술(ICT) 업계에서는 악명이 높다”며 다시 법안을 거론했다. 2019년 6월14일 매일경제는 또다시 <‘개망신법’ 지연으로 글로벌 데이터시장 놓칠 판이라니> 사설을 내고 법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글로벌 경쟁에 타격이 큰 것처럼 보도했다.

다른 보수 언론도 한 목소리였다. 중앙일보는 <국회 ‘개망신 법’ 처리 지연에 고사 위기 처한 첨단산업> 사설을 내고 “답답한 규제에 묶인 우리 기업은 빅데이터 분야에서 발 벗고 뛰는 세계 업체들의 뒤통수만 바라보는 형국”이라고 했다. <법 개정도 못 하면서 어떻게 빅데이터 활성화하나>(조선일보) <칡뿌리 같은 중복규제에 발목 잡힌 신산업 혁신>(동아일보)등도 대동소이한 사설을 썼다. 

이처럼 개인정보 ‘보호’와 ‘활용’이 대립하는 가운데 유독 보수경제 언론사들은 ‘산업적 이해’를 대변해왔다. 더구나 이 같은 요구를 수용해 2020년 1월9일 입법이 이뤄졌음에도 일부 언론은 개인정보 보호 규제가 과도하다는 주장을 다시 꺼냈다는 점에서 ‘모순’적 측면도 있다. 

개인정보 침해 문제 외면
“민간 영리회사임을 기억해야”

오병일 진보네트워크센터 대표는 “과거 개인정보 규제완화 주장을 했기에 데이터3법 개정이 이뤄진 것이다. 현재 연구 목적으로 가명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상황인데 개인정보보호법이 걸림돌이 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며 “걸림돌이라면 국내 사업자들도 이 같은 사업을 하기 어려워야 하는데 현재 네이버와 카카오도 이 같은 사업을 대대적으로 하고 있다. ‘챗GPT’를 기점으로 전반적 기업의 요구사항을 얘기하는 것 같다”고 했다.

오히려 ‘챗GPT’로 인한 프라이버시 침해 우려에 주목해야 하는 상황이다. ‘챗GPT’는 온라인 공간의 수많은 정보를 학습하는데 이 과정에서 동의를 받지 않고, 어떤 글을 학습했는지도 투명하게 드러내지 않는다.

‘THE CONVERSATION’은 지난 8일(현지시각) <ChatGPT는 데이터 프라이버시의 악몽. 온라인에 게시글을 올린 적 있다면 우려해야 한다>는 제목의 기사를 냈다. 기사는 “블로그 게시물을 올렸거나 제품 리뷰를 작성했거나 온라인 기사에 댓글을 달았다면 이 정보가 ‘ChatGPT’에 의해 쓰였을 가능성이 높다”며 “OpenAI(개발사)는 우리 데이터를 사용할 수 있는지 여부를 우리 중 누구에게도 묻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 기사는 ‘챗GPT’의 가능성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그러면서도 “잠재적인 이점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OpenAI(챗GPT 개발사)가 이익, 상업적 의무가 사회적 요구와 일치하지는 않는 민간의 영리회사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며 “‘챗GPT’에 수반되는 개인정보 보호 위험에 경고음을 울려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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