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하 민주노총) 산하 화물연대본부·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총파업에 돌입했다. 이들은 안전 운임제 지속추진 및 차종·품목 확대, 공공비정규직 구조조정 중단, 실질임금 삭감대책 마련 등을 요구하고 있다. 또한 민주노총은 노동개악 저지, 노조법 2·3조 개정을 촉구하기 위해 총력투쟁을 전개하기로 했다.

이를 두고 보수·경제지는 노동자들이 파업에 나선 이유를 분석하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대신 파업 자체를 비방하고 나섰다. 정부에 강경 대응, 공권력 투입을 요구하는 사설도 나왔다. 이에 발맞춰 정부는 화물연대에 업무개시명령을 내리는 것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화물연대 노동자들 24일 오전 경기 의왕시 내륙컨테이너기지(ICD) 오거리에서 화물연대 총파업 출정식에서 안전운임제 일몰제 폐지와 적용 차종·품목 확대 등을 요구하며 구호 외치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화물연대 노동자들 24일 오전 경기 의왕시 내륙컨테이너기지(ICD) 오거리에서 화물연대 총파업 출정식에서 안전운임제 일몰제 폐지와 적용 차종·품목 확대 등을 요구하며 구호 외치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경제위기 거론하며 총파업 비판한 보수·경제지

보수·경제지는 ‘경제위기론’을 들고나왔다. 경제위기 상황인데 화물연대본부가 총파업을 하면 경제가 휘청일 수 있다는 주장이다. 무역수지 적자, 외환시장 위기, 미·중 패권 경쟁 등 총파업 반대 명분은 다양했다.

특히 중앙일보·동아일보는 화물연대에 ‘파업을 철회하라’고 권고하기까지 했다. 중앙일보는 22일 사설 ‘민노총 또 총파업, 경제 어려울 땐 자제해야’를 내고 “이번 총파업은 우리 경제가 25년 전 외환위기 때 못지않게 어려운 와중이라는 점에서 더욱 우려가 커진다”고 했다. 이어 파업의 피해가 국민에게 돌아간다면서 “어떤 경우든 지금은 총파업을 벌일 때가 아니다. 온 사방에서 경제위기의 사이렌이 울리고 있는데 총파업을 하게 되면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는 경제가 아예 주저앉을 수도 있다. 경제 활동이 유지돼야 노동자의 권리를 주장할 발판도 마련되는 것 아닌가”라고 주장했다.

▲11월22일 중앙일보 사설, 11월25일 동아일보 사설 갈무리
▲11월22일 중앙일보 사설, 11월25일 동아일보 사설 갈무리

동아일보는 25일 사설 ‘화물연대, 힘겨운 경제 더 힘들게 하는 총파업 당장 멈추라’를 내고 “내년도 경제성장률이 잠재성장률에도 못 미치는 1.7%로 전망될 정도로 경기는 뚜렷한 하강 기조다. 대외경제 여건이 악화 일로인 데다 국내 경기마저 얼어붙는 복합위기 상황에선 집단 운송 거부의 타격이 더 클 수밖에 없다”고 했다.

세계일보는 25일 사설 ‘화물연대 5개월 만에 총파업, 국가경제는 안중에 없나’를 통해 “파업이 장기화하면 철강, 자동차, 조선, 건설 등 제조업의 생산 차질이 발생하고, 각종 제품의 수출길도 막혀 국가경제가 큰 타격을 입을 게 뻔하다”고 했다. 세계일보는 경제가 위기 국면이기 때문에 화물연대 파업의 명분이 없다면서 “복합적 위기에서 화물연대의 무기한 파업은 고통을 더 키울 뿐”이라고 썼다.

조선일보는 24일 사설 ‘경제 한파에 줄파업 민노총, ‘남은 어찌 되든 나만 살자’는 것’에서 화물연대 총파업을 “기업과 경제, 다른 근로자들이 어떻게 되든 ‘나만 살자’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조선일보는 “날짜를 맞추어 대규모 연쇄 파업을 벌이는 것은 이번 파업이 정치에 영향을 미칠 목적으로 계획된 것이란 점을 보여준다”며 “우리 기업들은 유례없는 위기 상황에 처해 있다. 무역 적자가 7개월 연속 이어지고 지난달 수출마저 감소세로 돌아섰다. 이런 상황에서 화물연대가 운송 거부에 돌입하면 철강·조선·건설 등 핵심 산업이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높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이응주 교선국장은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화물노동자가 경제위기를 초래한 건 아니다”라면서 “자본과 정부가 경제위기를 만들었는데, 왜 화물노동자가 그 책임을 져야 하는지 이해가 안 간다. 오히려 경제위기이기 때문에 화물노동자의 환경이 더 안 좋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국장은 언론이 화물노동자를 탓하는 것이 아니라 상생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면서 “현재 언론 보도에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민주노총 파업과 관련해 시민 불편을 강조한 보도들. 사진=네이버 뉴스 검색화면 갈무리.
▲민주노총 파업과 관련해 시민 불편을 강조한 보도들. 사진=네이버 뉴스 검색화면 갈무리.

파업 본질 대신 ‘시민 불편’ 강조한 언론

총파업의 본질 대신 파업·집회 현장을 비판하는 보도들이 있었다. 파업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강조한 것이다. 한국경제는 22일 ‘화물차 지하철 학교에 총파업 쓰나미…기업·시민만 또 볼모로’ 사설을 내고 “노조의 요구사항을 보면 과연 기업과 시민을 볼모로 삼을 일인지 의문”이라고 했다. 한국경제는 “파업 시에도 50% 이상의 지하철 운행률은 유지한다지만, 서울지하철 1~9호선을 이용하는 시민 불편은 물론 인파 사고 우려마저 커진다”고 했다.

또한 한국경제는 22일 ‘"점심 약속 가다 깜짝"…여의도 직장인들 눈 휘둥그레진 이유’ 기사에서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여의도역에 모인 것을 두고 ‘이태원 참사’를 언급했다. 한국경제는 “(여의도역에)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몰리면서 지하철 역사 내부와 여의도역 일대가 마비돼 일부 시민들이 불편을 호소했다”고 지적하고 “사람이 가득한 모습을 보니 최근 이태원 참사 생각도 나고, 갑자기 숨이 탁 막히는 기분이었어요”라는 시민 인터뷰를 소개했다.

매일경제는 민주노총 전국건설노동조합에 여의도 교통 혼잡 책임을 물었다. 매일경제는 22일 ‘여의대로 가득 채운 건설노조 집회에…꽉 막힌 여의도 도로’ 보도에서 건설노조의 결의대회로 여의대로 교통난이 가중됐다면서 “오후 6시 기준으로 노조원들의 버스가 대부분 여의도를 빠져나가면서 도로 상황은 차차 진정되고 있지만 여의도에 집회가 일어난 시간 동안 수많은 시민들의 발이 묶였다”고 했다.

전국건설노동조합 김준태 교육선전국장은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시민 불편이 없을 순 없다는 것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고, 죄송스러운 마음이 있다”면서도 “그러나 언론은 건설노동자가 왜 대규모로 한자리에 모일 수밖에 없었는지, 우리가 어떤 주장을 했는지 공부해야 한다. 그런 점은 외면하고 단순히 시민 불편만 이야기하는 보도 행태가 안타깝다”고 했다.

▲사진=윤석열 대통령 페이스북 화면 갈무리.
▲사진=윤석열 대통령 페이스북 화면 갈무리.

보수·경제지, 정부에 강경 대응-공권력 주문

정부가 화물연대 총파업에 대해 강경한 대응을 해야 한다는 주문도 나왔다. 노동삼권 중 하나인 단체행동권을 공권력으로 억눌러야 한다는 것과 다름없는 요구다. 중앙일보는 사설에서 “법과 원칙에 따라 화물연대를 비롯한 민주노총의 파업에 엄정하게 대처해야 한다. 화물연대 조합원의 비노조원 운송 방해 등 불법행위에 강력하게 대응하고 필요하면 업무 개시 명령 발동까지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동아일보 역시 “이번에도 말로만 엄정 대응을 외치다 밀린다면 민노총이 결사반대하는 노동 개혁은 시작도 못 해보고 좌초될 것”이라고 썼다.

파이낸셜뉴스는 23일 ‘명분 없는 총파업에 경제도 민생도 부도 위기’ 사설에서 “야당 대표는 위헌성이 짙은 노란봉투법을 통과시키겠다는 등 파업을 부추기는 언행을 일삼고 있다”며 “입으로는 민생을 외치면서 국민을 고통 속으로 몰아넣는 이중적 행태다.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이 떠안는 것을 알기나 하는 건가”라고 했다. 이어 “정부의 태도는 말로만 엄중했지 실제로는 뜨뜻미지근했다”며 “협상과 조정이 불가능하다면 엄정한 대처로 파업의 폭주를 어떻게든 멈추도록 해야 한다. 파업에 불법성이 있다면 강력한 공권력을 동원해 다스리기 바란다”고 했다.

실제 윤석열 정부는 보수·경제지들의 바람대로 강경 대응에 나서기로 했다. 대통령실은 화물연대가 총파업을 철회하지 않으면 업무개시명령을 실시하는 것을 검토 중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24일 페이스북에서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물류 시스템을 볼모로 잡는 행위는 국민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무책임한 운송거부를 지속한다면 정부는 업무개시명령을 포함하여 여러 대책들을 검토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에 화물연대 이응주 교선국장은 “우리는 노동자로서의 권리로 파업을 했을 뿐 불법행위를 저지른 게 아니다”라면서 “불법을 하지도 않았는데 (언론과 대통령이)이 같은 입장을 내는 것은 화물연대를 겁박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국장은 “언론이 갈등을 부추기는 측면도 있다”면서 “노동자들은 기사를 무시하려 하지만 (기사가) 정부와 국회를 압박하는 수단으로 사용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엄정대응 요구하는 보수·경제지, 경제에 악영향 끼치는 보도”

탁종열 노동인권저널리즘센터 소장은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언론이 총파업 이유, 해외 사례 등을 면밀하게 살펴봐야 한다고 꼬집었다. 탁 소장은 “사실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가 경제위기 상황에 있다”면서 “영국, 프랑스, 그리스 등 국가의 노동자들도 최근 파업에 나섰다. 경제위기가 심할수록 노동자 파업이 더 활발하게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경제위기 상황이기 때문에 파업을 멈춰라’는 언론의 논리가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또한 탁 소장은 정부에 엄정 대응을 하는 보수·경제지에 대해 “노사갈등을 조장해 경제에 악영향을 끼치는 보도”라고 규탄했다.

탁종열 소장은 “유럽연합 등은 횡재세를 거둬 노동자에 대한 지원을 해주고 있는데 윤석열 정부는 물가 인상에 따른 서민들의 피해에 대해 별다른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며 “이런 상황에서 노동자들에게 파업하지 말라는 건 앉아서 죽어라는 얘기와 다름없다. 언론의 불가능한 주장”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안전운임제 이후 화물노동자들의 노동실태가 어떠한지, 화물운임은 현실성 있는지, 해외 화물노동자 상황과 정책은 무엇이 있는지 등 취재해야 할 주제가 많다”면서 언론이 문제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해결하는 방향의 보도를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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