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1년 12월1일 오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자랑스런 삼성인상’ 시상식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 서초동 삼성 사옥에 도착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 2011년 12월1일 오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자랑스런 삼성인상’ 시상식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 서초동 삼성 사옥에 도착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사망했을 때 추모기사를 쓴 신문사들이 이 회장을 영웅적·신화적 존재로 묘사했다는 분석 결과가 나왔다. 이 같은 보도 행태는 한국 언론이 최대 광고주인 삼성전자와 분리될 수 없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진보신문은 이 회장의 부정적인 측면을 언급하고, 장례 상황에 집중하는 등 보수·경제신문과는 다른 모습을 보였다.

이완수 동서대 미디어콘텐츠대학 교수와 최명일 남서울대 광고홍보학과 교수는 지난달 발행된 한국언론정보학회 학술지 한국언론정보학보 116호에 게재한 ‘‘셀러브리티’로서 이건희의 죽음은 어떻게 내러티브화되는가?’ 논문에서 신문사들이 이 회장 사망 소식을 어떤 방식으로 다뤘는지를 분석했다. 분석 대상은 이 회장 사망 직후인 2020년 10월26일~30일까지 조선일보·중앙일보·동아일보(보수신문), 경향신문·한겨레(진보신문), 매일경제·한국경제(경제신문)에 게재된 추모기사다.

▲고 이건희 회장이 사망한 당시인 2020년 10월26일자 아침신문 1면 갈무리.
▲고 이건희 회장이 사망한 당시인 2020년 10월26일자 아침신문 1면 갈무리.

연구진은 이들 신문사의 추모 기사에서 사용된 단어를 분석했다. 분석 결과 상관없이 기업, 세계, 삼성전자, 반도체 등 단어의 등장 빈도는 신문사와 상관없이 동일하게 높았다. 이건희 회장의 업적 등이 추모 기사의 상당 부분을 차지했다는 뜻이다.

다만 진보신문은 승계, 이재용, 무노조, 그림자, 불법 등 단어를 일부 사용했다. 보수·경제신문에선 찾아보기 힘든 단어였다. 진보신문은 이건희 회장의 추모 기사에서 부정적인 부분도 함께 조명한 반면, 보수·경제신문은 이 같은 언급을 피한 것이다.

연구진은 신문사 보도를 주제별로 분류했다. 분류 기준은 세계 시장에서 이건희 회장의 치열한 경쟁 과정을 소개한 ‘경연 이벤트’, 이 회장의 과거 개인적 삶을 중심으로 언급한 ‘에피소딕 이벤트’, 이 회장이 삼성을 글로벌 시장에서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시킨 성취를 설명한 ‘정복 이벤트’. 이 회장의 마지막 장례 진행 상황과 추모 현장을 전한 ‘추모 이벤트’ 등 4개로 나뉜다.

▲한국언론정보학회 ‘‘셀러브리티’로서 이건희의 죽음은 어떻게 내러티브화되는가?’ 논문 갈무리.
▲한국언론정보학회 ‘‘셀러브리티’로서 이건희의 죽음은 어떻게 내러티브화되는가?’ 논문 갈무리.

보수신문은 경연 이벤트(31.22%), 에피소딕 이벤트(27.99%), 정복 이벤트(23.38%) 등 이건희 회장이라는 인물을 집중 조명한 기사를 다수 썼다. 추모 이벤트 기사는 17.39%에 불과했다. 경제신문의 경우 경연 이벤트(41.64%) 기사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이어 추모 이벤트(27.02%), 에피소딕 이벤트(18.47%), 정복 이벤트(12.86%) 순이다. 반면 진보신문은 추모 이벤트 기사가 절반 이상인 59.73%를 차지했다. 이어 경연 이벤트(16.27%), 에피소딕 이벤트(12.95%), 정복 이벤트(11.04%) 순이었다.

주제별 보도 분류 결과에 대해 연구진은 보수·경제신문이 이건희 회장을 긍정적으로 조명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봤다. 연구진은 “보수신문과 경제신문은 공통적으로 세계 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통해 삼성을 세계적 기업으로 일군 ‘경연 이벤트’ 관점에서 이건희의 삶을 강조하고 있다”며 “특히 경제신문은 특별히 이건희의 삶을 경연 이벤트의 관점에 초점을 맞췄다”고 했다.

연구진은 진보신문에서 추모 이벤트 기사가 빈번하게 발견된 것에 대해 “진보신문은 이건희에 대한 사회적 평가에 비해 추모식 행사와 같은 사실의 단순 전달에 더 비중을 두었다는 뜻”이라고 했다. 이어 “보수신문과 경제신문은 이건희 개인의 노력과 성취에 대한 긍정적 가치에 초점을 맞춘 반면에, 진보신문은 단순히 장례식 진행 상황에 대한 보도를 통해 ‘셀러브리티’의 조문과 관련한 추모에 초점을 맞췄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이건희에 대한 미디어 이벤트는 하나로 제한되지 않고, 여러 복합적인 이벤트가 동시에 제시되어 ‘전인적’ 또는 ‘신화적’ 인물로서 기록되고 있다”며 “(이건희 회장이)글로벌 경쟁과 시장 개척을 통해 삼성을 세계 정상의 기업으로 성장시킨 위인적 인물이었다는 관점을 지배적으로 강조한다. 이건희에 대한 사회적 평가는 한마디로 치열한 경쟁을 거쳐 세계 시장을 정복한 신화적 인물로 묘사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 ⓒ 연합뉴스
▲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 ⓒ 연합뉴스

이 같은 보도 행태는 언론과 자본이 분리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라는 것이 연구진의 설명이다. 연구진은 “미디어는 권력과 같은 정치적 요인이나 광고와 같은 경제적 요인, 기업인이나 특정 인물을 추모하는 경제사회적 계급 논리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며 “이건희와 같은 ‘셀러브리티’ 인물이 추모기사를 통해 긍정적 가치로 묘사되고 있는 데서도 잘 드러난다. 한국 일간신문이 보여준 이건희에 대한 영웅적 서사는 언론이 자본, 즉 광고와 유리되어 존재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고 했다.

연구진은 “언론사 입장에서 최대 광고주인 삼성 최고 의사결정자에 대한 영웅적·신화적 이벤트화는 재정적 후원자로서의 삼성의 영향력을 무시하기 어렵다는 점을 시사해준다”며 “한국 신문이 이건희의 추모기사를 미디어 이벤트로 격상해 다룬 데는 그들의 상업주의적 이해관계라는 맥락 속에서 해석해 볼 수 있다. 그 가운데서도 언론이 이건희의 삶을 사회적 가치에 부합하는 긍정적 언어를 통해 경연과 정복 이벤트화한 것은 언론의 경제사회적 계급 논리가 작동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 이건희 회장 사망 당시 신문사뿐 아니라 방송사에서도 유사한 보도 행태가 나타났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2002년 10월30일 발표한 ‘‘이건희 사망’에 종편의 낯 뜨거운 삼성 두둔과 찬양’ 보고서를 발간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같은 달 26일~28일 TV조선·채널A·MBN 대담 프로그램에서 이 회장에 대해 다룬 시간은 전체 1341분 중 207분, 이 중 이 회장의 과실에 대해 다룬 시간은 3.2%에 불과한 7분이었다. 이 회장의 공로를 다룬 시간은 10배가 넘는 75분(36.1%)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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