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10월27일 오전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10월27일 오전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27일 삼성전자 이사회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회장 승진을 의결했다. “책임경영 강화와 경영 안정성 제고, 신속하고 과감한 의사결정이 절실하다”는 이유였다. 당장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전자 자금을 횡령해 이를 박근혜 정부에 뇌물로 제공한 범죄행위로 감옥에 수감되고, 이로 인해 회사에 유무형의 막대한 손실을 입힌 것을 망각한 결정”(참여연대)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하지만 비판보다는 ‘찬가’에 가까운 기사만 눈에 띄었다.

참여연대는 “미등기임원인 이재용 부회장이 회장에 오르게 되면 권한은 있으면서 법적 책임은 지지 않게 돼 중대재해처벌법 적용도 피해갈 수 있기에 삼성이 주장하는 책임경영과는 거리가 멀다. 그렇다고 재판 중인 이재용 부회장이 등기임원에 선임되기도 어려우며, 이는 더더욱 이번 회장 승진이 부적합한 인사라는 것을 명확히 할 뿐”이라고 비판했다. ‘책임 없이 권한만 행사한다’는 비판은 한겨레 등 일부 언론을 제외하곤 찾기 어려웠다. 

대신 언론 보도는 ‘뉴삼성’으로 가득했다. ‘“더 과감하고 도전적으로 나설 때”…이재용의 ‘뉴삼성’ 온다’(세계일보), ‘‘이재용의 뉴삼성’ 책임경영·투명성 강화’(헤럴드경제), ‘회장 이재용 ‘뉴삼성’ 시대’(서울신문), ‘이재용 ‘뉴삼성’ 혁신 속도 높인다’(전자신문), ‘이재용 회장, QD OLED 투자 가속화···부진 딛고 ‘뉴삼성’ 첨병으로’(아주경제) 등 ‘뉴삼성’이 제목에 포함된 기사는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이재용 회장 승진=뉴삼성’이라는 긍정적 프레임은 신기루에 가깝다. 

실제는 ‘어두운 과거’만 돋보일 뿐이다. 이재용 회장은 삼성물산 불법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관련 자본시장법 등 위반 혐의로 재판 중이다. “최소한의 비용으로 경영권을 승계하기 위해 온갖 불법과 탈법을 동원”(민주노총)한 결과다. “삼성은 ‘이재용 회장 만들기’에 골몰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회사의 자산을 횡령해 사익을 추구한 총수의 경영 참여를 단절해 어두운 과거를 청산해야 한다”(참여연대)는 주장은 ‘뉴삼성’ 기사에서 찾기 어려웠다. 

반면 덕담에 가까운 사설은 찾을 수 있었다. 조선일보는 지난달 28일자 사설에서 “선대 회장들이 워낙 큰 족적을 남겨 어깨가 무거울 것”이라며 “선대 회장들도 온갖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삼성 신화’를 일구어 냈다”, “삼성 신화를 이어가야 하는 것은 이 회장이 피할 수 없는 절대적 과제”라고 썼다. 이 신문은 이 회장을 향해 “미래 성장 분야를 개척하는 혁신 리더십은 아직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며 “뜻하지 않은 사건에 연루돼 1년 반 이상 감옥에 갇히고, 다른 사건으로 또 기소되는 등 사법 리크스에 발목 잡힌 영향도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인과관계를 찾기 힘든 주가 보도는 이번에도 반복됐다. 지난달 27일 ‘이재용 회장 취임에 힘받네…두 달 만에 육만전자 터치’(매일경제), ‘“이재용이 로또네”…회장 취임날, 두 달만에 ‘6만전자’ 탈환’(한경닷컴)과 같은 기사가 단적인 예다. 삼성전자 주가는 10월21일부터 5일 연속 상승세였는데, 회장 승진이 주가에 영향을 미쳤다고 홍보하는 식의 보도였다. 그런데 당장 취임 다음날인 28일 삼성전자 주가는 하락했다. 2017년 이재용 구속 당시에도 언론은 당장 삼성이 망할 것 같은 보도를 쏟아냈지만 구속 이후 삼성전자 주가는 한동안 계속 올랐고 삼성전자는 그해 2분기 사상 최대 실적을 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취임 관련 기사 제목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취임 관련 기사 제목들. 

미담을 넘어 미화에 가까운 기사도 보였다. ‘듣는 남자 이재용, 그의 사무실에 걸린 액자의 사연’(파이낸셜뉴스) 기사는 2007년 당시 이재용 전무가 기자들에게 “제 사무실에 경청이란 글귀가 담긴 액자가 걸려 있다”고 말한 것을 옮겨오며 “이 회장이 경청을 대물림 경영철학으로 여긴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라고 보도했다. 해당 기사는 “(이재용은) 본인과 사장단을 위해 준비된 다과까지 취재진에게 손수 양보하는 배려까지 보여줬다”고 덧붙였다.

‘구내식당 식사, 홀로 출장길…‘이재용식 실용주의’ 온다’(중앙일보) 기사는 “이 회장이 별도의 행사나 취임사 없이 취임한 것부터 ‘이재용식 실용주의’로 해석된다”며 “종종 구내식당에서 식사를 해결하고, 기사 없이 직접 운전하거나 수행원 없이 여행가방을 끌고 홀로 출장길에 나서는 모습 등이 대표적”이라고 보도했다. 국정농단 사건으로 항소심에서 징역 2년6개월 집행유예 4년 유죄 판결을 받았던 사람이 윤석열 대통령 광복절 특사로 사면받았다고 회장 취임 행사를 열 수 있을까. 

‘“학교 멀리서 내려 등교” 소탈했던 소년…31년만에 삼성 맡아’(매일경제) 기사는 “이재용 회장은 평범한 학창시절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고급 승용차를 타고 학교에 가더라도 정문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내려 걸어서 등교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고 했다. “지금도 무노조 경영을 고수하며 삼성전자, 삼성SDI 등 계열사에서 부당노동행위 등을 이어가고 있다”(참여연대)는 지적에 비춰보면 ‘소탈함’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지만 언론의 관심 밖이다. 해당 기사는 “(이재용이) 대학 3학년 때 승마 선수로 전국체전 마장마술 부문에서 우승했다”는 데 더 관심이 있었다. 

‘‘91년 공채 32기’ 이재용 회장…쾌속승진 NO, 31년 걸렸다’(머니투데이) 기사는 “글로벌 시장을 누비며 말 그대로 산전수전을 다 겪은 끝에 삼성의 가장 높은 자리에 올랐다. 오너 일가 쾌속 승진의 재계 관행은 적어도 이 회장에게는 남의 얘기였다”고 보도했다. 아버지가 이건희가 아니었다면 오를 수 없었던 자리를 두고 “산전수전 다 겪었다”는 표현에 공감할 독자가 몇이나 될까. ‘찬가’에 가까운 일련의 기사들은 국내 최대광고주 삼성 사주를 위한 ‘선물’에 가까워 보인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이재용 부회장은 3대째 반복된 재벌승계 과정의 수많은 위법 및 국정농단 연루에도 지난 8월 광복절 특사로 사면·복권돼 ‘유전무죄’와 ‘법치주의 파괴’를 상징하는 인물이 되었지만, 언론은 이번 삼성 회장 취임 역시 ‘책임경영’ 등 수식어를 붙여 긍정적 의미를 대대적으로 부여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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