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위협’ ‘조폭’ ‘마피아’ ‘바이러스’ ‘민폐노총’ ‘페스트’ ‘종북’. 정부·여당에서 최근 민주노총의 노조법 2·3조 개정 요구와 화물연대의 안전운임제 확대 요구 파업을 두고 노조원들을 향해 쏟아낸 표현이다.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해 고위 공직자와 유력 정치인들이 노동조합에 대한 혐오를 선동하는 움직임이 노골화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이들의 노동조합을 향한 공격이 헌법상 노동 3권을 위축시키고 국제노동기구 협약을 위반하기 이르렀다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했다.

공공운수노조와 미디어오늘은 14일 서울 등촌동 공공운수노조 2층 나래실에서 ‘대통령도 노조 혐오, 이대로 좋은가’ 주제로 좌담회를 공동주최했다. 인권 전문가, 노동·언론운동 활동가들과 최근 파업했던 화물연대와 건강보험고객센터 노동자들은 이 자리에서 정부가 노조를 적대해온 역사에 이어 현 정부가 특정 지지세력에 호소하며 노조혐오가 심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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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운수노조와 미디어오늘은 14일 서울 등촌동 공공운수노조 2층 나래실에서 ‘대통령도 노조 혐오, 이대로 좋은가’ 주제로 좌담회를 공동주최했다. 사진=김예리 기자

‘윤석열 정부의 노조혐오’, 노골적으로 역행

‘노조혐오’는 낯선 조어지만 그 역사가 오래됐다. 김형완 인권정책연구소장은 “정부는 1997년 IMF를 겪으며 (노동을 대하는 프레임을) 간접발화로 바꿨다. ‘빨갱이 국가안보 프레임’을 ‘노노갈등 프레임’으로 전환했다”며 “노사 갈등의 중재자이자 중립적 입장을 취할 것처럼 포지셔닝한 것”이라고 했다.

권두섭 민주노총 변호사는 “노조혐오는 누가 집권하든 이전 정부에도 있었다.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이 ‘대기업 정규직 이기주의’라는 표현을 사용한 뒤 ‘귀족노조’라는 표현이 많이 나오기 시작했다”고 짚었다.

▲권두섭 민주노총 법률원 변호사가 14일 좌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공공운수노조와 미디어오늘은 14일 서울 등촌동 공공운수노조 2층 나래실에서 ‘대통령도 노조 혐오, 이대로 좋은가’ 주제로 좌담회를 공동주최했다. 사진=김예리 기자
▲권두섭 민주노총 법률원 변호사가 14일 좌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공공운수노조와 미디어오늘은 14일 서울 등촌동 공공운수노조 2층 나래실에서 ‘대통령도 노조 혐오, 이대로 좋은가’ 주제로 좌담회를 공동주최했다. 사진=김예리 기자

참가자들은 ‘윤석열 정부의 노조혐오’는 노골적으로 시대에 역행한다고 지적했다. 김형완 소장은 “윤석열 정부 들어 정부가 중재자인 양 숨는 게 아니라 오히려 자본에 편에 서서 노골적으로 노조 타도를 외치기 시작했다”며 “80년대 초 도시산업선교회를 향한 용공 논란으로 완전히 역진한 것”이라고 했다.

권 변호사도 “현 정부의 특징은 특정 대상을 혐오하고 사회적으로 배제하면서 정치적 이익을 보고 집권한 세력이라는 점이다. 선거 과정에서 여성과 남성, 세대 간 갈라치기를 했고 화물연대 파업에 대응하면서 지지율이 올라갔다”며 “그런 점에서 사회적 비판을 받더라도 제어되는 상황이 아니라고 본다”고 했다.

탁종렬 노동인권저널리즘센터 소장은 정부와 언론이 주도하는 노조혐오가 명확한 의도를 가지고 진행된다고 했다. “건강보험고객센터지부가 2021년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며 파업할 때 언론, 특히 신문이 노조를 융단폭격하듯 공격했다”며 “보도는 정치적 의도를 명확히 가지고 있었다. 마치 공공기관 비정규직 정책 때문에 공공기관 적자가 누적되고 청년 채용이 줄었다는 보도와 이어졌다. 사실관계를 보면 전혀 달랐다”고 말했다.

노조혐오 보도에 대한 언론 내부 자정 노력은 없다시피 하다. 탁 소장은 “보수신문이 기본 저널리즘 원칙도 지키지 않고 노동사안을 보도하지만 한국기자협회에서 준칙 위반을 지적하는 목소리를 들어보지 못했다”며 “성범죄, 재난, 감염병, 자살, 아동학대 관련 보도엔 구체적 기준을 마련했지만 노동에 대해선 ‘헌법상 노동3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큰 원칙만 밝히고 있다”고 했다.

▲좌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공공운수노조와 미디어오늘은 14일 서울 등촌동 공공운수노조 2층 나래실에서 ‘대통령도 노조 혐오, 이대로 좋은가’ 주제로 좌담회를 공동주최했다. 사진=김예리 기자
▲탁종렬 노동인권저널리즘센터 소장이 14일 좌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공공운수노조와 미디어오늘은 14일 서울 등촌동 공공운수노조 2층 나래실에서 ‘대통령도 노조 혐오, 이대로 좋은가’ 주제로 좌담회를 공동주최했다. 사진=김예리 기자

“보도와 댓글, 정규직의 선전전, 화주의 욕설…일상화한 노조혐오”

현장에서 ‘노조혐오’ 보도를 접한 조합원들은 그 위협을 피부로 느낀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고객센터 상담노동자인 이호영 공공운수노조 건강보험고객센터지부 교육선전부장은 “정부가 집회에만 다른 영역은 거리두기를 3단계로 유지하고 집회에만 4단계를 적용할 때다. (경찰이) 농성장에 펜스를 설치했다. 조합원들이 농성장에 진입하려 언덕을 오르는 장면을 건보공단 내부에서 찍고 (온라인에) ‘좀비’ ‘워킹데드’라는 혐오 발언을 했다. 언론은 그 왜곡된 시선을 그대로 담았다”고 했다.

그는 “보도와 혐오 댓글, 정규직 조합원의 선전전을 접한 조합원들은 손을 떨거나 두근거린다고 했다. 이후 비슷한 상황에 놓일 때마다 생각이 난다. 노조 집회와 행사 자체에 트라우마가 생긴 분도 있다”고 했다.

▲보수언론과 경제지들은 지난 2021년 8월 파업하는 공공운수노조 국민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지부 노동자들을 ‘좀비’에 비유하는 보도를 냈다. 파이낸셜뉴스 웹사이트 갈무리
▲보수언론과 경제지들은 지난 2021년 8월 파업하는 공공운수노조 국민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지부 노동자들을 ‘좀비’에 비유하는 보도를 냈다. 파이낸셜뉴스 웹사이트 갈무리
▲이호영 공공운수노조 건강보험고객센터지부 교육선전부장이 14일 좌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공공운수노조와 미디어오늘은 14일 서울 등촌동 공공운수노조 2층 나래실에서 ‘대통령도 노조 혐오, 이대로 좋은가’ 주제로 좌담회를 공동주최했다. 사진=김예리 기자
▲이호영 공공운수노조 건강보험고객센터지부 교육선전부장이 14일 좌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공공운수노조와 미디어오늘은 14일 서울 등촌동 공공운수노조 2층 나래실에서 ‘대통령도 노조 혐오, 이대로 좋은가’ 주제로 좌담회를 공동주최했다. 사진=김예리 기자

장정훈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조직실장은 20여년차 특수고용 화물운송 노동자로 일하며 권리를 지켰다는 이유로 일상에서 폭력과 혐오를 맞닥뜨린다고 했다. 그는 “현장에서 우리 업무 외에 화주로부터 책임 전가 받는 사례가 많다”며 “대부분 조합원은 ‘자기가 할 일이 아니다’라고 거부하는데 비조합원은 이를 따른다. 조합원들은 화주로부터 ‘화물연대 새끼들은 왜 이렇게 까탈스럽냐’는 이야기를 듣고, 한 조합원은 컨테이너 내부에 있었는데 밖에서 문을 잠가 갇히는 상황까지 일어났다”고 했다.

▲장정훈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조직실장이 14일 좌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공공운수노조와 미디어오늘은 14일 서울 등촌동 공공운수노조 2층 나래실에서 ‘대통령도 노조 혐오, 이대로 좋은가’ 주제로 좌담회를 공동주최했다. 사진=김예리 기자
▲장정훈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조직실장이 14일 좌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공공운수노조와 미디어오늘은 14일 서울 등촌동 공공운수노조 2층 나래실에서 ‘대통령도 노조 혐오, 이대로 좋은가’ 주제로 좌담회를 공동주최했다. 사진=김예리 기자

양극화 사회일수록 약자에 대한 증오 감정 나타나

권오훈 공공운수노조 인권국장은 “노조혐오의 밑바닥에는 필수노동이자 육체노동에 대한 비하가 깔려있다”고 지적했다. “이언주 의원이 ‘식당 아줌마가 무슨 정규직이냐’고 해서 파동이 일었던 것처럼, 필수노동을 저부가가치 노동으로 전락시키면서 노동 비하가 사회에 만연하다”는 것이다.

김 소장은 “양극화하고 계층상승 기회가 차단된 사회일수록 사회적 약자에 대한 ‘경멸’을 (강자에 대해 가지는) ‘증오’로 전환시킨다”고 분석했다. “경멸은 자기보다 비우월적 지위에 있는 집단에 대한 감정인 반면, 증오는 소위 ‘나보다 센 놈’을 향해 나타난다”며 “(양극화 사회에선) ‘똥을 더러워서 피하는’ 수준이 아니라, 사회적 약자를 타도해야 사회가 바로선다고 생각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이 도덕적 착란 증세가 ‘혐오’의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권오훈 공공운수노조 인권국장이 14일 좌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공공운수노조와 미디어오늘은 14일 서울 등촌동 공공운수노조 2층 나래실에서 ‘대통령도 노조 혐오, 이대로 좋은가’ 주제로 좌담회를 공동주최했다. 사진=김예리 기자
▲권오훈 공공운수노조 인권국장이 14일 좌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공공운수노조와 미디어오늘은 14일 서울 등촌동 공공운수노조 2층 나래실에서 ‘대통령도 노조 혐오, 이대로 좋은가’ 주제로 좌담회를 공동주최했다. 사진=김예리 기자
▲김형완 인권정책연구소 소장이 14일 좌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공공운수노조와 미디어오늘은 14일 서울 등촌동 공공운수노조 2층 나래실에서 ‘대통령도 노조 혐오, 이대로 좋은가’ 주제로 좌담회를 공동주최했다. 사진=김예리 기자
▲김형완 인권정책연구소 소장이 14일 좌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공공운수노조와 미디어오늘은 14일 서울 등촌동 공공운수노조 2층 나래실에서 ‘대통령도 노조 혐오, 이대로 좋은가’ 주제로 좌담회를 공동주최했다. 사진=김예리 기자

국가인권위원회 정책과장에 임했던 김 소장은 “경쟁주의와 능력주의를 고취시킬 때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 배제 문제가 나타난다. 이 정부는 이에 대해 아예 배제 정책을 펴고 있다”며 “인권위가 (노조혐오 흐름에) 개입할 수 있고 해야 한다. 정책개선 권고기준이 있기에 필요하다면 입법권고를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90% 이상이 노동자” 파업 선전·선동 포스터 교육하는 독일

참가자들은 노조혐오에 대한 대책으로 교육을 꼽았다. 김 소장은 “독일에선 교육과정에서 파업 전 노사교섭 시 노조 단결을 도모하고 시민들에게 어젠다를 효과적으로 선동하기 위한 포스터 만들기를 가르친다”며 “교사가 ‘이들 중 90% 이상이 노동자가 되는데 대체 학교에서 노조 관련해 가르치지 않으면 일방적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고 한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참가자들은 노조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는 방안으로 흔히 언급되는 ‘정규직 양보론’에 기대선 안 된다고도 밝혔다. 권 변호사는 “현대자동차지부가 정의선 회장과 교섭하는 상황과, 자동차 산업 말단에 놓인 비정규직이 하청업체와 교섭하는 경우를 상상해보자”며 “정규직이 물가가 3.5% 상승했지만 양보해 임금동결을 하겠다고 하면, 기업별 교섭 체제에서 하청업체 노동자에게 (양보한 만큼) 갈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이라고 했다. “(교섭) 제도의 문제를 얘기하지 않고 정규직 노조나 고임금 노조가 뭔가를 하면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몰아가는 것은 맞지 않다”는 것이다.

정규직 양보론 해법 아냐… 혐오발언 허용하는 언론 자성 필요

권 변호사는 노동자 간의 연대를 강조했다. 그는 “함께 싸우는 것도 연대이고, 조합비를 많이 내 산별노조가 전체 노동자를 위한 여러 활동을 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드는 것도 연대다. 최고의 투쟁이라면 비정규직 노동자가 하이트진로 노동자가 투쟁할 때 (정규직도) 화가 나서 못 참겠다며 연대파업을 하는 모습일 것”이라고 말했다.

언론에 대해서도 노동 보도에서만 문제 발언을 여과 없이 보도하는 행태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권 변호사는 “유독 노조에 대한 혐오는 중계식으로 보도하고, 언론의 책임은 없는 것처럼 여겨진다”며 “왜 ‘원희룡 장관이 화물연대를 조폭이라 표현해 파문’이라는 보도가 이뤄지지 않는지 묻고 싶다. 언론이 정치인 발언의 스피커가 되는 상황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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