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너무한다 싶다. 정치 뉴스 과잉을 두고서 하는 말이다. 그동안 정치 뉴스 과잉 폐해에 대한 지적은 많았다. 뉴스 집중을 넘어서 중독에 이르러 여타 중요 뉴스를 지워버리는 부작용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지적이 뉴스 콘텐츠 제작자들에겐 소 귀에 경읽기다.

나경원 전 의원이 국민의힘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느니 마느니하는 뉴스가 대표적이다. 불출마로 결론이 난 여파까지 나 전 의원 관련 뉴스는 근 한달 간 주요 매체의 뉴스로 도배됐다. 나 전 의원의 당 대표 출마 문제는 윤심에 역행해 반윤의 중심에 서는, 대단히 ‘비장한 선언’으로 포장됐다. 그의 출마를 둘러싼 여러 설들은 사실 이면의 진실인 양 보도됐다. 지난해 11월부터 1월 말까지 ‘나경원 출마’ 키워드로 집계된 종합일간지(11개) 보도는 1297건에 이른다.

▲ 나경원 전 국민의힘 의원이 1월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당대회 불출마를 선언한 뒤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 나경원 전 국민의힘 의원이 1월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당대회 불출마를 선언한 뒤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전당대회 룰이 개정되고 윤석열 대통령의 당무 개입 논란으로 확대되면서 국힘 지도부 선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건 사실이지만 나경원 전 의원을 포함한 당권 주자들의 역학관계, 출마 기싸움, 출마 여부에 따른 파장 등 이렇게까지 많은 뉴스가 필요한지 의문이다. 대통령과 나 전 의원의 악연까지 분석한 보도에 이르면 나 전 의원의 선거 출마 문제가 마치 한국 정치에 있어 엄청난 명분을 갖는 착각마저 일으키게 된다. 국민의힘 당권주자들이 어떤 정책을 통해 당을 바꾸고 정치 개혁을 하려는 건지 알 수 없고 하루가 멀다하고 특정 정치인의 출마설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떠드는 게 주요 정치뉴스가 돼버렸다.

아침 라디오엔 똑같은 패널이 요일만 바꾸고 출연해 나 전 의원 출마 문제를 논평한다. 어제 한 얘기가 오늘 또 반복된다. 조그마한 변동 사항이 있으면 그게 곧 뉴스가 되고 논평의 대상이 된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정치뉴스는 채널 구분을 가늠키 어려울 지경이다. 시사평론가라고 출연하는 사람의 패널 구성뿐 아니라 진영의 대표주자로 나오는 전현직 국회의원 구성도 거기서 거기다. 다른 뉴스를 들으려 라디오 채널을 바꿔도 똑같은 정치 뉴스만 양산된다. 엄밀히 말해 정치 뉴스가 아니라 정치 논평만 난무한다.

보도채널 뉴스도 비슷하다. 한 시사평론가가 오전에 한 방송에 출연해 논평하고, 오후 시간 다른 방송에 출연해 똑같은 말을 반복한다. 아침 종합일간지 뉴스가 패널의 말로 옮겨지고, 다시 그 패널의 말은 인터넷 뉴스로 쏟어진다. 지라시에 나온 내용은 ‘뉴스로 내보낼 수 없지만’이라는 단서를 달고 나 전 의원이 출마할 수밖에 없는 이유나 반대로 불출마할 수밖에 없는 이유로 보도된다. 국민 실생활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은 정치 뉴스 과잉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데 문제는 이런 현상이 전혀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치뉴스 프로 좀 확 줄이면 안되나. 진짜 공해수준, 어차피 다 똑같은 내용이면서 왜 하루종일 떠드는 거냐”라는 한 누리꾼의 말은 뉴스 제작진에게 미칠 가능성은 극히 적지만 울림은 크다. 생각을 전환해야 한다. 정치 뉴스가 만연한 건 소위 가성비 좋은 건 말고는 원인을 찾기 어렵다.

정치 고관여층에겐 손쉽게 먹힐 수 있는 정보일지 몰라도 일반 뉴스소비자들에겐 고역이다. 여의도 밖의 세상에 눈을 돌리고 국민 생활에 도움이 되는 정보에 집중하자. 정치공방 중계식 보도 관행을 과감히 버리고 선거 제도 개혁 문제를 정치 의제로 던져 역으로 여의도의 변화를 이끄는 게 좋겠다. 멀쩡히 돈을 지불했는데 전세 사기를 당하는 현실, 고금리에 신음하는 서민 대책 등 정치 뉴스를 줄이고 지면 혹은 방송을 특별히 배치할 이슈가 널려 있다.

▲ 영국 BBC뉴스 홈페이지 갈무리.
▲ 영국 BBC뉴스 홈페이지 갈무리.

영국 BBC뉴스 홈페이지 첫 화면 카테고리는 이렇게 구성돼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코로나 바이러스’ ‘기후’ ‘동영상’ ‘세계’ ‘아시아’ ‘영국’ ‘산업’ ‘기술’ ‘과학’ 등이다. 역량 부족이라고 한다면 외신 보도라도 충실하고 정확하게 번역해 보도하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정치 공방 평론가’만 양산하는 정치 뉴스, 이제 좀 바뀔 때도 됐다. 하루종일 라디오 뉴스를 듣는 택시 기사분들의 귀만이라도 제발 해방시켜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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