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 ‘형제복지원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던 2016년 2월, 미디어오늘은 부산에서 피해생존자 황송환씨를 인터뷰했다. 황씨 삶에서 형제복지원은 유일한 폭력이 아니었다. 그는 부산 영도에서 1953년 태어난 것으로 추정되지만 그의 호적에는 1962년 출생으로 기록돼있다. ‘전쟁고아’였던 황씨는 경기도에 위치한 한 고아원에서 서울시립아동보호소로 보낸 것으로 유년시절을 기억했다. 제식훈련과 폭행의 공간인 서울시립아동보호소에서 탈출과 감금을 반복했다. 

“경상도 말을 쓰니까 부산으로 보냈는가봐” 황씨는 서울에서 부산으로 보내진 이유를 추정했다. 황씨는 형제복지원 이전 집단수용시설인 부산 영화숙·재생원에도 갇혔다. 영화숙에서도 군인들이나 받는 제식훈련을 받았다. 황씨는 형제복지원(주례동)의 전신인 형제원(형제육아원, 용당동)에 13살 무렵 끌려갔다고 했다. 형제복지원에도 수차례 탈출과 감금이 반복됐고 부산 소년의집이란 곳에 3개월, 대구 희망원에 1주일간 수용되기도 했다. 

▲ 황송환씨 수용시설 소년의집 재원증명서
▲ 황송환씨 수용시설 소년의집 재원증명서

15살부턴 넝마주이로 살았고, ‘아이스께끼 장사’, 석간 중앙일보를 돌렸던 경험 등도 털어놨다. 이후 케이블 설치 작업을 하다가 다쳤고, 허리디스크 수술을 두번 했다. 한국전쟁 때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유해를 찾아보려 수소문한 이야기는 절박했다. 그러다 황씨는 느닷없이 자신의 어린시절 꿈을 말했다. 

“내가 어렵게 살아서, 얼라들 보호시설 그런 걸 하는 거. 나 같은 고아들 오갈 데 없는 고아들 잡아다 때리는 게 아니고 자유를 주는 거죠. 나가고 싶으면 나가고. 자유식으로. 직장 다니고 싶으면 다니고. 나는 항상 ‘승우야’ 하지 않고 ‘최승우 아우님’ 이렇게 님자를 붙여요.” 인간적인 꿈, 그에겐 국가폭력에 대한 반작용이기도 하다.

형제복지원에서 발생한 인권침해는 ‘사건’이 아니라 ‘현상’이다.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지난 8월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해 당시 대통령 전두환씨의 구체적 지시와 여러 국가기관의 조직적인 강제수용 등을 확인하며 국가폭력에 의한 인권침해로 판단했다. 이는 형제복지원이라는 일개 사회복지법인의 일탈이나 뜻밖의 범죄가 아니었다는 뜻이다. 진실화해위는 일부 신청자들의 피해사실도 확인했는데, 황씨도 그중 한명이다. 황씨 삶만 보더라도 시설수용은 조직적이고 구조적이다. 시설수용자는 열등한 위치에 놓이고, 이 때문에 또 다른 시설에 감금당해왔다.

[관련기사 : 형제복지원 첫 진상규명, 전두환 강제수용 지시까지 확인]
 
부산에 사는 김세근씨도 마찬가지다. 원래 1957년생이지만 호적상 1962년생이다. 1984년까지 호적없이 살다가 얻은 생년월일이다. 김씨는 1962년부터 1971년까지 서울시립아동보호소에 감금됐고, 이후 부산에 갔다가 기차역에서 경찰에게 붙잡혀 1982년 12월까지 형제복지원에 감금됐다. 김씨의 총 감금기간은 21년8개월. 우울증, 공황장애 등으로 정신건강의학과 약을 복용한지 30년이 지났고, 형제복지원에서 폭행 후유증으로 척추장애가 생겨 물건을 제대로 들지 못한다. 그도 지난 8월 진실화해위에서 형제복지원 피해 사실을 입증받은 이들 중 하나다. 

김씨는 지난 16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들에게 영화숙·재생원, 내가 있었던 서울시립아동보호소, 대구 희망원 등에 있었다는 말은 많이 들었다”며 “다들 형제복지원처럼 때린다는 얘기들을 하더라”라고 말했다. 김씨가 그렇듯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들에겐 형제복지원이 유일한 폭력이 아니다. 

▲ 17일 서울 중구 진실화해위 앞에서 발언하는 김세근씨(가운데). 사진=전장연 페이스북 갈무리
▲ 17일 서울 중구 진실화해위 앞에서 발언하는 김세근씨(가운데). 사진=전장연 페이스북 갈무리

현재 진실화해위는 형제복지원·선감학원 등 수용시설 인권침해 사건을 조사하고 있다. 이는 피해생존자들이 직접 진실화해위에 조사를 요청한 결과다. 지난 2020년 12월10일 출범한 진실화해위는 오는 12월9일까지만 진정 접수를 받는다. 

사건 접수 기한이 한달도 채 남지 않은 17일 김세근씨 등 6명은 진실화해위에 수용시설에서 벌어진 인권침해 사건에 대해 진실화해위에 진실규명을 신청했다. 이들은 서울에 있던 서울에 있던 ‘서울시립아동보호소’, 부산에 있던 ‘재생원’과 ‘영화숙’, 대구의 ‘대구시립희망원’, 장애인 수용시설인 김천 ‘중생원’ 등에 있던 이들이다. 김씨는 서울시립아동보호소, 황씨는 서울시립아동보호소와 재생원·영화숙에 대한 진정을 넣었다. 

▲ 서울시립아동보호소. 사진=국가기록원
▲ 서울시립아동보호소. 사진=국가기록원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등 7개 단체는 이들과 집단진정을 조력하면서 직접 진정하기 어려운 피해생존자를 고려한 진실화해위의 직권조사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1987년 기준 공식 집계된 부랑인 관련 수용시설은 36개이지만 해당 시설들에 대한 자세한 실태가 드러나지 않았다. 피해생존자들은 고령·장애, 사회적 시선 혹은 여전히 시설에 살고 있는 등의 이유로 직접 사건을 접수하지 못하고 있다. 또 국가기관이 폭력의 공범자라고 생각하기에 정부 측 조사에 거부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들 단체는 이날 서울 중구 진실화해위 사무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진실화해위가 시설 피해생존자들의 이러한 어려움을 감안해 직권조사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김덕진 천주교인권위원회 상임활동가는 “진실화해위가 직권조사라는 제도를 통해 일일이 진정하지 않더라고 조사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며 “진정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또 다른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들이 많이 있고 1987년 공식 36개 기관이 있다고 하는데 파악하지 못한 소규모 시설들이 더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진실화해위에서 진행한 수도권과 강원 지역 집단수용시설 연구용역 책임자였던 김재형 방송통신대학교 문화교양학과 교수는 “여러 집단 수용시설에서 형제복지원과 비슷한 인권침해인 감금, 가족과 단절, 폭행과 사망 약물투약, 화학적 구속 등이 발생했다”며 “한번 수용된 사람들은 평생 또는 장기간 여러 시설을 전전하는데 이는 수용시설이 개벌적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수용시스템의 일부로 존재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사회복지 관련 다양한 법률, 조례, 정부 문서들은 집단수용시설의 설립과 운영이 정책 목적에 따라 이뤄졌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설립과 운영의 주체가 하나의 시스템으로 작동하고 있기 때문에 진실화해위는 신청을 받아 개별 수용시설을 조사할 게 아니라 전체 집단을 시스템으로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낙인과 차별 때문에 인권침해 사실을 드러내지 못하는 이들이 대다수인 상황에서 진실화해위가 신청된 사건만 조사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시설 인권침해에 대해 선제적으로 직권조사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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