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국건설노조 부산건설기계지부(이하 건설노조 부산지부)를 사업자단체로 규정하고 과징금을 부과하고 나섰다. 정부가 노동조합을 사업자단체로 규정한 것이다. 이를 두고 경제신문은 공정위 결정이 타당하다고 보도하면서 노동조합 혐오 정서를 강하게 드러냈다.

부산지부는 레미콘·크레인·굴착기 등 건설기계 대여업을 하는 자영업자들이 모인 노동조합이다. 공정위는 지난달 28일 부산지부가 2020년 한국노총 소속 사업자를 건설 현장에서 배제할 것을 요구했다면서 과징금 1억 원을 부과하고 시정명령을 내리기로 했다. 적용 혐의는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부산지부를 사업자단체로 규정한 것이다.

정부가 노동조합을 사업자단체로 규정해 공정거래법을 적용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부산지부는 소규모 사업자들이 설립한 ‘소규모사업자 조합’에 해당한다. 공정거래법에 따르면 소규모사업자 조합은 법 적용을 면제받는다. 또한 노동조합을 사업자로 규정하는 것은 국제적으로도 사례가 드물다고 한다. 미국과 일본은 노동조합에 경쟁법을 적용시키지 않는다. 유럽연합은 지난해 9월 1인 자영업자의 단체협약을 보호하는 가이드라인을 채택했다.

▲민주노총 전국건설노동조합이 지난해 12월21일 정부과천청사 앞에서 결의대회를 열고 행진하고 있다. ⓒ민중의소리.
▲민주노총 전국건설노동조합이 지난해 12월21일 정부과천청사 앞에서 결의대회를 열고 행진하고 있다. ⓒ민중의소리.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과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노동조합에 강경 대응을 하겠다고 밝힌 상황이다. 윤 대통령은 1일 발표한 신년사에서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며 “직무 중심, 성과급 중심의 전환을 추진하는 기업과 귀족 강성 노조와 타협해 연공 서열 시스템에 매몰되는 기업에 대한 정부의 지원 역시 차별화되어야 한다”고 했다. 원희룡 장관은 2일 신년사에서 “건설노조 등 노조의 불법 행위를 엄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장관 이어 경제신문까지 노동조합 적대감 드러내

정부가 노조에 대한 적대감을 공공연하게 표출하는 상황에서 경제신문 역시 노동조합 혐오 정서를 드러냈다. 정부의 결정에 환영 입장을 표하고, 건설노조를 조폭·갑질이라고 표현한 것.

매일경제는 지난달 30일 사설 ‘조폭 뺨치는 건설노조 불법 행위, 민관이 협력해 뿌리 뽑아야’에서 “건설현장 노조의 업무 방해, 금품·채용 강요, 폭력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라면서 “폭력과 갈취가 조폭 뺨치는 수준이다. 건설사들이 채용이나 금품 요구를 수용하지 않으면 노조가 현장 출입구를 막거나 집회를 일삼았다. 이로 인해 공사가 중단되고 공기가 늦어진 현장이 수두룩했다”고 했다.

매일경제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일감 갑질'을 한 민주노총 전국건설노조 부산건설기계지부에 과징금 1억원을 부과한 것은 의미가 크다”며 “공정위가 노조의 악랄한 갑질에 제동을 건 것은 전방위로 건설노조를 압박하겠다는 정부의 의지를 보여준 것이어서 주목된다. 떼법과 불법이 판치는 건설 현장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지난해 12월30일 매일경제 사설, 지난해 12월29일 한국경제 사설 갈무리.
▲지난해 12월30일 매일경제 사설, 지난해 12월29일 한국경제 사설 갈무리.

한국경제는 한발 더 나아가 이번 공정위 결정으로 인해 파업의 동력이 상실될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고 썼다. 한국경제는 지난달 29일 ‘“운송차주는 사업자”…노조처럼 건설사 압박·운행 방해 땐 제재’ 보도에서 “강변이 더는 통하지 않게 됐다”면서 “특수차량을 소유한 개인 사업자들의 단체행동을 두고 노동조합 활동이라 억지 주장하던 레미콘 운송 차주의 ‘폭주’에 제동이 걸렸다”고 썼다. 한국경제는 “차주들의 무단 행위에 큰 피해를 봤던 레미콘 업계에선 운송거부 투쟁(파업) 비참가자에 대한 보복이나 대체 차량 운행 방해 등 불법 행위가 근절돼 파업의 동력이 상실될 것이란 기대가 크다”고 했다.

또한 한국경제는 같은날 ‘“건설노조는 사업자단체”…이런 판단 확산돼야 불법 줄어든다’ 사설에서 “(공정위 결정은)자신들 요구가 먹히지 않으면 공사 방해와 폭력 행사를 마다하지 않는 건설노조의 조폭식 행태와 비리를 행정 차원에서 차단할 의미 있는 계기라는 점에서 주목된다”며 “특고가 늘어나는 일터의 상황, 친노조 편향의 직전 정부 스탠스 탓에 뒤죽박죽이던 원칙이 뒤늦게 제자리를 찾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한국경제는 “공정위의 이번 결정 같은 판단이 확산돼야 약자 코스프레 하며 범법을 일삼는 집단의 불법 행위에 대응할 수 있다”며 “올해 두 차례 벌어진 화물연대 파업이 끼친 직·간접 손실만 10조 원에 이른다는 조사도 있다. 개인사업자끼리 파업 참여 여부를 놓고 편 갈라 싸우는 사이 사회적 비용은 말할 수 없이 커진다. 불법 파업이 행정의 간섭·감독을 불러들이고 있다”고 강조했다.

반면 한겨레는 공정위의 이번 결정을 노동조합 탄압으로 규정했다. 한겨레는 ‘노조를 ‘사업자단체’ 잣대로 제재…공정위, 도 넘은 노동 탄압’ 보도에서 공정위가 특수고용노동자로 구성된 노동조합을 사업자로 보고 제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며, 국제 기준에도 부합하지 않는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한겨레는 “이번 제재를 통해 정부의 특고 노조 탄압 기조가 더욱 강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며 “건설노조는 고용노동부의 노조 설립 필증도 발급받은 합법 노조인데도 공정거래법을 적용한 것”이라고 했다.

한겨레는 정부가 국제노동기구 협약을 정면으로 거슬렀다고 지적했다. 한겨레는 “국제노동기구 ‘결사의 자유 위원회’는 2012년부터 한국 정부에 ‘건설 부문에서 특히 취약한 일용노동자들의 고용 조건에 대해 자유롭고 자발적인 단체교섭을 촉진하기 위한 추가적인 노력을 기울일 것’을 권고해왔다”며 “주요국들도 특고 등 ‘1인 자영노동자’의 노동3권을 강화해 나가고 있다. 아무리 법적으로 자영업자 지위에 있더라도 실질적으로 노동자로 판단되는 경우 경쟁법(공정거래법)을 적용해선 안 된다는 것이 국제노동기구와 주요 선진국들의 일관된 견해”라고 했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이 지난해 12월8일 서울 중구 정동 민주노총에서 화물연대 총파업·민주노총 탄압에 맞선 해법을 찾기 위한 긴급 기자간담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민중의소리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이 지난해 12월8일 서울 중구 정동 민주노총에서 화물연대 총파업·민주노총 탄압에 맞선 해법을 찾기 위한 긴급 기자간담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민중의소리

“공정위 개입, 타당성 갖기 힘들어… 건설노조 역할 무시”

이와 관련해 전다운 법무법인 지향 변호사는 지난달 2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공정위의 노동사건 개입, 과연 정당한가?’ 토론회에서 “근로자와 노동조합에 대한 공정거래법의 중복적 규율은 타당성을 갖기 힘들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또한 전 변호사는 노동조합의 재정은 노동조합 존립과 존속을 가능하게 하는 수단이라면서 “이를 국가가 행정처분에 의해 박탈하는 것은 노동조합의 존립이나 활동 자체를 위태롭게 하는 것이다. 근로자가 고액의 과징금이나 형사처벌의 두려움 없이 노동3권을 행사할 수 있는 자유를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소영호 건설산업연맹 전국건설노동조합 정책국장은 “공정위는 부산, 울릉, 대전 등지에서 건설노조의 활동이 사업자단체 금지행위라고 규정하고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며 “현재까지 총 26.4억원 가량의 과징금 부과가 예상되고 있으며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소 국장은 “공정거래위원회가 건설노조를 사업자단체로 규정하는 것은 제도 개선의 역할을 해왔던 건설노조의 역할을 무시하는 것이다. 고용안정 및 고용구조 개선 활동 자체를 불온시하며 공정거래법을 적용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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