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형제복지원 사건을 국가폭력에 의한 인권침해 사건으로 판단했다. 피해자들이 그동안 주장해 온 내용을 국가기구가 공식 확인한 35년 만의 진상규명이다. 특히 당시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 전두환씨의 구체적인 지시와 여러 국가기관의 조직적인 강제수용 등 인권침해를 확인하면서 일개 사회복지법인의 일탈로 볼 수 없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24일 진실화해위는 1981년 당시 대통령 전씨의 지시로 만든 ‘구걸행위자보호대책’(국무총리 행정조정실) 등을 통해 최고 책임자의 지시 내용을 공개했다. 1981년 4월9일 보안사령부는 ‘신체장애자 구걸행각실태’라는 보고를 올렸고 다음날 전씨는 “서울시 등 전국 대도시에 신체장애자를 비롯한 걸인들의 구걸행위가 늘어나고 있음을 지적, 구걸행위자를 일제단속하고 아울러 보호대책을 수립, 보고토록 국무총리에게 지시”하라고 했다. 

▲ 1984년 5월11일, 당시 대통령 전두환씨에게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는 박인근 형제복지원 원장. 사진=형제복지원 운영 화보집
▲ 1984년 5월11일, 당시 대통령 전두환씨에게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는 박인근 형제복지원 원장. 사진=형제복지원 운영 화보집

 

전씨가 박인근 형제복지원장에게 훈장을 주는 사진 공개로 박 원장이 국가에 비호를 받는다는 정황은 알려졌지만 이번 조사를 통해 강제수용을 시작으로 수많은 인권침해에 대통령의 책임 소재를 구체화한 것이다. 1981년 10월6일 전씨는 국무총리에게 관련 보고를 받은 이후 88올림픽 개최 이전 서울 거리에 걸인이 없도록 할 것, 걸인 중 정상적 사람이 40% 되는데 대공적 용의점 있는지 검토할 것, 수용된 걸인은 지방장관 책임하 농촌 일손돕기 등 농민 지원 등을 지시했다. 최종 확정한 ‘구걸행위자보호대책’은 전국 수용시설 확충과 시설 민간위탁화, 단속체계 정비 등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관련기사 :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전두환 사과도 없이 가버렸다”]

강제수용, 전두환 지시 있었나

정부가 피해자의 진정과 소송을 묵살한 사실도 확인했다. 1982년 8월 강아무개씨는 자신의 형이 형제복지원에 수용돼 인권침해를 당한 사실을 수사해달라며 정부 기관과 경찰에 진정서를 냈다. 박인근 원장은 강씨를 무고죄로 고소했고 1982년 10월15일 강씨가 구속기소됐다. 

강씨 진술에 따르면 박 원장은 형사들을 다그치면서 다혈질적인 모습을 보였고 박 원장이 경찰 비호를 받는 것으로 이해했다. 결국 강씨의 가족들이 박 원장에게 잘못했다는 내용의 글을 작성했고 같은해 10월28일 사과문이 한국일보에 실렸다. 같은해 12월 부산지법은 강씨에게 징역 8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 한국일보 1982년 10월 28일자. 피해자인 강아무개씨 가족이 박인근 형제복지원장에게 작성한 사과문
▲ 한국일보 1982년 10월 28일자. 피해자인 강아무개씨 가족이 박인근 형제복지원장에게 작성한 사과문

 

또 다른 사례에선 1987년 2월 형제복지원 퇴소 아동의 아버지가 관계자 처벌을 요청하며 부산지검 울산지청에 고소장을 제출했는데 부산시 공무원들이 고소취하를 종용했고, 이 과정에서 안기부와 방첩대까지 동원된 정황이 드러났다. 

보건사회부(현 보건복지부)에서 강제수용 사실을 알고도 묵인․정당화한 사실, 보안사령부에서 형제복지원에 수용된 간첩 용의자를 감시하기 위해 요원을 침투시키면서 이곳의 인권침해가 심각하다는 사실을 파악했다는 내용 등도 이번 조사에서 확인됐다. 해당 기관들은 책임있는 조치를 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대통령의 지시와 함께 여러 국가기관이 조직적으로 움직였기 때문에 형제복지원 강제수용과 각종 인권침해에 대해 일부 공무원들이 문제라는 인식을 보였지만 결과적으로 상황을 개선하는데 영향을 주지 못했다. 

▲ 24일 기자회견에서 형제복지원 1차 조사결과를 발표하는 정근식 진실화해위 위원장. 사진=MBC 갈무리
▲ 24일 기자회견에서 형제복지원 1차 조사결과를 발표하는 정근식 진실화해위 위원장. 사진=MBC 갈무리

 

부산시 형제복지원 관리감독 업무(보사국 사회과 복지계장) 공무원은 1986년 자신의 석사학위논문에서 내무부 훈령 410호에 대해 “국민 자유권 행사를 제약하는 것으로 이를 장관 훈령으로 함은 법치국가에서 용납될 수 없다”고 지적했고 형제복지원에서 직업훈련을 한다고 하지만 자격증을 갖춘 종사원이 없으며 경비절감과 인력활용을 위해 군대조직처럼 운영하고 있다며 비판적으로 분석했다. 

1987년 문제가 된 내무부가 내무부 훈령 410호를 폐지하겠다고 발표했지만 경찰업무지침에 따라 ‘기동적 단속’ ‘야간 미행 단속’ 등 부랑인 단속업무를 유지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비행성예측법 실시’라는 자료를 보면 경찰이 자의적으로 비행성을 판단해 복지시설인계까지 결정할 수 있도록 한 사실도 드러났다. 공권력이 임의로 국민의 신체 자유를 제한한 행위다. 

당시 단속 경찰 증언을 종합하면 경찰 자의적 판단으로 부랑인을 선정하고 강제수용했다. 경범죄 위반자를 경범죄처벌법에 따른 구류나 과료 처분하지 않고 형제복지원에 강제수용한 사례, 고아라는 이유로 소년범을 형제복지원에 강제수용한 사례 등도 확인됐다. 경찰뿐 아니라 부산시 등에서 부실한 조사 이후 형제복지원으로 강제수용하기도 했다. 

형제복지원 모델의 전국화

형제복지원은 1960년 부산 감만동에서 형제육아원으로 개소해 1962년 용당동으로 확장 이전, 1975년 주례동으로 다시 확장이전했다. 1982년 증축공사 등 운영기간 내내 모든 건물 공사를 수용인들에게 강제노역을 시켰다. 형제복지원 측은 당국에서 보조금을 받지 않았다고 주장하지만 실제 국비․시비를 지원받고 산림청에서 헐값에 부지를 불하받았다. 

1981년 10월 총리 행정조정실 주도 ‘구걸행위자 보호대책’을 보면 전국 부랑인시설을 확충하기로 하고 12월 추진상황을 점검하면서 재원 문제가 불거지자 ‘형제복지원 모델(강제노역)’을 따라 건축 비용을 절감하도록 지시했다. 

형제복지원 측은 자체 월간지 ‘새마음’ 등을 통해 수용인들에게 적금을 지급했다고 주장하지만 진실화해위 확인 결과 수용인들에게 적금을 온전히 지급하지 않았다. 1987년 수사 당시 검찰이 압수한 물건 중 ‘기증금 세입결의서’ 등을 보면 수용인들이 도망가거나 사망할 경우 또는 박 원장 명령에 불복할 경우 즉시 기증처리 해 소유권이 형제복지원으로 넘어간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처럼 다수 기록을 조작․오기재한 가운데 호적에 문제가 생긴 경우도 있었다. 설아무개씨의 경우 5~6세경 형제복지원에 강제수용됐는데 입소 당시 신상기록카드에 생년월일 등을 잘못 기재했고 이후 다른 시설로 전원됐다. 잘못된 신상정보로 설씨에 대해 가족이 없는 호적을 창설했고 가족들은 군대 갈 나이까지 설씨가 돌아오지 않아 사망신고를 했다. 이번 진실화해위 조사에서 설씨는 친동생과 극적으로 만났고 현재 호적상 친동생보다 나이가 어리게 기재된 사실을 확인해 회복절차를 진행 중이다. 

정신요양원은 징벌? ‘화학적 구속’ 정황까지

형제복지원 내 정신요양원 수용인 다수가 의료적 진단이 아닌 징벌 조치의 일환으로 이뤄진 사실도 드러났다. 피해자들 증언뿐 아니라 신상기록카드에서도 ‘정신질환자로 사료된다’는 비의료인의 판단 이후 정신요양원으로 갔기 때문이다. 보건사회부 지침을 보면 ‘사회에 위해를 끼칠 수 있는 자’에 대한 수용이 ‘중증 정신질환자’ 등 보다 우선순위에 있었다. 

▲ 형제복지원 내 정신요양원 약물 관련 자료. 사진=진실화해위
▲ 형제복지원 내 정신요양원 약물 관련 자료. 사진=진실화해위

 

이렇게 정신요양원에 입소한 이들에게 부적절하게 약물을 투여한 정황도 나타났다. 수용인 다수는 멀쩡한 사람들에게 CPZ(클로르포로마진) 등 정신과 약을 강제로 먹여서 무기력한 상태로 만들었다고 증언했다. 부산시 해명 자료를 보면 정신요양원 내에서 구입한 클로르포로마진은 1년간 수용자 전원이 매일 투여할 양이었다. 그 외에도 형제복지원에선 각종 마약류에 해당하는 향정신성의약품을 구매했다. 

이번 조사로 1975~1988년 형제복지원 사망자는 기존에 알려진 552명보다 105명 많은 657명인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면서 수용자 응급 후송 중 사망 사례나 사망진단서 조작 사례가 있다고 판단했다.

진실화해위는 이번 조사결과를 근거로 국가가 형제복지원 강제수용 피해자와 유가족들에게 공식 사과하고 피해 회복과 트라우마 치유 방안을 마련하라고 권고했다. 또한 국가가 각종 시설 수용․운영 과정에서 피수용자 인권이 침해되지 않도록 관리․감독을 철저히 시행하고 사회복지공무원과 시설운영자 등에 대한 인권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정근식 진실화해위 위원장은 사과 주체인 국가가 구체적으로 어떤 부처인지 특정하지 않았지만 이번 조사에서 대통령의 구체적인 지시내용과 내무부(현 행정안전부) 훈령의 문제점, 여러 국가기관의 조직적 행위가 드러났기에 향후 발표에서 대통령과 행안부 등의 책임있는 조치를 요구하는 권고안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

또한 진실화해위는 국회에 강제실종 피해를 막기 위해 지난 6월 국무회의를 통과한 ‘유엔 강제실종방지협약’을 조속히 비준 동의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부산시에는 피해자 조사와 지원업무 당당 조직이 업무를 차질없이 수행할 수 있도록 적합한 예산․규정․조직을 정비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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