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한 라디오에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은 가수가 출연했다. 가수의 대표곡을 들은 청취자는 이런 감상평을 남겼다. “○○에게 50억 줘라” 청취자 의견에 라디오 진행자와 가수는 박장대소했다.

곽상도 전 의원이 대장동 일당 사업 시행을 위한 컨소시엄이 무산될 뻔한 위기를 막아준 대가로 아들을 통해 50억 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에 대해 법원이 무죄 판결을 내렸다. 일명 50억클럽 의혹 중 금품 수수 사실관계가 확인된 곽 전 의원이 무죄를 받자 검찰 수사에 대한 비판과 조롱이 쏟아졌다. “아들을 통해 뇌물을 수수했다는 의심은 들지만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뇌물이라고 볼만한 증거가 없다”는 법원의 판결 요지는 죄가 없다기보다 검찰 수사가 부실했음을 암시한다.

5년 근속 30대 청년이 퇴직금 50억 원을 받은 게 정당한 것이라면 한국 사회에서 노동의 가치를 환산해 정직하게 급여와 퇴직금을 받은 모든 노동자에 대한 모욕에 가깝다. 국민 법감정에 크게 벗어나고 상대적 박탈감을 키우며 도덕적 해이를 불러일으킨 이런 판결이 나오도록 한 책임은 검찰에 있음은 분명하다.

▲ ‘대장동 일당’에게서 아들 퇴직금 등의 명목으로 거액의 뇌물을 수수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곽상도 전 국회의원이 2월8일 오후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을 마친 후 법정을 나서고 있다. ⓒ 연합뉴스
▲ ‘대장동 일당’에게서 아들 퇴직금 등의 명목으로 거액의 뇌물을 수수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곽상도 전 국회의원이 2월8일 오후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을 마친 후 법정을 나서고 있다. ⓒ 연합뉴스

그럼에도 정치권과 언론이 ‘50억클럽 특검’을 추진하자고 열을 올리고 있는 모습은 마뜩잖다. 곽 전 의원 뇌물 혐의는 한국 사회 공정성을 무너뜨릴 수 있는 중차대한 사안이었음에도 50억클럽 의혹을 정치권과 언론은 어떻게 다뤘던가.

2022년 5월 대장동 일당 재판에서 정영학 회계사 음성파일이 재생돼 50억 클럽 명단이 실명으로 나왔다. 앞서 2021년 국회 국정감사에서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이 명단을 공개한 바 있다. 당시 박 의원은 해당 의혹을 특검을 통해 수사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도 기자회견을 열어 곽 전 의원 이름을 언급하고 명단의 실체를 검증하기 위해서라도 특검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50억클럽 특검 주장은 힘을 받지 못했다. 대장동 의혹 사건은 남욱 변호사가 조성한 비자금이 이재명 민주당 대표 측으로 흘러간 뇌물 의혹과 김만배가 조성한 비자금이 언론인과 법조인의 로비에 쓰였다는 의혹 등 크게 두가지 축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정치권과 언론이 주로 주목한 건 전자였다.

50억클럽 명단에 있었던 사람들의 수사가 제대로 진행되고 있지 않은 상황을 지적한 보도는 극히 적었다. 곽 전 의원 재판에 대한 심층 보도도 부족했다. 이런 가운데 곽 전 의원 혐의가 무죄로 나오자 50억클럽 특검 추진 목소리가 봇물 터진 듯 나온 것이다. 얼마나 허망한 일인가. 50억클럽 실체를 밝히는 건 무리였을지 몰라도 해당 의혹이 가진 중대성, 그리고 의혹의 구체성 등을 정치권과 언론이 물고 늘어졌다면 정파적 이익을 떠나 특검을 추진, 다른 결과가 나왔을지도 모를 일이다.

지난해 12월 뉴스타파가 정영학 녹취록을 보도하고 전문을 공개한 목적도 검찰 수사가 어느 한쪽에 치우져 있어 바로잡겠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전문 공개 이후에도 언론의 취사 선택 보도는 계속됐다. 곽 전 의원이 무죄 판결을 받은 책임을 검찰에만 물을 수 없다는 얘기다. 50억클럽 의혹을 방치하다시피 하다가 무죄 판결이 나오자 특검 추진을 말하는 것이 허망한 이유다.

▲ 지난 1월12일 뉴스타파가 대장동 실체가 담긴 ‘정영학 녹취록’ 1325쪽 전문을 공개했다. 사진=뉴스타파 유튜브
▲ 지난 1월12일 뉴스타파가 대장동 실체가 담긴 ‘정영학 녹취록’ 1325쪽 전문을 공개했다. 사진=뉴스타파 유튜브

한 언론이 대통령실 관계자가 “곽 전 의원 판결 직후 내부 회의에서 ‘국민이 과연 납득할 수 있겠느냐’는 의견들이 다수 나왔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이 관계자는 “윤석열 대통령이 이와 관련해 따로 말씀을 하셨는지는 알지 못한다”고 했는데 무책임한 말이다.

관계자 말대로 국민 상식에 어긋난, 납득 불가 판결이라면 대통령 입장이 나왔어야 했다. 대통령 출근길 질의응답 공간이 있었더라면 이번 판결에 대한 대통령의 생각을 묻고 직접 답변을 들을 수 있었을 것이다. 대통령이 국민적 분노를 헤아리면서 철저한 수사를 당부했더라면 어땠을까. 이번 판결이 사라진 도어스테핑의 필요성을 환기시켰다고 볼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윤석열 대통령이 관계자 뒤로 계속 숨어있으면 불필요한 의심을 받을 수 있다. 50억클럽 명단에 이름을 올린 사람은 검찰과 법관 출신이다. 곽 전 의원 무죄 판결은 명단의 나머지 사람 재판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최초 50억클럽 명단이 공개됐을 당시 검찰총장이 윤석열 대통령이었다는 꼬리표도 붙어있다. 대통령이 대국민 소통 의지가 있다면, 그리고 의심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해당 판결에 입을 열어야 한다. 언론도 도어스테핑 필요성을 역설하고 대통령 입을 열게 만들어야 한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